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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를 둘로 쪼개자는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하지만 언급이 워낙 짧아 자세한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 이후엔 더 이상의 언급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해서 직접 알아보니, 네 가지가 독특했다.
첫번째, 캘리포니아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쪼개자는 주장이라는 것. 두번째, 이걸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 세번째, 그들이 농부들이라는 것. 네번째, 결국 캘리포니아 내에 뿌리깊은 지역갈등 탓이라는 것.
가뜩이나 긴데 이걸 세로로 쪼개? 칠팔년전 처음으로 캐나다 국경마을까지 차로 가던 때, 아침 일찍 LA를 출발했는데도 캘리포니아를 벗어난 것이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중간에 많이 쉬지도 않았는데 열두시간 넘게 걸린 거다. 참 길다. 따라서 굳이 캘리포니아를 쪼갤거면 당연히 가로로 잘라야 한다. 근데 이 긴 캘리포니아를 세로로 쪼개잔다.
세로로 반으로 딱 쪼개는 것도 아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중 서부 해안에 있는 13개 카운티만을 떼어내어 ‘Coastal California’로 만들고, 나머지 45개 카운티는 그대로 캘리포니아로 남기자는 거란다. 이런 모양이다. 한쪽 끄트머리만 깎아내는 모양새다.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 떨어지는 13개 카운티의 면면을 보니.. Marin, Alameda, Contra Costa, San Francisco, San Mateo, Santa Clara, Santa Cruz, San Benito, Monterey, San Luis Obispo, Santa Barbara, Ventura and Los Angles 카운티다. 캘리포니아의 상징, LA와 샌프란시스코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난 당연히 이 분리안이 서부해안 13개 카운티쪽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었다. 행정구역을 쪼개자고 나서는 쪽은 대개 잘사는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우리 지역에 쓰이지 않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쓰여지는 게 배 아파서 부자 동네가 따로 살림 차리겠다는 거.
그래서 ‘분리하면 우리야 좋겠지만 가난한 카운티 사람들이 반대할 터이니 통과되긴 힘들거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이 분리 주장은 가난한 카운티쪽에서 나온 거였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엘에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부자동네를 떨궈내겠다는 거였다. 서울의 예로 들자면.. 서울시민들이 강남3구를 떨궈내겠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표면적 이유 - 정의사회 구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의외로 아주 단촐했다. 그들이 첫페이지에 올린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The approval ratings of the Governor and legislature are in the tank. The legislature is stymied, hamstrung and virtually gridlocked, like L.A. traffic. State government is in a financial tailspin, without fiscal discipline or restraint.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 and are sympathetic to illegals and criminals. Expenditures on non-citizens, employment displacement and generational welfare rolls are leaving a massive, ong oing debt to our children, grand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별거 없다. 그저 일반적인 미국의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하는 주장과 거의 같다. 자기들 나름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다는 것. 근데 겨우 이런 이유로 캘리포니아를 쪼개자는 말이었든가? 이거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알아봤다. 이 사람들 진짜 왜 이러는지.
약간 더 깊은 이유 - 농경 목축산업 보호
 Farmers! Protect your way of life. It is the time to let the coastal and metropolitan counties have their own way. If they can’t appreciate agriculture, they should live without it. They should form their own state. Citizens for Saving California Farming Industries
그들의 포스터에 있는 글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것들과 따로 살자..’ 뭐 이런 내용이겠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서쪽 대도시 사람들 때문에 농경산업이 어려움에 빠진 모양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liberal) 성향이 강한 해안지역 카운티들을 분리해내고, 농경산업을 보호해서 캘리포니아를 옛날의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로 다시 변모시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시 뭐가 뭔지 잘 모르겠기는 마찬가지다.
