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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 2006년 까지의 역대 퓰리처상 모음 ※
퓰리처상이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
저명한 언론인 J.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하여 1917년에 창설되었다.
언론 분야는 뉴스·보도사진 등
8개 부문, 문학 분야는
시·소설 등 5개 부문,드라마 1개 부문,
음악 1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6.25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담아낸 끊어진
평양철교 위의 피난민들. 1950년,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남으로
퇴각했고, 유엔군의 퇴각과 동시에 수많은 피난
인파가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로 몰려 들었다.
사진을 찍은 막스 데스퍼 기자는 그날의 광경을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내가 비록 전쟁에
강해져 있지만 이 광경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것들 중에서 가장 비참한 장면이었다."
무엇인가를 구경하느라 한 곳으로 시선이 몰린
군중들 틈에서 소년과 경찰이 나누는 정다운 눈길.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듯한 경찰관의 정중한
태도와 애정과 믿음이 가득 담긴 눈으로 경찰관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은당시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1960년 10월 12일. 일본 도쿄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서 한 극우파 청년이 사회당 당수였던
이네지로 아사누마를 칼로 찌르는 장면.
이 사진은 사진기자 야스시 나가오가 단 한 장
남은 필름으로 촬영한 것이라 한다.
피습을 당한 아사누마는 이날 병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숨을 거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무렵 UPI의 사진기자로
종군한 사와다 교이치에 의해 촬영된 사진.
사와다 기자는 베트남 국민들의 처참한 실상들을
촬영해 왔는데,이 사진은미국의 폭격을 피해
강을 헤엄쳐 마을을 탈출하는 어느 가족의 공포에
젖은 모습이다.
전신주에서 전기 가설 작업을 하던 동료가 감전되어 전신주에 메달린 채 기절을 하자 동료가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장면.
1968년 베트남의 사이공 시가지에서 베트남
국립경찰 대장이 잡혀온 베트콩을 총으로
즉결 심판하는 장면. 사진을 촬영한 사진기자
에디 아담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대장이 그 일을 자행했을 때, 전혀 포로를 쏠 것
같은 암시가 없었다. 그의 총이 위로 올라가자 내 사진기도 따라서 올라갔고, 그가 총을 쏘았을 때 나도 셔터를 눌렀다." 이 충격적인 처형장면을 담은
한장의 사진은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정의의
싸움이라고 간주하였던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 . .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육군은 트랭방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탈환하기 위해
4일간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베트콩의
저항이 완강해지자 베트남 공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공군의 전폭기들은 트랭방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 위를 저공 비행하며 빗자루를 쓸듯 폭격했다.
세상을 녹일 듯이 불 비가 쏟아져 내렸다.
판 틱 킴 퍽이라는 사진 속의 소녀는 소이탄으로
불바다가 되어 버린 마을을 벗어나 달려 나오고
있었다. 달리며 울부짖는 것만이 뼈저린 공포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처참한 순간을 베트남 종군기자인 현 콩 닉 웃이 포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해 온 그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전쟁에 무감각해진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전해 주었다. 이 사진이 베트남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1973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월맹군의 포로가
되었던 수많은 미국 병사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공군 중령 로버트 스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진기자 샐 비더는
캘리포니아 드래피트 공군기지에서 스텀 중령의
가족과 함께 그를 태운 수송기가 도착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마침내 비행기가 도착하고
스텀 중령이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가족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사진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기쁨에 넘친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왜 인류가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눈물겹게 대변해 주고 있다. 만약 스텀 중령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이 같은 감격적인
재회는 절망과 슬픔으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Memorial Day(전몰장병기념일)에 한 여인이
남편의 묘비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는 모습.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모습만큼이나 이 사진은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미국 사회의 중요 문제로 대두되었던
홈리스 . . . 이 사진은 홈리스들의 생활상과 문제점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8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2살 난 아기를
구출한 뒤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하지만 소방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병원으로 옮겨진지
6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걸프전에서 부상을 당한 미군 중사
웨이츠가 후송중인 헬리콥터 바닥에
놓여진 비닐백 안의 죽은 병사가 자신의
동료임을 알고 비통해 하는 모습.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식량센터로 이동하던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촬영한 사진. 굶주림에
지쳐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의 뒤로 독수리가
먹잇감이 어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카터는 바로 독수리를 쫓아내고 소녀를 구해주었지만,이 사진이 공개되자 카터는
전세계의 실랄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사진을 촬영하기 이전에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뜻하지 않은 여론에 괴로워하던 카터는 퓰리처상 수상 후 3개월 뒤인 1994년 7월
가족과 친구들 앞으로 편지를 남긴 채 목숨을 끊다.
