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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昌石 & 李貞順-만남~結婚~삶~離別~종이배/김태정

2010.02.10 18:27 | 朴昌石-뿌리와 追憶 | csp621

http://kr.blog.yahoo.com/csp621/1613 주소복사


종이배/김태정


 

 

朴昌石 & 李貞順-만남~結婚~離別
~


할머니(金光任).朴昌석.李貞順.서울 南山에서...1958年


박창석 이정순 데이트(date)할 때 기념촬영.서울 의대 앞.1960년대

 結婚 請牒狀

결혼-1.청첩장 1966.8.28 

 


결혼-1.이정순 신부 대기실.1966.8.28


결혼-1.이정순 신부 대기실.1966.8.28,


박창석.이정순=성혼선언문


結婚-1.하객 감사인사.1966.8.28.


結婚-2.상견예~ 서울 종로 동원 예식장


결혼-2.서울 종로 동원예식장.면사포(面沙布) 올리는 순간~1966.8.28.


結婚-2.서울 종로 동원 예식장.신랑에게는 만년필 선물~1966.8.28.


結婚-2.서울 종로 동원예식장.신부에게 다이야 반지 선물~


결혼-3.미1군 정보 참모 축사 


결혼-4.하객 감사인사.1966.8.28.


결혼-서울 종로 동원예식장.  산은 올라가는 사람에게만 정복 된다는 심정으로 혼자 보다 둘이 힘을 모아
꿈과 희망을 실행토록 굳게 다짐 하고~1966.8.28


結婚-신랑 신부 퇴장


결혼-친족대표 박일경 법제처장 인사.1966.8.28.


結婚-서울 種路 東苑禮式場.당시 국내 최고 수준 연주실력의 해군 본부 군악대의 축하 연주와..
광복군(독립군) 지대장 출신 장호강 장군(시인)의주례와 기념 촬령.


結婚-6.서울 종로 동원예식장.1966.8.28-


결혼-6.친구 윤정희외 국내(國內) 외국(外國) 축하 귀빈과 감사 답예 인사


결혼-동료 기념촬영


결혼-신혼여행 부산 용두산공원.1966.8.


結婚-9.해운대 호텔에 여장릉 풀고~


결혼-신혼여행 부산 해운대 호탤.꿈 같은 한때~1966.8.29


결혼-신혼여행 부산 해운대 호탤.1966.8.30


결혼-신혼여행해운대 온천호탤 신혼여행 1966.8.29.


結婚-10.해운대 백 사장.1966.8.30.


結婚-10.호텔 이침 식사


結婚-11.고향 방문~1966넌


結婚-아버지 산소에서~1966年


結婚-아버지 산소에서~1966年


結婚-11.고향 묵계산 아래 연꽃 늪에서~1966年

***************************************************************************
이정순.건대 졸업 기념촬영.1967년

 
이정순-서울 성신여자중학교 웅변대회 1등 상장


 


이정순-건국대학 졸업증


이정순-학사 학위등록증


朴昌石 李貞順-陸軍大學 名譽受業證書


인천 송도 해수욕장 피서~1970년 성진 임신 時


박성희.성진.서울 성동구 행당동 Apt옥상에서~1971년


가족 덕수궁 나드리 1972년


박성희.성진.성원.서울 행당동 주택 2층Veanda에서.


박성원~서울 성동구 행당동 주태~1973년


고향-경북 의성 단북면 구안계.마을 앞에는 낙동강 지류인 화천(물폭이 얀 50m.백사장폭이 약 50m=총 약100m)에서
물고기도 잡고, 여름에는 밤 느께 까지 씨름도하고.강가 버드나무 숲에서는 수백마리의 참새들이 모여드러 손으로도 잡든곳.
뒷산에는 큰 꿀밤나무가 있어 단오면 그내를 메고 동내사람들이 늘든곳~


박성희.성진.성원.겨울방학~ 안동 저수지 스캣장.1975.2.


박성희.성진.성원.용인 민속촌에서.1975년


家族旅行~부여 락화암에서..1976.7


박성원.서울 첨당 모련Apt.1978


박성희 성진 성원 서울 강남 목련Apt


박성희.성진.서울 서초 한양Apt.


