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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웅이네 (cobra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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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3/30
 

제1회 수학과학 창의력 패스티벌(2009.7.12)

2009.07.14 11:24 | 은또의 성장 스토리 | 태웅이네

http://kr.blog.yahoo.com/cobra0313/2222 주소복사

은표 처음으로 경시대회 참가

무려 4시간 가까이나 되는 시험을 꿋꿋이 치뤄낸 은표가 대견스럽다.

근데 대부분 찍었다는거..

은표야 열심히 해서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 받자~~

화이팅~~

[스크랩] 대한민국을 구한 천재 공무원, 김재익

2009.06.19 14:17 | 경제 디벼 보기 | 태웅이네

http://kr.blog.yahoo.com/cobra0313/2219 주소복사

"대한민국 구하기" 시리즈 3편이다. 아래 2편 링크가 있으니 궁금하시면 찾아 보시라.

대한민국를 구한 또다른 위인, 박태준
대한민국를 구한 위인, 우장춘



한국 경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좌파적 경제 정책"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게다.

오늘날 보수 우익의 뿌리를 생산한 전두환 정권은 놀랍게도 경제에서만큼은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좌파적 입장을 취했으며, 빈부 격차를 최소화하며 가장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인데, 

믿기 힘들겠다는 분은 아래 블로그에 수치가 잘 나와 있으니 살펴 보시길. 
http://xfelix.egloos.com/2383353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전설이 된 천재 공무원, 故 김재익 노력 덕분이었다.



김재익.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경제 수석이었던 분으로, 일반 대중들에겐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테러로 사망한 고위 공무원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숨지지 않았다면 김재익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일 정도로 김재익이 80년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 일단 뭣 때매 이 난리인지 시대 상황을 대충이나마 살펴보자.  


"김일성 밑에 가서도 일할 놈"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말기의 한국의 경제 상황은 말 그대로 작두날 위에선 무당마냥 조마조마했다고나 할까. 성장에 목숨 걸었던 한국 경제는 18년간 고질적인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에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거기에 오일 쇼크까지 겹쳐 아주 환장을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수없이 많은 저소득 노동자들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근로 환경에서 일을 해야 했으며,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력층은 썩을대로 썩어 누가누가 더 많이 해먹나 부패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당시 경제기획원에서는 시장을 개방하고 성장보다는 안정화 시책을 쓰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대기업과 부패 공무원들을 등에 엎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를 뚝딱 뒤집어 엎으시고 다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으로 회귀하시려다 총에 맞아 돌아가셨던 것.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뭔가 문제가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누군가 경제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을 뿐.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재익이었다. 당시 경제 기획원에서 근무하다가 보따리 싸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던 김재익을 전두환이 불렀던 것. 

당시 지식인들에게 전두환은 하극상에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백정같은 인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백정 밑으로 기어들어가다니.

당시 대학생이었던 아들이 애비에게 극렬 항의했다. 이에 김재익은 이렇게 타일렀다.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

김재익의 아내는 주변 사람들에게 "김재익은 김일성 밑에 가서도 일할 놈"이란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김재익은 이 말을 전해듣자 이렇게 답했다.

"만약에 내가 김일성을 설득시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해야지."

김재익은 자신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하려는 전두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생각하는 경제 정책은 인기도 없고 기존의 세력들이 환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저를 쓰겠습니까?"

그러자 전두환이 했던 유명한 말.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실제로 그랬다. 김재익은 그 이후로 3년간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한 경제 대통령이 되었다. 이는 전두환에게는 물론, 대한민국에 엄청난 행운이었다.


성장 지상주의 마약에서 벗어나다

김재익은 제일 먼저 인플레이션 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개방화가 필수적이었다. 인위적인 가격 안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값싸고 질 좋은 외국 제품을 다량 들여 와야 근본적인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는) 수출보다는 수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년간 수출 지상주의에 목매던 박정희 시대 경제 정책을 180도 뒤바꾼 것이다. 지난 20년간 투기업자, 대기업들을 위한 성장 위주의 보호 정책이 서민들을 위한 개방 정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김재익은 임기 동안 과감한 수입 자유화 정책 시행했고 지속적인 긴축 정책 실시, 전두환 정권 내내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했다. "전두환이 다른 건 몰라도 물가는 확실히 잡았다"는 말이 있는데, 전두환이 아니라 김재익이 잡은 거다.