내전으로 얼룩진 아프리카 르완다의 고통과 파괴를 담은 사진. 한 어린이가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다가 지쳐 엎드려 있는 장면.
병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울며 깨우고 있는 모습.
사진작가 스테파니에 웰스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할례를 통한 성인식 장면을 담은
사진. 케냐 북부 지방의 한 부락 공터에 할례를
치른 소녀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16세의 이
소녀는 부족의 전통의식인 할례를 받고 난 직후,
그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1996년 6월, 러시아 대통령선거 캠페인의 일환으로 열린 록 콘서트장에서 재선에 도전한 옐친이 재미있는 춤을 선보이고 있다. 1995년 두 차례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 탓에 국민들로부터 건강에 대한
우려를 안겨주었던 옐친은 한동안 낮은 지지율로
고민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이
선거에 주효했는지 결국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인종분쟁과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
르완다 후투족 피난민들이 탄자니아의
고속도로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모습.
마케도니아의 국경지대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딸을 새로운 난민 캠프로 가는 버스에 태우려
하는 안타까운 모습.
아프카니스탄의 가뭄을 피해 온 한 여성이
부르카를 쓴 채 10개월된 딸을 안고 있는 모습.
멕시코 테오티후아칸 근처를 달리는
열차 위에 앉아 있는 중남미 소년의 모습.
어린아이들이 적은 양의 물로 몸을 씻고 있는 장면. 라이베리아 내전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간직한
어느 소년의 일상을 담은 사진.
이 소년은 전쟁으로 오른손목과
왼손가락을 절단해야 했으며,
왼쪽 눈도 실명되었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즈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카타리나의 영향으로 신발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발.
신발 대용으로 접어 만든 종이 밑면에
'KEEP MOVING'이라는 문구가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라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어느
참전용사의 관 옆에 그의 아내가 잠들어 있다.
이 여성은 남편의 시신이 땅에 묻히기 전날 밤,
남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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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친구 - 김세환 한잔의 추억 - 이장희여고시절 - 이수미여고 졸업반 - 김인순왜불러 - 송창식중 고등학교 교복과 교련복은 숱한 사연,그리고 아름 다운 추억들을 수 없이 만들어 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어느덧 23년이 흘렀다 자료들을 보면 당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분들의 감회가 새로울것 같아 올려봅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중 고등학교 교복의 자율화 조치하였다문교부(지금의 교육 인적자원부)가 1983년부터 중고등학생이 교복을 입지 않고 자유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교복자율화조치를 시행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처음으로 교복을 입기 시작했던 1898년 이후 85년 만의 일이다. 학도 호국 단입니다, 배우면서 싸우자! 북한과 극한 대치 상황일때 창설 되었지요우측,목총으로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입니다. 시가행진 <br>국군의 날이면 여러학교의 고교생들이 시가 행진에 많이들 참가했지요<br> <br>교련복이지요(얼룩무늬)<br><br> 여고 고적대, 해마다 전국 대회가 있었답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할 정도로 인기가 <br>대단했지요<br><br> 광고= 여학생들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먼저 상의에 붙어있는 <br>뽀얀 애리만 떼어 빨아 널어놓고 다른일을 했지요..다음날 학교갈때 달고....<br><br> 광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답니다<br><br> 이미지광고= 외출 복으로도 손색이 없었지요<br><br> 광고= 한벌 마춰 입으면 졸업하면 형제 자매들에게 물려주고 동생들은 언제나 <br>헌옷 차지였답니다<br> 광고 <br>광고=남자 모자 저것은 빵집에 잡혀 두고 빵을 외상 으로 먹기도 하고....