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결혼식이라는 곳에서 사회를 본 것이 총 2번이다. 스스로가 비혼주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비웃듯이 세레모니의 사회를 봐달라는 청탁이 꽤 있었다. 고사를 하기엔 결혼에 목숨건 젊은 청춘들의 눈망울이에 몹시도 애달았다. 까칠한 인간이지만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승복해 결국은 두 건의 인륜지대사를 진행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 오늘 점심 같이하자. - 머? 농담이지? 나 서울 아냐. 알잖아? - 알아, 임마. 내가 그리로 간다고. - 서울에서 족히 2시간은 밟아야 오는 거린데. - 강원도라 해봐야 엎어지면 코 닿는 땅덩어리에서 얼마나 떨어졌다고 엄살이야. - 출장이야? - 뭐, 그런셈. - 비워둘게. - 도착하면 전화하마.
사회만 봐주었을 뿐이지 신접살림에 두부 한 모 보태지 못한게 아쉬웠던 터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자신의 2세를 보고 가라는 녀석을 앞세웠다.
- 불문곡직하고 근처의 수퍼를 알려다오. - 가까운 곳에 있긴 한데 왜? - 왜는 니미 일본의 옛이름을 왜 들먹여. 불문곡직의 의미부정이냐? 까불지말고 어서 불어. - 그냥 가도 된다니까. - 아 그 새끼 계속 말 섞네. 니가 그러면 아 그러세요. 그럼 집으로 갈까요? 하고 내가 물러설까봐? 어서 위치를 대. 잔말 말구. - 조 앞에서 언덕 지나자마자 오른쪽 건물. 그 앞 주차장에 차를 대면 되겠다. - 진즉 그럴것이지. 말 늘어지게시리.
농협이 운영하는 무슨 마트였다. 오후 한가한 시간이라 장바구니 든 여성들의 수가 드믄드믄 보였다.
24롤이 박혀있는 비닐박스를 들어 녀석에게 건네고나니 이것으론 뭔가 허전하다. 명색이 첫 방문 아닌가. 비단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 나를 초대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림집 방문은 분명하니 하나론 어쩐지 성이 차지 않았다.
- 와이프 포도 좋아하나? - 포도? - 여기 무슨 행사하나봐. 주욱 늘어 놓고 팔고 있네. - 됐어. - 돼긴 씹새. 이 것도 하나 더 사자.
계산대.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캐셔가 합산된 금액을 부른다. 나는 카드로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을 열고 별로 반갑지 않은 내 인생의 원수인 단골카드를 내민다. 그러자 캐셔가 기계적으로 반문한다.
- 적립카드는요?
에? 순간 당황한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고민 한다. 강원도에 있는 친구 집에 왔는데 적립카드를 꺼내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분명하리라. 너무 쫀쫀해 보일까 두렵기도 했고. 그냥 호기있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하고 오무린 입을 여는 순간.
- 4536요.
앗. 뒤를 돌아보니 뭘 이런걸 다 사려고 하는 미안함에 쩌든 10분 전의 친구는 온데간데 없고 새침한 표정에 계면쩍게 고개를 4도쯤 왼편으로 젖히고 있는 결혼한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마도 핸드폰 번호의 뒷번호만 대면 카드없이도 적입이 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마트였나 보다.
나는 주차장으로 걸어와 트렁크를 열고 거대한 휴지박스를 실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데 피워 물었다. 포도박스를 들고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거침없이 뿜어 낸 친구는 아직이다. 느려터진 놈. 물이라도 버리러 간 모양인게지.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역시 결혼하는 인간들이라는 게 실감난다. 결혼을 진행해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나같은 변두리적 인간따위는 그들의 현실감 있는 미래적 행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멀리 마트 앞 정문에 녀석이 나타났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밟아 껐다. 이제 녀석을 태우고 녀석의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녀석의 집 같은 곳 따위에는 결단코 가고 싶지 않다. 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대체 나는 서울에서 100킬로가 넘게 떨어진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도 사회적으로 사회적인 범주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중임을 되뇌인다. 미소를 짓는다. 녀석이 차 앞으로 다가오고나니 포도박스 이 외에 손에 플라스틱 바가지 비슷한 무엇인가가 들려져 있는 게 보였다.
- 일정액을 구매한 손님들에게 이것을 나눠준다길래 받아가지고 오느라고.
녀석은 내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주섬주섬 답을 늘어 놓고 있었다. 늦여름의 시골 하늘은 다른 때 보다 더 없이 높아만 보였다.
결혼은 때로 추레하고 남루하고 구차스런 얼굴을 지니고 있죠... 뭐.. 비혼주의? 그거에 일조하셨군요, 친구분이.
사실 말이죠, 연애를 결혼으로 잇는 순서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저도 좀 회의가 들어요. 연애는 애인하고 노는 거고 결혼은 가족하고 노는 거라... 애인을 가족으로 만들고 나면, 더이상 애인이 없게 되어버리잖아요. 섭섭하지.
헌데 연애가 깊어지면 '늘 함께' 이고 싶은 거역할 수 없는 정점에 다다르게 되니, 이거 참!
음... 쓸데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