조금 더 깊은 이유 - 뺀질이 니들이 뭘 알아? 이 분리 운동의 시작은 지난 해 말, 캘리포니아 Central Valley 지역의 농부들이 어떤 주민발의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그림이 계속나와 짜증나겠지만.. 왼쪽 해안에서 약간 들어가서 녹색으로 칠해진 아래위로 길다란 타원형 부분이 바로 센트럴 밸리다.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다.)
그 주민발의안의 내용은.. ‘농장에서 가축들을 열악한 환경에 가둬놓고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잡아먹을 가축이라도 최소한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라는 내용. 고기는 쳐먹으면서도 동물학대에는 반대하는 서쪽 대도시 사람들이 낸 발의안이었겠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농장 경영 조건이 까다롭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동부지역 농민들이 반대를 한 것이었다.
근데 그 법안이 덜컥 통과되어 버렸다. '농장을 경영하려면 알을 품은 암탉, 수태 중인 송아지나 돼지가 충분히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민발의안이 캘리포니아 주민 63.4%의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이게 동부의 내륙 주민들을 격분시켰다. 위 4번째 문장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서야 알겠다. 농업의 농자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 가축권익을 내세우느라 자기들의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느낀 것이다.
서부 대도시지역 뺀질이들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상당했었던 모양이다. 이게 촉매제가 되어 이 참에 아예 지역을 분리해 버리자는, 리버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을 아예 분리해 내자는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리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모자란다. 자기들 농업에 방해가 된다고 주를 둘로 쪼개자고?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일 깊은 진짜 이유 - 뿌리깊은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인종갈등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주 서부와 나머지 농업지역 주민들은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한다. 도시 생활 위주의 해안지대 주민들은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고, 농업이 생활 기반인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이라고 한다.
이념이 걸린 이슈가 나올 때마다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둘로 쪼개지는 모양이다. 최근 동성결혼 이슈때에도 서부지역엔 ‘찬성 스티커를 붙인 세단’이 많았는데, 나머지 지역엔 ‘반대 스티커를 붙인 트럭’이 넘쳐났었단다.
이건 어쩌면 백인 보수층과 리버럴한 이민자들간의 갈등인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인종갈등 얘기를 하면서 언급했었던 이탈리안 식당을 기억할 것이다. 졸지에 인종차별을 당해 기분이 나빴었다던 그 식당이 있는 곳이 바로 이 센트럴 밸리 지역이었다. 백인 농장주들과 유색인종 일꾼들이 아직까지도 극명하게 나뉘어 사는 곳, 센트럴 밸리지역이다.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보수층,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기독교 교조주의자들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불통의 사람들.. 이번 캘리포니아 분리주장은 이들 꼴통들이 벌이는 해프닝이다. 비록 겉으로는 농경과 목축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속내를 캐어보면 이념갈등과 인종갈등이 그 뿌리였다. 캘리포니아를 분할하자는 이런 시도는 1850년 캘리포니아가 주가 된 이후 무려 220여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프닝 어쩄거나 이 분리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여론조사에서도 캘리포니아 등록 유권자의 82%가 이 분리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설령 기적이 일어나서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더라도 주를 분리하는 것은 미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데, 거기서 이것이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다.
하지만 어쨌든.. 스케일 하난 참 크다. 그리고 그 스케일에 비해 주민들의 반응은 너무 무덤덤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국에서 어느 특정지역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나머지를 분리해서 3개의 국가로 가자’ 혹은 ‘비기독교인들만 모여서 딴 나라를 세워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에 대해 반응이 거의 없는 거다.
만약 이런 주장을 만약 한국에서 진짜로 한다면 어떨까? 아마 온 나라가 냄비처럼 들끓으면서 여론 재판으로 그를 살해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황당무계한 정신병자라는 게 뻔한 허경영도 감옥에 가고, 한국 싫다는 한마디 했었다고 아이 하날 역적만들어 쫓아내니 말이다.
