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이란 구호단체의 정체 이곳 한국 TV 의 기부 광고에 유명한 탤런트가 등장하면서 굶어 죽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자는 게 있다. ‘하루 1달러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카피. ‘나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광고를 내보내는 월드비전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이 단체가 순수한 구호단체인지 아니면 선교단체인지.. 종교단체의 구호사업은 원래 동기가 그리 맑지만은 않기 때문에 이 월드비전이라는 곳이 제발 종교단체가 아니길 바랬다. 거룩해야 할 구호행위를 선교, 포교와 종교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길 바랬다.
월드비전이 어떤 단체인지 알기 위해 월드비전 홈페이지(http://www.worldvision.org)에 들어가봤다. 온통 좋은 일에 관한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Church & Faith 라는 부분에 종교얘기가 약간 언급되어 있었다. 이번엔 한국 월드비전 홈페이지(http://www.worldvision.or.kr)에 가 보았다. 내 궁금증은 이곳에서 풀렸다. ‘소명헌장’이라는 곳에 그들의 정체가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우리의 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독교인들의 국제협력기관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월드비전은 하나님이 만드신 기독교 단체로 교회와 분리 될 수 없으며 독립적인 사업을 벌여서는 안된다. 세계적으로 봉사, 구호 활동을 벌이다 보니 흔히 NGO단체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고 월드비전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선교단체이다'
월드비전의 명확한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자기넨 순수한 NGO가 아니라 분명한 선교단체라고 굳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구호활동을 열심히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모습에 감화받게 하여 저절로 선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위해 구호활동을 수단으로 삼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누구에게? 하나님에게. 왜? 잘 했다고 칭찬받으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왼손이 하는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거늘, 이들은 이렇게 요란하게 떠벌이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광고에 밝히면 더 값지고 떳떳할 것 하지만 일반 언론매체나 광고에만은 유독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있었다. 오직 구호사업 얘기만 하고 있어서, 그 누구도 월드비전이 기독교의 선교단체라는 사실을 잘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김혜자 정애리 한비야의 모습과 굶주린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측은지심에 기부를 한다. 엄밀히 말해 ‘뭔지 모르고’ 내는 거다. 또 자신들이 낸 기부금이 순수한 구호에만 쓰이는 건지 아니면 일정부분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 단체가 기부금의 자세한 사용내역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가 어떻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로부터 기금을 모을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상엔 재난도 많고 굶어죽는 아이들도 많다. 누군가는 도와야 한다. 그걸 이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동기가 무엇이든, 결과가 무엇이든 사람들을 속이지 않고 하는 것이 더 값지고 떳떳하다. 월드비전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이 선교단체임을 밝혔다면, TV광고에도 그렇게 밝혔어야 한다. 월드비전은 구호단체가 아니라 기독교 선교단체라고. 이걸 숨기고 기부금을 끌어모으는 행위는.. 일종의 사기행위이다.
봉사와 기부는 보장보험 이는 비단 기독교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불교든 천주교든 종교단체들이 구호활동을 하는 것은 종교를 불문하고 그 동기가 별로 맑지 않다. 종교단체들의 구호활동엔 다른 목적이 반드시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구호활동이라면 단체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플래카드를 걸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 종교단체가 이만큼 하고 있다는 걸 대대적으로 소문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거라는 뜻이다.
이건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종교단체의 이끌림으로 여러가지 봉사활동에 나서는 분들, 봉사를 하고 오면 마음이 개운하다. 어려운 남을 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저엔 한가지가 더 숨어있다. 미래보장보험을 들고 그 보험료를 제때 내는 듯한 개운함. 종교인의 봉사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필연적으로 그 동기가 순수할 수만은 없다. 물론 순수함도 당연히 있지만 현실에서의 기브앤테이크, 죽음 이후에 대한 보장책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개입되어 있다. 천당가려고 극락가려고 담에 좋은 곳에 태어나려고, 예수님 하나님께서 보시니까 부처님께서 보시니까..
봉사와 기부는 미래 보장보험이다.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면 마음이 개운한 건 보험료를 제때 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남을 도와 기분이 좋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자신은 절대로 이렇지 않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성자이시다.
