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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지마닷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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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잠깐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올 한 해를 뒤 돌아 본다.


나,


얼마나 남들과 뒤 쳐져 있는가.
내 뒤에 서 있는 이 아무도 없다.
모두들 나를 지나쳐 앞서간 모양이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젖고 털장갑에 묻은 한숨을 털어 버린다.


- 뭐, 그렇게 한숨 쉴 것 까진 없잖아.



언제나 나를 위로 해 주는 그녀가 조용히 말해준다.
그녀는 조용 조용히 말을 하며 그 말은 무척 또박또박하다.
나는 언제나 조용 조용히 말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는 내가 굉장히 뒤쳐져 있는 것을 알고 일부로 뒤에 까지 물러서
나에게도 말을 걸어준다.
올 해도.
기꺼이 말이다.
그런 그녀가 고맙다.


- 고/마/워.



나는 감정을 고르고 한참 만에야 대답한다.
간단하지만, 그 밖에 어떤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고마울 따름이다.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낸다.
그리고, 말한다.


- 이봐, 바쁘지 않음 나랑 천천히 걸어줄래? 이제 올 해도 다 저물고 어차피 내 뒤엔 아무도 없어. 꼴찌는 익숙하지만, 외로운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가 봐, 나.



그녀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이쪽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친다.
그리고, 여전히 조/용/히 말한다.


- 좋아.



해는 저물었고, 날씨는 겨울답게 적당히 추웠다.
아니, 적당히는 거짓말, 굉장히 춥다.
더구나, 자본주의의 경쟁사회 속에서 뒤쳐져 걷는 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기도 하다.
추울 때 슬프면 체감 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으로 급전직하한다.
나는 머플러를 턱 위까지 두르고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 춥다. 이봐, 넌 춥지 않아?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서서히 발 검음을 옮긴다.
나도 그녀의 스피드에 적당히 보폭을 조절한다.
그녀가 조용히 그러나 진지하게 말한다.


- 춥지만 걷지 않음 안돼. 아무리 꼴지라도 걸음을 멈추어선 안돼.
- 어째서지?
- 걸음을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야.
- 알아. 죽는 게 대순가.
- 그 말을 취소하는 게 좋아.
- 취소.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런 느낌이다.
1999년부터 2004년.그리고, 2005년 나는 매년 꼴찌다.
12월에 접어들어도, 아무리 따라잡겠다고 막판 힘을 다해도
순위는 요지부동이다.
알다시피 항상 꼴지를 밥 먹듯이 하는 인간은 삶에 대한 애착도 일등을 목표로 살아가는
인간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요컨대, 의지박약인 것이다.
모든 것이.
꼴찌들의 삶은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말해준다.


- 꼴찌는 지겨워. 나는 늘 이래. 12월만 반짝이야. 다들 앞서 가는 것을 볼 때는 애써 외면하다가 꼭 마지막 달이 되어서야 힘을 낸다, 역전 할 수 있다 법석을 떨지. 도대체가 우스워. 나는 왜 이런 것일까 굉장히 고민도 해 보았는데, 소용이 없어. 나아지지가 않아. 전혀 성장하지 않지. 스톱이야. 방전이라고. 말로만 에베레스트 정상을 수백 번도 더 정복했고 북극 점을 이백 번도 더 왕복했다고. 하지만, 이제 한계야. 지긋지긋해. 나를 따라다니는 꼴지 증후군을 떼어버리고 싶어. 꼴찌면 어때 1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는 거야. 하는 인간이 제일 싫어. 그런 인간일 수록 자기 등수가 1등만 밀려나도 잠을 못 자고 노력해. 무서워. 어쩌면 나 같은 인간은 그들 틈 바구니에 치여 결국 헤어나지 못하고 말 거야. 꼴찌가 익숙해 질 때도 되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예의 끔찍한 맥도날드의 불고기 버거를 하루에 백 개씩 꾸역 꾸역 먹는 것이 차라리 나아. 꼴찌는 정말 싫다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쳤다.
나는 늘 그렇다.
불평도 오래 하지 못한다.
모든 게 지속성이 없다.
너무나 짧다.
담배도 금방 끊어 버린다.
애인도 금새 사라져 버린다.
칫솔도,
허브 차도,
스타벅의 커피도,
켈빈 클라인의 즈로즈도,
나이키의 빨간 스니커즈 삭스도,
그리고,
발기도,
아주 순간일 뿐이다.


