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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2/10
 

몇 해 전 김탁환의 '불멸'과 김훈의 '칼의노래'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거 보려고 자습시간에 몰래 교실에 들어가서 TV로 보다가 수위 아저씨한테 걸려서 혼나고, 숙직하시는 선생님 방에도 찾아가서 같이 보자고 했다가 하필 선생님께서 눈병에 걸리셔서 결국 같이 보지 못하고 쓸쓸히 기숙사로 돌아갔던 추억이 있다. 물론 그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불려가서 0교시 내내 엎드려 뻗쳐를 했지.




내용에 대해서는 좀 있다가 왈가왈부하기로 하고, 일단 그 '드라마'에 대한 칭찬을 하자면 그 당시로서는 그 드라마에서 사용된 CG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라고 방영후기에 그렇게 주장하더라.) 그래픽으로 재현한 새끈한 남해의 경관과 이순신 함대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절도있는 함포 사격은 기숙사에 갇혀 사는 어린 영혼들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청율이 거의 50%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하는데, 암튼 그 시기에 반짝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나 역시 그때부터 이순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많고, 요즘은 과제에 치여 제대로 보진 않지만 이순신에 대한 책도 책장에 여러 권 꽃혀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분명히 이순신이라고 대답한다.




이 정도 해두고, 이제 원작 소설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 해보자. 입 간지러운거 겨우 참았다. 내용은... 참 말 할 가치고 뭐고 없을 정도로 지 꼴리는 대로 썼다. 김탁환 말로는 자신은 이순신의 좋은 점만 부각시켜져 있는 작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나쁜 점을 찾기 위해 존나 노력했고, 남들이 뭐라 욕하든 상관않겠다고, 서론에서 말했다.(아님 말고) 그래서 나도 뭐라 욕하기로 했다. 난 이 소설을 보고 서울대 나온 사람도 이렇게 멍청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사람이 이순신에게서 찾은 이순신의 나쁜 모습은 바로 열등감이다. 그가 무과에서 한 번 떨어졌다는 것 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4년 뒤에 다시 응시하여 합격했는데, 하필 첫 발령 받은 곳이 함경도의 동구비보라는 오지 중에 오지였다. 여기서도 그가 그 당시에 그리 주목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도 뭐 잘하면 서울에 있지. 왜 그 멀고 먼 지방에 가냐. 아무튼 김탁환은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흔히 라이벌로 나오는 원균은 이순신의 무과 몇년차 선배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몇 기수 이런거로 선후배 따지는거 심하지. 게다가 후일 전라우수사가 되는 이억기도 이순신보다 몇 년 선배로 나온다. 실제로는 그런지 잘 모르겠다. 요새 책에서 손 놓은지 좀 오래되서




그래서 이순신은 그들에 비해 존나 열등감에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뛰어넘으려고, 그들 위에서 그들을 지배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무과 얘기만 나오면 발끈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마치 서울대생과 연대생이 경북대생한테 "우린 인서울 중에 최고인데. 너는 경북 국립대 중에서 최고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했을때 경대생이 할 수도 있는 반응을 보는 것 같았으며,(미안. 괜히 다른 학교 이름 적었다가 대학간에 분쟁 일으키기 싫었어.) 게다가 이순신은 장계까지 조작하는데 그것을 알아챈 원균이 적당히 타이르고 돌아가자. 이순신은 난중일기라고 이름 붙인 다이어리를 꺼낸 뒤 책상에 엎드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은 마치 사춘기 여중생이 엄마한테 대들다 "엄마가 뭘 알아!!" 라고하면서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존나 이건 내가 지금 무러 보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아나........ 지금도 어이가 없어서 쓰다가 오타났다.ㅋㅋㅋ(무러 -> 뭘)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는 열등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제대로 표현도 못 한 것 같았다. 작가의 삶을 봐도, 어린 내가 이런 말 하기엔 좀 죄송한 소리긴 하지만 깊은 열등감을 느낄 경험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 보였다.




