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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속버스에 오르면 로맨스가 시작된다. 낯선 도시로 떠나는 나 홀로 여행의 묘미는 의외로 시작부터 우리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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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종을 분명 5시10분에 맞추어 놓았는데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쉽게도 지각인 것이다. 매년 영화제를 개최하는 거리로 찾아가기로 했지 않았던가? 6시 50분. 스케줄대로라면 지금쯤 버스가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어찌할까 잠이 덜 깬 머리를 추슬렀다.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출발 해야지. 다만 11시, 조조 상영으로 예매해두었던 영화는 물 건너갔다. 속상하지만 지각인생에 관용은 용납되지 않는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인터넷을 접속하니 7시20분부터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얼른 택시를 타고 가서 직접사도 되겠다 싶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1박 이상의 여행은 녀석들에게 여러 기지 스트레스를 안기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절친한 친구들인 생선들에게 가벼운 작별을 고했다. 꼴뚜기, 도다리, 자갈치 순으로 손을 흔들었다. 내일이면 틸사마가 빈집에 들려 너희들에 젖과 꿀을 주실 테니 안심하고 있어. 하고 나는 말했다.
택 시는 청량리 수화물 보관소 앞에서 탔다. 개인택시였는데 기사가 몹시 친절했다. 늦어서 가급적 빨리 가달라고 했더니 나보다 더 안절부절 하신다. 막히는 것은 괜찮다고 했고 울상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경로를 내가 추천했기에 나는 별로 군말이 없었다. 그래도 기사는 열심이었다. 한남대교 나들목에서 잠깐 막히긴 했지만 무난한 흐름이었다. 네이버에서 경로검색 시 10000원정도 나왔던 예상 금액보다 1000원이 빠졌다. 거스름을 만지는 기사에게 잔돈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기사는 감격해 했다. 실제로 감격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시늉을 적절히 구사했다. 잔돈을 받지 않는 알량한 마음씨를 보여준 나로선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7시 25분에 센트럴시티 안내방송 부스에 도착했다. 매표원 아가씨가 내 철 지난 표를 받아주었다. 일주일 쥐에 카드취소승인이 떨어질 테니 반을 절취한 표를 돌려주었다. 30분이나 늦어 버스를 놓쳤는데도 100% 환급 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타지 못한 좌석에 다음 버스를 타려고 대기하던 승객이 승차했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아까 참에 택시기사가 귀띔해 준 것이 기억났다. 나쁘지 않은 시스템이다. 나는 남아 있는 버스 중에 가장 빠른 것은 8시 20분 차를 예약했다. 동양고속이었다.
아침은 롯데리아에서 가볍게 때우기로 했다. 오징어버거 세트. 4300원짜리다. 이런 정크푸드를 4달라 이상 받아먹는 것이 귀엽기도 했지만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롯데리아 따위에서 고기 패티로 만든 버거를 먹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는 사실 맥D에 가도 오 필레 피쉬는 맥 치킨을 먹는다. 광우병인지 광인병인지 파동 전부터 그랬다. 일종의 기호다. 가끔 버거킹에서 와퍼를 먹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1년에 두어번정도에 불과하다. 말라비틀어진 몸매에 키만 큰 꺼꾸리 안경잡이 사내가 8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른 버거류로 유도하려고 했다. 우리나라 정크푸드 프랜차이즈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시 가장 먼저 가르치는 사항인가 싶었다. 어딜 가나 종업원들은 마치 테이프에 녹음된 톤으로 몇 분 동안 기다려 셔야 된다고 손님을 설득한다. 자신이 정확히 뭘 먹고 싶은지 모르는 미련한 인간이거나 시간이 촉박한 인간들에겐 요긴한 정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처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알거나 아님 시간이 촉박할 때 절대 돈 내고 밥을 사먹지 않는 느긋한 인간에게는 불쾌한 대사이기도 했다. 나는 장다리 사내의 8분 경고를 들은 채도 안하고 콜라대신 아이스드 아메리카노로 음료를 체인지 했다. 커피로 교환하면 700원의 추가 금이 붙는다. 나는 5000원을 내고 핸드폰 번호를 불러줬다. 현금영수증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로 나는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이에게 가끔 내 핸드폰 번호를 불어준다. 딱 5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면 무슨 수작이냐고 귀싸대기를 맞을 상황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로서도 안경잡이 꺼꾸리와는 따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딱히 동성애코드가 나의 기호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도 안경 쓴 꺼꾸리는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형이 아니었다. 그가 내 핸드폰 번호를 암기해 두었다가 데이트를 신청하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를 생각하며 좌석에 앉아 8분을 소비했다.
