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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2/10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2008.11.23 22:59 | - 오늘 하루는 | 낭객

http://kr.blog.yahoo.com/cyclonics/111 주소복사




우리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

어두운 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있다.

 

만약 이런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지 못했거나

 

알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만이

물의 존재를 알 수 있다.

 

 

-J. R. R 톨킨

 

 

 

진정으로 이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때 까지...

자주 가는 블로그의 글을 읽다가 노천명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한 구절이 저를 미소짓게(사실은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맑게 살다 간 것 같았다.'

 

저는 솔직히 그녀의 글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수능 공부할 때 그녀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시 몇 개 접해본 것 뿐. 언젠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나네요.

 

"노천명의 시 말이지, 특히 '사슴'을 보면 사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눈에 선해."

 

노천명. 그의 삶은 실제로 어땠을까? 재수학원을 다닐 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던 그녀의 삶은 위와는 좀 다른 듯 해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1년이 다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겠지요.

 

그녀는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고고함을, 나쁘게 말하면 괴팍함을 이길 사내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고고한 삶과 친일은 관계가 없었나봅니다. 그녀 역시 친일 행위를 하였고, 친일시도 몇몇 발견되었지요.

 

몇몇 일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나는 일화가 당시 해방 후 문교부(지금으로 말하면 교육과학기술부-_-;;)에서 그녀의 친일행위 때문에 그녀의 시를 싣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그녀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문교부에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교부 장관실 문을 발로 차 들어가 책상에 다리 하나를 걸친 후(-_-;;) 문교부 장관 앞에서 친일 행위를 한 작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작가들의 작품도 전부 싣지 마라고, 그렇게 협박을 했는데, 그러고 보니 교과서에 실을 시인이 '윤동주, 이상화, 이육사(일명 저항시인 3인)' 이 정도 밖에 남지 않아서ㅋㅋ 어쩔 수 없이 친일 행위를 한 작가의 작품들도 싣게 되었다, 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가끔 글로 사람을 판단 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글을 쓸 때 항상 조심하고 조심하는데요. 하지만 작가들과 그들의 삶을 돌아보자면, 고작 글 몇 편으로 사람의 인격과 인생을 논하기에는 너무 경솔한 생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약간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업적으로도 그의 인격을 논하기에도 모자람이 많지요. 과학사를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있는데요. 이거는 다음에 관련 도서를 읽으면 정리해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마무리, 인생의 묘미는 반전과 예외라지요? ^^

 

p.s. : 왠지 이런 댓글 달릴 것 같아서. 그녀의 고고한 삶과 친일 행위를 엮어 그녀의 삶이 모순이었다. +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일은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과연 한낱 인간이 타인을 제대로 판단하고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말이 모든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경솔한 생각이지요. 아무튼, 이래서 세상이 재미있고, 또 어렵나 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딱! 노천명의 수필집을 읽어볼까요? ^^




언제까지고 오랫동안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바닥이 높은 곳에 있었네. ㅡㅡ;;



'그 많던 치즈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받았으니, 2년 정도면 많이 쓴 거지, 뭐.

아까워서 중요한 일 아닐 때는 잘 쓰지도 않았건만,

이젠 누구한테 이런 걸 받아보니... ㅠ

교내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보며

2008.11.15 23:56 | - 내가 보는 세상 | 낭객

http://kr.blog.yahoo.com/cyclonics/106 주소복사

적군의 공격을 무효화 시키고 아군을 방어하는 전략,전술의 하나로 적군이 타격해야 할 타겟을 많이 만들어 공격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어. 그것을 역응용한것이 다탄두미사일이고. 적의 기만이 근본에 깔린 전략이지. 뭐 전략, 전술의 본질이란게 적을 기만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요런건 말이지, 현대에 와서 정치, 특히 한국의 정치가들이 엄청나게 많이 활용하고 있지. 뭐 있잖아,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거기서 되도안하게 딴지 걸어서 상대가 욱하게 만들어 논지를 흐리게 하는 거. 한국의 언론도 그런 방법을 많이 쓰곤 하지. 흔히 법대생들 책(저자가 이상재였나?)에서 볼 수 있는 옳지 않다고 아니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보 만드는 식의. 또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 하는 놈들이 꼭 있고.

