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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의 B(秘)급 여행
파란 하늘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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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마녀의 자매다방입니다.
esisterscafe의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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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블로그는 3개월이 지나면 게시물이 삭제됩니다.


기록하는 습관
[원본2 : http://kr.blog.yahoo.com/esisterscafe/1798 ]
2009/04/23 02:47



요즘,  아이의 교육문제에 서서히 신경쓰면서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다양한 교육관련 컨텐츠와 회원들의 살아있는 경험담 그리고 최신 정보로 매우 매력있고 흥미있는 커뮤니티이다.  그러나 자녀교육에 대해 막연히 자유로운 사고와 따뜻한 심성을 가진 아이로 커가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나로서는 그들에게 파고들고 합류하는 것이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곳에도 여행관련 게시판이 있어 그곳에 올라온 - 혀가 내둘러질 정도의 - 꼼꼼한 여행기를 읽고 올라온 질문에 답변하는 재미로 마음을 붙이고 있다. 특히, 여행관련 질문에는 태사랑에서 하던 버릇이 있어 나도 모르게 답변을 달게 되는데 답변을 달면서 당황하게 되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하였다.  장소명이 익숙해 내가 다녀온 것 같은데 아무리 기억해도 갔었는지 안갔었는지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또, 다녀온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나지만 대략의 루트만 떠오를 뿐 세세하고 구체적인 경험들과 정보들은 다시 검색을 하는 경우도 매우 잦다는 것이다. 

분명히 여행을 가기 전에는 며칠을 여행정보 찾기에 시간을 투자하여 세세한 지역버스 시간, 식당등  여행지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았었다. 또,  정보를 검색하며 여행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관광, 유적지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 여행을 떠나서도 힘들지 않게 구석구석 살필 수 있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에도 없고 자료를 찾아봐도 없는 것들이 많다.  

방금 전까지 그 동안 미루었던 여행기를 작성해야지 결심하고 검색하며 찾아두었던 정보를 모아두었던 수첩을 찾아보았으나 역시나 행방이 묘연하다. 외국을 여행할 때는 꼼꼼히 정리하고 기록을 남기면서 국내여행은 내가 만만히 보고 기록을 게을리 했던 것이 분명하다. 사진을 정리하고 추리면서도 갔던 곳의 아련한 추억만 떠오를 뿐 정확한 장소의 명칭, 위치등은 가물거린다.  물론,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지만 때로는 그 추억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선명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따라서,  그 기억을 선명이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역시 기록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 

비록, 작심삼일로 끝날 지언정 앞으로 국내 여행도 해외 여행 처럼 꼼꼼히 기록하고 정리하리라 다짐하며 묵은 여행기를 정리해야 겠다.




 

강릉여행 2 - 허난설헌 생가, 참소리 박물관, 선교장, 이통천댁 잔칫상
[원본2 : http://kr.blog.yahoo.com/esisterscafe/1785 ]
2009/03/01 23:22




강릉의 콘도를 검색하면 몇군데가 나오는데
그 중 한곳이 경포비치리조트(구 효산콘도)입니다.

'구리다'는 네박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리모델링해서 괜찮다는 평이 있어 찾아가 봤는데
리모델링한 방은 난방문제로 배정안되고 한곳에 집중해서
배정해 주었는데 정말 구리더군요. ㅠ

일단, 냄새가 구리구리 헀습니다.
오래된 하수 배관으로 인해 방귀냄새가 계속 올라옵니다.
그리고, 렌지후드는 기름때가 떡지고 있었고
기물들도 제대로 세척되지 않았고..
밥솥안의 그릇에는 전 팀이 먹던 밥풀 조각이 엉겨있더군요.

밤이라 더 이상 고민 없이 들긴 했는데
친구는 너무 비싸다고 내내 얘기하더군요.
지금 이 시기 5명이서 경포의 일반 민박에 가면 3만원 이하에
해결가능합니다.  


효산콘도는 경포해수욕장과 가깝다고 광고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경포에서 1.5킬로 정도 떨어진 강문 해수욕장에
있습니다. 202번 타고 내려서 걸어오라고 하는데
걸을 만한 거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나마 장점이라면 어찌나 넓던지
20명도 잘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따로 인원점검 같은 걸 안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 아침에 일어나니 구린내에 익숙해졌는지
구린내는 덜 한 것 같았고 침실 쪽으론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다니기도 힘들고 바다도 보이지 않는
효산콘도 정말 비추 입니다. ㅠ

남아 있는 쌀과 반찬으로 아침밥을 지어먹고
또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루트는 허난설헌 생가 -> 참소리 박물관 -> 선교장
-> 봉평 이효석 기념관 입니다. 