캘리포니아 분리 운동.. 이런 주장을 막 펼쳐도 되는 유연한 사회 분위기도 부럽고, 웬만한 건 사람들이 그저 웃어 넘기는 그들의 ‘무쇠 솥’ 근성도 부러워지는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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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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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어쨌든 스케일이 크다할지언정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이니...
냄비가 들끓는 곳도 오늘은 조금 놓아두고
내일이 이곳은 추석이라네요.
요팡님...
추석, 풍성하고 기쁜 날 되시라고 인사드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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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ㄱㄷㄱ 2009.10.03 04:54 [75.31.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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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동서남북으로 갈려서 으르렁대는 게 아니군요.^^ 주를 나누자고 하는 정도이면 거의 증오에 가까운거 아닙니까? 하여튼 재미있는 사람들입니다. 미쿡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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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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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상한 건 아닌가요? 미국이 정상이고. 머 모든면이 그렇다는 건 아닌데 우리는 걍 웃고 지나가도 될 일을 너무 심각하게 만드는 만성질병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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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미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치한 가사.. 참 편하다. 사랑하는 듯 하다가 점 하나 찍고 남으로 돌아서 버린다니.. 물론 이런 경우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으로 포장된 애욕이나 욕망이었을 때의 얘기다. 실제로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점 하나 찍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늘이 무너지던 실연의 충격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면 사람들은 스스로 점을 찍어야 한다고 마음을 잡는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치사하게도 바로 ‘미움’이다. 시시콜콜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을 확대시킨다. 자세히 보면 못 생겼어, 성격이 쪼잔해, 머리가 비었어, 부모가 무식해, 그러다 급기야는.. 저뇬 너무 헐렁해, 저쉐이 조루대왕이야..
만약 이랬는데도 점이 안 찍히면 그 다음 방법은 ‘증오’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했었는데 네가 날 버리다니.. 원망과 분노가 쉽게 일어난다. 날 버리고 너 얼마나 잘되는 지 보자 썅..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야 점은 잘 안 찍힌다. 진실로 사랑하던 사람은 미워해도 증오해도 잘 안 잊혀진다. 실연의 아픔엔 그저 세월만이 유일한 약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과 미움이 적당히 얼버무려져 세월로 희석된다. 이렇게 사랑과 미움은 숙명적으로 결탁해 있다는 걸 슬슬 안다.
사랑과 미움은 둘 다 괴롭다
不當趣所愛 (부당취소애) 亦莫有不愛 (역막유불애) 사랑함을 가지지 말라. 미워함도 가지지 말라.
愛之不見憂 (애지불견우) 不愛見亦憂 (불애견역우) 사랑하면 못 봐서 괴롭고, 미워하면 자꾸 봐서 괴롭다.
是以莫造愛 (시이막조애) 愛憎惡所由 (애증오소유)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니라.
已除縛結者 (이제박결자) 無愛無所憎 (무애무소증) 이미 이를 묶어 없애버린 자는 사랑도 미움도 없느니라.
두번째 줄은 누구에게나 팍 와 닿는다. 보고싶은 사람은 못봐서 괴롭고, 보기싫은 사람은 자꾸 봐서 괴롭다.^^ 그건 그렇고.. 이게 뭔가?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살라는 말이더냐? 우리가 벌레냐 이렇게 살라하게. 그렇다. 이런 경지는 산속에 쳐박혀 수행만 하는 중들에게도 불가능한 경지다. 그들도 ‘그런 척’ 정도나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경지이다. 어찌 좋아하고 싫어함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든가. 혹시 부처나 예수라면 모를까.
흥분하지 말자.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모두는 택도 없는 거니까. 이 말의 가르침은 아마 이런 정도일 것이다. ‘사랑이 오면 사랑하되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너무 오래 하지는 말라’는. 근데 말은 약간 쉬워보이지만 이것 역시 어렵긴 매한가지인 건 사실이다.