 

가끔씩 학교 게시판을 보면 그런 의도인건지 아니면 그냥 구원불가능한 병신인건지 꼭 그러는 애들이 있어, 국제화 시대에 우리 언어를 보호하기 위한 의미에서 외래어 사용을 줄이자.(이 내용이 맞나 모르겠네 몇 달 되어서) 라는 내용의 글이 학교 게시판에 올라왔었어. 그런데 거기서 국제화라는 용어가 맞지 않다니 글로벌 시대라니 뭐 어쩌니 하면서 국어시간에 뭐했냐고 이상한 놈이 댓글을 다니까 글쓴이가 또 욱해서 싸우는 바람에 좀 괜찮아 보였던 글이 순간 시궁창이 되는건 순식간이고.

 

요즘에는 학교가 바뷔치 사건이 좀 떠들썩해. 다른 학교 애들은 모르니까 대충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자면,

 

바뷔치라는 우리 학교(경북대) 북문에서 토스트랑 김밥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는데 되게 맛있어, 다른 학교에서는 흔히 이삭이 인기라던데 우리 학교 앞에서는 이삭이 발려. 여기 사장도 되게 싹싹하고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 학생들 아침 굶고 올까봐 아침 6시 30분 정도부터 북문 앞에서 김밥이랑 샌드위치를 팔아. 김밥 사면서 말 몇마디 하면 사람 되게 괜찮아 보여. 어찌보면 보통 상인정신이 아닌거지. 중앙로에 2호점까지 차렸어. 대단하지.

 

그런데 몇 달 전에 5m도 안되는 거리에 토스트 가게가 하나 더 생겼어. 난 한 번도 거기 이용한 적은 없지만, 그런데 거긴 이상하게 평판이 안좋더라구. 집에 가는 길에 두 가게를 지나가는데 하루는 새로 생긴 가게 바로 밑에 빨간 스프레이로 또박또박하게, 그리고 커다랗게 '배신자'라고 쓴 글이 보이더라구. 지나가면서 이 동네 참, 나도 편의점 야간알바 하면서 강도한테 털려봤지만 보면 볼수록 무서운 동네다. ㄷㄷ 하면서 지나갔는데.

 

얼마전에 학교 게시판(복현의 소리)에 새로 생긴 가게 아주머니의 아들인 사람이 호소문을 썼더라구. 뭔 내용이냐 하면, 그 새로생긴 가게에 바뷔치 사장이 가서 행패를 부렸나봐. 거기 유리창을 막 깨고 아주머니를 때리고, 가게 밑에 배신자라는 말도 그 사장 짓이라고 그렇게 썼더군.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게라 위기감을 느꼈었나보지, 잘 모르겠지만.

 

그 글이 올라오니까 사람들이 이제 바뷔치 욕하고 난리난거지. 뭐 그렇게 좋아보이던 사람이 양의 탈을 쓴 악마구나. 개쓰레기구나 하면서(실제로 이 정도의 욕설이 학교 게시판에 난무했어. 익게 아니야 실명제야) 바뷔치 불매운동 하겠다고 하면서 아주 난리가 난거지. 그 일 터지고 지나가도 바뷔치는 항상 사람 많긴 하다만 -_- 한국인들 원래 '배신'이란 것에 상당히 민감하잖아. 그 것 때문에 괘씸죄까지 크리티컬 된거지.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의 내용도 많았고.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바뷔치 사장이 한 학생의 아이디를 빌려 해명글을 올렸어. 그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 그러니까 호소글 작성자의 이모되는 사람이 바뷔치 사장이랑 다른 곳에서 같이 일을 했었나봐. 그러다가 서로 찢어져서 사장은 여기 와서 바뷔치를 차렸고, 그 이모되는 사람이 얼마전에 바로 옆에 가게를 만들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넘겼나봐. 그것 때문에 동종업게 뭐시기 하는 법이니 하면서 그것때문에 바뷔치 사장이 배신감을 느껴 거기서 행패를 부렸데, 유리창 깨고 소리지른거 까지는 맞는데 때린적은 절대 없다고. 아무래도 서로의 글에 어느 정도 과장을 있겠지.