봉사와 기부의 역설 - 가장 이기적인 행위 설사 미래보장보험과 같은 얍삽한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다고 해서 그사람에게 봉사와 기부가 헌신적인 자기희생인 것만은 아니다. 봉사와 기부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걸 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늙어서 하고 싶은 일로 '봉사활동'이라고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왜일까?
이렇게 까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이 꿈인 것은 어쩌면 잘못한 일이 더 많았던 자기 인생을 '반까이' 하기 위해서 일런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모두 다 그렇다. 종교가 있든 없든 자기 인생에 대한 정리와 성찰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죽어서 좋은데로 가든 말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든 말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다만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것이다. 남을 위해 봉사하면 가슴이 뛴다. 그만큼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봉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행위’이다.
하면 할수록 자기 몸이 괴롭고 마음까지 불편하다면 누가 봉사와 기부를 할까?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라면 몰라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봉사와 기부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하는거다. 이러니 저러니 이유를 갖다 대어도 사실은 이거 하나다. 결국 저 좋자고 하는 일이다. 남을 도와준다는 포장속에 있는 지극한 이기심, 이게 바로 봉사와 기부다. 김혜자도 정애리도 한비야도 차인표도 모두 마찬가지다. 미안한 얘기지만 기부천사라는 김장훈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분들을 존경한다. 어려운 남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다)
봉사와 구호는 비종교단체에서 그래서 나는 ‘자신들을 위한 보험’을 ‘남들을 위한 봉사’로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요청하는 것을 싫어한다. 저 좋자고 하는 일에 왜 남의 돈을 끌어들인단 말인가? 하고 싶으면 지 돈으로 할 것이지 띠바. 게다가 쏟아지는 기부요청의 정체는 99% 이상 종교단체이거나 종교 관련단체들이다.
종교라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마약이라고 생각하고, 종교야말로 세상을 분열시키는 주범이라고 확신하는 나는 종교단체에의 기부자체를 반대한다. 봉사와 구호를 왜 종교단체들이 독점하고 있는지 그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비록 성금은 종교단체에서 거둬들이더라도 봉사와 구호의 주체는 종교단체여서는 안된다. 비종교단체로 성금을 '무조건'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탐욕스런 종교단체에서 그렇게 '희생'할 리는 없다.
순수한 기부 요즈음 내가 하는 기부는.. 정체가 확실한 ‘미주 숭실OB 합창단’뿐이다. 죽어서 천당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 잘되라고 적선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니브로' 후배들에게 찬조금 낸다는 기분으로 낸다. 그렇다고 그 합창단의 단원들이 날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년에 한번 발표회에 참석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낸다. 아주 순수한 동기에서의 기부다. ^^
--- * 얄미운 기부요청 지난주에 독특한 기부요청 편지를 하나 받았다. 근데 이거 상당히 기분 나쁘게 만든다. 봉투안에 5센트짜리 동전이 밖으로 보이게끔 붙어있는 거다.
이렇게까지 얄밉게 마케팅을 해야하나 싶다. 누구나 봉투를 보는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기부를 하지 않을거라도 봉투를 그냥 버릴 수는 없다. 5센트짜리 동전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봉투를 뜯는다면 그 다음이 더 애매하다. 쓰지도 않을거지만 5센트를 그냥 가지자니 도움을 받아야 할 곳으로부터 되려 돈을 받은 꼴이 되고. 그렇다고 이 5센트를 돌려보내기 위해 수십배 비싼 우표를 사서 붙이기도 그렇고.
이 띠바새끼덜이 이걸 노린거다. 교묘하게 사람들의 양심을 자극해서 결국 기부금을 보내게 만들려는 속셈. 더러븐 새끼덜. 하지만 그들의 노림과는 달리 기부할 생각은 점점 더 없어졌다. 아니 되레 욕이 나왔다. 그래서 빨간 매직으로 'Return to Sender'를 써서 되돌려 보냈다. 띠바 새끼덜.
