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판을 하려면 사회공부를 해야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비평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허나 안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 구성원으로 세상을 산다. 그리고 틈만나면 자기가 속한 세상에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것에는 이른 바 체계라는게 없다. 자기가 처한 사회와 그 시스템에 대한 분노는 늘 상투적이고 동어반복적이며 지리멸렬한 수준인 셈이다.
진중권이 까발리는 이 세상의 부조리는 그런 의미에서 읽어줄 만 하다. 무슨 의미? 그의 체제비판적 서술은 비범하고 분석적이며 동시에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거침이 없다. 타협이 없다. 까대는 것은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짐승들이 뒤집어 쓴 탈을 까발리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짐승같은 짓거리라고 평가절하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픈 말은 오프 더 레코드로 남겨두는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다. 사장의 뒷담화를 사장 앞에서 깔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을 만한 또는 투정을 부려도 될 만한 사람들 앞에서만 체제비판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스트레스는 쉬 가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지식인이 쓴 책을 사고 동시에 그가 굶어죽지 않도록 지원한다. 아가리는 달라도 하고픈 말은 같다는 점에 안심한다. 그리고 그가 토론회에 나가서 지껄일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것이 그나마 더러운 세상을 밟고 살아가는 나같은 도시빈민의 울분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늘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진중권같은 아는 거 많은 아저씨도 이 사회에 필요하지만 그와 같은 잘 나가는 여자 논객들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균형된 시각을 갖추고 싶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시선을 결국 원-아이드 잭의 캡틴 후크수준을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여자들의 시선까지 장착한 전천후 만능 깡통 로봇이 되고 싶다. 그 눈으로 이 비열한 세상을 바라보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어쩌면 내 궁극적인 목표일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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