 

그 글이 올라오니까 이미 감정이 극으로 치달은 학우들은 사과글은 안올리고 해명글만 올려제낀다며 더 격하게 몰아붙였지. 뭐 법이고 자시고 당신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으니 장사 접고 나가라, 주인 아주머니께 무릎꿇고 백번 빌어라 이런식으로. 말이지. 그렇게 가열되니까 어느샌가 호소글 올린 사람이 글을 지웠더라구. 내가 보기엔 분명 호소글도 문제가 있어 보이던데, 자기 입장대로 써서 어딘가 거짓내용도 있어보였고.

 

그렇게 격해지니까 바뷔치 사장이 또 글을 올렸어, 딱 2줄로 정말 죄송하다고 백번 사죄하겠다는 내용으로 간단하지만 처절하게 ㅋ

그 글에도 역시 쫓아가서 북문에서 발 못 디디게 하겠다는 식의 내용의 리플이 점철되었지. 살벌하더라구.

 

그러니까 자신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한 학우가 글을 올렸어.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쳐서 마녀사냥을 하는건 아니냐고. 법대생인듯 한데 약간 훈계하는 식으로 아는척 하면서 법률 용어를 살짝 내비치며 글을 썼어.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을 암시하는 냄새도 살짝 풍겼고. 내용은 솔직히 맞는 말이야.(비하내용 말고 -_-) 솔직히 그 사건에 달린 리플과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감정이 격해진 듯한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어.

 

거기에 이제 가관인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지. 고등학교는 제대로 공부하고 졸업했는지, 언어 5등급 찍고 여기 들어왔는지(몇몇 과는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_-) 니네 엄마가 그렇게 당했으면 그따위 소리가 나오겠냐고, 넌 참 이성적이라고 세상살기 좋겠다는 식과 그보다는 차별되는 척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시덥잖은 용어로 무장시켜 글쓴이가 뭐 무지의 오류를 범했다니 어쩌니 하면서(내가 보기엔 리플쓴 사람이 무지의 오류를 범한 것 같던데) 공부 좀 똑바로 하고 글 쓰라 하고, 또 어떤 다른 법대생인듯한 사람은 리걸마인드가 어쩌니 하면서 그렇게 끌고 가니까 글쓴이도 빡쳐서 리걸마인드 언급한 사람과 언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또 글이 시궁창이 되더라구. 그렇게 69개의 리플을 넣고 나서 글쓴이가 '참.. 제가 너무 깨끗한 물에 들어와서 미꾸라지를 옹호하려니...ㅎ' 라는 멋진 명언을 남기고 사라지고.

 

보다못한 다른 사람이 이성적으로 나가니까 개발려서 그런지,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그러니까 요즘 세상도 참 삭막하고 차가운데 사람들 너무 바뷔치 사장을 몰아가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부드럽게 써서 글을 올렸어. 근데 거기에도 너네 엄마가 당해도 바뷔치 사장이 잘도 불쌍하겠다라는 글이 또 올라오고,(도대체 이 새낀 어떻게 이 학교 들어온거야? 그래도 나름 경북에서 제일 가는 국립대 아냐?) 삭막하고 차가운건 바뷔치 사장이 아닐까요? 라는 말장난 같은 글도 올라오고. 아까 리걸마인드 운운하던 리플러도 와서 또 되도안한 글 남기고.(이 인간 사시 붙으면 나 절대 법 안어기고, 소송 걸릴 일 없이 조용히 살 것을 맹세한다.) 참 글의 논지 개무시되고 게시판 시궁창 되는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기는 싫어. 하지만 생각해봐,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남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전혀 하지 않지? 나 역시 이 글에서 틀린 것이 있을 순 있어. 아니, 많이 틀렸을거야. 솔직히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난 알지 못해. 그리고 내 작문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지금 내가 쓴 이 글. 누가 틀렸다는 것을 납득할 만하게 지적해 준다면, 분명하게 사과하고 그리고 감사를 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글을 수정할거야.