저는 이제껏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다만 거의 모든 봉사단체가 종교단체 특히 기독교쪽이 많아서 믿는 사람이 (???) 아닌 저로서는 의혹의 여지가 많았던게 사실입니다. 요팡형님 말씀처럼 기부금의 사용이 순수 기부쪽도 있겠지만 다른 용도로서의 사용 (꼭 종교활동이 아니라도 모를지기 단체라면 기본경비란게 있을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이 있을것 같아 찜찜하게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게 기독교의 힘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종교는 아니지만 소외된자를 돕는 그 에너지 (물론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생각될수도 있지만)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습니다. 동전사건과 같이 요즘은 봉사단체또한 기존 영리단체를 닮아가는 구석이 있는건 사실인데 대승적인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재 기부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전 제 주위에 불쌍한 사람(?) 가끔 술이니 밥사주는 기부만 하고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은 종교와 관련이 있었지요. 특히 기독교. 자기들만이 유일한 종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야말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따라서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면 기독교의 선교활동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봉사의 탈을 쓰고있다고 한들 밀입니다.
너무나....바보같은 말들이네요..
종교적이던,아니던 다른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서로가 행복하다면 ...그걸로끝인데..
나쁜일을 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순수한동기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것이죠...
기독교가 무엇을 바라던가요?..하나님을 믿으라고요?...
그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아십니까?...
누군가 자기가 못하는 일을,선한일,좋은일을 하면 돕지는 못할망정...나쁜말은 안했으면합니다...정말 자신이 못하는 사람들이 불평불만이 많은 편이니까요...
월드비전은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입니다..
쩝... 봉사는 이기적이다 라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그럼 하지 말자는 건 말이 안되고.
어차피 사람은 자기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요?
그래도 이런 이기심은 많은 사람이 가졌으면 좋겠다.
hsm6078님, 월드비전은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단 선교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라고 하면 조금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제 메일계정이 해킹(spammed, hacked)당했던 거라고 합니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의 침입은 아니라니 일단 안심입니다. 저도 넋놓고 있다가 당했었습니다.
얼마전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가을 사진입니다’ 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워낙 잘 아는 사람이라 '가을사진 예쁜걸 찾았나..' 하면서 무심코 그 메일을 열고 첨부파일을 클릭하자, 제 컴퓨터에 깔려있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 뜨면서 ‘첨부파일을 열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제서야 아차하면서 그나마 첨부파일 열지않아 천만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첨부파일을 열지 않았더라도 그저 메일을 열기만 하는 것으로도 해킹을 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제 계정도 아마 그때 해킹당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 계정에 있는 주소록의 모든 분들에게 이상한 메일이 발송되었던 거구요. 다행히 음란 사이트 광고메일이었으니 망정이지 해커가 나쁜 놈이라, ‘급한데 돈을 좀 빌려달라..’ 이랬었더라면.. 피차 이미지에 똥칠할 뻔 했습니다. 빌려달란 놈이나, 빌려달란 소리 듣고 모른척하는 놈이나..
미국 핫메일 질의응답하는 곳에 이와 관련된 문의가 있더군요. 이에 대한 핫메일의 응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빨리 비밀번호를 바꾸되 가능하면 복잡한 것으로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치료를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입니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가 아니라 주소록만 해킹당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메일의 비밀번호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핫메일이 자기네 헛점을 인정할 리는 없지만 일단 이 말을 믿는 수밖에요.
그러니 저로부터 이상한 메일을 받고 오픈하셨었던 분들은.. 귀찮으시더라도 우선 이메일의 비밀번호를 빨리 바꾸셔야겠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세상이 험해져 이젠 친한 사람의 이메일도 의심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주소록을 해킹해서 그 주소록의 친구들에게 나쁜 메일을 보내는지.. 참 정서적으로 아주 악질적인 해킹입니다. 잡아다가 그냥 #%^&^%*&%$$#
핫메일 비밀번호 변경하는 메뉴가 꼭꼭 숨어있습니다. 한참 찾았습니다. 핫메일에 로그인 하고, 화면 오른쪽 윗부분에 있는 '옵션' - '옵션 더보기(mor eoption)'를 눌러야 그곳에서 비밀번호 변경을 할 수 있게 해놓았네요. 비밀번호를 보안 strong 하게 바꾸십시요.
캘리포니아를 둘로 쪼개자는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하지만 언급이 워낙 짧아 자세한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날 이후엔 더 이상의 언급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해서 직접 알아보니, 네 가지가 독특했다.
