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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벨라 Bella

2009.10.16 11:14 | 영화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464 주소복사

매니가 차갑다고?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차가운 뉴육에서 어떻게 장사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성공을 꿈꾸던 청춘이 그 꿈을 접고나서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과정을 모두 다 겪은 인간이라면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와는 늘 거리가 존재한다. 그가 왜 머리와 수염을 다듬지 않는지 나는 잘 모른다. 회개와 좌절 사이에 면도와 이발을 등한시하는 필연적 요소가 감추어져 있다면 나는 아직 적잖은 인생을 살면서 그것을 잡아내지 못한 축에 속하겠지. 허나 섣불리 지서스Jesus를 풍자하려했다면 그것은 클리셰 Cliché일 뿐이다.

다행히 신은 그에게 황금발만 준 게 아니었다. 착한 마음씨와 요리를 할 수 있는 두 손을 주셨다. 축구스타를 꿈꾸다. 요리사가 되는 것도 어쩌면 나쁘지만은 않은 인생이다.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VIPS따위의 대기업 센트럴 키친에서 그 꿈이 소멸되는 적지 않은 청춘들에 비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그가 이제 막 임신을 한 불행한 과거의 미국여성을 만난 것은 어떤 의밀까. 애비없음은 이른 바 마리아 (동정녀)를 연상시킨다. 애비없음과 미래없음이 만나 새 삶을 시작한다. 아름답다 Bella는 에스빠뇰식 이름을 가진 어린 아이로부터.

호세가 (지극히 현실적인) 자신의 입양된 형 매니에게 오믈렛을 나누는 게 진짜 우애의 시작이었다면, 그가 벨라와 함께 니나를 기다리는 것은 (인생의 꿈꾸지만 늘 외면받는) 진정한 삶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석 달 만에 극장나들이 - 중앙시네마, 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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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는 다 알면서 왜 이렇게 큰 가방을 쌌을까?


애비의 부재가 한 아이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저를 낳아 준 애미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을 정도로. 무엇이 그녀에게 이토록 큰 부재감을 안겨준 걸까. 평생 힘들게 살아간 어미도 또한 그 어미의 뒤를 따르는 언니도 마뜩 잖다. 명은은 자신을 둘러싼 부족함을 해소하기 위해 어미의 죽음을 틈 타 여행을 떠난다. 자신을 오랜 세월 괴롭히던 부재감을 극복하기 위해.

애초에 이 영화에선 애비가 없다. 애비가 없어도 자식은 잉태된다. 어찌된 일인가.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부재는 사람들의 입방아로 전이되는 애비없는 자식에서 출발하던가. 키움이란 어떤것일까. 평생 자식을 키워볼 기회가 희박해 보이는 내게 그것은 커다란 산과 같다. 나 역시 부재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명은처럼 처절하게 증오심으로 싹트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의 차이겠지. 사회적 관습은 일종의 초자아다. 이러한 수퍼에고에 맞서서 균형잡히 자아를 유지하려면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내 균형감은 아마도 이드의 발달에서 만회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제 어미처럼 커서 싱글맘이 된 명주는 보기엔 무식한 생선장수로 보이지만 그녀는 놀랍도록 자신의 삶을 균형있게 영위해 나간다. 그것이 이른 바 지긋지긋한 자신의 둥지를 박차고 나가 보란듯이 도시생활을 만끽하는 명은에게는 납득할 수 없지 않았을까.

증오는 어디서 오는가. 증오를 유발시킨 부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자들만이 이룩한 왕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젊은 여성 명은의 앞 날은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명쾌할까. 공항의 자동문만 열고 나가면 그곳엔 자신이 찾아헤매던 부재감을 채워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평생을 그처럼 기다렸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기다림에 부응할 수 있을까.

남성의 부재도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는 시각에 나는 큰 점수를 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세상 속 하나의 진리이니까.





특별 출연한 소설가 김연수가 강간범? 하하하하하하!

홍상수 영화가 다 그렇듯이 이 영화도 결국 인생의 아주 작은 한 토막이다. 기승전결이 필요하다고 배운 나 같은 인간들에게는 그야말로 야멸차다. 보여줄 것만 보여주고 보여준 만큼만 생각하게 만든다. 지독한 감독이다. 지독한 영화다. 구경남이 제천 영화제에 심사위원장으로 내려가서 보여주는 작태는 그 전에 익히 보아왔던 홍상수의 남자들치고는 준수할 지경이다. 노골적으로 여자를 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잘난 체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하다. 시간을 내어 지방에 내려가 시간을 때우고 상경할 뿐이다.

다만 후배의 집까지 찾아가 술을 마신 후의 이야기가 미스테리다. 구경남은 후배의 처에 손을 댄 것일까? 여자는 다음날 후배의 절교편지를 들고 사태를 수습하러 재방문하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만다. 왜 이들은 이토록 오바를 했던가. 후배가 구경남의 여색에 거부감을 느껴 지레짐작했을까? 대체 그의 처는 왜 울고불고 야단이었을까.

