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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 가기로 했던 것은 수 개월 전이다. 표도 한 달 전에 예매해 두었다.
여행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호들갑을 떨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가야할 날이 다가오면 가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얄궂게도 말이다,
정선기행.
정선은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다.
강원도니까 뭐.
설명이 불필요하다.
나는 그저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다.
아마도 기원은 영화 '봄날은 간다' 였을 터.
전날 가벼운 마음으로 다소 비싼 병맥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짐을 챙기고 잤다.
청량리에서 특별열차를 잡아 탔다.
아마도 서울역에서 출발했나보다.
내가 찬 차량은 노인분들이 많았다.
그들의 끊임없는 수다를 시부야 케이로 차단하면서
무려 네시간넘게 철길을 달렸다.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당도한 정선역.
조금 걷다보니 예의 시골장이 나온다.
5일장이다보니 에브리 2일 7일에만 열린단다.
12일, 17일 등등 말이다.
시골장은 서울장보다 풍성했다.
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평범했다.
솔직히 집에서 걸어 20분이면 족히 도착하는 경동시장보다 규모가 작았다.
그러나 신선한 면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곳엔 그들 나름의 삶이 뿌리 박혀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조심조심 캐어보는 매력이 있었다.
시장은 정처없이 두 바퀴가량 도니 시장기가 더욱 심해졌다.
어차피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주변에 먹을 거리를 내다 파는 집이 즐비했는데,
그중에 내가 고른 집은 신봉예 부치개 아주머니집이었다.
아무래도 도시형인간이라 거짓 친절이 없어 약간 서먹했지만
그것이 꾸밈없는 모습임을 알았을 때 마음이 편해졌다.
특히, 대규모 가족단위가 두 마리의 개를 안고 착석 하려하자
음식 파는 곳에 웬 개냐고 쫒아낸 장면에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꼴에 개새끼도 식구이기에 모시고 나왔겠지만
적어도 인간 냄새 맡으러 멀리 시골 시장까지 온 인간에게는
똥매너의 전형이었기에 수줍은 시골 아주머니의 단호한 거절은
기립박수 바로 그 자체였다! 브라보!
생무로 오래된 팬에 기름칠을 하는 장면은 최고였다.
이것저것 하나씩 담아보니 3-4천원쯤 나왔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올챙이 국수와 콧등치기 국수가 명물이라면서요?
예전같지 않아 장사속이라 다 뗘다 팔거든.
아하. 그럼 예전보다 확실히 맛이 떨어지겠군요.
그래요.
솔직한 현지인의 고백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이 집에 철퍼덕 앉은 게 다행이지 뭔가.
아우라지 옥수수 막걸리는 기본!
반 병만 마시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안판다기에 과감히 1병을 주문했다.
(나중에 집에갈 때 들려서 마시고 간다고 하고 아쉽게 나왔지만
열차시간에 쫒겨 결국 들리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아주머님!)
메밀전병, 메밀전, 수수부꾸미 (나는 예전에 이걸 수수팥단지로 불렀다!) 녹두전 전부 맛있었다.
틸사마가 옆에 없는 게 못내 아쉬운 순간이기도 했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젠 뭘 할까. 생각하다가 영화 봄날은 간다 때문에 유명해진 버스 터미널이 생각났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온데 걸었다.
걷다보니 이렇게 잘 자란 해바라기도 보게 되어서 좋았고!
터미널에 들렸다.
막상 안에 들어가니 영화의 감흥은 온데간데 없고 떡하니 시골적 시간만이 대합실 가득이더라.
단념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애매했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미리 알아둔 동굴이름이 보였다.
아저씨, 이거 타고 동굴구경하고 돌아오면 다섯시 사십분 차 탈 수 있을까요?
탈 수 있다.
탈 수 없다.
기사와 배차요원이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탈 수 있다고 주장한 배차요원 승리.
버스에 오른 나.
요금 이천몇백몇십원.
출발.
화암동굴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혼자 이곳을 구경온 사람은 관광객중 내가 유일했다.
입구가 산중턱이라 걸어올라가도 되지만
이렇게 모노레일 카를 이용해도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낑낑거리고 혼자 걸어올라가리
당연히 모노레일카를 포함한 티켓을 끊었다.
화암동굴은 자연종유동굴과 금을 채취하던 탄광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름 시원했다만 이때부터 기차시간을 맞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입장한 그 순간부타 동굴을 나가는 그 순간만을 연상했을정도.
촉박함이 여행의 질을 떨어뜨리누나.
뎀.
다소 침착하지 못하게 동굴구경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더니 버스 시간은 아직도 멀었지 뭔가.
동굴 길이와 예상 시간을 너무 넉넉하게 예상한 결과다.
그래도 기다림은 즐겁다.
이 낯선 곳에서 단 1명의 서울 사람이 낯선 고장의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런 장면은 아무나 연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서 여행을 떠 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운치다.
사람들은 그러한 운치를 외려 외로움이라고 잘라 말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 외로움을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기 위해 일부러 길을 떠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참 여러모로 얄궂은 녀석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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