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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칼 (dltmf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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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르사유의장미
원본: Au revoir... 2007/02/07 오전 9:56 | 만화 이야기








ㅋㅋ 내가조아하는 오스칼
옛날에 7살때 이거보군 정말 열광했는데 6학년이 되어서야 만화책이 있단걸 알게 되었다
ㅋㅋ 얼마나 좋던지 연체료가 빌렸는때 돈보다 3배가 되어도 갖다주지않고 계속 보고 또 봤다
역시 감동적이다 애니매이션도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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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르바라~~
원본: Au revoir... 2007/02/07 오전 9:55 | 만화 이야기













베르바라~~
내가 넘 조아했던 베르바라
내가 잊을수 없는 애니입니다
다시 KBS에서 방송해줬음 조켔어요~~
그립습니다. ㅋㅋ 오스칼
여자로서 다른귀족부인들과달리 남자로써 살아가는 오스칼이
7살땐 정말 멋져보였어요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는것보단
역시 근위대장군복을 입었을때가 멋져요
제가 어쩌다보니 지금 인터넷에서 베르바라를 보고있는데
넘 감동적이에요 정말 이거볼때는 항상 눈물이 나는군요 ㅋㅋ
정말 명애니임돠 정경애씨 목소리 참 매력있었는데
안타까운사고로...
오스칼!!! 내가 잊지못하는 애니 주인공입니다
세월이 7년이나 흘렀는데도 아직 제맘에는 베르바라가 최고의 애니매이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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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르사유의장미어록
원본: Au revoir... 2007/02/07 오전 9:51 | 만화 이야기


<페르젠이 떠나기전 오스칼에게 한말>

너는... 쓸쓸하지 않니?
여자의 몸으로
그런 모습을 하고...
여자로서의 행복도 모른채
청춘을 보내는 것이...

<디안느가 면회를 왔다가 오스칼에게 한말>

오스칼은 히브리어로
'신과 검'을 뜻한다고 오빠가 말해줬어요
그러나 설마 여자분일 줄은...

<오스칼의 어머니가 오스칼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하려 한말>

오스칼
부모란 그토록 어리석은 거란다
사랑이란...
때로는 슬플 정도로 어리석어 지는 것이란다

<이건 모르겠음>

마음 착하고 따뜻한 남자야말로
진짜 의지할 만한 남자라는 걸 깨달았을때
대개의 여자는
이미 늙어버리고 만다고...

<이것도 모르겠음ㅠ.ㅠ>

무관은 어떤때든지
감정으로 행동하는게 아니다.
무관은 어떤때라도...

<앙드레가 오스칼대신 흑기사의 채찍에 만났을때>

이것이...
네 눈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제로델이 오스칼을 포기할때>

받아주십시오 나의...
단 하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물러나겠습니다.

<이것도 모르겠음>

생명을 구가하는 모든것
그리운 사람들에게
끝없는 내 마음을
전해줘...

<오스칼이 죽기전에 한말>

어째서 우리편의 대포소리가 들리지 않지?
쏴라 쏴 포격을 계속해
바스티유는 곧 함락된다
쏴라 쏴 뭘하고 있는거야!

<루이조셉이 말타러나가서 한말>

오스칼
난 당신이 좋아
다음에 태어날땐 병같은건 앓지않은
건강한 청년이 될테니까
오스칼
그때까지 기다려줘
알았지?

<앙드레가 죽기전한말>

아... 아... 푸른 눈동자. 그 모습은...
마치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페가소스의 홰를 치는 날개를 닮아...
블론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휘날리며...

<아랑이 오스칼을 위로하기 위한말>

오늘밤은 춥습니다...
대장!... 값싼 위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앙드레는 행복한 놈이오...
좋아하는 사람 곁에 늘 같이 있었으니까요...
힘을 내세요...

<오스칼이 앙드레가 죽자 실의에 빠져 생각한 말>

미안해... 앙드레...
어제까지 너에게...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오히려 난... 너에게 많은 것을 받기만 해왔지...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옛날 부터...
넌 마치... 그림자처럼... 내 곁에서 날 위해줬는데...
난... 너의 마음 하나... 눈치채지 못했어...
앙드레... 용서해줘!
난 이제 어떡하면 좋지?
너의 웃는 얼굴이 다시한번 보고싶어...
앙드레...... 네가 없는데...
나 혼자... 나 혼자 어떻게해?...

