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에는 한창 시험기간이었습니다. 늘 답답하고 퀴퀴한 열람실 구석에서 혼자 앉아 공부를 하다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때로는 토론이 잡담으로 흘러 떠들썩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서로 모르는 것을 질문해가며 서로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는 점만큼은 정말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공부하는,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루는 공부를 하다가 약간 긴장이 풀어진 틈을 타서 갑자기 이런 물음이 저에게 날아왔습니다. '꿈'이 뭐냐는 질문. 살짝 당황했습니다만 이내 대답했습니다. 천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두 가지 더 붙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이라는 말과, 그리고 뭐가 되고 싶기보다는 남고 싶다고.
'지금 현재는' 천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 바뀔 수도 있다. 이게 제가 정말로 전하고자 했던 말이었는데, 마치 제가 지조도 없이 이리저리 꿈을 바꾸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싫어서 '지금은' 이란 말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근히 제가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ㅎㅎ;;
사실 저는 시간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 영원한 친구, 영원한 꿈. 그런 것에 대해서 솔직히 믿지 않습니다. 봄과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싶으면 여름이 눈앞에 서있고, 가을이 잠시 들렀다 가면, 모든 것을 차갑게 식혀버리는 겨울이 오듯이. 성함이 있으면 쇠함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모든 것이 처음처럼 그대로, 영원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그 순간을 내가 알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현재의 소중함과,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한 집념이 더욱 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가도 언제 또 꿈이 바뀔 지 모르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향해 달려가자. 그러다가 꿈이 바뀌면,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한 번 씩 웃고는 다시 떠나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이 바뀌더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렇게 노력하는 자세로만 남아있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저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고, 그만큼 뜨거운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뭐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더니 더 마음이 편해지고, 무엇보다도 다시 제가 가고 싶었던 길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끝날 때까지, 어디까지 내가 달릴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 보자고...
하루는 한 동생이 풀이 죽어 공부방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저처럼 고민도 많고 방황도 많이 하는 것 같은 애라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왜 그런지 물어보았습니다. 천문학이나 대기과학 처럼 비 주류 학문을 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바로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말해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주제넘게도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 학과 나와서 천문학이나 대기과학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꿈이 바뀌어서 지금과는 다른 생활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나중에 꿈이 바뀌거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지금 이때, 우리가 최선을 다해 꿈을 위해 노력했던 그 기억이 있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힘이 되지 않을까?" 라고...
이 글을 쓰다가 위의 말과 같은 경우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바로 안철수씨, 이 분은 사실 서울대학교 의학과 출신입니다. 그런데 컴퓨터에 미쳐서, 지금 컴퓨터를 치료하는 '컴퓨터 의사'가 되셨지요. 그 분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참 찾아보았지만 예전에 보았던 것이라 못 찾겠네요.ㅠ 여하튼, 그 기사의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 보면 안철수씨에게 서울대 의대 시절의 생활이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안철수씨는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물론 의학적 지식은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의대 시절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 기억이 나중에 연구를 할 때 그 때도 그렇게 공부했는데.. 라면서 계속 그 길에 정진할 원동력이 되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참 인상깊었던 기사였습니다.
저도 이런 의도로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과연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요즘처럼 말 잘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참 부러운 요즘입니다. 제가 말을 조금만 더 잘 했으면, 그 애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