예전에 초당마을에 갔을 때는 허난설헌 생가라는
표지 보다는 두부마을 이정표가 더 많았습니다.
최근,  허난설헌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을 강릉의 시민단체에서 시작하여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그리고 허난설헌 문화제까지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적지나 좋은 곳을 가게되면 왜이리 머슴문으로
먼저 들어가게되는 지 이번에도 대문을 두고 옆문(대체로 머슴이나
행상들이 다녔을 듯한..) 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문 앞에는 우물이 나 있었습니다.
추측컨데 옛날 양반 집이나 잘 사는 집에서는
긍휼정신을 펼치느라 자신의 재산으로 우물을 만들어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도록 허용하곤 헀는데 우물을
집안에 들이지 않고 문 밖에 둔 것도 같은 이치일 것 같다는 생각을 헀습니다.









강릉에는 문인들도 많고 특히 조선의 대표적인 여류 문인 3명중
두명의 생가/관련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조선의 대표적인 여류 문인 3명은
황진이, 신사임당, 허난설헌 입니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제 질서에 제법 순응하며
살았던 여성으로 대표되는데 현모양처로 남성중심사회에서 추앙을
받는 여성이지요.  5만원권 지폐에도 허난설헌, 나혜석등을 물리치고(?)
결국 당첨되신 분입니다. 강릉에서 신사임당과 관련한 곳으로는 오죽헌이
대표적인 곳이지요.  허(초희)난설헌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로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을 비관하다 결국
27세에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허난설헌의 죽음과 관련해서
자살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잘못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대조적인 삶은 시대적 상황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 이전 유교가 깊이
침투하기 전 시대의 여성으로 친정살이를 했고 친정부모에게
넉넉한 재산을 형제, 자매들과 공평하게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지지를 많이 받았을 터이고
고로 마음도 편안했을 터이니 그 재능을 더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었을 겁니다. 


난설헌은  허균과 함께 초당의 두번째 정부인에게서 난 자식으로
첫번째 부인의 자식들로 부터 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허균과 같은 선생을 모시고 수학을 하였는데
선생은 '이 달'이라는 분으로 이 분이 서자라고 합니다.


허균과 난설헌 모두 선생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조선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으로 대표되는 사회부조리 소설 홍길동뎐을
비롯한  여타의 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허균은 이런 반사회적 작품을 남기는 것 외에도 기인적 행보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들은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에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허난설헌 기념관은 정말 작은 곳이지만
알차게 내용이 채워져 있고 무료인데다 아이들이 동판 체험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안쪽에는 작은 마당이 있던데 이곳에서도
뭔가 행사를 할 것 같기도 하네요.

허난설헌을 떠올리면 항상 '여자가 너무 똑똑한 것도 힘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무거워 지곤 합니다.
마침, 예비중 1학년인 해인이가 최근 고전책 읽기를 시작해서
나름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초당마을은 허균의 아비인 허엽선생의 호 '초당'을 따서
이름 붙여진 마을로 이 허씨문중에서 만든 두부만들기 기법으로
지금은 초당두부마을로 더 유명해진 곳입니다.

예전 기억을 떠올려 초당두부원조집을 가보고 싶기도
헀으나 친구가 또 얼마전에 먹고 왔다고 해서 패스했습니다.


잠시 경포 바다에 들러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경포 바다도 많이 변헀더군요.
바닷가에는  그네의자도 있어서 흔들거리며 앉아 있기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참소리 박물관 입니다.











참소리 박물관은 이전하기 전에도 한번 찾아갔었는데
주택가의 연립주택 비슷한 곳의 2층에서 작게 전시관을 운영했던 곳입니다.
에디슨에 '미친' 강릉 토박이 부자가 재산을 거의 다 써가며 전 세계
경매시장을 돌며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그 규모가 커져서
버젓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수년전 찾았을 때 박물관이 곧 경포대 근처로 이전한다고 하더니
경포해변으로 들어가는 큰 길에 멋지게 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더군요.

예전에도 해설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더욱
알찬 박물관 기행이 되었습니다.





무엇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사가 동행하면서
차근히 설명해주고 악기도 들려주고 전구도 켜주는 것이
아이들이 집중하기에 좋았고 어른들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해설사의 해설을 따라가려면 어느정도 사람들이
모일 때 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움직입니다.












전시관 곳곳에는 각종 수집 물품들이 가득 차 있구요.
복도에까지 많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기억에 남는 것은 '애완견 니퍼와 주인의 목소리' 라는
이야기 입니다.  반전이 있는 이야기 인데 모두들 즐거워 합니다.

애완견 니퍼와 주인의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의 타이틀이
'His Master's Voice'이고 여기서 최초 HMV라는 축음기 회사가
만들어 집니다. 이후 세계 각국으로 라이센스들이 퍼지며 RCA, EMI등의
회사들이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에디슨 기념관 까지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성능 좋은 스피커로 채워진 오디오룸에서
음악감상을 합니다.