이 어려운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한 실험이 있었다. 성인남녀들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면서 뇌 활동의 변화를 MRI로 조사한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한집에 산다 그러자 두 경우 모두 ‘증오 회로’라 부르는 뇌 부분이 활성화됨을 알았다. 놀랍게도 사랑과 미움이 한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정반대의 감정이 아니라 거의 같은 감정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미움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 또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다른 부위를 비활성화시킨다는 것도 밝혀졌다.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을 느낄 때는 인간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 부위가 비활성화되는 것이다. 즉, 사랑과 미움의 가정이 일어나면 인간은 비이성적이 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사랑의 감정때는 광범위하게 대뇌피질이 비활성화되지만, 미움의 감정 때는 아주 일부만 비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랑과 미움이 둘 다 비이성적이긴 해도 사랑의 감정이 훨씬 더 비이성적이란 뜻이다. 그래서 미움에 흥분하는 것은 가라앉힐 수 있지만,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여 이성적인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사랑과 미움은 시소의 관계 이 실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랑과 미움의 관계에 내가 확신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랑과 미움은 마치 시소와 같은 관계라는 것. 즉, 이쪽이 올라가면 저쪽이 내려가게 되어있는, ‘전체 감정의 량’은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사랑과 미움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는 것이다.
아는 분중에 ‘여자는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걸 절대명제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 결혼을 못했다.) 이 양반의 논리는 간단하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알고, 성격도 좋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굴이 못생긴 여자는 사랑할 줄도 모르고 성격이 더럽다’라는 다소 과격한 결론. 이 양반의 주장에서 ‘얼굴’ 얘기만 빼면 수긍이 간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성격이 좋다’라는 점은 상당부분 사실인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충만하면 미움이나 증오의 감정이 있을 자리가 없다. 따라서 '사랑받는 사람이 성격이 좋을 것'은 정해진 이치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어 그 자리에 미움이 차있는 사람은 성격이 더러울 수밖에 없다.
늙은이들은 노여움과 눈물이 많다 사랑과 미움이 서로 시소 관계라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도 알게 된다. '체형'과 '건강' 다음으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의 변화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랑의 감정보다는 미움의 감정이 더 많아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에서 ‘이게 싫고 저게 싫고..’ 로. 거울을 보니 그게 다 얼굴에 써있다. 미움이 가득한 얼굴..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나이탓만 한다.
사랑에는 어느덧 밋밋해졌다. 인더언 써머처럼 젊음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랑이고 조시고’ 그저 먹고 사는 데에 바쁘다. 반면 이것도 맘에 안들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고, 이 새낀 이래서 싫고 저년은 저래서 배기싫고.. 이런 맘들은 불쑥불쑥 솟는다. 젊었던 시절엔 사랑이 가득했던 그 곳에 미움만 그득한 것이다. 이러니 얼굴이 예쁠 리가 없다.
뇌의 ‘증오 회로’에 사랑은 간데 없고 미움이 가득하여 ‘공격적 행동’이 유발되고, 성난 감정을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늙은이가 되면 얼굴도 추해지고 ‘노여움과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 사랑과 미움은 같은 집에 함께 사는 사이다. 그래서 사랑이 커지면 미움이 줄어들고, 미움이 커지면 사랑이 줄어든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과 미움의 비율. 늙은이들은 미움이 절대적으로 많고, 젊은이들은 사랑이 절대적으로 많다.
젊고 싱싱한 애들을 보면 상쾌하다.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라만봐도 생기발랄 유쾌하다. 반면 일부 늙은이를 보면 짜증이 난다. 미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언제 보아도 추해보인다. 눈에 거슬려하는 게 많아 궁시렁궁시렁 불만만 많다.
