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 포인트다.
다이어트 90일 대작전을 시작한 후,
정확히 반이 지났다.
나는 알다시피 다이어트에 문외한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행사가 내 인생에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반을 달려오면서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처음 다이어트를 결심했들때
기다렸다는듯이 떠들어대는 다욧뜨 선배들의 온갖 종류의
무수한 실패담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어쨌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보고 시작했다.
실패하면 쪽팔리더라도
다들 격려해주리라 믿었다.
확실히,
인간이란 자신보다 못하거나 자신과 같이 실패한 부류에 동정을 보낸다.
오히려, 성공하거나 성공을 목전에 둔 상대에게는
너그럽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런 인간의 못난 습성에 기댔다.
실패하면 앞선 실패자들이 나를 격려하며
그게 쉬웠으면 지나가던 똥강아지도 성공 했을 거라고 위로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속보이는 위로를 든든히 담보삼아
천천히 혼자만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45일이 지났다.
아침에 웃통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섰다.
체중계의 창에 정확히 79.0kg 란 숫자가 아로새겨졌다.
45일 전에는 90.3을 토해내던 싸구려 저울이
나를 어지럽힌다.
너 아님 내가 거짓말쟁이겠군. 그나저나
가만있자,
11쩜3킬로가 준 셈이네.
나는 혀를 찼다.
이렇게 쉽게 빠져나갈거면서 녀석들은 왜 그리 내 몸에 애착을 가졌을까.
내가 비계라면 좀 더 내 몸에 애착을 가졌어야 옳았다.
못난 놈들!
그렇다,
체지방이라는 녀석들은 그런 존재일뿐이다.
나를 사랑해, 내가 없으면 못살듯 내 몸뚱아리에 찰싹 달라 붙어서
나의 무릎과 허리등 모든 종류의 관절과 연골에 무리를 주던 살가운 녀석들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내 건강을 담보삼아 온갖 행패를 부리던 동네 깡패녀석들이
겨우 달포 조금 넘게 절식을 했다고
무려 11킬로가 넘는 육중한 체지방을 박스에 담아
짧은 메모 한 장 남겨두지 않고
눈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흥!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라는 뻔한 관용구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
이렇듯, 체지방이란 놈들은 의리가 없는 녀석들이다.
나쁜녀석들!
이제 막 분기점을 돈 내 첫번째 다이어트는 이렇듯
진한 배신감으로 점철되어 온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머지 45일동안
목표했던 74킬로그램에 도전할 수 밖에 없다고.
그러기위해 이제 남은 5킬로그램의 체지방도 순순히
보내줘야 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개방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놈들은 원래 치사하다. 는 점을 깨달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요나라, 5킬로!
안녕, 체지방!
점심에 데미타스에서 네꼬맘마를 잡숫 틸의 커피점 초이스는 결국 드롭! 각도를 달리찍으니 다른 가게같다!
다음주 화요일 다이어트를 앞둔 마지막 데이트였기에 아낌없이 쇼콜라케이크를 주문한 나! 히히히!
이날따라 쇼트케이크와 마시는 커피가 왜이리 맛이 있었던지! 흑!
아까 아침에 전화로 틸이 묻더라.
당신 정말 다이어트 하고나서 케이크 한 조각 먹은 적 없어?
이 사진이 증거야요!
이게 아마도 올 해 마지막 케이크일듯! 흑!
지금으로부터 무려 46일전 사진이니까!
사실 특별히 케이크를 경원시하는 게 아니다.
밀가루 자체를 미워하는 중이다.
밀가루를 미워하기로 한 이유를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말하기 곤란한게
속이 차 장이 나빠진 나에 대한 주치의의 처방이기도 했기에!
착실히 지켰던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사이 하루 한 번 화장실 가는 일이
다른 때보다 더욱 즐겁다!
히히히.
-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고객님. 엘쥐파워컴 고객분 맞으시지요?
- 아, 네.
- 지금 괜찮으세요, 고객님?
- 아, 뭐.