박성희 성진 성원 여름방학~ 코롱호탤 풀장에서...1982년


박성희 성진 성원 해우대 피서...1984년


박성희 성진 성원 아이들과 외식~


박성희.성진.성원.여름 방학 피서 경주 코롱호탤


旅行~동남아 광관.태국  파타야(PATTAYA) 호탤 풀장.1991년.


旅行~설악산 백담사에서~1992.6.25.  右로부터 1번째 朴昌石 2번째 妻 李貞順(1994.5.9.肺癌으로 가고).
4번째(이민영는 치매로 의식 불명).


旅行~지리산 여름 피서.1992.7.23

 
이정순(941.3.17~1994.5.9)
산소-강원 경춘공원묘지 심서원좌18-10.2006.5.18.

비문~
여기 평생 남편만을 사랑하고,자식들을 끔직이 아끼고,
친구들을 좋아하다 고이 잠든 이정순이 누어있음

 

6.25.韓國戰 參戰 記錄 寫眞(58장)-4編.미군이 찍은 참상.I understand / G. Clefs

2010.02.09 15:25 | 6.25 韓國戰 參戰 記 | csp621

http://kr.blog.yahoo.com/csp621/1612 주소복사

1950年 < 신문 보도 내용 >

주한 미군 기지관리사령부

사진 150장 · 동영상 40여개 인터넷 공개 < 2009.  1.  6 >

 

 6·25전쟁 당시 미군 사진사들과 카메라맨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6일 미 군사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에 따르면,

주한미군 기지관리사령부(IMCOM-K)는 미 국방부 자료실로부터

25 전쟁 관련 동영상 40여개와 사진 150장을 입수,웹사이트에 올렸다.

 

기지관리사령부 공보관 에드워드 존슨씨는

"이들 사진과 동영상들은 한국전과 그 이후 시기에 대한 역사적 정보의 보고(寶庫)"

라고 말했다고 성조지는 전했다.

사진에는 전쟁 중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과
한국군·미군의 전투 모습 등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 있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전장 시찰,

인기 코미디언 보브 호프와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미군을 위문하는 장면 등도 포함돼 있다.

 

동영상 가운데는 6·25 전쟁 격전지의 전투는 물론,

25전쟁 후 한국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진은 http://www.flickr.com/photos/imcomkorea/sets/72157607808414225/에서,

동영상은 http://kr.youtube.com/warinkorea에서 볼 수 있다.


 

 I understand / G. Clefs

 

1.  men of the 24th Inf. Regt. move up to the firing line in Korea.

July 18, 1950. Breeding. (Army)

24 보병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2.  Railroad cars loaded with barbed wire at Taegu

 RTO (Railway Transportation Office), Korea.

 July 24, 1950. Sgt. Riley. (Army)

철조망을 싣고 대구역을 출발하는 화물 열차. 

 

 

 3.  Wounded American soldiers are given medical treatment

at a first aid station, somewhere in Korea.

July 25, 1950. Pfc. Tom Nebbia. (Army)

부상병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  Pfc. Orvin L. Morris, 27th Regiment, takes a much

deserved rest during his evacuation to Pusan, Korea,

on a hospital train. He was wounded by enemy mortar fire on front lines.

July 29, 1950. Sgt. Dunlap. (Army)

북한군의 박격포 공격으로 부상 당한 병사가

부산으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5.  United Nations flag waves over crowd waiting to hear

Dr. Syngman Rhee speak to the United Nations Council in Taegu, Korea.

July 30, 1950. Sgt. Girard. (ARmy)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있다 

 

 

6.  U.S. Marines stand along the rail and watch the ocean aboard the USS Clymer.

To the aft a Marine is washing his dungarees

by dragging them along behind the ship.

July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군 병사들이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다 

 

 

7.   Three BD-110A switchboards on left and one BD-96 on extreme right being operated by Pfc.

James Grahn of Co. B, 71st Sig. Svc. Bn., Pusan, Korea.

August 1, 1950. Cpl. Crowe. (Army)

3개의 BD-100A BD-96을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다 

 

 

8.   U.S. troops are pictured on pier after debarking from ship,

somewhere in Korea.

August 6, 1950. Sgt. Dunlap. (Army)

상륙후 부두에서 쉬고 있는 미군 병사들 

 

 

9.   Pfc. Clarence Whitmore, voice radio operator,

24th Infantry Regiment, reads the latest news while enjoying

chow during lull in battle, near Sangju, Korea.

