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온 랭면. 가위질 후라 약간 볼 품이 없다. (가로사진은 클릭해서 보면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을 터다) 예전 랭면은 동치미따위에 말아먹는 게 쉬웠다. 육수를 끓여내기 어려운 살림살이였기에 그렇다. 랭면을 밥 대신 먹던 때라 단백질이 부족할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삶은 달걀을 올려 놓기 시작한 것. 지금은 육수를 턱턱 끓여내 놓는 게 당연시 되는 세상이라 구태여 달걀을 올려 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백질 보충제 역할을 했던 달걀은 어느 새 전통으로 남아 끝끝내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방문한 명동 함흥랭면집은 그나마 전통으로 맥을 잇고 있는 달걀을 1/4토막을 내서 제공하더라. 기막힌 일. 차라리 올리지를 말아라. 얍삭한 주인들아!) 어쨌든 달걀은 연장질 처음에 해치우는 게 바람직하다. 달걀 노른자가 육수에 노출되면 될수록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이 집 랭면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이유는 찬 성질을 가진 면발에 뜨거운 성질의 고춧가루를 투하해 미지근한 레벨로 산뜻하게 감각을 맞줘보자는 의도라고 줏어 들은 바 있다. 어쨌거나 툭툭 끊어지는 굵은 메밀면발하며 그윽한 풍미를 더해주는 특유의 정육향까지 참으로 근사한 한 끼 식사가 아닐까 싶다!
주말이라 어정쩡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 들어차 있었다. 나이가 산쥬쓰기(30대)하고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이 오묘한 랭면 육수에 세계로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심플하면서도 담백한 육수.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맛. 혹자는 이 맛을 극도로 정제된 담백함이라고 하더이다. 나는 그말에 120% 동의한다. 그 절제된 담백함을 알게 된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기쁨인 동시에 약간의 슬픔이기도 한 것이 괴롭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