첫번째, 캘리포니아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쪼개자는 주장이라는 것. 두번째, 이걸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 세번째, 그들이 농부들이라는 것. 네번째, 결국 캘리포니아 내에 뿌리깊은 지역갈등 탓이라는 것.
가뜩이나 긴데 이걸 세로로 쪼개? 칠팔년전 처음으로 캐나다 국경마을까지 차로 가던 때, 아침 일찍 LA를 출발했는데도 캘리포니아를 벗어난 것이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중간에 많이 쉬지도 않았는데 열두시간 넘게 걸린 거다. 참 길다. 따라서 굳이 캘리포니아를 쪼갤거면 당연히 가로로 잘라야 한다. 근데 이 긴 캘리포니아를 세로로 쪼개잔다.
세로로 반으로 딱 쪼개는 것도 아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중 서부 해안에 있는 13개 카운티만을 떼어내어 ‘Coastal California’로 만들고, 나머지 45개 카운티는 그대로 캘리포니아로 남기자는 거란다. 이런 모양이다. 한쪽 끄트머리만 깎아내는 모양새다.
가난한 쪽 사람들이 주장 떨어지는 13개 카운티의 면면을 보니.. Marin, Alameda, Contra Costa, San Francisco, San Mateo, Santa Clara, Santa Cruz, San Benito, Monterey, San Luis Obispo, Santa Barbara, Ventura and Los Angles 카운티다. 캘리포니아의 상징, LA와 샌프란시스코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난 당연히 이 분리안이 서부해안 13개 카운티쪽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었다. 행정구역을 쪼개자고 나서는 쪽은 대개 잘사는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우리 지역에 쓰이지 않고 못사는 사람들에게 쓰여지는 게 배 아파서 부자 동네가 따로 살림 차리겠다는 거.
그래서 ‘분리하면 우리야 좋겠지만 가난한 카운티 사람들이 반대할 터이니 통과되긴 힘들거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이 분리 주장은 가난한 카운티쪽에서 나온 거였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엘에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부자동네를 떨궈내겠다는 거였다. 서울의 예로 들자면.. 서울시민들이 강남3구를 떨궈내겠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표면적 이유 - 정의사회 구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의외로 아주 단촐했다. 그들이 첫페이지에 올린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였다.
The approval ratings of the Governor and legislature are in the tank. The legislature is stymied, hamstrung and virtually gridlocked, like L.A. traffic. State government is in a financial tailspin, without fiscal discipline or restraint.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 and are sympathetic to illegals and criminals. Expenditures on non-citizens, employment displacement and generational welfare rolls are leaving a massive, ong oing debt to our children, grand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별거 없다. 그저 일반적인 미국의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하는 주장과 거의 같다. 자기들 나름의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다는 것. 근데 겨우 이런 이유로 캘리포니아를 쪼개자는 말이었든가? 이거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알아봤다. 이 사람들 진짜 왜 이러는지.
약간 더 깊은 이유 - 농경 목축산업 보호 Farmers! Protect your way of life. It is the time to let the coastal and metropolitan counties have their own way. If they can’t appreciate agriculture, they should live without it. They should form their own state. Citizens for Saving California Farming Industries
그들의 포스터에 있는 글귀다.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것들과 따로 살자..’ 뭐 이런 내용이겠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서쪽 대도시 사람들 때문에 농경산업이 어려움에 빠진 모양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liberal) 성향이 강한 해안지역 카운티들을 분리해내고, 농경산업을 보호해서 캘리포니아를 옛날의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로 다시 변모시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시 뭐가 뭔지 잘 모르겠기는 마찬가지다.
조금 더 깊은 이유 - 뺀질이 니들이 뭘 알아? 이 분리 운동의 시작은 지난 해 말, 캘리포니아 Central Valley 지역의 농부들이 어떤 주민발의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그림이 계속나와 짜증나겠지만.. 왼쪽 해안에서 약간 들어가서 녹색으로 칠해진 아래위로 길다란 타원형 부분이 바로 센트럴 밸리다.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다.)
