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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9/12
 

Yi Sun-Shin
The Book of Corrections: Reflections on the National Crisi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2004/09/19 오후 7:22 | Yi Sun-Shin

The Book of Corrections: Reflections on the National Crisi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known as the Imjin War, was one of the most tragic and traumatic experiences in Korean history. Looking back upon this tragedy from start to finish, Yu Songnyong, who served as chief state councilor during most of the crisis, vividly portrays all the major developments of the crisis, as well as the men who were involved in it. The purpose of writing Chingbirok (The Book of Collections), as the author professes in his preface, was to prevent similar disasters from taking place in the future. His book, however, is much more revealing; it provides a lively perspective of the relationship of the three neighboring countries in the war--Korea, Japan,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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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은 우리를 심란하게 하는 책이다. 16세기말 임진왜란 당시에 좌의정, 영의정,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의 중책을 맡았던 서애가 은퇴 후에 기록한 전쟁 회고록이다. 저자 친필 원본은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36년 300부 한정의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란 뒤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여기에 간혹 난 이전의 일까지 섞여 있는 것은 난의 발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생각하면 임진의 화야말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십 여일 동안에 세 도읍이 함락되었고 온 나라가 모두 무너졌다. 이로 인하여 임금은 마침내 파천까지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짤막한 서문에서 서애는 붓을 든 동기를 간명하게 술회하고 있다. ‘시경에 이런 말이 있다. 내 지나간 일을 징계(懲)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노라.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쓰는 연유이다.’

황윤길과 김성일의 상반되는 보고나 이율곡의 양병(養兵)론을 위시하여 패전의 역사에 익숙한 독자들도 15만의 왜군에게 대책없이 당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탄식하게 된다. 나라의 기강도 없고 지배층의 책임감도 없다. 적군 앞에서 형편없이 무력한 반면 동족에게는 사뭇 추상같다.

가령 용궁(龍宮) 현감 우복룡(禹伏龍)이 군사를 거느리고 병영으로 가는 도중 영천(永川) 길가에서 밥을 지어먹고 있었다. 하양(河陽) 군사 수 백명이 방어사에 예속되어 북쪽으로 가는 길에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군사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자 우복룡은 ‘너희들은 반란을 일으키는 군사’라며 꾸짖는다. 하양 군사들은 병사(兵使)의 공문을 보이며 해명했으나 우복룡은 자기 군사를 시켜 그들을 포위하고 모두 살해하여 들에 시체가 가득하였다. 왜군이 해상으로 쳐들어 온 직후의 일이다.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침략군에게 밀려 북으로 향하는 조정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할 것은 명(明)나라 원군밖에 없다. 7월에 5000명의 원군이 오고 12월에 이여송 휘하의 4만 원군이 온다. 이순신의 활약과 주민의 단합으로 임진란 초기에 왜군으로부터 안전하였던 호남의 상황을 보면서 독자들은 가까스로 어떤 위안을 얻는다.

이 책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이여송 부대가 서울을 수복한 직후의 기록이다. 성안에 남아있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성한 사람은 없고 모두가 굶주리고 병들어 눈뜨고 볼 수 없었다 한다. 거리마다 인마 썩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지나가야 했다. 10월 선조가 환도한 이후의 서울 정경은 더욱 참혹하다. ‘심지어는 부자와 부부가 서로 뜯어먹기에 이르렀다(至父子夫婦相食). 노천에 뒹구는 뼈만 짚단같이 늘어져 있었다.’

‘상식(相食)’이란 말을 일종의 수사법으로 읽어야 할 것인지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서로 잡아 먹는다(人民相食)’는 말은 명나라 장수가 우리쪽에 보낸 치욕적인 공문에도 나와 있다. 지옥보다 더 지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조의 최측근의 한사람으로서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서애가 반드시 사태의 진상을 두루 파악하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현지에 당도했을 때 조령 관문은 벌써 왜군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신립이 충주에서 배수진을 쳤다는 것이 정사쪽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신립에 대한 서술은 얼마쯤 모호하며 천연의 요새를 버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부지 중에 공적 과시나 자기변호적인 역사 왜곡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지금 와서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만 뒷날을 위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기로 써둘 따름이다’란 말은 새겨 들어야할 ‘징비록’의 핵심적 전언이다.

왜란 이후 얼마 안되어 조선조는 병자호란의 참화와 치욕을 다시 겪게 된다. 어찌어찌 부지한 왕조는 결국 20세기 초에 결딴나고 만다. 뒤이은 20세기 중반의 비극적 체험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역사의 교훈이란 말을 우리는 자주 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역사로부터 배우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최근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흘러간 과거의 책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징비록’은 모두가 읽고 깊이 자성해야 할 바로 오늘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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