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귀신 틸사마네 집에 원두가 고갈이다. 그럴줄 알고 이번엔 내가 단골 원두집에서 미리 주문을 해 두었다.
- 200그람씩 네 봉이면 택배비가 무료야. - 좋은데. - 일단 당신꺼는 애스 올웨이스로 케냐 더블A와 피쳐링으로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주문했어. 케냐는 중강배전이고 만델링은 강배전이니까 풀바디로 마시는 것을 즐기는 당신에게 딱인듯 싶었거든. - 오, 잘했네. 당신꺼는? - 나는 일단 올만에 케냐 더블A를 시켰고 메인으로는 특별히 예가체프를 시켰어. - 웬일로? - 저번에 상계동 드립커피점 갔을 때 갓 볶은 예가체프를 마신 후 좋았던 기분을 되살리려고. - 그렇구나. - 오늘 아침부로 마지막 남은 원두를 갈았어. 코스타리카 따라쥬였거든. - 나도 오늘 아침이 마지막이었어. - 잘 되었네. 오늘 일찍 끝나면 내가 가져다 줄게. 택배가 내가 끝나기 전에 도착해야 할텐데. - 아이고. 집에 들렸다 노원에 또 오면 귀찮잖아. - 귀찮지 않아. 귀찮지 않다. 어떻게 좋아하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물건을 배달해 주는 데 귀찮을 수가 있는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귀찮다니 설마 상대가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느낀다면 어쩌지? 하고 겁이 났다. 그렇다면 정말 절망일텐데.
- 바빠? - 아, 지금 전화 중이에요. 전화 끝나고 전화 드릴께요. - 오케이. 이번엔 틸이 아니고 세롸니, 내가 그녀가 일하는 시간에 전화를 거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
- 여보세요? - 아, 바빴구나. 미안. - 아, 아니에요. - 네이트 온에 로그인해 있지 않아서 부득이 전화를 했지. - 무신? - 아, 저번에 세롼에게 택배를 하나 보내고 나서붙 그 쇼핑몰 기본주소에 자꾸 세롼이네 회사가 뜨는거야. 조심했는데 이번엔 실수를 했어. - 하하하하. 뭔데요? - 커피야. - 음, 내가 받아놓고 생각좀 해 볼게요. 돌려줄지 말지를. - 아잉, 그러지 말구 좀 잘 받아주라. 틸사마가 기다리고 있다구. - 하하하. 암튼 택배가 도착하면 메시지 날릴게요. - 그래 수고 좀 해주라. 필요하면 내가 나중에 세롼이것도 질러줄게. - 하하하. 됐어요. 귀찮지 않다고 으시대면서 그것에 관련된 포스팅 하나 때릴려고 로그온 하는 순간. 세상에 택배 주소가 엉뚱한 곳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오늘, 내일 세롼이 얼굴 한 번 더 보게 생겼네. 하하하. 이러다 정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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