그 주민발의안의 내용은.. ‘농장에서 가축들을 열악한 환경에 가둬놓고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잡아먹을 가축이라도 최소한의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라는 내용. 고기는 쳐먹으면서도 동물학대에는 반대하는 서쪽 대도시 사람들이 낸 발의안이었겠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농장 경영 조건이 까다롭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동부지역 농민들이 반대를 한 것이었다.
근데 그 법안이 덜컥 통과되어 버렸다. '농장을 경영하려면 알을 품은 암탉, 수태 중인 송아지나 돼지가 충분히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민발의안이 캘리포니아 주민 63.4%의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이게 동부의 내륙 주민들을 격분시켰다. 위 4번째 문장 Radicals are infatuated with nature over mankind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서야 알겠다. 농업의 농자도 모르는 철없는 것들이 가축권익을 내세우느라 자기들의 사업을 어렵게 만든다고 느낀 것이다.
서부 대도시지역 뺀질이들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배신감이 상당했었던 모양이다. 이게 촉매제가 되어 이 참에 아예 지역을 분리해 버리자는, 리버럴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을 아예 분리해 내자는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리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모자란다. 자기들 농업에 방해가 된다고 주를 둘로 쪼개자고?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일 깊은 진짜 이유 - 뿌리깊은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인종갈등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주 서부와 나머지 농업지역 주민들은 굉장히 이질적이라고 한다. 도시 생활 위주의 해안지대 주민들은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고, 농업이 생활 기반인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이라고 한다.
이념이 걸린 이슈가 나올 때마다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둘로 쪼개지는 모양이다. 최근 동성결혼 이슈때에도 서부지역엔 ‘찬성 스티커를 붙인 세단’이 많았는데, 나머지 지역엔 ‘반대 스티커를 붙인 트럭’이 넘쳐났었단다.
이건 어쩌면 백인 보수층과 리버럴한 이민자들간의 갈등인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인종갈등 얘기를 하면서 언급했었던 이탈리안 식당을 기억할 것이다. 졸지에 인종차별을 당해 기분이 나빴었다던 그 식당이 있는 곳이 바로 이 센트럴 밸리 지역이었다. 백인 농장주들과 유색인종 일꾼들이 아직까지도 극명하게 나뉘어 사는 곳, 센트럴 밸리지역이다.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보수층,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기독교 교조주의자들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불통의 사람들.. 이번 캘리포니아 분리주장은 이들 꼴통들이 벌이는 해프닝이다. 비록 겉으로는 농경과 목축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속내를 캐어보면 이념갈등과 인종갈등이 그 뿌리였다. 캘리포니아를 분할하자는 이런 시도는 1850년 캘리포니아가 주가 된 이후 무려 220여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프닝 어쩄거나 이 분리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어떤 각도로 보아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여론조사에서도 캘리포니아 등록 유권자의 82%가 이 분리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설령 기적이 일어나서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더라도 주를 분리하는 것은 미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데, 거기서 이것이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다.
하지만 어쨌든.. 스케일 하난 참 크다. 그리고 그 스케일에 비해 주민들의 반응은 너무 무덤덤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국에서 어느 특정지역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나머지를 분리해서 3개의 국가로 가자’ 혹은 ‘비기독교인들만 모여서 딴 나라를 세워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에 대해 반응이 거의 없는 거다.
만약 이런 주장을 만약 한국에서 진짜로 한다면 어떨까? 아마 온 나라가 냄비처럼 들끓으면서 여론 재판으로 그를 살해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황당무계한 정신병자라는 게 뻔한 허경영도 감옥에 가고, 한국 싫다는 한마디 했었다고 아이 하날 역적만들어 쫓아내니 말이다.
캘리포니아 분리 운동.. 이런 주장을 막 펼쳐도 되는 유연한 사회 분위기도 부럽고, 웬만한 건 사람들이 그저 웃어 넘기는 그들의 ‘무쇠 솥’ 근성도 부러워지는 해프닝이었다.
