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윤리시간에 들었던 말이 있다. 흔히 말하는 성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자. 석가모니가 자신의 생애에 대한 책을 남겼는가? 아니, 없다. 불경은 그가 한 말을 쓰고 해석한 것일 뿐이다. 공자는? 논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지 공자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앞에서 예를 들어주었는데도 성서라고 말하면 그저 눈치없는 사람이고. 없다. 정말 없다. 하다못해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자서전 하나 남겨놓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그러한 업적들을 남겼을까 하고. 그들의 삶의 자세가 마치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는 원조 맛집의 비결 마냥 꼭꼭 숨겨진 것 같아 약이 올랐다. 그들은 시대가 선택해 준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님께서 이 책을 추천해주셨다. 학문의 즐거움. 책 이름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마음에 들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1970년 복소 다양체의 특이점에 관한 연구로 필드상 수상, 필드상이야 수학계의 노벨상. 아니, 오히려 나이제한과 4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상이기에 노벨상보다 더 권위있게 느껴지는 상을 받은 일본의 수학자. 그가 그의 인생을 이 책에 담아놓았기에 원조 맛집의 비결을 훔쳐보는 것처럼 호기심 있게 책을 읽어보았다.
먼저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학문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학문을 하면 어떻게 즐거운지, 얼마나 즐거운지, 왜 즐거운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그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은 느꼈다고 적고 있다. 오히려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 이름은 황농문 교수가 쓴 ‘몰입’이라는 책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 책에서는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즐겁고 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지를 써놓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대신 학문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자세를 적고 있다. 이렇게 하라는 식의, 선배 학자가 후배 학자들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 자세랄 것도 크게 대단한 것이 없다. 소박하게, 끈기있게. 이렇게만 배운다면 어느 계기에 의해 창조에 도달할 수 있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인 창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그의 인생을 통해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끈기를 갖게해주신 우직한 성격의 아버지,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신 자상하신 어머니.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 해준 학창시절 친구들. 체념하는 자세를 깨닫게 해준 하버드 시절의 천재들. 젊은 시절,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다 실패한 논문 등. 그가 이렇게 글을 통해 말한 것보다도 나는 그가 이런 것을 쓰도록 만든, 그의 내면에서 끓어 넘치는, 무엇을 통해서든 배움을 얻으려는 그의 태도가 더 마음에 닿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체념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믿으려 하고 천재들과의 능력의 괴리로 인해 훨씬 괴로워했을 것이고, 논문에서 실패했다면 그의 책에서 말했듯 다른 많은 수학자들과 같이 부끄러움에 목숨을 끊기도 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그는 그런 경험에서 ‘배웠다’. 소박하지만 끈기 있게.
저자 역시 그 자세로 일관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책 역시 요즘의 자극적인 책과는 다르게 소박하고 차분하면서도 깊은, 냄새로 치면 녹차향이랄까? 그런 문체로 씌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지, 글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단조로움 때문에 약간 읽기가 따분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요즘 세대가 읽기에는 실질적인 자극이 좀 더 많은,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에도 역시 이 책에서와 같은 자세를 가지라고 늘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책을 보면서는 저자의 진실된 권유보다는 감성으로 치장된 거짓된 강요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가 책의 깊이와 저자의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직 배움이 짧은 내가 이 책의 깊이 전부를 가늠할 수 는 없지만, 나 역시 ‘배우면’ 될 일이다. 소박하지만 끈기있게 말이다.
이 책의 첫 머리를 읖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얻은 지식을 어느 정도는 잊어버리게끔 되어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 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가? 왜? 도대체 왜 배우는 것일까? 저자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데 처음에는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약간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인터넷 도서 쇼핑 사이트를 통해서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내용이 조금씩 기억나면서 내 안에서 서서히 정리됨을 느꼈다. 지금 내가 이 책의 98페이지에 무엇이 씌어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난다. 난 책을 통해 ‘배운’것이다. 저자는 삶의 어디에도 통하는 그런 지혜를 익히기 위해 배운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배우는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어쩌면 배우는 자세 그 자체가 저자가 말하는 지혜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p.s : 윤 교수님, 제가 쓴 글이 맞습니다. 같은 글 검색되었다고 0점 처리되는 일은 없기를.. 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