나는 조용히 앞을 쳐다보고 걷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하다.
늘.
말이 적다.
아니 말이 별로 없다.
이렇게 나랑 말을 나누는 것도 1년 중 12월 뿐이다.
그런 그녀가 나는 아쉽다.
매일 이 여인을 보고 이런 저런 내 일상을 이야기 하고 싶다.
투정을 부리고,
화를 내고,
웃다가,
그녀의 무릅을 베고 잠들고 싶다.


- 그것은 곤란해.
- 응?
- 무릎이 별로 좋지 않아.
- 아.
- 알다시피 난 2005살이야.
- 확실히.
- 너도 알다시피 2005년이나 살아보면 여러 가지가 생각 되로 안돼.
- 하지만,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았지?
-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나는 무엇이든지 다 알아. 네 생각 따위는 너무 알아 맞추기 쉬워. 2단의 구구단을 외워 외치는 것보다도 쉽다고.
- 하기사. 너니까.
- 그래. 나니까.



그녀는 무엇이든지 안다.
그렇다.
신기하지만 세상엔 그러한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것이 세상이다.
가령,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내 켈빈 클라인의 팬티의 색을 알아 맞출 수도 있다.


- 알 수 없어.
- 에?
- 네 팬티 색. 그것만큼은 몰라.
- 와, 내 생각을 금새 아는군, 그나저나 어째서 그것은 몰라?
- 입지 않았으니까.
- 에? 거짓말.
- 거짓말.
- 어째서?
- 농담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하하하.
나는 건성이지만 제법 큰 소리로 웃었다.
과연.
2005년은 농담도 할 줄 안다.
신기하지만 세상엔 그러한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것이 세상이다.


- 동네 사람들, 이천 오 년은 농담을 할 줄 안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주변엔 2005년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없다.
나는 늘 혼자다.
일년 중 12월에만 노력한다고 늘 혼자 광분한 모습으로 동분서주한다.
그 사이 사람들은 이미 내 시야를 벗어 난 곳까지 전력질주하고 있다.
나는 단념한다.


- 왜?
- 응?
- 단념하게?
- 응.
- 왜?
-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야.
- 해보지도 않고?
- 해보아도 마찬가지야.
- 어떻게 알아?
- 그냥 알아.
- 그냥 안다고?
- 응



나는 변명거리가 부족하면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 어이, 금주한다면서 아침부터 왠 맥주?
- 그냥.
- 이봐, 월요일부터 운동한다면서 왠 늦잠?
- 그냥.
- 버트군, 정월부터
PC로 영어 공부한다고 하더니 왠 포르노?
- 그냥.
- 앞으로는 코 파는 것을 자제한다면서 검지손가락 끝에 매달린 흰색의 딱지는 대체, 혹시 먹으려고 판 거야?
- 그냥.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줄 곳 "그냥" 이 판치는 놀이터에 불과했는지도 몰라.
아, 그냥이란 녀석을 잘게 썰어서 인가가 없는 깊은 산중에 묻어 버리고 싶다.



- 그것은 좋은 생각.
- 그럴까나.
- 그리고, 나.
- 응?
- 이제 슬슬 앞서 가야 해.
- 에? 너도 역시!
- 그래 나 역시. 마찬가지로 너 하고만 마냥 시간을 보낼 수 없어.
- 하긴.
- 이런 저런 사람들과 모두 악수하고 나 또한 2006년으로 갈아 입어야 해. 새롭게.
- 넌 매년 새로워져서 좋겠다.
- 운명이야.
- 나도 너처럼 매년 새로운 녀석이었으면 좋겠어.
- 너 역시 매년 새로워.
- 거짓말!
- 응. 거짓말.




