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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결국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체득하게 된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도 결국 다치고 성한데 없이 힘들게 걷게 되겠지만 목표에 도달하고야 마는것처럼. 결국은 알게되는 법이다. 십년전에 이런 류의 르뽀가 티비전파를 통해 안방으로 여과없이 보여주는 게 특종인 시기가 있었다. 그 방송을 보면 서 나는 비로소 내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점을 시인하게 된었다. 그전까지 가진자들의 등쌀에 밀려나 도시변방을 전전하는 비루한 삶을 저주했지만 결국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게 다행히 아니겠는가. 하는 자조적 위로에 몸을 기댔었다. 한심하지만 내게 삶은 딱 그정도였다.
집단을 이끄는 힘있는 소수의 이기주의는 소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기 전에 먼저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음을 감사하라고 강요한다. 사회고발 프로그램은 그런면에서 서민들에게 전혀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100% 전달하지 못한다. 단체를 좌지우지 하던 몇몇의 수괴만 처벌하면 모든 사건들은 썰물 빠지듯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멀리 밀려나 버린다. 식사를 하고나서 느긋하게 티비 앞에 앉아 일순 공포감을 느낀 시청자들은 피해자들의 안타까움에 동정을 보내다가도 금새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놓여있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들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사회나 국가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에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몇몇의 수괴들만 처벌 받기를 희망할 뿐이다.
이 책이 그러한 부조리를 깨끗하게 다스리기는 애초에 역부족이다. 작가 공씨는 나이가 들어감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회적 약자에 시선을 두게 되었지만 공포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대첵에는 무관심하다. 외려 그곳에서 악다구니를 하는 사람들의 나약함만이 강조된다. 그것이 소수의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는 (이른 바 당사자들) 위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들의 1차 목표는 세상의 관심이니까. 하지만 알다시피 인간이 느끼는 타인에 대한 관심은 항국적이지 않다. 사정을 마친 숫컷처럼 사람들의 기억력은 이내 냉정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이 나 또는 내 주변이 아니기에 안도하게 된다.
부조리. 살면서 얼마나 부딪히는 단어인가. 지긋지긋하다 못해 이젠 알지못할 약간의 정감마저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남들보다 더 정의에 불타지도 남들보다 더 교활하지도 않은 무색무취의 흔해빠진 인간이 되어간다. 그 점을 재확인해주는 책이었다. 공씨의 신작은. 딱히 그녀의 문체나 팬심으로 구매한 신간이 아니라 나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어떻게 묘사했나 궁금해 구입했다. 소설은 깊이가 부족하다. 서술방식에 치중하다보니 다양한 군상들이 느끼는 다양힌 감정들이 다양하게 녹아들지 못했다. 아마도 연재물의 한계가 아닌듯 싶다. 그럼에도 별점을 많이 선사한 이유는 작가가 닷푼어치의 눈물을 흘려가며 이 책을 집필했다하더라도 그러한 의지는 결코 이 사회가 약자들에 짊어진 빚에 비해 적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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