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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 of my Christmas Dinner
아기예수탄생일이 서양명절인것은 그들의 뿌리와도 같은 이야기다. 그들은 비록 유태인의 구라듬뿍 담긴 역사책을 빌어다 자신의
역사책인양 공부하고 찬양하는 불쌍한 인간들이지만 사실 종교는 결국 그런 것이다. 절대강자가 등장하면 원망과 학대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믿는 종교계의 절대자 예수님도 결국 유태인이다. 유태인을
마음속깊이 싫어하던 네안데르탈인의 후손들은 결국 유태인이면서 유태인들의 신인 야훼의 아들이라 스스로를 지칭하는 예수를 처형했지만
그가 주장한 종교까지 처형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예수의 죽음은 종교의 대변혁을 예고하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하야 마침내
4세기 중반에 접어든 시기, 로마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1세는 그때까지만해도 일부시민들 사이에 퍼져있던 잡교에 하나였던 그리스도교를
나라의 지배자가 믿는 정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위대한 종교의 자유를 관철시킨다. 이것이 이른바 밀라노 칙령이다. 황제가 사상적
자유를 획득하며 자신이 믿었던 태양신을 배척하고 그리스도교의 박해를 중지시킨다. 이러한 리즈너블한 그의 원칙은 결국 숙명이자
숙적이었던 정적 리키니우스를 격파하고 동로마제국을 흡수통합해 당당한 제국의 우두머리로 역사에 각인되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일테다. 절대적인 우상숭배에 들어간 것이. 17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 뿌리는 건재하다. 오히려 종교적 위세는 그들
자신에게서 차츰 멀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뿌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법한 서양종교적 변방인 이곳에서까지 극성이다. 막
식민에서 해방된 국가에서 미군정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기준으로 25일을 빨간날로 제정한다. 친미정치인의 조상격인 이승만은
국민들의 반탁운동을 무시하고 단독정권을 창출함과 동시에 미군들이 만들어낸 빨간날을 유지계승하기로 마음먹는다. 저 자신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믿는 종교를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바늘에 실을 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
남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대국가였던 고구려가 4세기 후반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장려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로마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무렵과 불과 반세기정도의 차이를 보일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가진다. 콘스탄티누스1세기 위대하다면 고구려의
소수림왕도 위대한 임금이란 이야기다. 당시 종교의 확립은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곧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접어들이 위한 토대를 상징한다. 그런 선진국형 교양과목을 4세기에 소수림왕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남한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의
종교또한 위대했음을 간접적으로 밝혀주는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월초파일이 빨간날로 제정된 것은 1975년이었다. 불교계의
오랜숙원은 민족의 본류와 무관한 타민족의 타종교가 국경일로 제정된 후 무려 40년이 지난 후에야 풀리게 된 셈이다.
나는 알다시피 크리스챤이다. 이는 내가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는 이런 나에게 너는 어떤
종교를 믿냐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혼란스러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나는 종교의 자유를 믿는다고 그 옛날 로마의 황제가 그랬듯이 로마의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귀의했지만 그와 그들의 민족이 믿었던 태양신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지 않았다. 그가 믿는 종교의 선택은 단일종교의 확산에 있지 않았다. 박해받는 일부종교인의 해방에 있었다. 소수림왕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기틀을 잡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으로서 종교의 통일을 지칭하는 것을 어리석은 후세인의 생각일 뿐이다. 대표적 종교를 내세웠던 것은 선진국의 도약으로서의 의미와 불온한 사상의 퇴출을 의미한다. 오히려는 고대국가의 임금이었던 소수림은 같은 시기 역시 선진국에서 유교를 받아들여 태학을 유교의 교육기관인 태학을 세우고 최초의 율령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두 종교의 양립으로 비로소 고구려는 미개한 부족집단에서 고대국가의 틀을 잡는데 성공하게 된다. 로마황제가 사상의 정비를 통해 제국을 통일했듯이 말이다.
내겐 그것이 종교의 의미다. 성장成長 . 안류가 성장하는데 종교는 이처럼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성장을 멈췄다. 종교를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확립에만 적용하지 않고 타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비난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성장이 중지된 인류는 그것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것이 종교가 지닌 사명이라고 착각한다. 그것이 현대종교의 한계일 것이다.
나는 알다시피 그리스챤이다. 나는 종교의 자유를 믿기에 크리스챤이 되었다. 이것은 역설도 뭐도 아니다. 나는 자유하는 사고력을 지는 고등생물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축구선수가 될 수 없다. 운동도 결국 인생과 별 차이가 없다. 기본기를 익히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따위는 고집에 불과한 셈이다. 내가 믿는 종교의 어떤 날이 전 세계적인 축제의 날이 되었다는 것은 결국 소수종교와 그 종교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몹시 서운한 날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는 종교의 자유를 다시한번 되새기게 해 준다. 그럼으로서 내가 하는 요리는 요리 스스로 진정한 종교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나는 그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찬을 준비한다. 그게 내가 아는 크리스마스이며 내가 아는 크리스마스 디너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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