하하하.
나는 건성이지만 제법 큰 소리로 웃었다.
과연.
2005년은 마지막까지 농담을 한다.
신기하지만 세상엔 이러한 차가운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녀석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것이 세상이다.
그런 그녀가 나를 떠나려고 한다.
매년 같은 시간 즈음에 조우에 늘 빠르게 사라져 가는 그녀이지만,
헤어짐은 그 어떤 순간이라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는 매년 12월 끝 무렵에 몇 분 정도 이 녀석과 대화를 나눈다.
그녀의 이름은 서기다.
홍콩의 화끈한 배우 서기와 동명이인이다.
지식이 넘쳐나는 인간들은 가끔 그녀를 기원 후 또는 A.D. 라고 부른다.
서기가 말한다.


- 이봐, 기운 내라고. 그리고, 힘을 내.
- 그게 다야?
- 응, 유감스럽지만, 내 응원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일정해. 너만을 특별 취급 해줄 수 없어.
- 그래도 좀 친근하게 용기를 북돋워 봐봐.
- 곤란해.
- 왜!
- 편애는 할 일을 늘려.
- 뭐야 그게.
- 너를 특별 취급하면 내가 할 일이 많아져,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해주어야 하거든. 그럼 결국엔 너에게 해주었던 것도 별로 특별한 것이 되지 않지.
- 참 나. 집요한 데가 있어. 넌.
- 알아. 그래서 나를 사람들이 다르게도 불러.
- 어떻게?
- "세월"이라고.
- 젠장.



분하지만, 그녀의 말은 늘 옳다.
그녀가 60억의 인구를 일일이 좀 더 특별히 격려하는 것은 어쩌면 소모적인 것이다.
소모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난 소모적인 인생을 늘 경멸해 왔다.
좋아.
그녀를 보내자.
미련은 없다.
누구든 그러하리라.
내일은 내일의 라면이 끓는다.
내 년 12월에 다시 부탁해보자.
어차피 그녀는 죽지 않으니.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녀가 나를 앞서 나간다.
나는 그녀의 뒤 모습을 응시한다.
어디선가 불어 온 찬 바람에 실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 내년에 봐.
- 응. 너도 건강해.
- 올 해는 좀 더 힘을 내 보렴.
- 어, 반칙이다. 그거.
- 뭐?
- 나만 특별히 격려해줄 수 없다며 올 해는 좀 친근하게 굴잖아.
- 할 수 없잖아. 지난 수년간 묵묵히 늘 꼴찌를 해준 녀석의 부탁인데.
- 하지만, 너. 그거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지껄일 테지?
- 어, 머리 나쁜지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네, 너.
- 나쁜 녀석. 갖고 노는 군.
- 공평은 세월의 존재이유야.
- 췌.
- 세월은 그 누구에게나 일정하게 지급되는 거니까. 그것도 무료로.
- 지겨워, 네 설교.
- 좋아. 듣기 싦음 분발해. 그것 많이 해결책이니까. 알아?
- 알아.
- 그럼, 내년에 또.
- 또!



그녀의 이름은 서기이다.
지식이 넘쳐나는 인간들은 가끔 그녀를 기원 후 또는 A.D. 라고 부른다.
그녀와 나는 12월의 끝 무렵 조우한다.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싫어한다.
그녀는 늘 이 맘 때 나타나서 내가 이루지 못한 연초에 세운 계획의 찌꺼기들을 들추어 낸다.
나는 숨기기 바쁘고 그녀는 그런 나를 늘 조/용/히 힐난한다.
세차게 화를 내면 나는 반항했을 텐데 늘 조용하게 또박또박 나를 몰아세우니 나는 단념하고
그녀의 설교를 들어준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가지고 온 나이를 한 개 입에 털어 넣고
다음 해는 올 해와 절대 다를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나이는 최면약 따위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때론 방안을 뒹굴던 오래된 비타민 한 알이 불치병을 고치기도 한다.
플라시보는 힘없고 오갈 때 없는 꼴찌들에게 희망을 준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늘 속아 넘어가는 한심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다.
나는 분명 올해 지키지 못할 무수한 계획들을 바리바리 싸서 어깨에 메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다.
그러한 인생이래 봐야,
찢어진 보따리 사이로 계획들이 솔솔 빠져나가 결국은 내가 무엇을 챙겼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연초에 다시 많은 계획을 세운다.
어쩌면 2005년 12월 무렵엔 그녀가 내게 조용히 이렇게 말해줄지도 모른다.