우선, 나는 경기도사는 애인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꺼구리가 의외로 질긴 타입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야 한다. 꺼구리는 말한다. 저도 딱히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다만,
- 다만? - 다만, 손님으로 당신을 보는 순간 만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 글쎄요. 여러 가지에 대해서. 광우병도 좋고 조류독감도 좋고 성추행사건도 좋고. - 이봐, 요즘 대한민국을 수놓는 화려한 뉴스들을 꼭 나와 이야기 할 필요는 없잖아. - 그렇죠. - 그런대 왜 하필 나야? - 전화번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 번호가? - 뒤번호가 제가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 한 끗 차이가 나거든요. - 아. - 그리운 사람입니다. 지금껏 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죠. - 설마 남자는 아니겠지. - 맞아요.
맙소사. 동성애코드와는 무관하다고 지껄이던 이 친구가 결국은 동성애자였잖아. 이봐, 나는 이성애자라고 더구나 내가 동성애자라고 해도 안경잡이 갈비씨는 딱 질색이란 말이지. 그 때 꺼꾸리가 소리치는 게 보였다. 오징어버거 세트 나왔습니다. 나는 꺼꾸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프런트로 나갔다. 그가 아까의 내 전화번호를 제발 잊었기를 빌었다.
- 주문하신 오징어버거 세트입니다. - 잊었죠? - 네? - 아, 아닙니다. 이게 제 트레인가요? - 네 주문하신 오징어버거 세트입니다. - 하지만 다른걸요. - 네? - 전 콜라대신 아이… - 아! 아이스 커피 시키셨지. 아 죄송합니다. - 아 뭐.
더욱 곤란했다. 꺼꾸리 주제에 깜빡이기까지 했다. 깜빡깜빡. 나는 거듭 말하지만 정말로 안경잡이 꺼꾸리겸 깜빡이 사내를 좋아하지 않는 취향을 가졌다. 그 점을 사내가 간파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기에 만약 전화가 온다면 미안한 노릇이지만 나로선 내 취향을 그에게 사실대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깜빡이 사내와 눈이 마주칠까 봐 등을 보이는 자리에 앉아 소심하게 버거를 씹었다. 이런 번거로움은 다 국세청의 잘못이다. 번거롭게 핸드폰 번호를 입으로 말해야 하는 점이 그렇다. 물론 카드발급이 가능해 말하기 싫으면 카드를 줘도 되지만 내 카드는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이었다. 나는 깜빡이 대신 국세청 시스템에 저주를 하면 다시 한 입 물었다.
오징어버거는 나쁘지 않았다. 가끔 오징어조각도 씹혔다. 스타벅에서 아이스드 아메리카노가 3300원에 치즈 바른 베이글이 2000원정도 하니까 비슷했다. 적어도 손해는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정크푸드점에서 세트를 시키면 스타벅의 위 메뉴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기준은 언제든 아메리카노와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이였다. 그 값을 기준으로 이상이면 비싸다, 이하면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습관이 베었다. 그러나 커피가 문제였다. 서울발 전주행 동양고속 오른쪽 뒷바퀴를 푹 고아 우려낸 맛이 났다. 제길.