오늘 다시 한번 돌아보자. 내 증오회로에 사랑과 미움이 얼만큼씩 있는지.. 근데 자기 마음 그릇은 잘 못 본다. 그러니 남에게 물어보고 남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내가 요즈음 어떻게 보이는지. 사랑이 남아있는 풋풋한 중년인지, 미움만 가득한 추한 중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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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원희양이 지금 중늙은이들을 약 올리고 있다. 띠바. 연애감정도 없지만, 어찌어찌 연애를 하고 실연을 당해도 무감감할 중늙은이들을 아주 잔인하게 놀리고 있다.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에 ‘이제 와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하는 구절이 있다. 지금 그걸 겪고 있는 젊은 분이야 ‘실연이 달콤하다’는 게 말이 안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된다. 실연이 얼마나 달콤했던 것인지를. 그러니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냥 맘껏 즐기기 바란다. 벗어나려 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게 바로 사랑이 가득하다는 증거니까.
우리 중늙은이들은..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원희양이 마냥 부럽슴다. 띠바.
* 조금 전, 점심 먹다가 실수로 혀 끄트머리를 깨물었다. 졸라 아팠다. 혀 깨물고 자살한다는 게 얼마나 독하고 무시무시한 일인지 알겠다. 혀를 빨리 뺏어야 하는데 조금 늦어서 아구의 상하운동에 걸린 거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느냐고 마누라에게 쿠사리 먹고.. 밥 먹다 자기 혀를 깨물었다는 게 생각할수록 황당하다. 느려진 내 혀.. 나이가 드니 별게 다 느려진다.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원희양이 더욱 더 부럽다. 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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싣니 보이 2009.09.30 09:20 [220.244.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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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가슴에 팍팍 와 닿네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왜이렇게 보기싫은게 많은지.... 제 와이프도 뭐라고 하더라구요.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글쎄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원희양의 경우 뭐라고 드릴말씀이 없네요. 실연해본지가 20년도 훨 넘어서 도대체 무슨 감정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렇다고 중늙은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 ^^) 내 생각은 주인장과 같은 의견입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혹 새로운 사랑을 만나시면 더욱 더 빨리 잊을수 있지 않을까요??? 별도움은 안되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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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 2009.09.30 23:35 [75.25.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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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탁 쳤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서로 시소관계라는 말씀. 그렇군요 사랑이 많으면 미움이 줄고, 미움이 많으면 사랑이 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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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 2009.10.1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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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쉬~우리 요팡선생님~!!최고예여~점 창피해서 제가 단 글을 지웠는데..ㅎ~이렇게 글을 써주시니 감사해여...사실은여,그 넘 하고 다시 만나여...그냥 포기하고 멍때리고 시간만 보내는데 2틀 뒤에 연락이 와서 싹싹 빌길래 다짐을 받고 다시 만나기로 했어여~^^선생님~!선생님은 중년이시지만 젊은사람들 보다 훨쒼 매력있어여~글을 읽다가 낄낄데며 웃은게 한두번이 아니니까여~그만큼 센스도 있다는 얘기구여~사랑해요..요팡선생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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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2009.10.16 20:51 [125.141.9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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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별개 다 느려진다------ㅎㅎㅎ
기분좋은 웃음으로 기분이 좋아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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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2009.11.24 16:48 [121.132.11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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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운곳을 슬슬 잘 긁으시듯 글을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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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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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 날이 더 마니 남은 것 같구만 나이가 드니라니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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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된 이후에 70도 대 후반의 날씨를 보이더니, 그저께, 어제 그리고 오늘은 낮 최고기온이 100도를 넘나들고 있다. 섭씨로 38도 정도가 되는데, 이 정도의 기온이면 더위가 아니라 거의 뜨거움으로 느껴진다. 띠바 졸라 덥다.
이처럼 한 여름에도 잘 없던 초고온의 폭염이 가을의 한복판에 오는 것, 이게 바로 인디언 써머(Indian Summer)다. 왜 인디언이라는 말이 붙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인디언의 습격처럼 갑자기 왔다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인도사람이 아니면서도 인디언이라고 불리듯이 여름이 아니면서도 여름이라서.. 거래에서 속임수를 많이 쓰던 인디언을 빗대어 가짜 여름이라는 의미로.. 아무튼 인디언 써머는 ‘갑자기 찾아왔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가을 속의 여름’을 말한다.
