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살이나 어린 신부, 만들기만 하면 존경을 바치는 관객들을 거느린 행복한 사람
미국은 희안한 나라다. 생판 모르는 나라에 오로지 빨갱이가 싫다는 미명하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네이팜탄을 터뜨려가며 정글을 불태운 경력을 가졌다. 그 보다 이십년 전에는 더더욱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 내전에 참가해 소련의 시녀 노릇을 하던 중국과 맞짱을 뜨기도 했다. 얼핏보면 은혜의 나라다. 정치적인 이슈를 차치한다고 해도 그들은 정말 동남북아시아인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이라크까지 원정을 하면서 이른바 동서남북아시아 모든 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미국에 가보면 정작 그렇지도 않다. 흑인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이국적인 (WASP입장에서) 피플들과 섞이길 싫어한다. 겉으로는 다양성 diversity 을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다 끼리끼리만 논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점에선 한국이 더 열정적이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늙은이, 지금은 퇴역 군인인 코왈스키가 보기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다 똑같은 누랭이들이다. 이른 바 골든 에이지를 살았던 주변인들이 죄다 죽어 없어진 마을에 같은 피부색을 볼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다. 다들 값싼 모기지로 근사한 주택을 마련해 교외로 이동해 나갈 때 이 고지식한 올드 스쿨 old school 은 마음에 안드는 이웃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버텨 나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었을 거의 유일한 사람인 아내가 죽으며 짜증은 절정에 다다른다. 과연, 끝끝내 이사를 가지 않고 고지식한 백인 미국인인 이 코왈스키씨는 미국이지만 더 이상 미국같지 않은 이 퇴락해가는 가난한 동네에서 버텨나갈 수 있을까?
나라는 사과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사과할 수 있다. 세상에서 사과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용서를 구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용까지 모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전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코왈스키는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로 작심한듯 삶을 살았다. 심지어 자식 가족들도 그에겐 귀찮은 존재로 묘사된다. 아내의 장례식을 뒤로해 가장 눈에 가시인 피플들인 흐멍족들과의 친교는 늙고 병들어가는 코왈스키를 무디게 만든다. 야만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시아인들이 점차 그와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평범한 족속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그가 이웃의 트러블에 엮이게 되면서 그 옛날 자신이 남의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한 흐멍족 사이에 경찰역할을 자처하며 분쟁을 해소하기에 이른다. 6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폭력은 같았다. 하지만 희생자가 달랐을 뿐이다.
그것으로 미국은 타국에서의 간섭을 목적으로 한 무의미한 모든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것으로 미국은 위대한 이민시대에 걸맞는 정말 완전한 형태의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노장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더불어, 이제 미국이 아시아에서 스스로 벌인 모든 일들을 스스로 용서하고 수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다.
뱀다리
미국에서 제 2의 삶을 사는 한국교포들이 이런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무척 궁금하다. 멍족처럼 백인에게 음식을 바치며 감격해 할까.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할까. 모든 한국 교포들도 백인들보다 계산을 잘하고 미신을 신봉하며 코왈스키씨와 같은 정의감에 불타는 마초가 자신들을 구원하리라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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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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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느낌이 들지 함 보겠습니다. 버트씨는 어떻게 예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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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2009.03.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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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국인들의 반응은 이 영화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살아보지 않고서 교포들의 생각까지 읽을 수 겠야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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