<오스칼이 자르제장군에게 한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인생을 살게 해주신 것을...
여자이면서 이처럼 넓은 세계를
인간의 어리석음 속에서
발버둥치며 살게 된 것을,..
저는 더이상 후회하지 않겠어요
군신 마르스의 아들로서 살아가겠습니다.
이 몸을 검과 포탄에 바치면서
생애를 무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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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르사유
원본: Au revoir... 2007/02/07 오전 9:50 | 만화 이야기



베르사이유의 장미 최종화에서 오스칼의 죽음후 바로 위의 스케치가 스쳐 지나갑니다.
이 또한 데자키오사무 식의 연출이라 할 수 있겠죠..(이 그림들이 스쳐지나갈때
음악도 그렇고..뭔가 서글퍼 집니다..오스칼의 죽음이 맘에 와 닿죠..T_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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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랑스의 역사
원본: Au revoir... 2007/02/07 오전 9:45 | 만화 이야기



로마 시대의 골

기원전 8세기 경부터 INDO-EUROPEAN계의 일파인 CELT족이 현재의 프랑스 영토에 이주, 원주민을 몰아 내고 정착하였는 데, 이 지역을 로마인들이 GALLIA라 부르고 이 지역에 정착한 CELT족을 GALLIA족이라 불렀다. 이후 GALLIA가 불어명으로 GAULE이 되었다. 남프랑스 해안 지역은 B.C.121년 로마의 속령이 되었고, 나머지 GAULE지역은 BC 58∼51년에 걸쳐 CAESAR가 로마에 복속시켰다. 이후 GAULE족의 라틴화가 추진되었고, GAULE족의 고유문화에 마문화가 이식된 GALLOROMAIN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시대에 GAULE 족에 보급되어 변형된 라틴어가 프랑스어의 기원이 되었다.





중세

프랑크(FRANK)왕국

메로빙(MEROVINGIENS) 왕조(481∼752) : 4∼5세기에 걸 진행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시 프랑스 동북부는 프랑크족이, 서남부는 WISIGOTH족이, 동남부는 BURGUNDY족이 점령하였다. 481년 프랑크 부족 중의 하나인 메로빙가(家)의 CLOVIS가 프랑크 왕국을 건설한 이후 WISIGOTH와 BURGUNDY족을 물리치고 세를 확장, GAULE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소수 지배 민족인 프랑크족과 다수 피지배 민족인 GAULE족간에 동화가 서서히 진행되었다.

카롤링(CAROLINGIENS) 왕조(752∼987) : 752년 카롤링가 (家)(CAROLINGIENS)의 PEPIN이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어 카롤링 왕조가 수립되었고, 800년에는 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샤를마뉴

(CHARLEMAGNE)대제가 GAULE 지방 전체, 이탈리아 북부, 라인강 유역 일대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죽음은 제국의 분할을 야기시켰고, 843년 베르덩조약 이후 프랑크 제국은 3분 되었는데, 이중CHARLES 2세가 차지한 제국의 가장 서쪽에 해당하는 영토, 프랑키아오키덴탈리스(FRANCIAOCCIDENTALIS)가 프랑스의 모체가 되었다. 9세기말에는 노르만족(바이킹) 프랑스 북부지역과 세느강 유역에 침입하여 현재의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하였다.

중세 봉건왕조

카페(CAPETIENS) 왕조(987∼1328) : 987년 HUGUES CAPET가 왕으로 추대되어 CAPET왕조가 성립되었고, 전형적인 중세 봉건제도가 정립되었다. 또 GAULE족간의 동화가 가속되었고 프랑크족이 게르만어를 버리고 피지배민족의 언어인 불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나 불어도 게르만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었다. CAPET 왕조는 1096년부터 1291년에 걸쳐 8차례의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였다.

발로아(VALOIS) 왕조(1328∼1589) : 1328년 PHILIPPE 6세에 의해 왕가의 방계인 VALOIS 왕조가 수립되었다. 발로아 왕조는 영국의 침입을 받고 1337∼1453년에 걸친 오랜 투쟁(100년전쟁) 끝에 영국인들을 몰아냈다. 또한 영국과의 전쟁중인 1348∼1360년엔 흑사병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국토가 황폐화 되었다. 15세기말부터 이탈리아로부터 르네상스 문화가 도입되어 16세기에 LOIRE강 유역을 중심으로 프랑스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1560∼1598년에 걸쳐 신교도와 구교도간 8차에 걸친 종교전쟁을 겪었다.

백년전쟁 (Le guerre de Cent Ans)

1337∼1453 13세기와 14세기는 매우 어려웠다. 기근과 전염병인 페스트가 국민들에게 참혹한 피해를 주어 농민폭동이라는 민중반란을 야기했다. 한편, 영국의 왕들은 결혼할 때에는 프랑스 왕의 가신이 되었는데, 프랑스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물론 거부했으므로 많은 전투가 있었으며, 영국인들은 프랑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 쟌다르크 (J'EANNE d'ARC) 동레미(로렌지방에 있는)에서 태어난 한 젊은 목녀는 프랑스를 구하라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 16세에(1428) 그녀는 군부대의 지휘관이 되어, 프랑스가 영토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쟌다르크는 체포되어 마녀로 재판받아 화형당했다. 쟌다르크는 프랑스 국가주의의 첫번째 상징 중 하나이다.