지금 당장 인디언 써머에 시달리는 나는 ‘어후 지겨운 이 더위’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인디언 써머’엔 기후나 날씨외에 뭔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복판에 갑자기 찾아오는 뜨겁고 짧은 여름 날’.. 인디언 써머라는 말엔 문학과 철학과 인생이 있어 보인다.

인생에서 ‘가을’이라고 하면 대략 몇 살쯤부터일까? 인생을 사계절로 등분하고.. 80을 산다고 하면 41~59까지의 기간이고, 90을 산다고 하면 46~67정도까지이다. 스무살 초반까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마흔 중반까지 활활 타오르다가, 그 이후가 되면 바야흐로 불길이 꺼지고 조용히 침잠하는 때이다.
나무는 물기를 내리고 겨울맞을 준비를 하고, 과일과 곡식은 무르익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뒤로한 채 종종걸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그게 가을이다. 완연한 하강국면 띠바.
봄과 여름은 이미 가고 남은 계절이라곤 가을과 겨울밖에 없다. 사나이 가슴에 구멍이 뚫려 가을바람이 휘몰아친다. 즐거웠던 여름날도 돌아보고,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도 떠올린다. 아 내게도 가을이 았구나.. 매사에 흥미가 없고 의욕도 없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내가 이 나이에.. 뭐든지 나이 탓을 하고 뒤로 물러 앉기만 한다. 그러다 우울해진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중년 그리고 갱년기..
이 때.. 갑자기 여름이 찾아오는 거다. 여름더위보다 더 뜨거운 폭염이 가을의 한복판에 찾아오는 거다. 바로 우리 인생의 인디언 써머다. 나잇값 한다고 똬리만 틀고 앉았다가, 철든 티 낸다고 무게만 잡고 있다가, 그 나잇값과 철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내 나이가 뭐가 어때서? 누구아빠 누구상무님이 철수 동수로, 누구엄마 누구여사님이 영희 순자로 돌아간다. 자식새끼들 인생보다 내 인생이 중요하지..
그래서 젊은 날 했었던, 한동안 잊고 지냈었던 것들을 슬그머니 해본다. 잊고 지냈던 친구와도 다시 연락하고, 까맣게 지우고 살았던 옛 애인도 떠올려 본다. 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까? 슬금슬금 눈치도 보이지만 인생이 들썩들썩.. 조금씩 재밌어진다.
가을에 찾아온, 가을속의 여름이다.
때론 여름보다 더 뜨거운 우리 인생의 인디언 써머다.
만약 이 나이에 이유없이 싱숭생숭, 애들보다 더 달끈달끈하고 있었다면 인디언 써머의 복판에 있는 거다.
근데 만약 여름이고 조시고 더워서 짜증만 난다면 당신은 산 송장이다.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니 그냥 맘껏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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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2009.09.26 19:43 [121.155.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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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고 조시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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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6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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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 않을 것이니.
그래서 젊은 날 했었던, 한동안 잊고 지냈었던 것들을 슬그머니 해본다
..그냥...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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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짱 2009.09.29 03:21 [75.30.14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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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써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었는데요.. 아니었습니다. 뒤에 하나 더 있습니다. January Thaw라는 것. 오대호 주변인가요.. 겨울 복판에 갑자기 오는 고온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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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 2009.09.2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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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써머도 자칫 잘못하면 주책으로 보일텐데, 재뉴어리 thaw는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노망으로 보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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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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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님 댓글이 더 잼난다. 주책에 노망이라니. 그게 정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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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씨 가족과 아주 가까운 이가 내게 소식을 전해줬다. 이영훈씨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지만 이영훈씨 본인은 아직 그걸 모를거라고 했다.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고는 있지만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가 아주 가까이 떨어진 것까지는 아직 모를거란다.
