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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2/10
 

솔직함이란 것이 언제나 미덕일까?

2009.02.12 13:40 | - 滿 이십년을 | 낭객

http://kr.blog.yahoo.com/cyclonics/140 주소복사

벌써 2년 전 일이네... 재작년 대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친구가 하나 있다. 같은 과는 아니고 수업을 듣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애는 흔히 괜찮다는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에서 3년을 보내고 수능을 망쳐서 이 먼 달구벌까지 홀로 내려온 아이였다. 나도 뭐 그런 셈인가? 나야 뭐 3년 내내 꼴찌였으니ㅎㅎ 우연히 대화하다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 우리는 다른 과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나는 반수를 이미 준비하고 있었고, 그 애는 망설이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러다 하루는 그 애가 술을 마시자고 나를 불렀다. 일단 뭘해도 재미없는 나를 부르는 것은 뭔가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얼른 그 애가 말한 막걸리 집에 갔다. 내가 가기 전에도 이미 진탕 마신 모양이었다. 나를 보더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오래된 테이블에 널부러진 주전자들이 번들거린다. 담배를 피지 못하는 그 애는 옆 테이블에서 피어나오는 담배 연기가 매워서 그런지 눈도 충혈되어 있다. 일단 앉아서 막걸리를 한 사발 받고, 마시기도 전에 그 애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 나도 그냥 반수하려고.

첫 마디가 이거다.

- 뭐 때문에?
- 그냥...............

보통 여기서 캐묻지 않아도 술을 마시면 알아서 왜 그런지 얘기를 꺼내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말없이 막걸리를 들이켰다. 달리 할 말도 없었다. 반수 준비를 하느라 과 동기들과도 술은 잘 마시지 않았는데... 그래도 오늘은 마셔야 할 것 같았고, 마시고 싶었다.

- 오랜만에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애들이 예전이랑 다른 것 같아. 친하게 지냈던 애들은 전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있는데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비해 반응이.... 뭐랄까? 예의상 반가워한다 그런 느낌 있지? 그 분위기에 질려 먼저 끊어버렸어. 몇몇 친구들은 전화도 받지 않고 말이야. 방금 네이트온에 접속한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말이지. 너는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연락하면 반응이 어때?
- 난 내가 애들한테 연락을 안 한다.
- 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내가 널 불렀다니까.

다시 침묵. 말없이 서로 막걸리만 들이켰다. 얘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걸 알기에, 막걸리를 한 주전자 더 시켰다. 안주는 더 이상 시키지 않았다.

- 휴, 바쁘겠지...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바쁜가보지...

아.. 이 아이는 다르게도 표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쁜 새끼들, 고등학교땐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대학 하나 낮게 갔다고 벌써부터 무시를 하나? 더러워서.' 아니, 술김이었으니 그 섭섭함에 대해 더 심하게 욕 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기를 바랬다. 그걸 받아주러 여기 내가 있으니. 그렇게 그냥 마음속에 쌓인거 다 내뱉고 시원하게 반수를 시작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 역시 저 말에 정말, 가슴에 송곳이 찔린듯 쓰렸고, 그 애의 마음이 너무나 와 닿았다. 그 말은 내 좁은 마음이 도저히 받아낼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 날은 나 역시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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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다른 것에 빗대어 돌려말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고, 자신의 마음을 더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물론 가끔씩 도발할때 돌려말해주면 아주 좋은 효과를 얻기도 한다.) 흔히 이런 것을 잘 파악하고, 잘 써먹는 사람을 보고 흔히 사회생활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좀 심하면 뭐 뱃속에 능구렁이가 열 마리 쯤은 들어찬 양반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상황파악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그 눈치란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오늘 소개팅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말을 듣고 다음 만날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말에 친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면 얼마나 안타깝던가.(둘 중 하나는 필자의 경험일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건 그러니까 좀 오래 된건데, 중학교 시절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여자애(A라고 하자)가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 애보다는 다른 아이(B라고 하자)에게 마음이 가 있는 상태였다. A가 많이 싹싹해서 친하게 지냈으나, B는 새침한 편이어서 소심했던 나는 좋아하면서도 말 한 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야영날 한 친구(C8이라고 하자)와 서로 좋아하는 애가 누군지 털어놓게 되었는데(왜 야영때면 그런거 많이 하잖아) C8은 내가 좋아하는 애가 누군지 알고 싶었을 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아무나 둘러대고(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넌 개새끼다) 속은 나만 털어놓은 형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야영을 다녀 온 후 부터 A가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추석 때 쯤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A가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기에 가르쳐줬더니 A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음성메일이었는데 마지막 말이 "추석 잘 보내고 잘 먹고 잘 살아라." 였다. 잘 먹고 잘 살아라? 전학가나? 아무튼 의아했지만 나는 그냥 집에 마이크가 없어 음성메일로는 못 보내서 미안하고, 어쨌든 네가 보내준 메일 잘 보았고, 너도 추석 잘 보내라는 말을 써서 보냈다. 그 후로는 A와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나중에야 A가 나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를 그 애가 나에게 해줬던 말과 행동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니 내가 참 A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 그제서야 알게되어 너무너무 미안했다.

아무튼 그 때부터 내가 솔직함이란 것이 항상 미덕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너무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언제나 말을 빙빙 돌려 말하나보다. 나의 그런 면이 정말 싫은 친구도 있는가 보지만, 고치려고 노력도 하지 않지만 노력해도 이것만큼은 쉽게 못 고칠 것 같다. 이게 내 업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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