August 9, 1950. Pfc. Charles Fabiszak, Army. (USIA)

전투가 소강 상태일 때 무전병이

신문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10.  Fresh and eager U.S. Marine troops, newly-arrived at the vital southern

supply port of Pusan, are shown prior to moving up to the front lines.

August 1950. INP. (USIA)

새로 도착한 미 해병 대원들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모습 

 

 

11.  How a man died on the way to Maeson Dong.

September 2, 1950. Sgt. Turnbull. (Army)

전사자 모습  

 

 

12.   Men of the 9th Inf. Regt. man an M-26 tank to await an enemy attempt to cross the Naktong River.

September 3, 1950. Cpl. Thomas Marotta. (Army)

9보병연대 병사들과 M26 탱크가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에 대비히고 있다 

 

 

13.  North Korean prisoner of Marines who rolled enemy back in Naktong River fighting.

He wear a "Prisoner of War" tag and was treated in accordance

with United Nations' rules of international warfare.

September 4, 1950. S. Sgt. Walter W. Frank. (Marine Corps)

북한군포로의 모습, 그는 전쟁 포로라는

판을 목에 걸고  유엔법에 따라 관리되었다 

 

 

14.   Landing craft loaded with Marines head for the smoking beach in invasion of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해병대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15.   Invasion of Ichon, Korea. Four LST's unload men and equipment on beach.

Three of the LST's shown are LST-611, LST-745, and LST-715.

September 15, 1950. C.K. Rose. (Navy)

4척의 상륙정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가 내려지고 있다 

 

 

16.   Carrying scaling ladders, U.S. Marines in landing crafts head for the seawall at Inchon.

September 15, 1950. S.Sgt. W. W. Frank. (Marine Corps)

사다리를 싣고 인천 상륙을 위해 상륙정에 승선한 해병들 

 

 

17.   Leathernecks lead patrol between destroyed buildings

in "mop-up" of Wolmi Island, gateway to Inchon.

September 15,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인천의 관문인 을미도에서 북한군을 소탕 중인 해병대 

 

 

18.   As against "The Shores of Tripoli" in the Marine Hymn,

Leathernecks use scaling ladders to storm ashore at Inchon in amphibious invasion

September 15, 1950. The attack was so swift that casualties were surprisingly low.

S.Sgt. W.W. Frank. (Marine Corps)

해병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인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이 공격은 신속했으며 부상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19.  Brig. Gen. Courtney Whitney; Gen. Douglas MacArthur,

Commander in Chief of U.N. Forces; and Maj. Gen. Edward M.

Almond observe the shelling of Inchon from the U.S.S. Mt. McKinley,

September 15, 1950. Nutter (Army)

상륙 작전중 인천 해안을 살피는 맥아더 사령관 

 

 

20.  A small South Korean child sits alone in the street,

after elements of the 1st Marine Div. and South Korean Marines invaded the city of Inchon,

in an offensive launched against the North Korean forces in that area.

September 16, 1950. Pfc. Ronald L. Hancock. (Army)

어린 소녀가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

미해병과 한국 해병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21.   Al Jolson entertains U.S. troops at Pusan Stadium during his visit to the fighting front.

He died shortly after his return from Koera where he gave of his talent untirigly and unceasingly.

He made the trip at his own expense.

September 17, 1950. Kondreck. (Army)

al jolson 부산 운동장에서 공연을 하고있다

그는 자비로 공연을 했으며 한국에서 돌아간 직후 사망했다 

 

 

 

22.  Wreckage of big transport which North Koreans hit while it was on Kimpo Airfield,

is again in friendly hands, upon recapture of field.

September 18,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북한군의 공격으로 김포 공항에서 파괴된 비행기가

1950 918일 다시 미군의 손에 들어왔다. 

 

 

23.   Troops of the 31st Inf. Regt. land at Inchon Harbor, Korea, aboard LST's.

September 18, 1950. Hunkins. (Army)

31연대 병력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24.  Two North Korean boys, serving in the North Korean Army,

taken prisoner in the Sindang-dong area by elements of the 389th Inf. Regt.,

are interrogated by a U.S. soldier shortly after their capture.

September 18, 1950. Pfc. Francis Mullin. (Army)

신당동에서 미군에 잡힌 북한 소년병이 신문을 받고 있다 

 

 

25.   Pfc. Thomas Conlon, 21st Inf. Regt., lies on a stretcher at a medical aid station,

after being wonunded while crossing the Naktong River in Korea.