이영훈 음악에 대한 흠모와 예전 그와의 짧았던 인연이 떠올라, 그립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었다. 근데 글을 올린 그 다음 날, 이영훈씨 팬클럽 간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이영훈씨의 상황이 대관절 어떤상태냐고.. 그 분이 많이 아프신 걸 아는데 요즘 연락이 닿질 않아 미칠 것 같다고.. 제발 이영훈씨와 연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영훈씨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 그분의 근황을 미친 듯이 궁금해하던 팬들이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당황했다. 깜짝 놀랐다. 설마 내 블로그에.. 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알린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바로 감췄다. 이영훈씨 본인이 아직 모르고 있다잖든다. 팬칼럽 회원들로 인해 이영훈씨가 알게되면 안될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이영훈씨의 홈피에 가보았다. 그곳에는 이영훈씨의 쾌유를 빌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소식을 몰라 이렇게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냥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이영훈씨 본인이 아직 모른다잖든가.
하지만 의문이 일었다. 이영훈씨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팬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그들에 대한 무시가 아닌지, 그래서 무시당한 그 느낌에 서운해하고 그것때문에 이영훈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흠집이 나는 건 아닐지. 또 수많은 팬들의 기도가 혹시라도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되지는 않을지,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진심어린 걱정을 본 이영훈씨가 위안을 받고 힘을 얻지 않을지. 만약 그럴 수 없어 이영훈씨에게 남은 시간이 불과 몇 개월이라면 이제는 팬들도 그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머리가 복잡했다.
다음 날, 이영훈씨의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던 이로부터도 짤막한 메일이 왔다. ‘아직 사람들은 몰랐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덜컥했다. 블로그의 글을 이미 봤는지, 아니면 그럴까봐 걱정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하루 올렸다가 바로 지웠다’고 일단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약간은 야속하기도 했다. 안타까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걸 왜 막는걸까.. 하지만 가장 큰 것은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알려지는 건 아닐까하는.
그로부터 일주일 쯤 후, 신문에 기사가 났다. 이영훈씨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중이라는. 가슴이 철렁했다. 죄짓고 숨기고 있는 사람마냥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걸 알린 게 나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경솔했구나..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그날, 이영훈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범죄자가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나듯. 깜짝 놀랐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만개의 기도 글.. 그 틈엔 이문세가 눈물로 써 내려간 글도 있었다. 그랬었다. 이영훈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쾌유를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영훈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존경했는지 절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영원히 이영훈과 이영훈의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라고 눈물로 다짐하고 있었다.
작곡가 이영훈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감격스런 존경과 사랑이었다. 병상의 이영훈씨가 이 글들을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래야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따뜻하고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때에 사람들의 이 기도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길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었다. 이영훈씨는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온몸으로 품으며 편안하게 길을 떠났다. 이영훈씨의 사후 그의 아내가 펴낸 책에서 그녀도 당시 사람들이 보여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님들의 사랑과 위안이 큰 힘이 되었었노라고. 그 사랑과 존경을 이영훈씨가 다 품고 갔노라고.
마음이 편해졌다. 의도했었든 아니었든, 또 실제로 촉매가 된 것이든 아니든..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게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려운 병에 걸린 친구남편의 소식을 과연 친구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당사자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서.. 혹시 그녀가 동정받는 걸 싫어하거나 귀찮아 할 수도 있어서.. 괜히 가십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알려봐야 딱히 달라질 것이 없어서..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해서..