8시 20분 차는 제 시간에 출발했다.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는 버스를 나를 미워한다. 나는 제 시간에 출발하지 않는 버스와 기사 터미널 그리고 매표원을 싫어한다. 그들이 나의 이러한 까탈을 알아챘는지 시간이 되자 신속하게 출발을 했다. 1시간 전 매표원이 맨 뒷좌석을 권유해서 내가 굉장히 섭섭한 투로 저를 그런 모진 곳으로 보낼 것 까지는 없잖습니까. 라고 말해해주었다. 덕분에 혼자 타는 우등고속의 묘미인 1인석을 얻어냈다. 그 여자 검표원은 어딘가 탤런트 소유진을 닮았던 것도 같았다. 내가 소유진이라는 배우를 좋아했으면 덜컥 맨 뒷좌석 표를 받아 쥐고 물러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소유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는 너무 많지만 막상 입으로 배우의 이름을 꺼내려면 망설여진다. A양을 꺼내 놓으면 B양이 서운해 할게 뻔했다. 그렇다고 A양 몰래 B양을 내 놓으면 Z양이 나를 배신자라고 나무랄 것이기 때문이다.
좌석번호는 21번 오른쪽 창가였다. 차가 출발하자 오른쪽 복도에 앉은 사내가 일어나 에어컨디셔너의 양을 조절했다.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람이 쏟아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는 출발 전에 맨 먼저 버스를 타서 짐을 넣는 위칸에 트라이포드를 올려 놓았었다. 아마도 나처럼 전주에는 영화제를 위해서 방문하는 사람인 듯 했다. 그래도 트라이포드까지 챙겨서 버스를 탔으니 나처럼 유유히 주말을 즐기러 가는 한가한 인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직업상 방문하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을 보여주려고 내려가는 듯 했다. 뭐 어찌되었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5분마다 일어나 에어컨을 조절하느라 바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섬세한 피부 때문이지 버스기사나 동양고속의 책임은 아니었다.
약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데이비드 린의 지루한 영국영화를 한 편 보는 시간쯤 소요되는 것이다. 언젠가 린의 영화를 보기 위해 명보극장 (지금은 명보시네마겠지만) 에 갔다. 딱히 서사극의 팬은 아니었지만 영국인이 식민통지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기에 그의 영화는 나름대로 흥미를 유발했다. 켄디스 버겐이 명주실을 돌리고 앉아있고, 바싹 마른 벤 킹슬리가 돋보기를 쓰고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쯤 갑자기 극장 안에 불이 켜지더니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을 주겠다는 자막이 나왔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하며 그냥 극장 밖으로 나갈까 고민했다. 사실 극장 측에서 원하는 것도 화장실에 서서 애꿎은 수돗물을 변기에 흘려 보내는 것 보다 극장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길 원하는 것 같았다. 선불 제 서비스업은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따고 배짱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문장이고 실제로 도시의 많은 장소에서 발생한다. 켄디스 버겐을 전성기를 지난데다 별 특징 없는 여성상의 재현이라 의미가 없었다. 벤 킹슬리는 아카데미상을 위한 연기를 펼치기 위해 살까지 뺀 터다. 더할 나위 없이 제국주의적이며 더할 나위 없는 아카데미적인 영화였다. 이런 영화는 인디언들이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의 일본문화 오타쿠인 워쇼스키형제가 만드는 이토 히로부미의 일대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암살이라는 커다란 클라이맥스가 있고 그것을 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한다는 공식에서 보자면 차라리 이토 히로부미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더 감칠맛 날지 모른다. 워쇼스키의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이 쏜 총탄을 이른 바 뷸렛 타임으로 실시간 피하다가 간발의 차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네오가 연기하는 안중근의 총탄이 스미스적 몸놀림을 보여주는 이토 히로부미의 최후를 안겨주는 것은 생각만 해도 스릴이 넘친다.
버스가 정안 휴게소에 멈췄다. 제한시간은 15분. 휴게소 매점에서 커피와 호두과자를 사서 화장실에 선 채 볼 일을 보고 나오면서 담배를 피우며 애인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허겁지겁 버스로 돌아오면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고속버스 회사의 절묘한 배려다. 그럼에도 버스는 5분간이나 더 지체했다. 휴게소를 들리면 반드시 늦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 재미로 버스여행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아마 호두과자를 입에 물고 감자전과 우동에 사리 두 개를 말아 먹고 화장실에 들려 방금 먹은 음식을 배설까지 하고 오는지도 모른다. 계산해 보면 5분의 여유시간으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해낸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지각을 나무라면 안 된다. 오히려 그 짧은 시간에 식사와 배설, 흡연과 통화까지 끝내는 사람들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높이 사야 마땅하다. 기분 같아선 1분간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버스가 막 출발하기에 참았다. 안전벨트를 메야 했기 때문이었다.