김재익은 철저한 자본주의자에 자유시장경제 체제 옹호자였다. 그에겐 서민들을 위한 물가 안정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수입 자유화를 통해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고, 장기적으로 막강한 자생력과 경쟁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앙심을 먹고 돈을 안 풀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개방화로 간다. 물론 초기 단계는 무역 자유화이고, 다음은 자본 자유화다." - 김재익

수출 지상주의와 함께 박정희 시대를 지배했던 또 하나의 이념은 "대기업 중심의 고도 성장"이었다. 김재익은 이런 성장 지상주의의 경제 개념을 뒤바꾸어 버렸다. 

그는 대기업을 위한 차별 금융제도, 세제혜택 철폐를 주장했다.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공정거래제도 채택까지 주장했다. 그리곤 중소기업 진흥 재단 집중 지원했으며, 벤처 기업 육성 강조했다.

"이제는 20대 재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앙심 먹고 철수하려 한다. 그 1500배에 달하는 3만여 개의 중소기업이 뛰놀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 김재익


미래를 내다 본 공무원

80년대 당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재익은 참으로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1980년에 이미 20년 뒤에나 가능할 지하철과 버스를 연계하는 대중 교통 시스템과, 전자 통신 기술로 발생할 정보 산업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냥 이야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IT로 삼았다. 그는 1980년 전자/정보 통신 산업이 5년 안에 2배 성장하고 한국의 차세대 제1 산업으로 발돋움 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이미 70년대 후반 경제 기획원에 있을 때부터 전화기의 자급제를 실시를 주도했다. 기계식 전화기에서 전자식 전화기로 전환토록 한 것도 김재익의 노력이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전화 네트웍을 전국에 구축케 한 것도 김재익의 노력이었다. 이후 컬러TV 송수신을 자유화한 것도 김재익이 주도한 일.

김재익은 오명과 홍성원 공학박사를 정보통신 산업담당 경제비서관으로 임명하고 정보통신 산업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렇게 김재익이 구축한 정보통신 산업 개발을 위한 시스템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이어져 김대중 시대에 와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김대중이 한국 IT 산업 발전의 아버지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미국의 알 고어가 자기가 인터넷을 발명했다고 말한 것과 똑같은 꼴이지. 한국 IT 산업의 발전은 김재익에 의해 시작된 것이고, 김대중 정권에 와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르짖은 동북아 경제 허브論 역시 원래는 김재익이 구상한 것이다. 이걸 여러 위정자들이 앵무새처럼 따라했을 뿐.

김재익이 구상한 것은 싱가폴이 모델이었다. 싱가폴처럼 한국은 동북 아시아의 금융 센터로 발돋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재익은 실제로 외국 금융 자본 유치에 결정적 기여했으며, 한미은행과 신한은행의 탄생을 가져온다.

김재익은 외채, 외국 자본의 도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외채에 대해서는 대학생들의 거부 반응이 있다. 경제 종속으로 망국의 위기를 부른다는 논리다. 이건 잘못된 판단이다. 한세기 전 영국의 발전과 비교하여 절망적이라던 독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해외자본 투자 때문이다..."

"하나의 모델이 있다면 그건 스웨덴이다. 인구 8백만의 이 북유럽 복지국가는 오랫동안 1인당 GNP 최상위 국가에 있다. 해외 자본 투자 덕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있는 회사는 바로 IBM이다. 이 회사를 통해 수십 명의 최고급 기술자가 배출된다. 세금도 제일 많이 낸다."
 