앞으로 몇 년 간 힘든 길을 가야 할 친구가 닥칠 문제는 ‘외로움’이다. 모든 현실적인 문제도 결국은 외로움 하나로 귀착된다. 멀고 힘든 길, 그 외로움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들과 벗들의 따뜻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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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7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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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데... 죽음도 삶의 다른 생이라는데. 죽음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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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를 꼽으라면 당연히 Chet Atkins다. 그의 곡들은 듣기에 참 편하고 쉽다. 그러나 우습게 보고 덤볐다 늘 큰 코 다친다. 그처럼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직접 연주해보면 깨닫게 된다. 한두달 연습하고 콩나물 한두 개 얼버무렸다간 아예 들을 수 조차 없다. 이상하게도 그의 곡은 매끄럽게 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내 레퍼토리에도 그의 곡은 몇 곡 없다. 들어줄 만큼 되는 게 기껏해야 대여섯 곡 정도.. 그만큼 그의 곡은 제대로 연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쳇의 곡을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솔리드바디나 할로우바디 일렉기타로 연주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Tommy Emmanuel. 신들린 듯한 그의 기교는 가히 역대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란하다. 그의 음악의 뿌리는 쳇이지만 그의 곡은 쳇의 곡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의 곡은 소박하지 않다. 많이 화려하다. 그래서 쳇의 향기가 묻어나는 컨츄리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그의 곡엔 쳇의 향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왠지 나와도 정서가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넘버 투다.
그리고 그 다음은.. 고만고만 했었는데 요즘 들어 한 인물이 확 치고 올라왔다. 키시베다.

처음 접한 키시베의 곡은 ‘비내리는 창가에서’였든가 하는 곡이었다. 근데 상당히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쓰고 있는 빵떡모자만큼이나 곡이 유치하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듣다 보면 그 다음 멜로디가 '뻔히' 짐작이 되는.. 물론 이걸 ‘익숙하다’라고 표현을 해야하는 것이었지만 첫 느낌은 ‘유치하다’라는 것이었다.
쳇이나 타미가 연주하는 곡들은 뭔가 목가적이고 이국적이고 화려한데, 이 사람의 곡은 뭔지 모르지만 70년대 시골학교 풍금, 80년대 성남시 뚝방 방석집같은 느낌이었다. 판에 박힌 멜로디와 리듬의 흐름. 마스터하기가 무섭게 지겨워졌다. 그래서 이후론 한번도 다시 연주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쟌’이란 곡을 만나 연습하기 시작했다. 약간 빠르고 신나는 곡, 근데 이거 은근히 중독성 있었다. 쳇과 타미를 잊어먹을 정도로 한동안 이 곡에 집중했다.
다음 만난 ‘사랑의 인사’, 이건 클래식 곡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느린 곡들에는 쉽게 싫증을 느꼈었는데 이 곡은 좀 달랐다. 원곡이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편곡과 연주도 한 몫 하는 듯 했다. 이곡을 연습하면서 기타중 한대가 아예 D-tuning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키니와 선글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키시베의 곡들.. 유치한 듯 하면서도 분명히 잡아 끄는 마력이 있었다. D-tuning 기타를 아예 하나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이제부터 이 사람의 곡에 ‘유치하다’는 표현대신 ‘익숙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같은 동양문화권의 사람으로서 공유하는 정서적인 공감대..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다음 타겟을 잡았는데 악보나 연주 동영상을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의 조카에게 물어본건데, 이 녀석 그 악보 다 있단다. 그게 바로 J-Blues, e-ga-o 이다.
J-Blues
e-g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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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y 2009.09.24 00:10 [75.31.21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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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들을 직접 치신다구요?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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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 2009.09.2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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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만 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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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 2009.09.2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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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가라 하와이군! 모두 잘 받았습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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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2009.09.28 21:01 [143.248.5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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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가라 하와이군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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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iing 2009.10.06 08:58 [219.249.6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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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한참 생각했지요. 어~? 다른 사람에게 받았나? ~하고. ㅎㅎㅎ~! 추석 잘 보냈쟤? 전에 말한 뉴욕에 있는 친구가 아주 ~잘 보고 있다고 전해달래.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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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 2009.10.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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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나의 예쁜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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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rkim 2009.11.27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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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가라 하와이군??? 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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