사진 찍지 말라면 더 찍고 싶어집니다. ㅠ
해설사 없는 틈을 타서 오디오룸 내부 한장 찍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ㅠ

예전의 박물관은 작은 곳이라 오디오룸 역시 작은 곳이었고
그곳에서 커다란 스피커로 듣고 보았던 '라데츠키 행진곡'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함께 갔던 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더
즐거워 하면서 박수쳤던 기억이 납니다.

새 박물관은 시설은 좋으나 상대적으로 넓으니
예전처럼 온몸으로 떨림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우린 해설을 듣기 전에 한번 들어서 그냥 가려고 했으나
해설사가 음악이 다르니 또 들으라고 열심히 권하고 친구도 한번 더 듣자고 해서
또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행사가 다 끝나고 직급이 높아보이는 분이 들어와서는
온갖 종류의 스피커로 여러 음악을 더 들려주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가수 최성수씨가 와 있더군요.
아마도 특별히 요청 한 것 같았는데 덕분에 우리는 횡재했습니다.
음악감상이 끝나고 최성수씨에게 싸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구요. ^^

아이들은 요즘의 성시경 쯤으로 말하니 알아듣더군요. ㅎㅎ

한시간이면 족할 것 같았던 참소리 박물관은 해설과 음악감상으로
무려 두시간이 넘게 걸렸고 덕분에 봉평은 생략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선교장입니다.
참소리 박물관도 오랜만이지만 선교장은 더 오랜만 입니다.
대학 때 친구랑 경포에서 걸어걸어 가봤던 곳인데
정말 많이 변해 있더군요.








예전에 찾았을 때는 대문을 지나면 바로 살림하는 곳이
나오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이였습니다.
사는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발소리
죽이며 다니는데도 인기척을 느끼고 방문을 열어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던 종손며느님이 떠오릅니다.

집은 사람의 숨결이 있어야 그 집의 숨도
유지된다고 합니다. 덩치가 커지고 더 멋지게 변했을지는
모르지만 선교장에서 예전의 정취는 찾을 수 없더군요.









친구가 들려 준 얘기로는 예전 안방마님들이
낮시간에 발 뻗고 누워있을 수 있는 풍토가 아니어서
양반집 안채에는 숨은 공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조기 책상머리 앞에서 수도 놓고 글도 짓고
하다가 발뻗고 싶으면 조기 안쪽에 들어가 문닫고 쉬었다네요. ^^
이곳 강릉지역의 주택만 그런건지는 모르곘지만서도
자세히 보니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마루와 연결되어 있는 곳 같은데
장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덩치가 커진 선교장을 짧은 시간에 휘둘러보고 나왔습니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해설이 필요하냐고
물으셨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온 것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선교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이통천댁 잔칫상'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선교장에 양반가 음식을 하는 식당이 생겼다는
기사가 얼핏 떠올라 무작정 들어가서 얼마냐고 물으니 만이천원 부터
있다고 하네요. 

이미 예산을 초과한 상태라 어쩔까 조금 고민되긴 했지만
언제 또 다시 올까 싶어서 결국 이곳에서 밥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음식은 선교장의 주인이었던 이통천 댁에서 치루던 잔치 음식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가짓수만 많은 백반에 조금 식상해
있었는데 그리 비싸지도 않은 가격에 종가집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만 2천원, 2만원 짜리 정식은 아무때나 먹을 수 있고
3만원 상 부터는 하루전날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1만2천원짜리 먹었습니다.





생선과 닭다리 봉이 나오기 전의 상차림 입니다.
김치를 빼놓고 안가져다 주셔서 나중에 주문해 먹었습니다.
양반가 음식이 본래 짜지 않고 기본 재료의 맛에 충실하며
소금이 아닌 장으로 간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정말 훌륭한 음식입니다.

비빔밥 처럼 나온 것에는 손이 많이가는 북어보푸리가
가운데 있었고 고추장이 아닌 된장찌개 옆에 있는 장으로
간을 하여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간장으로 간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
고추장을 청한다고 했는데 친구도 결국 싱겁다고 고추장을
청하더군요.  전 간장간도 입맛에 맞았습니다.









예전 양반가 음식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의 장류라고 하는데
이집의 고추장 맛이 참 좋더군요.

고운가루에 장을 담근 듯이 부드럽게 혀에서
돌았습니다.  아쉽게도 오래 묵힌 장은 아닌 듯
메주가루 냄새가 조그 났답니다.

직접 담근 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고추장, 간장의 맛이
모두 좋고 저렴한 가격이 인상적이었던 곳이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가짓수만 많은 백반 보다는 적은 가짓수지만
정갈하게 있을 것 있는 상차림이 좋았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2만원 상을 많이 드시던데
2만원 상이 한국 전통 음식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일부러라도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이랍니다.

결국 애초에 계획한 봉평은 가보지도 못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해질녘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별 기대없이 가게된 곳이었지만
나름 알찬 여행/ 체험학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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