- 올 해도 꼴찌네.
- 늘 그렇지 뭐. 하하.
- 어라, 그런데도 여유가 생겼잖아.
- 하하, 그런가?
- 왜 자꾸 웃는 거야. 기분 나쁘게시리.
- 웃는 게 기분 나쁜 거야, 아님 꼴진 데도 실망 안 하는 내가 기분 나쁜 거야.
- 둘 다야.
- 이봐, 서기 양. 아니 세월 아씨.
- 오냐.
- 너는 아직 멀었어. 그러니 내 머리 속에서 나가줘. 나는 아직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어. 그러니, 너를 다시 보려면 12개월이나 지나야 해. 그러니 내 머릿속에서 어서 나가 주련, 응?



그녀는 웃는다.
나도 웃는다.
서기는 결국 내 머릿속에 오래 있지 않는다.
이제 그녀가 떠난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다.
나는 일단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몇 퍼센트를 지킬 수 있든,
나는 그런 것을 이제 초월한다.
아니,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녀를 매년 보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나는 머리가 나쁘지만 자주 접하는 것은 결국은 외울 줄도 아는 인간이다.
나는 매년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몇 퍼센트나 지켜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결국은 보잘것없는 성과일 테지.
하지만, 나는 나만의 삶의 노하우가 있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짐한다.
다짐한다.
다짐한다.


* * *


시간이 나면 2008년에 만난 서기양과의 녹취록도 올려볼 요량.
그녀는 늘 똑같아.
그게 셈나.






(요즘은 집에서 먹는) 전광수커피점에서

2008.12.29 19:20 | 밥집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101 주소복사



바쁘지도 않은 데 요즘 이곳에 자주 못간다. 아쉽다. 아마도 전광수표 로스팅 원두가 틸사마가 단골인 인터넷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이유도 한 몫 하리라. 그나저나 인터넷 서점도 상술이 필요한 시대다. 일주일에 두 권씩 읽어대는 틸사마같은 독서광들이 대개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식중에 상식. 책 몇 권 주문하면서 떨어진 커피 원두를 주문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인지상정.

2009년이 밝으면 어쨌든 남산에 함 다녀와야겠다.




폭력의 상스러움: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2008.12.29 19:19 |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100 주소복사

폭력과 상스러움 - 10점
진중권 지음/푸른숲

사회비판을 하려면 사회공부를 해야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비평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허나 안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 구성원으로 세상을 산다. 그리고 틈만나면 자기가 속한 세상에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것에는 이른 바 체계라는게 없다. 자기가 처한 사회와 그 시스템에 대한 분노는 늘 상투적이고 동어반복적이며 지리멸렬한 수준인 셈이다.

진중권이 까발리는 이 세상의 부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읽어줄 만 하다. 무슨 의미? 그의 체제비판적 서술은 비범하고 분석적이며 동시에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거침이 없다. 타협이 없다. 까대는 것은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짐승들이 뒤집어 쓴 탈을 까발리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짐승같은 짓거리라고 평가절하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픈 말은 오프 더 레코드로 남겨두는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다. 사장의 뒷담화를 사장 앞에서 깔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을 만한 또는 투정을 부려도 될 만한 사람들 앞에서만 체제비판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스트레스는 쉬 가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지식인이 쓴 책을 사고 동시에 그가 굶어죽지 않도록 지원한다. 아가리는 달라도 하고픈 말은 같다는 점에 안심한다. 그리고 그가 토론회에 나가서 지껄일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것이 그나마 더러운 세상을 밟고 살아가는 나같은 도시빈민의 울분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늘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진중권같은 아는 거 많은 아저씨도 이 사회에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잘 나가는 여자 논객들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균형된 시각을 갖추고 싶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시선을 결국 원-아이드 잭의 캡틴 후크수준을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여자들의 시선까지 장착한 전천후 만능 깡통 로봇이 되고 싶다. 그 눈으로 이 비열한 세상을 바라보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어쩌면 내 궁극적인 목표일수도 있겠고.






