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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굶는 날. 하루종일 금식 했다. 다행히 전 날 친구와 동네 고깃집에서 의기투합해 거나하게 먹어준 게 약빨 받았다. 3개월의 다이어트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사실 음주다. 20살에 음주를 시작한 후 여지껏 단 한 주도 쉬지 않고 드링킹을 했던 나에게 무려 석 달간의 금주는 지옥으로 다가올 터다. 다행히 주치의가 커피는 블랙이라면 마셔도 된다고 했다. 기호식품의 전환은 결국 대구에서 나를 보기위해 상경하려 했던 듀공의 문자를 거절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솔직히 어려운 걸음 하는 녀석을 악수만 교환하고 물리치자니 영 못할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성공적인 다이어트후 만남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나눌수밖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금식을 해 본듯 하다. 아마도. 첫 금식의 느낌은 신선했다. 세상의 모든 음식들이 예뻐 보였달까.
다행히(?) 일이 늦게 끝났다. 집에 오니 열시다. 대충 씻고 잠이 들면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겠지 싶었다. 그리고 정말 잠이왔다. 배고프면 잠이 안온다더니 전날 잠이 부족했던 탓인지 쉽게 잠이왔다.
아침에 일어나 잠옷을 입은 채로 몸무게를 재니 89.3kg였다. 다이어트 시작 몸무게가 90.4였으니 1.1kg가 줄었다. 하기사 하루 금식하면 누구나 이정도는 빠질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제 장을 봐온 동원 야채죽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제 퇴근 때 시장에 들려 당근과 감자 그리고 야채죽을 사왔다. 나는 채소라는 단어를 즐기지만 라벨에 야채죽이라고 써 있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야채죽이라고 불러준다. 포장을 풀고 레인지에 데워 야채죽을 먹었다. 맛있다. 인스턴트 죽이 이처럼 맛있었을 때가 있었을까 싶다. 하하하. 어머니가 틸편으로 보내신 시골달걀 4개와 감자를 오븐에 구웠다. 이것은 나흘치 저녁거리다. 달걀을 구우려고 은박지에 싸다가 그만 한 개를 떨궜다. 어떻하냐는 질책대신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어쩔 수 없잖아. 버릴 수도 없고. 후라이를 했다. 써니 사이드업이 준비되었다. 후루룩 먹고 있자니 틸에게 전화가 왔다. 출근하다가 두고 온 게 생각 나 다시 집에 간다고 투덜댄다. 엄청 무섭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전광수에서 주문한 엘 살바도르다. 맛있다. 구운 감자와 구운 달걀 그리고 간식으로 먹을 홍당무를 담아 가방에 넣었다. 주치의가 처방한 약은 금식 다음날부터 복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 날만 반포씩 그 다음에는 한 포씩 먹어야 한단다. 오늘은 그러니까 반포의 날이다. 그러니 한 포만 챙겨도 충분하리라.
드레스셔츠로 갈아입기 전에 몸무게가 궁금해졌다. 이번엔 빤스만 입고 재보았다. 화장실도 다녀온 터지만 아침을 먹었으니 도로 쪘겠지 하고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오히려 몸무게가 내려갔다. 아마도 화장실 후라는 점과 잠옷을 벗은 탓이리라. 그래도 오늘의 몸무게는 이걸로 하자.
88.9kg다. 일단 1.5kg가 줄었다. 하루 만에. 좋은 출발이다. 아마도 여러분들의 응원덕분이 아닌가 싶다.
다이어트 시작 이틀 만의 호들갑치곤 나쁘지 않다. 어쨌든 시작이 반이 아니었던가. 나는 40분전에 한약 반포를 먹었다. 이제 점심으로 한식을 사 먹을 거다. 정확히 절반만 먹어야 한다고. 예를 들어,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밥 반공기, 반찬 반 접시 찌개 반 냄비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덩치가 산만한 아저씨가 식당에 들어가 호기롭게 음식을 시키고 반 만 먹고 나오는 걸 상상해보라, 얼마나 재수없을까.
그래도 할 수 없다. 결심은 결심이니까. 빌어먹을.
그나저나 날씨는 우라지게 좋다. 요새. 가을은 가을인가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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