- 아, 네, 고객님. 다름이 아니라요. 이번엔 기존 엘쥐파워콤을 이용하고 계시는 기존 고객분에게 보답하고자 기존의 케이블티비보다 훨씬 고선명 고화질의 HD방송을 첫 달 무료 시험써비스로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번 기회를 이용하셔서 하이데이피니션 디지털 방송을 구매하시면, 기존에 납부하시던 기존의 인터넷 요금도 총 1년간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기존보다 훨씬 저렴하게 모실수 있어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고객님.
처음엔 귀찮았다.
무엇보다도 기존旣存이란 단어를 너무 많이 남발하는 상대에 호감이 쉬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내 솔깃해졌다.
특히 인터넷 10퍼센트 할인이 매력적이었다.
솔직히,
이번기회에 HD로 바꾸는 게 2012년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전 공중파 디지털화 강제써비스에도 맞설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비록 남자 텔러 마케터지만
살기 위해 이렇게 밝은 목소리로 열심히 설명을 하지 않았던가.
나는 몇 초간 주저하다 신중히 대답을 골라 천천히 말했다.
- 저.
- 네, 고객님.
-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우리집엔 티비가 없어서 디지털 수신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듯 합니다.
- 앗, 티비가 없으세요?
- 네. 불행하게도.
- 아, 네.
- 그러니 다음 기.
뚜뚜뚜뚜...
밉소사!
여태쩟 많은 수의 텔레마케터들이 다양한 상품을 팔기위해 내게 접근했지만
그들이 올려 불러 마지 않는 고객님이시자 마케팅 대상인 나보다 전화를 먼저
끊는 것은 이 남자가 최초다!
고객님이 티비가 없으면 바로 시간낭비가 되고 마는 현실을
부끄러워야 하는 것인지,
아님 다행으로 삼아야 하는지
순간 쉽게 가늠하기가 어려웠음은 물론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푸짐한 밥상을 받고
어머님이 연신 권하는 음식들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경부고속도로 신갈 인터체인지를 질주하는 두살베기 꼬마아이같다.
몹시 아찔하달까.
이번이 한가위 방문에 이은 두번째다.
더구나 한가위는 지난지 오래인데도 상다리는 여전히 휘어진다.
요리를 가득채운 밥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마음이 먼저 차있기 때문일까.
정말 그곳의 밥상은 늘 푸짐하다.
평소
메뚜기, 볕잎 갉아먹듯 40여일을 배곯며 보낸 나에게
푸짐한 음식과
역시나 푸짐한 어머님의 음식 권하는 소리는
그 고소한 냄새와
그 흉막강을 가득 체우는 인정 가득한 소리만으로도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벌써 배가 차 오른다.
틸사마가 주말에 과식했다고 주중엔 더욱 열심히 다이어트하자고 호들갑을 떨어도
나는 사실 지난 주말이 꿈만 같을 뿐이다.
그깟 몇푼어치의 칼로리가 내 부박한 삶에 얼마나 중요할수 있겠는가.
그저 얼어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플라스틱 봉투로 길게 재단해
줄기에 둘둘마는 아버님의 정다운 손길처럼.
조금식 곱아가는 그 매마른 손가락 마디마디가 스쳐지나간 자리마다
또 새로운 봄의 정령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그 순간들이
내겐 둘도 없이 소중하다.
밤새,
서울과는 사뭇 다른 사나운 웃바람에 놀라 자꾸만 잠이 깨어도
이 낯선 곳에 등을 붙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행복하더라,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거대한 입김 사이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는 털복숭이 강아지의 아침인사가
내게는 눈물이나도록 고마운 풍경이었다.
당신은 피곤하지 않아?
하고 우리집에 들려서 쪽짬을 자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피곤하지 않아.
피곤이란 녀석이 손 쓸틈 없어 얄미워진 내가 오히려 녀석들의 피곤함 그 자체야.
왜 아니겠어?
올해는 크리스마스가 연휴다,
나는 아마도 올 크리스마스는 그곳에서 푸짐한 인정에 휩싸여 지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
미혹되지 아니한 나이에 접어들즈음에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가,
나는 요즘 사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그런 나를
그곳에 이끌어준 모든 이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