노원 불고기 시스터즈(?)에서

2008.12.29 19:17 | 밥집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099 주소복사

믿거나 말거나 노원에 가면 불고기 시스터즈(?)가 있다. 롯데백화점 건너편 생폴드방스 옆 건물 지하였던것 같은데 지금은 아쉽게도 사라졌다.





시립미술관갔다가 명동들렸다가 다시 노원으로 귀환하자마자 이른 저녁을 먹자고 우겼다. 내가. 아파트 우편함으로 날라온 브로셔에 꽂힌 내가 불고기 브라더스에 버금가는 새로운 불고기숍이 노원에 생겼다고 틸사마를 꼬셨다.






다 익은 모습. 1인에 6500원에 무제한이었던 집이었다. 당연히 불고기 브라더스의 럭셔리함과는 거리가 먼 집. 그러나 불고기가 다 거기서 거기 결국은 양념맛 아니겠느냐고 시니컬하게 지껄이는 아임낫불고기팬들에게는 매력적인 가격아닌가 싶다. 불고기는 꼭 무슨무슨'관'으로 끝나는 오래된 가게에서 잡숴줘야 한다는 아임퍼킹블고기러버들에게는 이 집의 생성 자체가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즐거운 집이었다. 이른 바 네티즌들이 선호하는 용어인 가격대비짱! 인 집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시 내가 불고기에 꽂혀 있었던 시기라 (어떤 시기에 어떤 음식을 집중적으로 섭렵하는 습관 같은 게 존재한다. 나에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노원 방문시 잘 살펴보았는데 가게 간판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가게 이름을 잊기로 한다. 우연히 지나가다 내 블로그를 볼 가게 사장이 슬퍼할지도 모를 일이잖은가.





불고기 빼밀리들에게는 단골까지 고려해 봄직한!




가을이 가기전 홍릉수목원에서의 데이트

2008.12.27 13:11 | 여행 | 버트

http://kr.blog.yahoo.com/dazizima/1097 주소복사



이사 온 이곳 청량리는 내게 낮설지만은 않은 곳이다. 중학교때 담임이자 사회선생이었던 총각선생이 청량리 미주아파트를 살면서 나는 이곳이 본격적으로 익숙해졌다. 굉장히 학생 친화적이었던 울 담탱은 환경미화가 끝난 아이들을 동네로 불러 자장면을 사주곤 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집은 올백을 맞아도 눈하나 깜빡안하고 자장면은 커녕 짜파게티도 끓여주지 않았던 냉랭한 분위기여서 선생의 그런 학생 친화적인 행동이 얼마나 가슴에 내 심금을 울렸는지 모른다. 확실히 그때 당시 인간들중 없이 살지 않은 인간들은 여유가 있었다. 지금 없이 살지 않은 인간들과는 전혀 달랐다고 할까.

암튼, 내가 사는 곳에서 중앙선 기찻길만 건너주면 추억의 미주 아파트가 있고, 미주 아파트를 오른쪽으로 스피며 3블럭만 직진하면 홍릉이 있다. 그곳엔 수목원이 있고 수목원엔 오래된 나무들이 가득한 제법 그럴싸한 숲이 조림되어 있다. 틸과 나는 올 가을 별다른 낙엽밟기를 하지 못했기에 가까운 수목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곳엔 가을이 절정이었다. 우리는 지나초이가 선물한 제이크루의 도리구찌와 머플러를 두르고 가을을 누볐다. 이름모를 새와 이름모를 열매도 보았다. 샛노란 은행잎과 낙엽으로 푹신한 잔디에도 누워보았다.

그렇게 슬슬 짐을 싸고 있는 가을과 아쉬운 만남을 가졌다. 가을이 가도 숲은 남는다. 우리는 가을과 작별했지만 숲과는 첫 만남이었을 뿐이다. 조만간에 다시 들리기로 약속하고 경희대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라이프 고스 온. 삶이 계속되는 한 산책역시 멈추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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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