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 중심부로 들어가노라면, 오른편에 높이 10m 이상의 높은 담장이 보인다. 차를 타고 그 웅대하고 견고하게 보이는 담장을 끼고 한참 달리다 보면 드디어 바티칸박물관의 출입구 마당이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지만 그 안에 있는 건축물들은 최상급이요, 큰 규모이다.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궁전은 1천여 개의 방이 있다. 바티칸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가톨릭 관련 유물로 가득 차 있어 세계 최대의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또한 벽면 길이가 70m나 되는 바티칸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서 사본(8만 점)과 필사본 (1만5천 점)을 소장하고 있고 희귀도서로 가득 차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보고
괴테는 로마를 일주일 간 부지런히 보고 난 뒤 로마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바티칸박물관은 더욱 그런 것 같다. 바티칸박물관은 원래 로마 교황들이 거주하던 바티칸궁전이었다. 이 안에 ‘스탄체’라는 교황 율리우스2세와 레오10세의 주거였던 건물이 있다. 라파엘로가 이곳에 그린 벽화는 당시의 사상, 특히 학문의 체계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천지 창조’로부터의 역사가 표현된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스탄체 안 교황의 서재 겸 도서관이었던 ‘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의 유명한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벽화가 있다. 이것은 원근법을 사용하여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플라톤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고, 바로 앞에서 턱을 괴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가 모델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미켈란젤로의 모습은 우울질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데, 이 우울질은 창조력의 원천이며 또 천재의 상징으로도 여겨지고 있는 요소이다. 이 시대에는 예술가가 철학자이고, 동시에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교묘히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벽화에는 라파엘로 자신도 검은 모자, 검은 옷을 입고 왼쪽 끝에서 두번째에 그려져 있다. 자신이 이 그림의 창조자임을 은근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바티칸박물관의 수없이 많은 전시실들 가운데 즐비하게 놓여 있는 헤아릴 길 없는 작품과 보물들을 어찌 한두 시간 안에 다 볼 수 있을 것인가? 바티칸박물관과 도서관, 미술관 등을 어느 정도 알기까지 보려면 몇 달이 걸려야 할 것 같다. 원래 바티칸박물관(Musei del Vaticano)은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이집트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미술품, 문헌,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고 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에 의한 내부의 벽화 ·장식으로 유명하다.
현재 박물관 정문은 바티칸로에 접해 있는데 정문 위에는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조각상이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나선형의 계단이 나타나는데 이는 1932년 교황 비오11세의 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 면적은 5만 5천㎡로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래층에는 회화관을 비롯해서 피오클래멘티노미술관, 이집트박물관, 키아라몬티박물관, 시스티나예배당 등이 있다. 2층에는 에드루이리아미술관, 지도 갤러리, 라파엘로의 복도 등이 있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현재 본관은 피오클래멘티노미술관 ·도서관 ·성(聖)유물관 ·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 실은 보르지아실(室) ·라파엘로실 ·지도실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미켈란젤로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성당 ·파오리나성당 ·니코로5세 성당 등도 미술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주요 작품을 보면, 고대조각으로 ‘아포크슈오메노스’ ‘벨베데레의 아폴로’ ‘벨베데레의 토르소‘ ‘라오콘’, 고대회화에 ‘오디세우스 이야기’ ‘아르드브란디니가(家)의 혼례도’, 중세회화에 ‘웨르기리우스 사본(寫本)’ ‘여호수아기(記)’, 그리고 르네상스회화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성체의 논의’ ‘아테네의 학당’ ‘그리스도의 변용’,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聖)히에로니무스’, 카라바지오의 ‘그리스도의 매장’ 등과 역사적인 고문서 ·공문서류도 소장되어 있다.
로마의 문화시설과 건조물
로마는 현대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지이며, 또 그 오랜 역사를 반영하여 고대로부터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로마에 아카데미를 설치하고 있다. 즉 학술회의(CNR), 린체이아카데미(이탈리아 아카데미의 후신), 로마대학, 가톨릭대학 의학부, 미술아카데미, 음악학교, 오페라극장, 국립도서관 외에 콜로세움, 카라칼라 황제 목욕탕 등 유적이 많다. 이밖에 베네치아광장·바티칸광장·포폴로광장·바르베리니광장으로 둘러싸인 지대는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시대에 걸친 도시계획에 의하여 건설된 지역으로, 이곳에는 많은 역사적 건조물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 몇 개는 현재 총리부·상하 양원 등의 정부기관 건물로 사용된다.
또 나보나광장·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 등 관광할 곳도 많다. 근대미술관·보르게제미술관·로마국립박물관·카피톨리노박물관 등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으며, 바티칸시국에는 바티칸도서관 및 바티칸박물관이 있다. 이밖에 성당과 옛 건조물에는 많은 미술품이 보존되어 있다. 고대로마 유적은 카피톨리노·팔라티노·카일리오·아벤티노·에스퀼리노·비미날레·퀴리날레 등 7개 구릉지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곳에 포로 로마노도 있다. 로마의 출판·예술활동은 밀라노만큼 활발하지 못하나, 현대미술 등 밀라노와는 색다른 독자적 경향을 지닌 것이 많다. 또 바티칸의 존재와 결부하여 로마에는 가톨릭 관계의 국제적인 연구·교육·문화기관이 많다. 특색 있는 문화활동으로서 영화제작이 있으며, 이것은 무솔리니 정권시대에 로마의 동쪽 교외에 건설된 치네치타가 그 중심이다. 1960년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여 시내에는 스포츠
시설이 많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있었던 포로이탈리코는 무솔리니 시대에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시의 북부, 테베레강 우안에 있으며 테베레강을 사이에 두고 대안에는 본래 올림픽촌이었던 공무원 아파트가 있다. 포로이탈리코에는 이탈리아 방송(RAI)의 공회당도 있다.