이 주 후 구경남은 제주를 찾는다. 선배의 주선으로 자신의 영화를 틀어주고 강의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알쏭달쏭한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담배까지 같이 피면서 호감을 보이던 젊은 여성이 막상 강의가 시작되자 쌀쌀맞게 구경남을 몰아부친다. 그 여성은 그 후 나이 잡순 경남의 선배 화가와 스스럼없이 잠을 잔다. 어렵다. 과연 그 여자의 진심은 무엇인가? 구경남의 강의는 역겹고 같은 풍의 술자리 대화였던 선배 화가의 이야기는 살가웠던 이유가 궁금하다.

클라이막스는 선배 화가의 아내와의 조우다. 오래 전 한 때 연인 관계이기도 했던 고순을 만나서부터다. 제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경남은 이번엔 고순에게 기묘한 편지를 받는다. 내용인즉슨 땡기면 만나보자는 것. 자신과 오래 전에 헤어지고 늙은 화가와 결혼한 고순의 편지는 기묘하기까지 하다. 납득할 수 없는 세상과 납득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역시 홍상수 영화는 전자쪽이다. 계속해서 불협화음이 나는 기기묘묘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들은 그쪽 세계에 발을 붙이고 살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낯설다. 그 다른 세상이라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오래 전에 현역에서 은퇴했던 숫컷이 추억조차 떠올리기 아려운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보게되는 홍상수의 영화. 하지만 보고나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감싸게 되는 홍상수 영화.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썰을 풀어댈지 궁금하다.






드래그미투헬 - 샘 래이미 다운!

2009.06.22 16:12 | 영화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359 주소복사

무섭다기보다 더럽더라! 이 할망구!


미me라는 파일을 헬hell이라는 폴더에 드래그 하는 영화. 제목은 IT세상에 맞게 즐겁다. 영화도다. 집시 할망구를 추악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같은 동족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다. 멀쩡한 백인에게는 사실 타 인종 모두가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딱히 이영화가 더 차별적이라고 말하기가 어줍잖다. 공포영화 이전에 영화이고 영화는 영화로 보고 끝내줘야 한다. 키애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나왔지만 말년의 피터 포크를 보는 게 더욱 즐거웠던 튠 인 투머로우(Tune In Tomorrow..., 1990)에서 피터 포크는 알바니아계 미국인들을 저주하지만 딱히 그 영화가 차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알바니아계 미국인을 업신여기는 WASP의 정신에 세뇌된 무뇌적 사대주의자라서기보다 그저 코미디 영화를 코미디로 봐주기 위해 극장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듯이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샘 레이미 하면 거미맨을 연상하겠지만 내게는 크라임 웨이브를 만든 재기 넘치는 악동의 이미지가 여전하다. 따라서 그가 이번에 짬을 내 만든 가벼운 공포영화는 크라임웨이브로 그를 기억하는 내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부담없이 놀래다 나오면 되는 그런 영화다. 또한 코미디틱한 공포에 실망한 정통 호러무비 팬들은 샘이 원래 그렇고 그런 양아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거미 맨4보다 이블 데드4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한점이 훨씬 그 다운 샘 레이미를 기대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애쉴리 역이 문제다. 그 역할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샘 레이미의 페르소나 부르스 켐벨은 올 해 나이 벌써 50이다!)






어떤 개인날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2009.04.16 14:34 | 영화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295 주소복사

소통하려면 먼저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하는 것이 아닐까.


100년을 10년처럼 달려온 대한민국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사는 ‘보통사람’들은 너무 빨라진 삶의 속도 때문에 서로 마음을 통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부부이건, 이혼한 사람이건, 한 달 벌이가 88만원 밖에 안 되는 청년실업자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사람들은 점점 고통을 숨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대충 상처를 가린 채 세상에 나아가 멀쩡한 얼굴로 살아간다. 나도, 내 친구들도. 마흔이 넘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나는 ‘잘 사는 척’하는 게임을 멈추고 나를 그냥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바라본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보니 영화가 내게 말해주었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 또 하나 있으니 너무 쓸쓸해 말라’고.

이숙경 감독의 연출의 변


위에 감독이 전하는 말에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이 있다. 거품을 거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거두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 따지고보면 내 주변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숨기고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친하게 지내는 식구들과도 고통을 공유하려하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것이 정말 100년을 10년처럼 앞만보고 달려 온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탓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21세기 MB정권의 화두는 소통이다. 하지만 소통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을 하려면 먼저 사람에게 자신을 들어내야 한다. 윈윈게임을 즐기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먼저 들어내는 것이 어디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이 씨도 안 먹히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혼녀로 살아가야 할 여성들.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들. 과연 누가 먼저 소통을 위해 자신을 들어낼 것인가.

나부터 들어내놓자. 그러기 위해서 나는지난  3년 연속 여성영화제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소통의 시작은 스스로에 대한 용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매정하던가. 좋은 영화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쯤 봐두길 권하는 그런.





뱀다리

아마추어 배우인 지정남의 연기가 몹시 뛰어나다! 연기가 아니라 삶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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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