September 19, 1950. Cpl. Dennis P. Buckley. (Army)

낙동강을 건너다 부상 당한 병사가 들것에 누워 있다 

 

 

26.   United Nations troops fighting in the streets of Seoul, Korea.

September 20, 1950. Lt. Robert L. Strickland and Cpl. John Romanowski. (Army)

시가전 중인 유엔군

 

 

27.  A U.S. Marine tank follows a line of prisoners of war down a village street.

September 26, 1950. S.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탱크가 포로 행렬을 따르고 있다 

 

 

 

28.  55arine Pvt. 1st Class Luther Leguire raises U.S. Flag at American consulate in Seoul,

while fighting for the city raged around the compound.

September 27, 1950. Sgt. John Babyak, Jr. (Marine Corps)

미영사관에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29.  A Korean family mourns their murdered father, victim of the

wholesale murder at Chonju by North Koreans.

September 27, 1950. M. Sgt. E. T. Tarr. (Army)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인 

 

 

30.  The wreckage of a bridge and North Korean Communist tank south of Suwon, Korea.

The tank was caught on a bridge and put out of action by the Air Force.

October 7, 1950. Marks. (Army)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 위의 탱크 

 

 

31.  ROK military police pose before the ruins of a devastated building in Pohang.

Most buildings that housed red troops were destroyed.

October 17, 1950. (Navy)

한국군 헌병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2.  Scene of war damage in residential section of Seoul, Korea.

The capitol building can be seen in the background (right).

October 18, 1950. Sfc. Cecil Riley. (Army)

 서울의 주거지의 파괴된 모습.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33.  Officers and men of the 62nd Engineers stand in front of the first train to

cross the new railroad bridge which they built across the Han River at Seoul, Korea.

October 19, 1950. Sfc. Albert Guyette. (Army)

한강에 새로 건설된 철교에 처음으로

지나가는 기차 앞에서 62공병대 병사들과 사병들 

 

 

34.  A 16-inche salvo from the USS Missouri at Chong Jin, Korea,

in effort to cut Northern Korean communications. Chong Jin is only 39 miles from the border of China.

October 21, 1950. (Navy)

북한군의 통신 단절을 위한 청진에서 16인치포 일제사격

청진은 중국에서 39마일 떨어져 있다 

 

 

35.  Audience reaction to the Bob Hope show at Seoul, Korea.

October 23, 1950. Capt. Bloomquist. (Army)

밥 호프의 공연을 보며 웃고 있는 병사들.

 

 

36.  Navy Sky Raiders from the USS Valley Forge fire 5-inch

wing rockets at North Korean communist field positions.

October 24, 1950. PhoM3c. Burke. (Navy)

북한군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미해군 전투기 

 

 

37.   The Hon. S.Y. Lee, Vice President of South Korea, leads

cheers at the close of the UN Day ceremony at Seoul.

October 24, 1950. Sgt. Ray Turnbull. (Army)

유엔의 날에 마지막에  한국의 부통령(이시영)이 만세를 선창하고 있다 

 

 

38.  Bob Hope, radio and screen star, sits with men of X Corps,

as members of his troupe enterain at Womsan, Korea.

October 26, 1950. Cpl. Alex Klein. (Army)

위문 공연을 온 밥 호프와 함께 포즈를 취한 병사들 

 

 

39.   A refugee family from Ching Pung Men near Masan,

now living in a refugee camp at Changseung-po, Korea.

October 1950. United Nations. (USIA)

마산 근처의 ching pung면에서 피난 온 가족.

지금은 장생포에 있다

 

 

40.  An aged Korean woman pauses in her search for salvageable

materials among the ruins of Seoul, Korea.

November 1, 1950. Capt. C. W. Huff. (Army)

폐허가된 서울에서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41.  Korean women and children search the rubble of Seoul for

anything that can be used or burned as fuel.

November 1, 1950. Capt. F. L. Scheiber. (Army)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42.   Miss Mo Yun Sook, famed Korean poetess,

is telling how she escaped the Communist-led North Koreans

when they captured Seoul, by hiding in the mountains until the U.N. forces liberated the city.