근데 나 역시 그 책을 읽던 당시에는 첫 수능을 발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때라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순신이 다이어리를 꺼내들고 흑흑 하면서 우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스트랄했다. 김탁환은 불멸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꽃 피는 인간의 참 모습, 그리고 예술혼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대표되는 허균, 그의 스승 손곡 이달, 그리고 의술의 완성-즉 자신의 학문의 완성을 추구하는 문둥병 의원 최중화의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그려낸 이순신의 모습은 뭔가 좀 아니었다. 열등감을 표현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원균을 통해 표현했다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무과도 늦게 급제한 이순신이 너무 질투나 로비를 해서라도 그을 끌어내렸다 이렇게. 또 있다. 이일. 그 역시 신립의 그림자에 싸여 늘 2인자로만 여겨지던 장수였다. 그가 상주에서 패하고 돌아오면서 신립에게 허위 사실을 알려 방심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로. 또 있네! 선조도 있잖아. 열등감의 화신! 임마 선조같은 완소 소재를 제쳐두고, 선조를 가지고 열등감을 표현했으면 훨씬 고차원적으로 열등감을 표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서울대 나온 작가가 그 정도 수준높은 표현력이 없어서 제쳐둔건 아닐거고. 아무래도 원균, 이일, 선조의 감정묘사는 영 부족했다.




그래도 이 소설이 없었으면, 내가 이 정도로 이순신에 빠졌을까. 그리고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이순신 연구자들이 벌떼같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김탁환은 어쨌든 불멸을 통해 멸(滅)했던 이순신을 살리는 데 성공한 것 처럼 보인다. 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재밌게 보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불멸.

자주 가는 블로그의 글을 읽다가 노천명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한 구절이 저를 미소짓게(사실은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맑게 살다 간 것 같았다.'

 

저는 솔직히 그녀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수능 공부할 때 그녀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시 몇 개 접해본 것 뿐. 언젠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나네요.

 

"노천명의 시 말이지, 특히 '사슴'을 보면 사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눈에 선해."

 

노천명. 그의 삶은 실제로 어땠을까? 재수학원을 다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던 그녀의 삶은 위와는 좀 다른 듯 해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1년이 다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녀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고고함을, 나쁘게 말하면 괴팍함을 이길 사내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고고한 삶과 친일은 관계가 없었나봅니다. 그녀 역시 친일 행위를 하였고, 친일시도 몇몇 발견되었지요.

 

몇몇 일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나는 일화가 당시 해방 후 문교부(지금으로 말하면 교육과학기술부-_-;;)에서 그녀의 친일행위 때문에 그녀의 시를 싣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녀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문교부에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교부 장관실 문을 발로 차 들어가 책상에 다리 하나를 걸친 후(-_-;;) 문교부 장관 앞에서 친일 행위를 한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작가들의 작품도 전부 싣지 마라고, 그렇게 협박을 했는데, 그러고 보니 교과서에 실을 시인이 '윤동주, 이상화, 이육사(일명 저항시인 3인)' 이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ㅋㅋ 어쩔 수 없이 친일 행위를 한 작가의 작품들도 싣게 되었다, 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가끔 글로 사람을 판단 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글을 쓸 때 항상 조심하고 조심하는데요. 하지만 작가들과 그들의 삶을 돌아보자면, 고작 글 몇 편으로 사람의 인격과 인생을 논하기에는 너무 경솔한 생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약간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업적으로도 그의 인격을 논하기에도 모자람이 많지요. 과학사를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있는데요. 이거는 다음에 관련 도서를 읽으면 정리해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마무리, 인생의 묘미는 반전과 예외라지요? ^^

 

p.s. : 왠지 이런 댓글 달릴 것 같아서. 그녀의 고고한 삶과 친일 행위를 엮어 그녀의 삶이 모순이었다. +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일은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한낱 인간이 타인을 제대로 판단하고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말이 모든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경솔한 생각이지요. 아무튼, 이래서 세상이 재미있고, 또 어렵나 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딱! 노천명의 수필집을 읽어볼까요? ^^

학문의 즐거움? 배움의 자세에 대한 책!