근세

부르봉(BOURBONS) 왕조(1589∼1792) : 1589년 CAPET 왕가의 방계인 BOURBON가의 HENRI 4세가 제후들과의 오랜 투쟁을 통하여 지배권을 확보하였고, 이어 LOUIS 13세, LOUIS 14세 치하에 계속적으로 봉건제후를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여, LOUIS 14세는 태양왕이라 불리었다.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에 동안인 1618∼1648년의 30년 전쟁을 통하여 부르봉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HABSBURG 왕가와 대륙 패권 경쟁을 하였고, 특히 루이 14세는 수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유럽대륙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도 힘을 기울여 신대륙에 LOUISIANA, CANADA, ANTILLES 등 방대한 해외령을 확보하고 인도에도 식민지 개척의 거점을 확보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라틴문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영향에서 탈피, 독자적인 프랑스 고전주의 문화를 꽃피워, MOLIERE, CORNEILLE, RACINE 등 문호와 파스칼, 데카르트를 비롯한 학자들이 배출되었고, 불어문법과 프랑스 고유의 법체계가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구체제(L'Ancien Regime)

15세기말 프랑스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전력을 정비하면서 외부로 팽창해 나가려는 움직임과 함께 새로운 지적, 이학적 욕구가 싹텄다.

르네상스 (La Renaissance)

1515∼1610 프랑스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첫번째는 1530년경까지의 건축경향을 들 수 있다. (아재-르-리도(Azay-le-Rideau), 슈농쏘(Chenonceaux)와 같은 루아르(Loire) 강변의 성을 들 수 있다. 이 성들은 망루, 총안, 경사가 급한 지붕을 특징) 두번째 단계에서는 퐁땐느블로(Fontainebleau)파를 중심으로 보다 복잡한 장식유파가 등장하였다. 이 유파는 나무, 화장벽토, 프레스코를 조화롭게 결합시키고자 하는 기교주의 화풍이 특징적이다. 세번째 단계로 1550년경에 이르러 이탈리아 및 고전고대의 영향과 국민적 전통이 결합되어 프랑스의 고전양식이 등장하였다. (루브르(Louvre) 궁과 뛰일르리(Tuileries)궁)

종교 개혁

루터와 캘빈의 자극으로 <<종교 개혁>>이 일어나서 교회의 부와 권력의 남용을 비판하며 성서의 근원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프로테스탄주의) 카톨릭 교회와 교황은 교의와 종교예식의 원칙들을 세우며(트렝트 공의회), 예수회의 종교적 질서를 창조하면서 반종교개혁운동을 했다.(예수회 수도사들과 예수회 : 반 개혁의 시기에 스페인인 이그나스 드 로욜라에 의해 1540년에 설립된 카톨릭의 종류) 교황에게 충실한 교황예찬자들과 개혁을 지지하던 위그노들 사이의 종교적인 갈등은 시민전쟁 즉 종교전쟁으로 악화된다. 생 바르텔르미의 학살(1572년 8월 24일) 사건은 하룻밤에 파리의 모든 신교도들을 학살했다. 어머니에 의해 프로테스탄트 종교 속에서 키워진 앙리 4세가 1589년 프랑스의 왕이 되었을 때(부르봉왕가의 첫번째 왕), 그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17세기 (Le ⅩⅦ siecle)

위대한 세기 (Le Grand Siecle) * 루이 13세와 리쉴리에 (Louis ⅩⅢ et Richelieu) : 1617∼1643 앙리 4세의 섭정기간이 지난 후 그녀의 아들인 루이 13세는 왕좌에 오르게 되고 리쉴리에 추기경의 도움으로 통치한다.



지방의 고등법원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왕은 권력의 중앙집권 정책을 시작한다. 그는 상업과 해운, 그리고 진정한 식민지 제국의 건설을 장려한다. 프로테스탄트와의 투쟁이 재개된다. * 태양-왕의 명성 (Lerayonnement du Roi-soleil) 수상이었던 마자랭이 죽은 후 루이 14세 자신이 통치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귀족들이 왕권에 대항했던 프롱드난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한다. 이것이 절대 왕정이다. 신과 같은 권력을 지닌 군주로서의 왕은 지상에서 신을 대표하며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국가는 바로 나다>>). * 콜베르와 중상주의 (Colbert et le mercantilisme) 콜베르 수상은 특히 산업과 상업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수입을 제한하고 왕립제조소를 만들었다. 그는 교역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 도로와 항해로를 정비하였다. 한편, 종교적인 갈등들은 매우 난폭했다. 루이 14세는 낭트칙령을 폐지했으며, 탄압이 또다시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덮쳤다. 사람들은 또한 예수회와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카톨릭 운동인 쟝세니스트파들을 박해했다. 루이 14세의 가장 큰 성공 중 하나는 문화적인 명성 즉 고전주의의 승리이다. 회화, 조각, 음악 아카데미의 창조. 문학에 있어서는 <<부자연스럽고 꾸밈이 많은 허식>>이 주종을 이룬다.(몰리에르, 라신, 코르네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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