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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graphed by TEAL 하기사 찾아간 내가 잘못인지도 몰랐다. 그곳에 그녀가 있을리가 없다고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엔 '그녀'가 있었다. 놀랍게도 말이다.
- 어쩐일이야? - 반가운데. - 그러게 반갑다, 정말. - 잘 지냈어? - 잘 지냈어?
우리는 잘 지냈냐는 질문을 거의 동시에 내 뱉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자신이 있는 말투가 내 자신 없는 어투 위를 덮었다는 게 옳다. 때문에, 타인이 우리 대화를 들었다면 아마도 그녀가 내 뱉는 잘 지냈어만 들렸을지도 몰랐다.
- 잘, 지냈지.
잘 지낸다는 게 무엇일까. 어떻게 시간을 다뤄야만 우리는 상대에게 잘 지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나는 아직 이렇게 쉬운 문제하나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았다. 섭섭하지만 그게 나였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집에 전화하면 맛있는 커피를 내려줄지도 모르겠다. 고 생각했다. 오늘은 가게를 쉬는 날이라, 그가 나만을 위해 내리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로 서 있었다. 주머니 안에 든 폴더폰을 이리저리 돌렸다.
- 정말 오랜만이네. - 그렇지?
가을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당겼다. 그가 사다준 나잇타임 로션을 꼬박꼬박 챙기지 않으면 얼굴에 하얗게 각질이 일었다. 학생때부터 쓰던 브랜드였다. 고급은 아니었지만 소프트한 촉감 때문에 벌써 수십년재 화장대 위를 지켰다. 그러고보니 커피를 잘 내리는 그가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 아기 로션이잖아. - 민감성이라. - 웃기시네. - 정말이야. - 남성 로션도 요즘은 논알콜 제품이 많아. - 한 번 벗겨지고 나니 겁이나더라구. - 사내가 그깟 것에 겁을 내? 맙소사.
낙엽이 바닥을 뒹굴어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말이다. 그런 가을이었다. 울창한 졸참나무 앞에서 45도 각도로 서서 경직된 미소를 흘리는 세대에 근접한 나이였다. 파이프 담배를 물고 양팔꿈치가 세무로 기워진 갈색 코듀로이 자켓을 꺼내 입어도 어울릴 나이였다. 수염은 기르지 않았지만, 길렀다 하더라도 그 끝이 십수년전의 머리 색깔과는 거리가 있었을법한 나이였다. 귀밑을 파고드는 구렛나루 끝도 이미 허옇게 성글고 있었으니까.
- 어떻게 알았어. - 어떻게든 알 수 있었어. - 어떻게? - 어떻게든. - 하지만 쉽지 않았겠지. - 딱 20년이 소요되었지. - 20년이라. - 20년. - 그 20년동안 우리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일었났던 거지?
나는 나만큼 나이를 먹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었다. 20년이 지났다. 우리에게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딱히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다. 그녀는 내 생활 반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왜 내 곁에서 무작정 멀어진 삶을 살아가려고 하지 않고 있을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이보다 어렸다 해도 마찬가지였을거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 뱉은 단어들을 음미했다. 그녀는 우리들.이라는 2인칭 복수를 사용했다. 우리들이라. 그렇다. 그녀와 난 우리들에 묶여 있었다. 그녀가 우리가 되고 내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우리가 되었던 시기였다. A.I.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는 썰렁한 동네 닭집에 마주않았다. 그리고, 더운 날 밖에 꺼내놓아도 상하지 않을 항생제 뚬뿍 머금은 사료닭을 뜯었다. 무수히 많은 잔이 오고갔었다.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러갔었다.
- 과거형으로 말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 하지만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었어. - 어째서일까? - 늘 문법에 약했기 때문이야. - 무슨 말이야? - 어렸을 때 부터 문법에 약했잖아. 나. 그랬었드랬었드랬어. 따위의 문장이 우스개로 통용되던 시기이기도했거든, - 하아, 그랬었나? - 그랬었지. - 하긴 당신은 내가 아는 다른 어느 누구와도 달랐어. - 응?
옷깃을 여밀 필요까지는 없는 날씨였다. 하지만 나는 필요없는 행동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나는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계속 그녀에게 말을 시켰다.
- 그거 알아, 당신은 '틀렸다'와 다르다'를 구별해서 쓰는 내 주위에 유일한 여자였어, - 하? 그게 뭐야? - 왜 있잖아. 지금은 자연스럽게 쓰지만 당시만해도 논란이었거든. - 논란이라니 무슨, 그 때도 50명에 1명정만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별했을걸. - 그랬을거야. - 나 역시 그랬어. 당신이 그 둘을 정확히 구별해서 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시간을 잡아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잠깐 잡아주는 대신 나중에 그들이 필요한 시간에 내가 그들것을 잡아주면 좋잖아. 하고 생각했다. 초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남은 결국 이별의 시작점이었다. 갑자기 만났고 갑자기 대화를 나눴다. 이제 갑자기 인사를 나누고나서 갑자기 헤어져야 했다. 그게 갑작스런 만남의 운명이기도 했다.
- 잘 지내지? - 잘 지내지?
우리는, 그러니까 그녀가 아직 나를 우리는 이라는 테두리에 가둘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웠지만, 또 한 번 동시에 같은 문장을 내 뱉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 곁을 지켜보던 사람이 순간을 기록했었다면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라고 쉽게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리라. 긴장이 풀렸다. 접골환자의 뼈들이 순간적으로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개운해졌다. 그러자 불협화음이 사라졌다. 동시에 각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채워졌다. 동시에 내 뱉는 단어는 마치 시계테엽의 톱니처럼 맞물려 전혀 다른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이 한 때 그녀와 날, 우리라고 타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아주 잠시, 순간적으로 그것을 느꼈다. 그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해는지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난 순간을 느꼈다. 우리는 왜 서로의 안부를 되풀이해서 물어봐야만 했을까.
- 춥다. 들어가, 그럼. - 만나서 반가웠어. - 나두. - 아. - 응? - 다음엔 커피라도 한 잔 나누자고. - 그래, 그러자.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찰라였기에 미소로밖에 그 표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고속촬영으로 방금의 그녀를 담아놓았다면 진실을 알 수 있을텐데. 하지만, 그녀의 발 걸음은 이내 사람들의 그것들에 묻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속에 넣어 두었던 오른손으로 계속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내 이러한 모습을 알아챘을까. 알 수 없다. 너무 짧았다. 만남이. 그녀와 나. 한 때 우리라고 묶여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 때 젊었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나는 지금도 그 용기란 녀석에게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들 그 용기라는 녀석에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늘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메워 나갔다. 지금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단념했다. 전화기를 꺼냈다. 체온으로 따듯해진 전화기에서 그녀를 찾았다. 이제 그녀와 내가 다시 우리로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아마도 무리일테지. 하고 나는 잠시 혀를 찼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전화 리스트가 줄었다.
시월은 늘 그렇듯이 다이어트 시즌이다. 휴대전화기도 예외는 아니다. 내 추억도. 다이어트는 한 때의 유행이 아니다. 추세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늘 강요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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