2008.10.04 22:58 | - 이번에 봤던 | 낭객

http://kr.blog.yahoo.com/cyclonics/97 주소복사

학문의 즐거움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방승양
출판사 김영사



   예전에 윤리시간에 들었던 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성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석가모니가 자신의 생애에 대한 책을 남겼는가? 아니, 없다. 불경은 그가 한 말을 쓰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공자는? 논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지 공자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앞에서 예를 들어주었는데도 성서라고 말하면 그저 눈치없는 사람이고. 없다. 정말 없다. 하다못해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자서전 하나 남겨놓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그러한 업적들을 남겼을까 하고. 그들의 삶의 자세가 마치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는 원조 맛집의 비결 마냥 꼭꼭 숨겨진 것 같아 약이 올랐다. 그들은 시대가 선택해 준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학문의 즐거움. 책 이름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마음에 들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1970년 복소 다양체의 특이점에 관한 연구로 필드상 수상, 필드상이야 수학계의 노벨상. 아니, 오히려 나이제한과 4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상이기에 노벨상보다 더 권위있게 느껴지는 상을 받은 일본의 수학자. 그가 그의 인생을 이 책에 담아놓았기에 원조 맛집의 비결을 훔쳐보는 것처럼 호기심 있게 책을 읽어보았다.


  먼저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학문을 하면 어떻게 즐거운지, 얼마나 즐거운지, 왜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그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은 느꼈다고 적고 있다. 오히려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 이름은 황농문 교수가 쓴 ‘몰입’이라는 책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 책에서는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즐겁고 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지를 써놓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대신 학문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자세를 적고 있다. 이렇게 하라는 식의, 선배 학자가 후배 학자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 자세랄 것도 크게 대단한 것이 없다. 소박하게, 끈기있게. 이렇게만 배운다면 어느 계기에 의해 창조에 도달할 수 있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인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그의 인생을 통해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끈기를 갖게해주신 우직한 성격의 아버지,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신 자상하신 어머니.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 해준 학창시절 친구들. 체념하는 자세를 깨닫게 해준 하버드 시절의 천재들. 젊은 시절,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다 실패한 논문 등. 그가 이렇게 글을 통해 말한 것보다도 나는 그가 이런 것을 쓰도록 만든, 그의 내면에서 끓어 넘치는, 무엇을 통해서든 배움을 얻으려는 그의 태도가 더 마음에 닿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체념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믿으려 하고 천재들과의 능력의 괴리로 인해 훨씬 괴로워했을 것이고, 논문에서 실패했다면 그의 책에서 말했듯 다른 많은 수학자들과 같이 부끄러움에 목숨을 끊기도 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그는 그런 경험에서 ‘배웠다’. 소박하지만 끈기 있게.


  저자 역시 그 자세로 일관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책 역시 요즘의 자극적인 책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차분하면서도 깊은, 냄새로 치면 녹차향이랄까? 그런 문체로 씌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지, 글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단조로움 때문에 약간 읽기가 따분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요즘 세대가 읽기에는 실질적인 자극이 좀 더 많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에도 역시 이 책에서와 같은 자세를 가지라고 늘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보면서는 저자의 진실된 권유보다는 감성으로 치장된 거짓된 강요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가 책의 깊이와 저자의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직 배움이 짧은 내가 이 책의 깊이 전부를 가늠할 수 는 없지만, 나 역시 ‘배우면’ 될 일이다. 소박하지만 끈기있게 말이다.


  이 책의 첫 머리를 읖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을 어느 정도는 잊어버리게끔 되어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왜? 도대체 왜 배우는 것일까? 저자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데 처음에는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약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인터넷 도서 쇼핑 사이트를 통해서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내용이 조금씩 기억나면서 내 안에서 서서히 정리됨을 느꼈다. 지금 내가 이 책의 98페이지에 무엇이 씌어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난다. 난 책을 통해 ‘배운’것이다. 저자는 삶의 어디에도 통하는 그런 지혜를 익히기 위해 배운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배우는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어쩌면 배우는 자세 그 자체가 저자가 말하는 지혜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p.s : 윤 교수님, 제가 쓴 글이 맞습니다. 같은 글 검색되었다고 0점 처리되는 일은 없기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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