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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생소한 이태리 소설 방황의 시절

2009.02.24 11:58 | | 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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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 - 10점
다치아 마라이니 지음, 천지은 옮김/문학과지성사

알다시피 나는 레이첼 야마가따가 부른 1963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세계는 나름 혼돈의 시기였다. 가난한 나라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지금의 선진국에 이른 나라들은 당시 선진국이 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1963년에 관한 내 이야기는 지극히 편향적인 것이며 그러한 내 편향적 논리의 정당성은 내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렇다. 1963년은 내게 그런 해다. 그 해에 이딸리아의 도시에선 다치아 마리아니란 여자가 이 소설을 출판했다. 그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었다. 그녀의 이 소설은 단순한 틴에이져 반항 스토리가 아니다. 여성과  소녀의  경계에 선 피조물이 겪는 대소사를 여성작가 이외에는 피력할 수 없는 필치로 유유히 아주 담담히 묘사한 대단히 흥미로운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여성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아니 이런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무산계급의 외동딸인 주인공은 하루중 이른 시간에는 부기나 타자를 가르치는 상업학교를 다니고 학교가 파하면 연애질을 한다. 엄마는 집안의 실질적인 수입원이다. 뚱뚱해진 엄마는 여자는 연애가 중요하며 몸을 함부로 놀리지 말고 결혼을 전제하는 것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이외의 모든 방법을 부정한다. 아빠는 전형적인 무능한 작자다. 새장따위를 만드는 것으로 현실도피를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다. 시대가 흘러도 가장의 권위만은 오롯하게 남아 있다. 아이러니다. 하물려 19세기 중반인 것이다. 명목뿐인 가장은 오로지 새장에만 집중한다.

주인공인 엔리카. 그녀는 그녀를 섹스파트너로만 이용하는 중산층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내준다. 이 철 없는 먹구 대학생은 주제에 돈 많은 비즈니스 맨 집안의 딸과 약혼한 사이다. 그러면서도 엔리카를 밀치지 않고 적당히 유린한다. 문제는 엔리카가. 그녀는 그녀가 선택한 길에 후회가 없다. 그녀는 이미 성장해서 남자가 어째서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나은 놈팽이가 없다는 불안감으로 현실도피처로 남자를 선택한 셈이다. 어찌보면 두 여남의 관계는 동등하다. 남자는 갖가지 비열한 거짓말로 여자의 목에 개줄을 묶어 둔다. 그리고 여자는 그런 개 줄이 튼튼해서 끝가지 그의 주변을 맴돌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언제까지나 지속될리는 없다. 알다시피 남자들은 여자가 매달릴수록 스스로를 미화하는 재주가 뛰어난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창졸간에 엄마를 잃고 능력없는 애비를 떠난 엔리카는 공자마님을 모시는 어시스턴트로 발탁된다. 말 그대로 가진 것이라곤 돈과 시간뿐인 유한부인에게 어린 남자아이는 정부라기보다 장낭감에 가깝다. 아이는 과부를 떠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富는 자석과 같아서 빈자에겐 치명적인 것이니까. 미소년을 데리고 유유하게 인생의 종반으로 치닫는 부인의 인생에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미래를 유추해낸걸까? 엔리카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다짐한다. 그런 이미로 라스트 씬은 통쾌하다. 그녀는 아직 이십대가 되려면 한 참을 더 살아야 한다. 짧은 나이에 인생을 배운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해 엄청난 월급액수를 늘리는 것이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학습능력을 물려받지만 예전의 아이들은 그 나이에 인생을 공부 해 엄청난 곳이 세상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기가죽는다.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성의 인생에 있어서 남자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야만 하는지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엔리카는 종국에 인생을 선택한다. 그곳엔 그녀가 사랑한 젊고 약삭 빠른 남자도, 그녀와의 섹스가 좋았던 닳고 다른 변호사도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순정남임을 호소한 멍텅구리같은 아이도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는 철저히 변방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할 곳은 누구에게 의지하며 삶이 밝은 쪽을 막연히 기대하는 회충과도 같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여성주의는 아직 시작도 안했듯이 그녀의 인생도 아직 시작조차 안했으니까.

1963년을 통과하는 이딸리아 여자아이나 2009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나 전혀 다를바가 없다는 게 놀랍다. 지리나 사람을 부르는 호칭과 즐겨먹는 식료품의 이름만이 다를 뿐이다. 그곳에는 진취적인 여성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숱한 장애물을 거치는 한 명의 여자가 존재한다. 나는 그녀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그 가난을 남자들이 평생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숙식완비 기숙사 생활의 안락과 맞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본 도서 리뷰는 티스토리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블로거 북 리뷰' 행사에 참여하는 블로그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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