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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전업주부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무엇일까? 무뚝뚝한 남편이야 없는 셈 치더라도 뱃속에선 난 첫째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이제 오십대에 접어든 주인공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역시 자랄 때 가장 정감있었던 둘째 딸일까? 가장 믿었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는 전업주부라 일하는 여성의 본질을 몰라!' 라고 건방진 타박을 던질 때 과연 어디로 숨어버려야 한단 말인가. 제길.
이 책을 대여해주신 틸사마는 내가 이 책을 다 읽자마자 감상을 요구했다. 나는 혼란스러워 잘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여자의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 남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파렴치한 자식이라고. 맞는 말이다. 소설에선 거의 존재감없이 그려진 캐릭터지만 그 중년 여성의 삶에선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을테니 말이다.
틸은 오십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 중이다. 벌써 세월은 그렇게 흘러버렸다. 부인하거나 부정하기엔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철이 든 여편네들이 이 책을 끝마쳤을 때 틸처럼 분노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전업주부가 얼마나 어리석고 굴종적인 사회 시스템의 최종적 관문인지 알아 챌 수 있을테니까. 나는 아직도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저당잡혀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러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친구의 분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종교가 왜 발달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서로의 존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자를 창조했다. 그가 바라는 것, 그를 믿는 것은 내가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오십을 넘긴 여자가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도피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가난하게 죽어도 자신이 왜 죽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삶이다. 여성이자 동시에 이 책을 지은 작가의 주장은 혹시 그런 게 아닐가 싶었다.
뱀다리
나오키상에 빛나는 시노다 세츠고란다. 글 쓰는 게 신통해서 그 문제의 나오키 상을 받은 책을 주문해 버렸다. 내친김에. 가쿠타 미쓰요 이후로 견고한 문체의 여성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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