<br> 광고<br> 고3학년 정도 되면 모자속에 별도 그리고 삼각형으로 꺽어서 쓰기도 하고....<br><br> 광고=남학생 교련복, 애리에 계급 막대기 하나,1학년을 뜻하지요<br> 광고= 광고=당시에 하얀 애리 검정 통치마 참으로 추억속의 교복입니다 중고등학교 책가방 모자 재미난 놀이를 하는것 같습니다 원예부 여고생인것 같습니다 좌측 위 고교생들, 나머지 3장 중학생 이때만 해도 고교생 정도면 남,여가 서로 보기가 쑥스러워서 뚝 떨어져 다니곤 했지요 등교길 검은 교복이 옛추억을 더듬게 합니다 등교길 요즘 볼 수 없는 싸리나무 빗자루로 환경 정리 중 인것 같습니다 왼쪽 중학생 우측 고교생 교련복과 여름하복/ 동복,수학여행 교련복은 참으로 다양하게 입었지요, 군사 훈련받을때 , 작업할때 집에와서 벗어 놓으면 부모님이나 동생들이 입기도 하고. 등 하교길.. 모두 여름 하복입니다 전국 주산 대회(수판) 지금 어린이들은 잘 모를겁니다 주산대회 야외 미술 시간 인가봅니다 환경정리... 아마 웬만한 여학교는 작업할때 모두 앞 치마는 필수 품이었답니다 수재의 연금을 모급하는중... 대중 교통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학교마다 자전거 대형 주차장이 있었지요학교길에 배짱큰 남학생은 여학생 태워 주기도 하고...저분들도 아름다운 추억 간직하고 사시겠지요...가다가 타이야 바람 빠지면 자전거방 들러서 바람넣고... 하교길/교련복에 독서 수험생 입교 모습 / 중학교 야구 구경중 여고졸업/남고 졸업식 모습 졸업식때 지겹도록 입던 검은교복 찢기도 하고 검은 색이 싫어 하얀 밀가루를 덮어 쓰기도 했지요 봉사활동/인간 우리나라지도 타자기가 보급되면서 회사 취직 할려면 자격증 따는것은 필 수였지요 광고=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청순 해보이는 그때 그 시절 교복입니다.
만들어 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어느덧 23년이 흘렀다
자료들을 보면 당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분들의 감회가 새로울것 같아 올려봅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중 고등학교 교복의 자율화 조치하였다
문교부(지금의 교육 인적자원부)가 1983년부터 중고등학생이 교복을 입지 않고
자유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교복자율화조치를 시행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처음으로 교복을 입기 시작했던 1898년 이후 85년 만의 일이다.
학도 호국 단입니다, 배우면서 싸우자! 북한과 극한 대치 상황일때 창설 되었지요
우측,목총으로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입니다.
시가행진
<br>국군의 날이면 여러학교의 고교생들이 시가 행진에 많이들 참가했지요<br>
<br>교련복이지요(얼룩무늬)<br>
<br> 여고 고적대, 해마다 전국 대회가 있었답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할 정도로 인기가 <br>
대단했지요<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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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 애리만 떼어 빨아 널어놓고 다른일을 했지요..다음날 학교갈때 달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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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당시에 하얀 애리 검정 통치마 참으로 추억속의 교복입니다
중고등학교 책가방 모자
재미난 놀이를 하는것 같습니다
원예부 여고생인것 같습니다
좌측 위 고교생들, 나머지 3장 중학생 이때만 해도 고교생 정도면 남,여가 서로 보기가
쑥스러워서 뚝 떨어져 다니곤 했지요
등교길
검은 교복이 옛추억을 더듬게 합니다
요즘 볼 수 없는 싸리나무 빗자루로 환경 정리 중 인것 같습니다
왼쪽 중학생 우측 고교생
교련복과 여름하복/ 동복,수학여행
교련복은 참으로 다양하게 입었지요, 군사 훈련받을때 , 작업할때 집에와서
벗어 놓으면 부모님이나 동생들이 입기도 하고.
등 하교길.. 모두 여름 하복입니다
전국 주산 대회(수판) 지금 어린이들은 잘 모를겁니다
주산대회
야외 미술 시간 인가봅니다
환경정리... 아마 웬만한 여학교는 작업할때 모두 앞 치마는 필수 품이었답니다
수재의 연금을 모급하는중...
대중 교통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학교마다 자전거 대형 주차장이 있었지요
학교길에 배짱큰 남학생은 여학생 태워 주기도 하고...저분들도 아름다운
추억 간직하고 사시겠지요...가다가 타이야 바람 빠지면 자전거방 들러서 바람넣고...
하교길/교련복에 독서
수험생 입교 모습 / 중학교 야구 구경중
여고졸업/남고 졸업식 모습
졸업식때 지겹도록 입던 검은교복 찢기도 하고 검은 색이 싫어 하얀 밀가루를
덮어 쓰기도 했지요
봉사활동/인간 우리나라지도
타자기가 보급되면서 회사 취직 할려면 자격증 따는것은 필 수였지요
광고=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청순 해보이는 그때 그 시절 교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