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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에 걸친 새언약의 사역자라는 제목의 목사님 말씀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역이란 단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종교생활하면서 늘 따라다니던 용어. 그 지긋지긋한 사역의 자리, 일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이 자라서 저절로 표현되는 대구교회에 왔기 때문이다. 비록 같은 단어지만 우린 그 의미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새언약의 사역자인가? 진정한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 우리의 표현이라 할수 있다. 이것은 남녀의 사랑에서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내로부터 넘치는 사랑이 있을때는 퇴근후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왔을 때라도 아내가 어떤 집안일을 시키면 전혀 수고롭지 않고 그 사랑에 힘입어 즐거이 그일을. 당연히 해야할 일로 여기며 도와준다. 그런데 그 사랑이 희미할때는 아내의 어떤 부탁도 어떤 요구도 하기가 싫어진다. 왜냐면 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부탁은 노동이요 수고로움인데 사랑이 있는 부탁은 즐거움이요 기쁨이며 섬길수 있는 기회이고 그 사랑에 은혜갚을 기회로 보여진다. "이 일말고 더 시킬일 없어? " 하는 마음까지 든다. 하나님의 사역도 이와같다. 먼저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충분히 받고 누리는 자리가 필요하다. 사랑을 먹고 자라는 시기. 먹고 자라서 성숙해지면 우리는 그냥 누리기만 하는 자리에서 그를 위해 뭔가를 하는 자로 성숙하게 된다. 무언가 한다는 것, 이것은 더이상 우리에게 일도 노동도 수고로움도 아니라 기쁨인 것이다. 당신의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인 것이다. 나는 아내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을때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내의 참사랑을 자랑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 우리가 새언약의 사역자로 세워지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신부인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으로 다가오신 참남편이신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에 취해 그 사랑에 반응하고 표현하고 자랑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역의 의미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나를 더이상 일하는 자리로 부르지 않고 받은바 당신의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는 자리로 이끄신 주님이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