로마 바티칸미술관 소장. 아게산드로스-폴리도로스-아테노도로스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라오쿤은 트로이에서 아폴로신을 모시는 신관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트로이전쟁이 일어나자 신 아폴로는 그리스 원정군의 편에, 그의 신관 라오쿤은 그가 모시는 신보다는 그를 따르는 인간 트로이인들의 편에 서게 된다.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여기에 얽힌 이야기이다. 신관 라오쿤은 그리스 원정군이 목마를 이용한 속임수로 트로이성을 함락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목마를 성내에 끌어들이지 않도록 경고한다. 그리스 원정군 편에 가담하였던 아폴로신은 대단히 분노하였다. 이에 아폴로는 두 마리의 큰 뱀 퓌톤을 보내어 라오쿤과 그의 두 아들을 졸라 죽이게 한 후 그리스군의 목마가 트로이의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이 작품은 그리스 후기 헬레니즘 말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미술사에서 고전 고대의 양식에 대립하는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바로크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전설의 내용 역시 절제된 이상미를 추구하던 고전 고대의 양식보다는 보다 감정의 표현이 강해지는 헬레니즘 양식에 어울린다. 이 작품의 핵심은 고통의 절정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방식이다. 여기서는 뱀에 휘감겨 죽어가는 한 자연인의 육체적 고통도, 사랑하는 두 아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정신적 고통도 공간을 울리는 절규로서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시라면 라오쿤의 비극이 불안에 찬 예감과 현실적 고통과 지나간 고통에 대한 공감들 모두가 절절하고 섬세한 감정으로 표현되었으리라. 그러나 문학과는 달리 조형미술은 한 순간의 형태로서 그 ‘고통’과 ‘미’를 동시에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절규하는 고통의 극한 상태보다는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절정의 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 직전의 상태에 멈춤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케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조형예술이 자신의 미를 발견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최고의 규범적인 완전함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16세기에 발굴된 이래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찬미되고 예술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그 정신이 모든 예술 분야에 관여하게 되는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특히 18세기의 유명한 고고학자 빙켈만은 라오쿤상을 보면서 그리스 미술에 대해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는 역설적이면서도 너무나 적절한 표현을 부여하였다.
미켈란젤로 작품. 1536~1542년 작(作).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벽화. 교황 전용 예배당인 시스티나성당의 약 55평에 이르는 천장에 벽화를 그리라는 교황 율리우스2세의 명에 의해 당시 나이 33세인 1508년부터 시작한 작품이다. 약 5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시킨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는 그 장대한 크기와 궁형천장에 그려진 구약의 창세기편을 주제로 한 ‘아담의 창조’ ‘천지 창조’ ‘해와 달의 창조’ ‘원죄’ ‘노아의 방주’ 등의 내용으로 유명하다. 당시 교황의 총애를 받던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나머지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에게 벽화를 맡기도록 교황을 부추겼고, 높은 천정화를 그리기 위해 비계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떨어져 다치거나 죽기를 바랬다는 비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약 5년간의 작업 끝에 그의 조각가로서의 면모를 일신한 역작을 남기게 되었고 브라만테는 결국 영광스런 자리에 미켈란젤로를 추천하게 되고 말았다. 천정화가 완성된 후 24년이 지난 1536년 시작하여 6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시킨 성당 중앙벽면의 벽화가 프레스코화인 ‘최후의 심판’이다. 이 작품은 구태의연한 종교화로서의 품격을 버리고 인간의 신체가 갖는 아름다움과 표현력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추구해 나가려는 인본주의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벽화에 나오는 100여 명의 인물들은 모두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며 등장하는 천사들도 모두 날개가 없다. 또한 이들은 모두 나체로 등장하고 있다. 최후의 심판이 4분의 3 정도 완성되었을 때 교황이 이 작품을 친히 보러 왔고 그를 수행한 관리들 중 교황의 예식부장(지금의 의전실장)인 체세나가 나체의 군상이 예배당 같은 신성한 장소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며 ‘품위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고 배신적이며 목욕탕이나 술집에 어울린다’고 혹평을 서슴치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돌아간 이후에 체세나의 혹평에 복수하려고 악마들 사이에 뱀에게 다리와 몸통을 감기운 카론의 배에 타고 있는 미노스의 모습을 체세나로 그려 놓았다. 이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 외설시비는 더욱 강해져 게 피에트로 알레티노에 의해 미켈란젤로의 호모 취향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교황 파울로스3세에 의해 그림을 지워버리라는 명령을 받기도 하였으나 지우고 다시 그리기보다는 옷을 입히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말에 오늘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당시 교황의 명에 따라 인물들은 속옷을 입게 되었는데, 이렇게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가필을 한 사람은 다니엘 다보르테라는 사람이다. 그는 이 일을 마치고는 ‘속옷 장사꾼’이라는 별명을 평생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