 


흔히 조화의 극치라 말하는 태극조차도 적과 청이 섞이지 못하고 있는 역설의 문양이지. 하지만 왜, 왜! 태극이 조화를 뜻할까? 내 생각엔 태극은 바로 진행형이기 때문인 것 같아. 태극 문양에서(태극, 삼태극 모두)는 서로가 어느 중심을 가지고 섞이는 진행형이야. 그냥 태극을 섞인 상태를 의미하는 보라색으로 하지 않고(그러면 좀 어색하겠다 -_-) 섞이는 과정만을 하는 이유는, 인간은 완벽한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행형인, 지금의 태극문양을 조화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 우리는 4차원, 시간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한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해. 우리는 완벽한 조화도 이루지 못해. 하지만 우리는 추구하고 있잖아.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만큼 물리학이 발전해왔고, 수학도 발전해왔어. 그래서 무한이란 개념은 무한히 많아지고 있다. 라는 거친 이해도 할 수 있게 되었어. 조화라는 것도 예전에 비해서는 수많은 성취를 해왔어. 불과 6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위험하진 않잖아? 우리는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불안정하고 틀릴수도 있고,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완벽을 추구하기에 인간이야.

 

글이 너무 멀리까지 나아갔네. 서로, 서로의 정의를 무너뜨리려 하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고, 건전한 비판을 통해 발전해나가는게 제일이 아닐까? 글의 진짜 논지를 더럽혀가며 나약한 자신의 논리을 방어하기보다는.

친구의 중간고사 대신, 대구향교

2008.11.15 21:06 | - 이번에 갔던 | 낭객

http://kr.blog.yahoo.com/cyclonics/105 주소복사

  두 달 전 쯤이었나?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같이 살고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제 자취방에 자주 놀러오는 친구가 어디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뭐 중간고사 대신이라나 뭐라더나, 주변의 향교나 사찰을 다녀와서 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하더군요. 여행을 좋아하는 저이기에 거래는 성립(?)되고, -_- 돈 없으니 제일 가까운 곳에 가자고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대구향교가 나왔습니다.


대구 향교의 위치를 야후 지도로 찾아보았습니다.






반월당역에서 내려서 명덕역 쪽으로 쭉 내려오다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다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대구향교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소재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735-4번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 李成桂)께서는 신라(新羅) 이래의 불교 정책을 억제하고 일상 샐활 예절의 근본이 되는 儒學(유학)을 널리 펴고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해방하여 단군(單軍)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현하고자 국민교화정책을 폈었다. 그래서 전국 234개 군현(郡縣 현재 지방자치단체단위)에 향교를 세웠으니 이때가 1398년 (단기 3731년) 태조 7년이었다.

향교의 기능으로서는

첫째 교육을 통해 백성을 문맹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큰 목적과
둘째 지역전통문화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선도역할과
셋째 공자님을 위시한 여러 성현 군자와 큰 스승을 모셔 제례를
      올림으로서 예절의식을 널리 확산하고, 도덕적 인간상 구현과
      각인(各人)의 자아성취(自我成就)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다.

우리 대구향교도 위와 같은 목표를 잘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이전(移轉), 중건(重建)하는 변천의 과정을 겪었다.

▷▷▷ 연 혁

1.1398 (태조7년)지금의 중구 교동(校洞)에 처음 세움
2.1592 (선조25년)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림
3.1599 (선조32년)현 달성공원으로 옮겨 지음
4.1605 (선조38년)불길한 징조가 있어 다시 교동으로 돌아옴
5.1625 (인조3년)명륜당(明倫堂) 지음
6.1932 (일제 침략시대)교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옴
7.1973.11.13.~74.10.3명륜당, 정삼문(正三門) 사무실을 철근 콘크리트로 크게 다시 고쳐지음
8.1990.10.7.동재(東齋), 서재(西齋), 낙육재(樂育齋) 복원
9.1994.4.12.~95.9.30.유림회관(儒林會館) 정삼문 지하주차장 전통정원 착공 및 준공