2시간45분만에 전주고속터미널에 도착한다고 자랑하는 버스는 3시간 30분만에 터미널을 찍었다. 나오자마자 긴줄에 다시서서 일요일,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늘상 타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왕복표를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없다는 점이 수상하다. 아마도 지역에서 파는 티켓은 지역터미널로 분배하기 때문인가보다. 그래도 그렇지 서울서 왕복표를 사면 사이좋게 반씩 나누어가지면 그만 아닌가. 섭섭한 노릇이었다.
영화의 거리까지는 택시를 탔다. 2400원이 나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1800원이 전주택시 기본요금이니까 3km정도 떨어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까지밖에 갈 수 없습니다. 라고 택시기사가 이야기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왔었거든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가 바로 작년에 여기서 후배가 사 준 기념티셔츠잖습니까. 하하하. 라고 상냥하게 말했지만 무시당했다. 오고가는 대화는 커녕 내 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무시받아가며 생활하는 것이 내 특기라지만 전주까지 와서 대화를 봉쇄당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일진이 않좋은 게다. 나는 인사 몇마디 내던지고 도망치듯이 택시를 내렸다. 무시를 할 꺼라면 애초에 에어컨이라도 좀 켜주지, 택시 안이 빨래삶는 양은대야 안보다도 더 더웠다.
밖에도 덥기는 매한가지였다. 예보로는 30도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30도. 서울에 있었으면 좀 더 나중에 겪었을 여름날씨다. 반팔티와 반바지가 다행이었다. 신발도 전주행을 얼마 앞둔 저녁 명동에 쓰레빠 끌고 나가서 새로 산 트레킹 샌들이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차림이었다. 적어도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새련된 도시 노총각의 모습정도는 되어 보일것이다. 나는 머리 위에 얹혀져있던 쉐이드를 눈 앞으로 내렸다. 구름 한 점 없었다. 붓으로 검은 점이라도 하나 찍으면 온통 검정으로 물들 정도로 맑은 하늘이었다.
JIFF SERVICE CENTER를 찾았다. 작년과 다른 곳에 있었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급조된 스타일의 오래된 건물이었다. 급조된 것 치고는 드믈게 서포터스 라운지로 오르는 계단말고 에스컬레이터까지 구비된 건물이었다. 오호라. 신경좀 썼는데 집행위원회에서 무슨 집행을 했길래 이런 구조물까지 다 구비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구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까지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작년에 골룸과 둘이서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를 해 두었던 표를 땡볕에 줄을 서서 획득했던 악몽을 떠올려보면 개과천선에 가까운 환골탈태였다. 덕분에 올 해 표 파는 자원봉사자들은 시원한 건물안에서 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새벽부터 와서 죽때리던 골룸과 1시즈음에 건물 밑에서 합류했다. 어제부터 본 영화가 전부 수준 이상이라 흡족해 하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어려서도 날밤까며 영화보는 것에는 젬병이었던 나 아니던가. 반갑게 악수를 되돌려주고 전날 미리 사두었다는 티셔트를 받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의 식당으로 향했다. 늘 그렇지만 주최측인 인쇄한 지도를 보면 꽤 갈만한 곳이 눈에 보이는데 정작 가려고 하면 찾기가 까다롭다. 골목 어귀를 휘어 돌아 마침내 신한양불고기집에 도착했다.
신한양불고기집에서 전주식 불고기를 맛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식당이었다. 식당은 평범했다. 전부 트래디셔널한 좌식이라 발냄새가 고약한 치마입은 여성들에겐 고통스러운 집이었다. 불고기 2인분을 시키자 안주인이 슬슬 말을 던졌다. 다들 음식 사진을 찍네. 저기 저 테이블에서도 찍었고. 아, 맛있는 집이라고 자랑하려고요. 입에 침도 안바르고 아양을 떠네. 아직 잡숫지도 않았으면서. 불고기는 예상과 달리 돼지고기였다. 돼지고기류의 볶음은 제육이라고 배웠다, 어째서 불고기라고 하는지 나원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따지고 싶었지만 이야기가 쉬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도 전주에선 소닭돼지 구별없이 볶아서 밥과 함께 먹으면 불고기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단념하고 매운 양념을 해서 재어 내 놓은 돼지 고기위에 갖은 채소를 얹은 냄비볶음을 먹었다. 양념은 싱거웠고 채소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부식은 집에서 주인내외가 방금 먹다 물린 상에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했다.
