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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거문도 기행 - 2009년 여름

2009.09.02 09:35 | 여행 |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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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구수한 핑계를 대고 올 여름휴가는 얼렁뚱땅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혼자 집에 있는 것과 혼자 집 아닌 곳에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전자는 생활이라고 하고 후자는 여행이라고 한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어쨌거나 8월의 네째주에 십년지기와 여수로 향했다. 금요일 용산역발 22시 40분발 무궁화호 막차였다.





여수역에 도착해 근처에 배회하는 아저씨에게 여객터미널을 물었다. 가깝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도착하니 아직 거문도행 매표는 멀었나보다.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반쯤 거문도행 표를 구매했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구백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구백식당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여객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하기 때문이 아닐가 생각해 본다. 이 나라에 태어나 아침을 자주 먹지 않는 생활을 해 나갔던 나다. 그런 내가 일인당 11000원의 식사를 그것도 익숙치 않은 아침에 하려니 솔직히 눈물이 좀 흘렀던 게다.





여수발 거문도행 배의 이름은 오가고호이다. 대인 편도 36600원이나 하는 비싼 배다. 서울에서 여수간 무궁화호 보통실이 27100원인가 하는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새벽기차에서 제대로 눈을 부치지 못해 몹시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무척 상쾌한 아침! 거문도야 기다려라, 오빠가 간다.





거문도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영국군 묘지에 들려봤다. 중간에 섬초등학교도 찍어보고. 대체 영국놈들은 뭐 줏어먹을 게 있다고 이다지도 먼 곳까지 기어들어왔을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서 삶을 마친 녀석들의 최후는 어땠을까.





구름 한 점 없는 엄청난 날이었다, 시야도 확 터지고 모든 게 좋았다. 다만 햇빛이 너무 강렬해 5분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이 내리는 게 힘들었지만. 우리는 선착장이 있는 고도에서 벗어나 수월산을 오르기로 했다. 고도에서 서도로 연결 된 삼호교를 건너 해안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한 시간여만에 수월산 넘어 등대에 도착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동양 최대의 프리즘 렌즈를 장착한 최고의 등대라는 소문이 서울까지 자자했던 터였다.





등대 안에서 내려다보는 남해 바다는 환상 그 자체였다. 등대 위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관백정으로 내려 왔다. 관백정 2층 망루에서보니 이제 은퇴한 역사 속의 옛 등대와 거대한 새 등대가 나란히 보였다.





관백정에서 에매랄드 빛의 거문도 앞 바다를 줌으로 땡겨보기도 했다. 이렇게 깨끗한 바다를 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 기억엔 수 년전 혼자 다녀 온 사이판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곳의 바다는 무척 예뺐지만 이 곳의 바다또한 만만치 않아.





더웠다. 배도 고팠다. 고도로 다시 돌아와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먹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그러나 배는 채웠지만 더위는 물리치지 못했다. 어느 블로거가 거문도 번화가 아무 다방에나 들어가면 전부 빙수를 판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선착장 옆 모 다방에 들어가 빙수를 시켰다. 파란 유리 그릇에 소복히 담겨 나온 정겨운 팥빙수가 준비되었다. 한 입 베어물자 1977년도 후암동의 여름이 떠올랐다.





다시 두 시간을 달려 여수에 도착한 우리들은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짐을 간소한 연후에 택시를 타고 어항단지로 향했다. 그곳엔 대경도로 가는 배가 있다. 대인 왕복 1000원. 제철을 맞아 무척 맛있어진 갯장어를 먹는 게 사실 이번 여행 최대의 목적이기도 했기에! 경운횟집에서 맛있게 갯장어를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잠깐 눈을 부쳤다고 생각했더니 벌써 아침이더라. 황급히 씻고 밖으로 나가 근처 대성식당에서 갈치구이백반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구백식당보다는 나았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들긴 마찬가지였다.





향일암을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릴 듯 했는데 난폭운전자가 모는 버스를 타는 행운을 잡은 터라 그 꼬불꼬불한 지방도를 30분만에 주파했다. 아 아직도 멀미가 난다. 향일암에 오르는 길은 짧지만 무척 가파르다. 하지만 이곳도 오르고 나면 최고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원래는 이른 아침에 도착해 일출을 봐야 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오늘은 일정상 아침나절 산책으로 마무리.





여수역 앞 녹원가든인가 하는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간장게장집이 네째주 일요일에 문을 닫는 것을 모르고 돌산대교 근처 진성여고 앞에서 택시를 탔다가 낭패를 본 것. 정확한 위치에서 내리려는 완벽주의 탓에 지도에 심취했던 게 이유였을까. 이틀동안 짐만되고 단 한 컷도 찍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 삼각대를 그만 택시에 두고 내렸다. 이래저래 놀라운 오후. 그나마 중국산 싸구려제품이라 화가 덜 치밀어 올랐다. 어쨌거나 덕분에 일정에 없는 식사를 한 녹원가든이 대경도 경운횟집을 제외한 여수일정 최고의 식당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가격도 저렴하고 운치도 있는 식당이었다.

서울발 3시30분 새마을호 열차는 참 쾌적했다. 40400원이라는 큰 금액에 걸 맞았다. 아마도 내려올 때 자리가 불편 했던 게 상대적으로 포인트를 얻게 된 동기이기도 했다. 기차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맥주와 소세지다. 식당칸이 패쇄되어 임시 카트로 서빙해 준 시원한 하이트와 고소한 훈이네 후랑크를 먹어가며 우리는 지나간 일정을 되돌아 보았다.

여수, 나쁘지 않은 곳. 올 겨울엔 꼭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다시 찾아올게.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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