사랑과 미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치한 가사.. 참 편하다. 사랑하는 듯 하다가 점 하나 찍고 남으로 돌아서 버린다니.. 물론 이런 경우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으로 포장된 애욕이나 욕망이었을 때의 얘기다. 실제로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점 하나 찍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늘이 무너지던 실연의 충격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면 사람들은 스스로 점을 찍어야 한다고 마음을 잡는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치사하게도 바로 ‘미움’이다. 시시콜콜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을 확대시킨다. 자세히 보면 못 생겼어, 성격이 쪼잔해, 머리가 비었어, 부모가 무식해, 그러다 급기야는.. 저뇬 너무 헐렁해, 저쉐이 조루대왕이야..
만약 이랬는데도 점이 안 찍히면 그 다음 방법은 ‘증오’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했었는데 네가 날 버리다니.. 원망과 분노가 쉽게 일어난다. 날 버리고 너 얼마나 잘되는 지 보자 썅..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봐야 점은 잘 안 찍힌다. 진실로 사랑하던 사람은 미워해도 증오해도 잘 안 잊혀진다. 실연의 아픔엔 그저 세월만이 유일한 약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과 미움이 적당히 얼버무려져 세월로 희석된다. 이렇게 사랑과 미움은 숙명적으로 결탁해 있다는 걸 슬슬 안다.
사랑과 미움은 둘 다 괴롭다
不當趣所愛 (부당취소애) 亦莫有不愛 (역막유불애) 사랑함을 가지지 말라. 미워함도 가지지 말라.
是以莫造愛 (시이막조애) 愛憎惡所由 (애증오소유)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니라.
已除縛結者 (이제박결자) 無愛無所憎 (무애무소증) 이미 이를 묶어 없애버린 자는 사랑도 미움도 없느니라.
두번째 줄은 누구에게나 팍 와 닿는다. 보고싶은 사람은 못봐서 괴롭고, 보기싫은 사람은 자꾸 봐서 괴롭다.^^ 그건 그렇고.. 이게 뭔가?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돌처럼 살라는 말이더냐? 우리가 벌레냐 이렇게 살라하게. 그렇다. 이런 경지는 산속에 쳐박혀 수행만 하는 중들에게도 불가능한 경지다. 그들도 ‘그런 척’ 정도나 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경지이다. 어찌 좋아하고 싫어함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든가. 혹시 부처나 예수라면 모를까.
흥분하지 말자.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모두는 택도 없는 거니까. 이 말의 가르침은 아마 이런 정도일 것이다. ‘사랑이 오면 사랑하되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너무 오래 하지는 말라’는. 근데 말은 약간 쉬워보이지만 이것 역시 어렵긴 매한가지인 건 사실이다.
이 어려운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의 정체를 알기 위해 한 실험이 있었다. 성인남녀들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면서 뇌 활동의 변화를 MRI로 조사한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한집에 산다 그러자 두 경우 모두 ‘증오 회로’라 부르는 뇌 부분이 활성화됨을 알았다. 놀랍게도 사랑과 미움이 한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미움은 정반대의 감정이 아니라 거의 같은 감정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미움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 또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다른 부위를 비활성화시킨다는 것도 밝혀졌다.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을 느낄 때는 인간의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피질 부위가 비활성화되는 것이다. 즉, 사랑과 미움의 가정이 일어나면 인간은 비이성적이 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사랑의 감정때는 광범위하게 대뇌피질이 비활성화되지만, 미움의 감정 때는 아주 일부만 비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랑과 미움이 둘 다 비이성적이긴 해도 사랑의 감정이 훨씬 더 비이성적이란 뜻이다. 그래서 미움에 흥분하는 것은 가라앉힐 수 있지만,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여 이성적인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사랑과 미움은 시소의 관계 이 실험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랑과 미움의 관계에 내가 확신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사랑과 미움은 마치 시소와 같은 관계라는 것. 즉, 이쪽이 올라가면 저쪽이 내려가게 되어있는, ‘전체 감정의 량’은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사랑과 미움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는 것이다.
아는 분중에 ‘여자는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걸 절대명제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 결혼을 못했다.) 이 양반의 논리는 간단하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줄도 알고, 성격도 좋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굴이 못생긴 여자는 사랑할 줄도 모르고 성격이 더럽다’라는 다소 과격한 결론. 이 양반의 주장에서 ‘얼굴’ 얘기만 빼면 수긍이 간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성격이 좋다’라는 점은 상당부분 사실인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충만하면 미움이나 증오의 감정이 있을 자리가 없다. 따라서 '사랑받는 사람이 성격이 좋을 것'은 정해진 이치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어 그 자리에 미움이 차있는 사람은 성격이 더러울 수밖에 없다.