November 8, 1950. Cpl. Robert Dangel. (Army)

한국의 여류시인 모윤숙이 어떻게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탈출했는지 말하고 있다

유엔군이 올때까지 산에 숨어 지냈다

 

 

 

43.   Navy AD-3 dive bomber pulls out of dive after dropping a 2000 lb.

bomb on Korean side of a bridge crossing the Yalu River at Sinuiju, into Manchuria.

Note: anti-aircraft gun emplacement on both sides of the river.

November 15, 1950. (Navy)

미해군 폭격기가 신의주 압록강 다리를 폭격하고 있다

 

 


44.  Homeless, this brother and sister search empty cans for morsels of food,

and try to keep warm beside a small fire in the Seoul, Korea, railroad yards.

November 17, 1950. Pfc. Fulton. (Army)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불 옆에 있다. 

 

 

45.  Fighting with the 2nd Inf. Div. north of the Chongchon River,

Sfc. Major Cleveland, weapons squad leader, points out

communist-led North Korean position to his machine gun crew.

November 20, 1950. Pfc. James Cox. (Army)

청천강에서 북한군 진지를 겨냥하고 있는 병사들 

 

 

46.   M/Sgt. George Miller selects human blood for patient at the

8076t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at Kunr-ri, Korea.

November 27, 1950. Cpl.Fred Rice. (Army)

 환자들을 위해서 조지 밀러가 피를  모으고 있다 

 

 

47.  A wounded chaplain reads a memorial service over

the snow-covered bodies of dead Marines. Koto-ri, Korea.

December 3, 1950. Cpl. W. T. Wolfe. (Marine Corps)

부상당한 목사님이 전사한 해병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48.  These men of the Heavy Mortar Co., 7th Inf. Regt., go native,

cooking rice in their foxhole in the Kagae-dong area, Korea.

December 7, 1950. Pfc. Donald Dunbar. (Army)

밥을 짖고 있는 세 병사 

 

 

49.   Wounded soldiers use wheelchairs and crutches

until they learn how to walk with a synthetic limb.

Pfc. Charles Woody, injured near Taegu, walks on crutches.

Walter Reed Mil. Hosp. Washington, DC.

December 8, 1950. T. Sgt. Trehearne,

USAF; PhoM2c. Knudsen, USN. (USIA)

부상 당한 병사들은 의족 의수를 어떻게 쓰는지

익숙해 질 때 까지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했다 

 

 

50.  Supplies and equipment are also evacuated from the onslaught of the

Communist Forces bearing down on Hungnam, Korea.

December 11, 1950. Pfc. Emerich M. Christ. (Army)

 공산군의 맹공으로 흥남에서 철수하는 보급품과 장비들 

 

 

51.  A U.N. LST slips into the harbor at Inchon prior to invasion by U.S. Marines.

December 13, 1950. (Navy)

UN군의 LST가 인천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52.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3.  Marines of the First Marine Division pay their respects to fallen buddies

during memorial services at the division's cemetery at Hamhung, Korea,

following the break-out from Chosin Reservoir,

December 13, 1950. Cpl. Uthe. (Marine Corps)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4.   President Harry S. Truman is shown at his desk at the White House

signing a proclamation declaring a national emergency.

December 16, 1950. Acme. (USIA)

투루먼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55.  North Korean refugees use anything that will float to evacuate Hungnam.

Here they jam the decks of a South Korean LST and many fishing boats.

December 19, 1950. (Navy)

북한의 피난민들이 흥남을 떠나고 있다.

 

 

56.  Korean natives prepare to board an LST during the evacuation of Hungnam,

while other refugees unload some of their meager belongings

from an ox-cart and load them on a fishing boat.

December 19, 1950. (Navy)

 피난민들이 LST에 승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피난민들은 우마차에서 짐을 내려 어선에 옮기고 있다. 

 

 

57.  The USS Missouri fires 16-inch shell into enemy lines at Hungnam.

A 16-inch 3-gun salvo is on its way to commies.

December 26, 1950. (Navy)

흥남으로 함폭 사격 중인 미해군 

 

 

 

58.   U.S. Marines move forward after effective close-air support flushes

out the enemy from their hillside entrenchments.

Billows of smoke rise skyward from the target area. Hagaru-ri.

December 26, 1950. Cpl. McDonald. (Marine Corps)

전투기의 근접 지원 후 전진 중인 미해병 

 

 

59.   Astonished Marines of the 5th and 7th Regiments,

who hurled back a surprise onslaught by three Chinese communist divisions,

hear that they are to withdraw! Ca.

