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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군대동기인듯한 두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운동권 출신이라는 다소 엉뚱한 연혁을 소유한 엘리트 다른 한 명은 그럭저럭 제 수준의 맞는 생활을 하는 평범한 노동계급인 레스토랑 요리사. 얼핏보면 헤어드레서인 아내를 맞이하고 살뜰하게 미국행을 꿈꾸는 보편적 시민인 재문(박희순)이 행복한 듯 보인다. 2세를 벤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의 계급적 업그레이드를 꿈꾼다. 마르크스에게 젊은 시절을 바쳤던 예준(장현성)은 사회인이 되고나서는 자본가가 되기 위해 착실하게 상승중이다. 자본을 다루는 고급인력이 되면서 질시와 시샘이 많아졌지만 그런 것은 어쩔수 없는 과정이라 여기면 정면돌파하며 강하게 헤처나간다. 그에게 재문가족은 일종의 균형추이다. 생각이상으로 비열한 자본의 세계에서 탑이 되기 위해선 어느정도 세상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타고난 노동계급인 재문은 그에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재문은 그에게 의탁하며 있는 자들의 재물에 기댄다. 미안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 믿는다. 아내(홍소희)는 어쨌든 그 둘의 우정이 미덥지 않지만 그렇다고 반대할만한 문제가 있지 않기에 적장히 맞장구를 처주는 삶이 지속된다.
균형은 화이트칼라인 예준이 블루칼라인 재문의 자식을 질식사 시키면서 깨어진다. 노동계급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의 과오를 덮어두기 위해 입을 다물고, 역량있는 자본계급은 알아서 기는 친구의 행동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며 구원받는다. 재문의 아내만이 소외된채. 우정이란 이름으로 진실을 묻어버린 정신나간 꼴통들 덕에 지난 십개월간 아이를 베고 있다 어렵게 생산해 냈던 아내만이 알권리를 묵살당한체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입을 열지 않는 바보 멍충이들 때문에 한 순간에 삶에서 웃음이 사라진 아내 지숙은 제3자의 지위를 획득한다. 타인이라는 지위. 하지만 그녀가 획득한 타인이라는 객관적 지위는 무능한 전남편인 재문의 침묵과 그의 후원인 예준의 재산덕분이었다. 유학으로 기술이 업그레이드 된 노동자 지숙이었지만 결국 그는 남편의 친구에게 속한 사용자였을 뿐이다. 그러한 관계의 기우러짐은 간단한 사용인의 손놀림에도 무너지기 쉬운 것이 자본주의일까. 재문이 변두리에서 전아내가 보고 싶다고 징징거릴 때 예준은 간단히 친구의 아내를 정복한다. 그가 영위했던 삶에서 이것은 보편타당한 행태겠지만 예준과 지숙에게는 목숨같은 일이라는게 다를 뿐.
남편과 행복하던 왼쪽과 혼자가 된 고독한 오른쪽의 지숙, 당신의 선택은 어떠한가? 친구라는 집합과 부부라는 집합의 교집합속에서 자본이라는 녀석을 투과해 리트머스 시험지를 물들이는 작업이 돋보이긴 하다. 하지만 비열하다. 남자들이 사는 세상이. 자본이고 지랄이고 문제는 저희들이 일으키고 왜 모든 갈등의 해소는 아무것도 몰랐던 아내몫으로 남겨져야 하는가. 인류역사상 이 같은 일은 넘치도록 흔한데 어째서 바뀌어 나가지 않는 것일까. 왜 그녀는 쉽게 멍청이들을 용서할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나는 라스트 씬을 용서할 수 없다. 그따위 한가로운 장면은 대배우(?) 설경구의 다른 영화속 명대사처럼 말 그대로 '비열한 변명'일뿐이다. 여성은 수습과 화해의 화신이 아니다. 뒤치닥거리나 하라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스피시스는 어디에도 없다. 관습적 이데올르기에서 홀로서야 비로소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은가. 지숙이 삶이 타인 (특히 이성)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를 질리게 한다.
마지막 장면이 지숙 혼자였다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중앙시네마,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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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coco 2008.12.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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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그렇게 그리는 남성의 시각부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아님, 여자들이 영영 그런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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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2008.12.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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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래도 좌파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다만 남성중심적이라는게 걸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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