늙은이들은 노여움과 눈물이 많다 사랑과 미움이 서로 시소 관계라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도 알게 된다. '체형'과 '건강' 다음으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의 변화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사랑의 감정보다는 미움의 감정이 더 많아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에서 ‘이게 싫고 저게 싫고..’ 로. 거울을 보니 그게 다 얼굴에 써있다. 미움이 가득한 얼굴..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나이탓만 한다.
사랑에는 어느덧 밋밋해졌다. 인더언 써머처럼 젊음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랑이고 조시고’ 그저 먹고 사는 데에 바쁘다. 반면 이것도 맘에 안들고 저것도 눈에 거슬리고, 이 새낀 이래서 싫고 저년은 저래서 배기싫고.. 이런 맘들은 불쑥불쑥 솟는다. 젊었던 시절엔 사랑이 가득했던 그 곳에 미움만 그득한 것이다. 이러니 얼굴이 예쁠 리가 없다.
뇌의 ‘증오 회로’에 사랑은 간데 없고 미움이 가득하여 ‘공격적 행동’이 유발되고, 성난 감정을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늙은이가 되면 얼굴도 추해지고 ‘노여움과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 사랑과 미움은 같은 집에 함께 사는 사이다. 그래서 사랑이 커지면 미움이 줄어들고, 미움이 커지면 사랑이 줄어든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과 미움의 비율. 늙은이들은 미움이 절대적으로 많고, 젊은이들은 사랑이 절대적으로 많다.
젊고 싱싱한 애들을 보면 상쾌하다.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라만봐도 생기발랄 유쾌하다. 반면 일부 늙은이를 보면 짜증이 난다. 미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언제 보아도 추해보인다. 눈에 거슬려하는 게 많아 궁시렁궁시렁 불만만 많다.
오늘 다시 한번 돌아보자. 내 증오회로에 사랑과 미움이 얼만큼씩 있는지.. 근데 자기 마음 그릇은 잘 못 본다. 그러니 남에게 물어보고 남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내가 요즈음 어떻게 보이는지. 사랑이 남아있는 풋풋한 중년인지, 미움만 가득한 추한 중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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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원희양이 지금 중늙은이들을 약 올리고 있다. 띠바. 연애감정도 없지만, 어찌어찌 연애를 하고 실연을 당해도 무감감할 중늙은이들을 아주 잔인하게 놀리고 있다.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에 ‘이제 와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하는 구절이 있다. 지금 그걸 겪고 있는 젊은 분이야 ‘실연이 달콤하다’는 게 말이 안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된다. 실연이 얼마나 달콤했던 것인지를. 그러니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 말고 그냥 맘껏 즐기기 바란다. 벗어나려 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게 바로 사랑이 가득하다는 증거니까.
우리 중늙은이들은..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원희양이 마냥 부럽슴다. 띠바.
* 조금 전, 점심 먹다가 실수로 혀 끄트머리를 깨물었다. 졸라 아팠다. 혀 깨물고 자살한다는 게 얼마나 독하고 무시무시한 일인지 알겠다. 혀를 빨리 뺏어야 하는데 조금 늦어서 아구의 상하운동에 걸린 거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느냐고 마누라에게 쿠사리 먹고.. 밥 먹다 자기 혀를 깨물었다는 게 생각할수록 황당하다. 느려진 내 혀.. 나이가 드니 별게 다 느려진다.
말씀이 가슴에 팍팍 와 닿네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왜이렇게 보기싫은게 많은지.... 제 와이프도 뭐라고 하더라구요.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다고. 글쎄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원희양의 경우 뭐라고 드릴말씀이 없네요. 실연해본지가 20년도 훨 넘어서 도대체 무슨 감정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렇다고 중늙은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 ^^) 내 생각은 주인장과 같은 의견입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혹 새로운 사랑을 만나시면 더욱 더 빨리 잊을수 있지 않을까요??? 별도움은 안되시겠지만....