December 1950. Sgt. Frank C. Kerr. (Marine Corps)

중공군의 맹공에 후퇴하는 미군 

 

 

60.    Jacob A. Malik, Soviet representative on the U.N. Security Council,

raises his hand to cast the only dissenting vote to the resolution calling

on the Chinese Communists to withdraw troops from Korea. Lake Success, NY.

December 1950. INP. (USIA)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에서

중공군의 철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소련 대표 

 

 

61.  North Korean prisoners, taken by the Marines in a foothills fight,

march single file across a rice paddy.

1950 (Marine Corps)

논을 따라 이동중인 북한군 포로들

 

 

62.   U.S. Marines guarding three captured North Koreans, ca.

1950. Sgt. W. M. Compton. (Marine Corps)

 미해병이 지키고 있는 북한군 포로 

 

 

63.   Crossing the 38th parallel. United Nations forces withdraw from Pyongyang,

the North Korean capital. They recrossed the 38th parallel.

1950. (USIA)

평양으로부터 철수하여 38선을 건너는 유엔군 

 

 

64.  Leatherneck machine gun crew dug in for the night in Korea. Ca.

1950. (Marine Corps)

참호에 있는 미해병 

 

 

65.   Marine Corps tanks - ready for the front lines - are

swung aboard a barge at the Naval Supply Center by crane,

for transhipment to our forces in the Pacific Far Eastern Command. Oakland, CA,

1950. Acme. (USIA)

극동태평양사령부로부터 보급된 탱크가 항구로 내려지고 있다 

 

 

66.   During South Korean evacuation of Suwon Airfield, a 37-mm anti-tank

gun is hauled out of the area for repairs, by a weapons carrier.

1950. INP. (USIA)

수원비행장의 한국인들이 철수하는 동안

대전차포가 수리를 위해 트럭에 의해 이동되고 있다 

 

 

67.  San Diego, Calif. A young officer and his wife sitting in their car at the

dock and staring quietly at the waiting aircraft carrier before he leaves for Korea.

1950. Black Star. (USIA)

한 장교의 그의 아내가 자동차에 조용히 앉아서

장교가 한국으로 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68.   Cpl. John W. Simms of Bradbury Heights,

MD, is shown bidding his wife, Ann,

and their 8-month-old son, John Jr., goodbye as he leaves for Korea,

1950. Washington Post. (USIA)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미군 병사

 

故 정주영 회장이 생존에 남긴 이야기 입니다.안개낀 고속도로-강정화.

2010.02.09 11:11 | 時事/敎訓/歷史 | cs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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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경부고속도로 개통식. 영 부인 육여사. 정주영회장.

 

안개낀 고속도로-강정화

 

 

故 정주영 회장이 생존에 남긴 이야기 입니다.



내가 경부 고속도로 공사때,박정희 대통령하고 얘기 도중 깜빡 존 적이 있어요.
박 대통령이란 분이 얼마나 무섭고 위엄있는 분입니까.

근데, 그런 어른 앞에서 나 혼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깜박 졸았어.
아마 내가 태어나 엿새 동안 양말을 못 갈아 신은 것이 그때가 처음일 거예요.

그럴 정도로 고속도로 현장에서 날밤을 새고 그랬어요.
그때 나 뿐 아니라 당시 경부 고속도로 멤버들은 전부 양말을 벗겨보면
발가락 사이가 붙었을 정도였어.

내가 작업화를 벗어놓고 자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하여간 그렇게 현장에서 살다가 박 대통령이 호출해서 만났는데,

박 대통령이 말씀을 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너무 피곤해서 깜박 존 거지요.
근데 그게 2~3분? 길어야 4분이 안 될 거야. 근데 어찌나 맛있게 잤던지,

나중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잠을 깼지. 참, 박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얘긴데,
그때 청와대 응접실 탁자가 조그만 했어. 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말씀을 하시는데
바로 앞에서 내가 졸았으니 말이야...

졸고나서 내가 아주 당황했거든? 대통령께서도 말씀을 하시다 내가 졸고 있으니
기가 막혔을 거 아니야? 하던 얘기도 중단 하셨을 거고 말이지.

그러니 이건 뭐 어쩔 줄을 모르겠어.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하는거야.
그런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내가 졸고 있을 때 자리를 떴거나 언짢은 얼굴을 했을거야.