- 출처 : 대구향교 홈페이지(http://www.daeguhyanggyo.org/index.html)


반월당에는 자주 와 봤지만(주로 중앙로 교보문고에 가는데 버스를 타고 중앙로 농협에 내리면 너무 멀고, 오히려 반월당 쪽에서 내리는게 더 가깝거든요. 그리고 가끔 영풍문고에도 가는데 항상 매트로 쇼핑몰에서 30분쯤 헤메다 지상으로 나오면 반대편으로 나오고 -_-;; 여긴 자주 와도 매일 헷갈리네요 ㅠ)이쪽 밑으로는 내려올 일은 없기에 길을 몰라 좀 헤메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께 여쭈어 겨우 도착했습니다.







네, 제 14회 한시백일장이랑 가을을 맞이해 뭔가를 한다고 나와있군요. -_-;; 주변에 차도 많고 제가 생각한 향교의 이미지랑 조금 다르더군요.







친구놈의 인증샷입니다. 보고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ㅎ 밥샵이 아닙니다. 무서워 마세요. 해치지 않아요.







이번엔 안내판에서, 한때 짤방으로 좋아했던 '존나좋군?'을 따라하는 제 친구입니다.







이번엔 저 입니다. -_-;;







이제 향교로 들어가겠습니다.







향교 안은 바깥과는 정말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낮아진 가을햇살이 부드럽게 향교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침묵.









좌우를 한 번 찍어 보았습니다. 아까 전 전경 사진에서 왼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향교에 기부금을 기부한 사람을 적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명륜당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명륜당은 주로 강연하는 곳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반대편에는 낙육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서관과 같은 역할과 함께 학문연구를 했다고 나와있네요. 저희가 이 곳을 찾았을 때에도 몇몇 분들이 안에서 공부하고 계셨습니다.







공자상의 모습도 보입니다.







낙육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설정샷입니다.







이번엔 위로 올라가서 양사재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유생들을 선발하여 기숙, 강학하고 향시를 치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대성전은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 곳을 공사하던 분들은 전부 무형문화재시더군요. 대성전은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입니다. 연2회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5분만에 다 둘러보고 하릴없이 앉아있는 친구입니다. 향교내는 절대 정숙, 금연인데 제 친구는 참 잘 지켰습니다. ㅋㅋ







양사재와 대성전 사이에 있는 널찍한 공간입니다. 한 번 찍어 보았습니다.







너무나 탐방이 일찍 끝나버려 어이없는 사이, 친구가 화장실을 찾으러 명륜당 뒤로 갔습니다. 저도 그곳으로 가서 아름다운 명륜당의 처마를 찍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닭장이 있더군요. 요놈 사진에선 작게 나왔지만 엄청 큰 놈이었습니다.







암탉도 같이 있었습니다. 위에 작은놈이 암탉입니다. 달걀은 없더군요. 아깝..;; 있어도 들어갔다간 수탉한테 엄청 쪼이겠지만 ㅠ







호기심에 명륜당을 열어보았습니다. 안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책 읽는 모습을 한 친구의 설정샷입니다. 실제로는 저렇게 열심히 공부.. 하나?ㅋ







명륜당을 나왔습니다. 문 제대로 닫고 나왔습니다. ㅡㅡ;;







이번엔 유림회관에 들어가보았습니다.







안에는 별거 없었습니다. 관리실이 있어서 그 곳에서 안내책자를 얻어올 수 있었습니다.







득템을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맥주병을 잡으면 박카스병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는 최홍만씨에 비해서는 제 친구는 아담사이즈입니다.







다시 안내문이 있는 입구로 나왔습니다. 이건 안내판이 있던 곳 옆에 있던 비석입니다. 그런데 어라? 뒤에 대나무 색깔이 검네? 오죽(烏竹)이구나. 처음보는 오죽이라 마냥 신기했습니다.







가까이서 찍어 보았습니다. 오죽을 구경하고 저희는 탐방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탐방은 충남 아산 현충사를 다녀올까 합니다. 그럼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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