역쉬~우리 요팡선생님~!!최고예여~점 창피해서 제가 단 글을 지웠는데..ㅎ~이렇게 글을 써주시니 감사해여...사실은여,그 넘 하고 다시 만나여...그냥 포기하고 멍때리고 시간만 보내는데 2틀 뒤에 연락이 와서 싹싹 빌길래 다짐을 받고 다시 만나기로 했어여~^^선생님~!선생님은 중년이시지만 젊은사람들 보다 훨쒼 매력있어여~글을 읽다가 낄낄데며 웃은게 한두번이 아니니까여~그만큼 센스도 있다는 얘기구여~사랑해요..요팡선생님.....쪽~!!
9월이 된 이후에 70도 대 후반의 날씨를 보이더니, 그저께, 어제 그리고 오늘은 낮 최고기온이 100도를 넘나들고 있다. 섭씨로 38도 정도가 되는데, 이 정도의 기온이면 더위가 아니라 거의 뜨거움으로 느껴진다. 띠바 졸라 덥다.
이처럼 한 여름에도 잘 없던 초고온의 폭염이 가을의 한복판에 오는 것, 이게 바로 인디언 써머(Indian Summer)다. 왜 인디언이라는 말이 붙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인디언의 습격처럼 갑자기 왔다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인도사람이 아니면서도 인디언이라고 불리듯이 여름이 아니면서도 여름이라서.. 거래에서 속임수를 많이 쓰던 인디언을 빗대어 가짜 여름이라는 의미로.. 아무튼 인디언 써머는 ‘갑자기 찾아왔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가을 속의 여름’을 말한다.
지금 당장 인디언 써머에 시달리는 나는 ‘어후 지겨운 이 더위’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인디언 써머’엔 기후나 날씨외에 뭔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복판에 갑자기 찾아오는 뜨겁고 짧은 여름 날’.. 인디언 써머라는 말엔 문학과 철학과 인생이 있어 보인다.
인생에서 ‘가을’이라고 하면 대략 몇 살쯤부터일까? 인생을 사계절로 등분하고.. 80을 산다고 하면 41~59까지의 기간이고, 90을 산다고 하면 46~67정도까지이다. 스무살 초반까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고, 마흔 중반까지 활활 타오르다가, 그 이후가 되면 바야흐로 불길이 꺼지고 조용히 침잠하는 때이다.
나무는 물기를 내리고 겨울맞을 준비를 하고, 과일과 곡식은 무르익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뒤로한 채 종종걸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그게 가을이다. 완연한 하강국면 띠바.
봄과 여름은 이미 가고 남은 계절이라곤 가을과 겨울밖에 없다. 사나이 가슴에 구멍이 뚫려 가을바람이 휘몰아친다. 즐거웠던 여름날도 돌아보고,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도 떠올린다. 아 내게도 가을이 았구나.. 매사에 흥미가 없고 의욕도 없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내가 이 나이에.. 뭐든지 나이 탓을 하고 뒤로 물러 앉기만 한다. 그러다 우울해진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중년 그리고 갱년기..
이 때.. 갑자기 여름이 찾아오는 거다. 여름더위보다 더 뜨거운 폭염이 가을의 한복판에 찾아오는 거다. 바로 우리 인생의 인디언 써머다. 나잇값 한다고 똬리만 틀고 앉았다가, 철든 티 낸다고 무게만 잡고 있다가, 그 나잇값과 철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내 나이가 뭐가 어때서? 누구아빠 누구상무님이 철수 동수로, 누구엄마 누구여사님이 영희 순자로 돌아간다. 자식새끼들 인생보다 내 인생이 중요하지..
그래서 젊은 날 했었던, 한동안 잊고 지냈었던 것들을 슬그머니 해본다. 잊고 지냈던 친구와도 다시 연락하고, 까맣게 지우고 살았던 옛 애인도 떠올려 본다. 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까? 슬금슬금 눈치도 보이지만 인생이 들썩들썩.. 조금씩 재밌어진다.
가을에 찾아온, 가을속의 여름이다.
때론 여름보다 더 뜨거운 우리 인생의 인디언 써머다.
만약 이 나이에 이유없이 싱숭생숭, 애들보다 더 달끈달끈하고 있었다면 인디언 써머의 복판에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