- 다음 볼 영화가 낮술이라는 영화인데 낮술 한 잔 먹고 보면 골때릴꺼야 그치? - 한 잔 할까요? - 그래도 괜찮을까? 겨우 1시20분인데. - 뭐 두어잔 마시면 되겠죠. - 그럴까.
뭘로 드릴까요? 하이트던가요? 그걸로 주세요. 아 맞다. 그 지방에 가면 그 지방소주를 먹어줘야지. 그렇다니까. 그래 그럼 그걸루다가. 그렇게 해서 밥까지 볶아 먹으면서 한 잔 꺽었다. 일인당 1/3병씩 예의상 1/3병은 남겼다. 안주인이 자화자찬한 끝내주는 볶음밥 역시 평범한 수준이었다. 맛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맛은 물론 느낄 수 있되 그것이 맛집이라고까지는 못하겠다는 그런 이야기다. 골룸은 맛있었다고 했다. 그랬으면 된 것이다. 둘 다 맛있기를 바랄정도로 물어물어 간 집이 아니었기에 나로서도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시간을 들여 신발을 신고 있으니 발빠른 골룸이 문전처리중이었다. 잘 먹었다. 새로 산 신발은 샌달이란 끈이 없어서 식은 땀 좀 흘릴까 했는데 역시 문전처리의 미숙함과는 거리가 먼 스트라이커 골룸이었다.
지각으로 늦게 전주에 도착하는바람에 1회를 놓친 나는 2회부터 전주국제영화제의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2회는 메가박스에서 낮술을 볼 예정이었다. 낮술을 가볍게 찌끄려 준 우리는 메가박스를 올랐다. 작년 한국영화 다카포와 장마가 모두 재난에 가까운 졸음을 안겨주었기에 나는 극장을 들어서며 평소 긋지 않던 성호까지 그어가며 심기를 다졌다. 얍.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무척 재미있었다. 시작은 우려를 자아낼 정도로 뜨악했다. 싸구려 술집에 모인 청년 넷이 주접을 떨고 있는 씬부터 시작되었다. 그 씬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인 레져부어 독에서의 인트로를 연상시켰다, 다만 기교가 없었고 스티븐 부세미의 음란한 대사가 빠져이었었을 뿐이었다. 기교가 부족한 것은 저예산 영화라 그러한 것일테지만 대화의 질은 대한민국 술 좀 빤다하는 청년들이 즐겨찾는 술집에서 허구헌날 라디오틀듯이 나오는 레파토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재밌었다. 기우에 불과했다. 스티븐 부세미보다 주인공인 송삼동이 엮어내는 지리멸렬한 시츄에이션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2008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를 기다리던 막간에 시간을 떼우기 위해 써두었던 잡글을 발견하다. 맙소사, 영화제가 어지간히 재미없었나보다. 오타가 무척많다. 안고쳤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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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achoi74 2008.12.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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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밌게 읽었슴다.
'신한양불고기집'포스팅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네요.
거기서도 돼지불고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Are you ready to talk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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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2008.12.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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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하.
나도 지금 막 읽어보았음.
잼나네.
NO I'm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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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coco 2008.12.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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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 수다쟁이. 다 읽느라 눈 돌아갈 뻔 했다!
그나저나, 그 안경잡이 갈비씨한테서는 전화 안 왔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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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achoi74 2008.12.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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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틸언니...
버트씨가 보따리 한번 풀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니깐요~
안경잡이를 싫어하니 전화가 왔더라도 정중히 거절을 했을겝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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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2008.12.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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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어제 틸사마와 집에서 안경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지롱~
메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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