내가 놀래가지고 정신이 번쩍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던
대통령께서 내 손을 꾹 잡으시더니 "정 사장, 내가 미안하구만." 이러시는 거예요.
참…. 정말 대단한 분이야.... 그때를 잊지 못하겠어....

그래서 나도 말이지, 그때 배운대로 써 먹었지.
공사현장에 돌아다녀 보면 작업하다 피로해서 조는 친구들이 있거든?
그러면 순시 하다가 보고서도 그냥 두고 한 바퀴 돌고 와요.
그때 까지도 자고 있으면 그땐 발로 툭 깨워.
기절 초풍을 하고 일어서거든? 그러면 그러지. ‘내가 미안하구만.’ ... 

나도 그때 그 말에 감동 받았는데.... 그 친구들도 감격했을 거야, 하하하.
잠이라는 건 말이야 일이 신나면 잠이 안와,
죽으면 계속 잘껀데 살아서는 쪼끔만 자야지,

나는그렇게 일을 했으니까 특별히 건강관리를 이렇게 한다고 소개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일에 미치다 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는 것 같았어.
일을 안 하거나 마음속에 증오심을 넣고 있으면 사람은 그때부터 환자예요. 환자....

박 대통령이나 정주영 회장이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주역이며
한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일약 중진국으로 끌어올린 주인공들 입니다.
그런 인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이 건재하게 존재하는것이 아닐런지요.
정회장 본인의 말대로 지금은 저 세상에서 계속 잠만 자고 있겠지요... ㅎ~`
두분 모두의 冥福을 빕니다.

박정희 대통령 울산 현대조선소 기공식 치사중에서~Sunrise(해가 돋을 때)-Henri Seroka

2010.02.09 11:06 | 各國 國力과 國防力(有備無患).其他. | cs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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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대통령 시절-현대중공업의 1호선인‘아틀란틱 배런’건조 모습。

26만5000t급 유조선인 이 선박은 당시 정주영 회장이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사진과 50만분의 1 짜리 지도.

거북선이 있는 500원권 지폐. 한 장, 외국 조선사에서 빌린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만을 들고

선주들을 찾아 나선 끝에 수주했다.1969.10.

 

 

Sunrise(해가 돋을 때)-Henri Seroka 

 

박정희 대통령, 정주영회장 "현대가 당신 개인거요?"

 

박대통령은 이날 울산대형조선소기공식 치사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중화학공업의 기반과 여건이 조성되어 바야흐로  중공업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그동안 우리경제는 고도성장의 문제점과 부작용도 있었으나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공업화 과정에서 있었던 것이며

문제는 어떻게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 타개하고  순용해 가느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언급,『정부는 많은 뒷받침을 하고 지원을 하여 꼭 성공토록 할것이며 또 성공되리라 믿는다.』

고 강조하고 『그러나 성공 여부는 농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태세에 달렸다.』면서 농민들의 이해와 분발을 촉구했다.

박대통령은 농-공 분야의 불균형문제에 대해『공업 발전을 농촌이 뒷받침하고 또 농.공병진인 것이며

이는 다만 개발과정에서시간적으로 앞서고 뒤서고 하는 차이가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박대통령은『그러나 선진국에서는 농업과 공업의 한계가 없어지는 농공 일체가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외 한계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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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현대 정주영회장이 울산 현대조선소 착공버튼을 누르고 있다. 1972. 3. 23

 

박정희 대통령은 73년 7월에 포항종합제철 준공예정을 앞둔 시점에 현대 정주영회장을 청와대로 부른다.

당시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 뿐만 아니라 제2제철공장을 계획하고 있던터라 우리 기술로 생산된 제철을

단순 수출에 치중하기 보다는 생산된 제철의 부가가치를 높여 생산된 제품을 수출할 목적으로 정주영회장에게

조선소 건립을 마치 지상명령 내리듯 제안한다.

 

이를 듣고 있던 정회장은 얼굴 빛이 창백해 지며 어렵게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한다.

"각하 현재 저희가 추진하고 있는 울산 현대자동차공장도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동차 공장은 저가 꼭 해보고 싶었고 그에 대한 기술적 자신감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소... 단순히 소형 고깃배도 아니고 수십만톤이나 되는 유조선등을 만들어야 하는 조선소 건립은 불가능합니다.

