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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이 고스톱을 치면 맞고라고 한다. 엄청난 인기다. 인터넷을 배우기 위한것도 인터넷 맞고를 위해서였다는 나이든 분들도 꽤 존재할 정도다. 맞고. 맞고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all or nothing의 법칙에 근거한다. 한쪽이 따면 다른 한 쪽은 잃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자본주의랑 그렇게 빼다 박은 게임인지 혀를 다 내두를정도다. 밤새 피터지게 맞고를 쳐보았자 결국 승자는 어느 한쪽일 뿐이다. 밤새 전력투구해 오링된 사람은 허탈 그 자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노릇이었을수도 있고, 맞고 자체의 재미에 푹 빠져서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링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맞 벌이. 맞벌이가 존재하는가? 대다수의 피플들이 그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실재로 남편이 돈을 버는 주체일경우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맞'이라 하는 접사는 서로 엇비슷하다는 뜻에 기인한다. 맞고를 치는 것이나 맞짱을 뜨는 것은 그것에 연유한다. 피박을 쓰고피터지게 두들겨 맞았다고 해도 일단 성립조건을 충족한 대상끼리의 행위로 간주되기에 무방한 것이다. (팔이 하나 밖에 없는 80대 노인과 20대 럭비선수와의 싸움을 맞짱이라고 하지 않는단 이야기다) 하지만 맞벌이는 이른바 마주보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벌이의 주체라면 맞벌이의 객채인 여성은 벌이의 도움을 주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이런 관계는 맞벌이로 볼 수 없다. 진정한 맞벌이는 남성과 여성이 적어도 50:50은 불가능할지라도 60:40의 비율은 만족시켜야 성립된다. 판돈이 적은 쪽이 우승할 확율이 적은 맞고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는 분명 공평하지 못한 관계다. 하지만 70:30 이나 심지어 80:20 이하의 벌이비율은 맞벌이로 부르기 민망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맞벌이라기 보다 앵벌이가 어울린다. 가계의 도움이라는 명목아래 똑같은 노동력을 부당한 가치로 착취당하는 것을 우리는 도저히 맞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맞 살림이란 말이 존재하지 않듯이 맞벌이도 없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기혼 남성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모를리 없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는 아주 쉽다. 맞벌이가 없다는 말. 그것은 어째서일까. 벌이의 주체가 분명하고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안일의 주체로 전환해보자. 가령 가사노동의 주체가 여성이라고 하면 남성과의 분담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계산이 쉽지 않다. 99:1 의 비율은 비율도 아니다. 구태여 비율을 산정하고 그것에 경중을 따지기가 귀찮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맞살림은 없는 것이다. 적은 임금을 받고 땡볕아래 노동을 하고 돌아온 기혼여성이 있다고 하자. 그는 마트에서 10시간을 일하고 80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그의 배우자인 기혼남성은 일반 직장에서 무한대로 일하고 (남성의 정확한 퇴근시간을 여성이 알아낼 도리가 없다. 일이 끝나든 끝나지 않든 귀가 시간은 늘 일정하게 늦기 때문이다, 사회활동의 범위는 집안일을 하는 아낙의 상식을 늘 뛰어넘는다) 320만원을 받는다고 하자. 임금비율은 딱 1:4가 된다. 이것이 맞벌이인가? 아니다. 노동의 강도에 대비해 임금의 격차만 심화된 꼴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기혼남성은 여성의 노동을 하찮게 여긴다. 능력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는 사회의 시스템을 잘 알면서도 그런 말을 서슴치 않는다. 벌이를 시작한 후 살림까지 혼자 떠 맡아서 고군분투하다 막대한 노동에 질려 조금이라도 배우자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쥐 오줌 만큼 벌어오는 주제에 집안 일도 내팽개칠꺼라 유세떨려면 당장 때려치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묵묵하게 살림을 반으로 쪼개 스스로 움직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래도 대다수의 착한 여성들은 죄책감이라도 느껴보겠지만 말이다)
현 대에 들어서 맞벌이가 여성의 자아실현의 일환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것은 말 장난일뿐이다. 10시간씩 중노동을 하고 80만원을 받는 여성노동자에게 그것은 자아실현일까? 당연히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자식들의 사교육비와 아파트의 임대료 충당에 근거할 뿐이다. 자아실현은 같은 노동을 투입하고 남편과 동등한 임금을 받았을 때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맞벌이는 그러한 동등한 눈높이서 비로소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가 사 노동자에게 맞벌이를 강요하기 전에 우선 맞살림을 약속해야 한다. 거듭말하지만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그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온당치 않은 것이다. 요컨대 남성 혼자서 벌이를 100% 책임지고, 여성은 100% 가사노동에 투입되었다면 적어도 동등해야 하는 조건을 공유해야 한다. 주말에 남성이 집에서 쉬고 싶다면 여성에게도 주말에 집을 떠나 쉴 수 있는 공간 또는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공평한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의 전환이 맞살림을 이끌 수 있다. 또한 공평한 맞살림이 가정내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맞벌이의 근간이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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