자동차공장과는 차원이 다른 종합적 첨단기술과 자본이 요구되는 엄청난 사업입니다.

저희 현대의 사활을 걸어도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있는 무모한 도전 입니다." 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박대통령은 대답은 진노에 가까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요즘 국내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마치 자신들이 노력해 그렇게 된 줄알고 착각하며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생각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정보를 나는 듣고 있소. 나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요.

그리고 정 회장, 지금의 현대가 정회장 개인거요? 지금의 현대가 성장할때 까지 정 회장 자신만의 노력으로 된 것인줄 아시오?

여기엔 정 회장 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민 그리고 현대 소속의 근로자들이 다함께 피와 땀으로 일궈논 것이지

어느 특정인이 오늘에 현대가 있게한게 아니란 말이요. 그런 측면에서 볼때 현대 뿐만 아니라 내노라하는 이름있는 기업들은

모두 국민기업인 것이요. 어느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란 말이요.

 

야당의 극렬반대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과 내가 의기투합해 강력하게 추진했던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위해 그 어려운 난관들을 해쳐나온것이요? 오직 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민족의 제단앞에 우리의 목숨을 걸자고

다짐하면서 추진한것 아니요. 나역시 내가 구상하고 추진하려하는 조선소건립과 완공 후 생산되는 선박이

단순한 선박이 아님을 잘알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 일을 추진하고 성공해야만 하오.

모든 뒷받침을 정부가 나서 지원할테니 곧바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시오. 외자유치 부분에선 정부가 보증을 서 주겠소.

이렇게하여 박 대통령이 정주영회장께 마치  지상명령하듯 추진한 울산 현대조선은 착공 2년뒤,

"조선소 건립추진으로 현대가 날아갈 수있다하며 불가능하다" 말한 정주영회장에 의해 1974년 6월에 26만톤급

유조선 어클랜틱바론 1,2호를 건조해 육영수여사님이 진수식 테잎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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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정주영회장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육영수여사의 26만톤급 유조선 명명식 1974. 6. 28

 

[울산 현대조선소]
세계적 규모의 대단위 조선소건설 기공식이 1972년 3월 23일 오후 2시 울산 미포동 현장에서 박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현대건설(정주영)계의 이 대단위 조선소는 정부의 중공업건설계획에 포함된 최대 규모의 수출전략산업으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의 혼성차관 5천14만5천달러와 내자 74억원(정부투융자 49억원, 실수요자부담 25억원)을 들여 내년말까지

완공될 계획이다.

대형 유조선을 건조, 수출할 새 조선소의 시설규모는 최대건조능력 50만톤급 규모로 보통은 연간 25만9천톤급 5척을

지을 수 있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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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공 2년만에 26만톤급 유조선 어클랜틱바론명명식에 참석해 울산 현대미포조선소 내 기념비문을 지켜보는

(좌)故정주영회장과 박정희대통령 내외분 멀리 박근혜 전 대표도 보인다.

육영수 여사는 두달 뒤 8.15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문세광이 쏜 총에 서거 하셨다. 1974. 6. 28

 

박정희 대통령 울산 현대조선소 기공식 치사중에서..1972 / 3 / 23

박정희 대통령은 23일『정부가 앞으로 해야할 주요 경제정책은,
① 제 1,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고도성장결과를 농어촌에 집중 투자하여 농어촌을 근대화하고,
②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며,
③ 수출을 지속하고 이를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마을 노래

1개만 재생 기타는 일시 중지~

 

 

 새마을 노래-작사 작곡: 박정희

 1)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2)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3)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수득증대 힘써서 부자마을 만드세

 4)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조국을 만드세

 후렴) 살기 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1970년 4월 22일 시작되었던 새마을운동 초기에는 초가집 없애기,

돌담을 블록 담장으로, 좁은 골목길, 비좁은 농로 확장사업, 퇴비증산, 쥐잡기 등으로

새마을 운동은 근면, 자주, 협동의 기본 정신과 실천을 범국민적, 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 총체적인 국가 발전을 이루자는 취지에서 시작하여

 

새벽종이울렸네 새아침이밝았네 너도나도일어나 새마을을가꾸세

살기좋은내마을 우리손으로 만드세

 

동네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면 너도 나도 할것없이 손에손에 삽이나

빗자루들고 자기앞마당 청소하기부터 하루가 시작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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