자본주의자 김재익

김재익이 가장 싫어했던 건 온정주의적인 반자본주의 정책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중 곡가제였다. 추곡 수매라고도 하는 이 이상한 제도는 농부들에게 쌀을 비싸게 사서 시장엔 싸게 내놓는 건데 이 때문에 정부의 재정은 피폐해지고, 농부들은 무작정 쌀만 키우고, 그것도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고, 그러다 보니 쌀값이 폭락해 모두가 공멸하는 참 공산주의스러운 정책이었다.

김재익은 이중 곡가제와 같은 농촌 보조 정책이 정부의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 농촌을 망하게 한다고, 어서 빨리 철폐하고 농촌의 자생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근데 아무도 안했다. 여전히 한국의 농촌은 수입의 70%를 정부 보조금으로 의존해 사는 식물인간 조직이다. 태반의 농민들이 아직도 (수입 자유화가 되지 않은) 쌀만 키우고 있으며, 여전히 질 좋은 쌀보다는 양 많은 쌀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래서 매년 쌀 100만톤은 내다 버리거나 창고에 처박아두고 있으며, 쌀 수입 소식이 들려오거나 보조금 정책이 바뀐다는 얘기만 들으면 우르르 상경해 시청 앞에서 목숨 걸고 시위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농촌에 들이 부은 보조금만 해도 뉴질랜드 북섬 하나는 샀을텐데, 이 돈으로 농민들을 보조금에 목숨 건, 시장이 개방되면 모두가 죽어버릴,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반자본주의 온정주의 정책의 최후가 이런 것이란 걸 김재익은 미리 알고 있었다.

기업과 정부의 극렬 반대에 맞서 부가가치세를 채택-유지한 것도 김재익이었다. 당시 김재익이 미친놈 소리까지 들어가며 사수한 부가가치세는 오늘날 정부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목 중 하나가 됐다.

금융 실명제 가장 처음 추진한 것도 김재익이었다. 지하 경제를 청산하고 깨끗한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었던 금융 실명제는 당시 대기업과 정치인 등 '비자금'을 다뤄야 하는 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고, 결국 전두환에 의해 최종 좌절됐다. (아다시피 이 법안은 20년 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실시됨.)

김재익은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80년대 초반 자동차 산업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국은 내수 시장이 작아 자동차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음에도, 그는 역으로 자동차 산업에 집중 투자할 것을 주장했다. "공직자 승용차 자가 운전제"를 주창하며 스스로 차를 몰고 다녔고, 자동차 시장 내수 창출에 진력했다.



철저한 자본주의자, 개방과 세계화를 기조로 삼는 자유시장경제 옹호자였으면서도 김재익은 되려 부의 공정한 분배에 기여했다.

1980년 이전 하위 40%의 전체 소득 비율이 16.1%이었던데 반해, 김재익의 사망 당시 1984년엔 18.9%로 향상됐다. 반대로, 상위 20%가 차지하는 소득은 1980년 45.4%에서 1984년 42.3%로 감소했다.

고속 성장에 물가 안정. 부의 공정한 분배까지. 김재익이 이룩한 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 태평성대는 (전두환의 장기 집권을 가능케 해주긴 했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경제 체질 개선시키고 미래 산업 동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김재익이 아웅산 테러로 사망하지만 않았더라도 아마 더 많은 것이 개선됐을 거다. 금융 실명제야 전두환이 돈 빼돌리느라 영영 시행이 안됐겠지만, 피폐한 농어촌, 대기업의 극심한 착취 구조, 적자투성이 복지 재정 등 현재 한국을 병들게 한 고질적인 문제들이 80년대에 이미 해결이 됐을 거란 얘기다. 딴건 몰라도 한국 대기업의 더러운 착취 문화만큼은 김재익이 "앙심 먹고" 척결했을게다.

우장춘 박사가 거지나라 한국을 기아에서 구원했다면, 박태준이 농촌국가 한국의 산업 기반을 구축했다면, 김재익은 한국 경제의 정의를 구현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구축했다.

3-4년 남짓한 그 짧은 기간 동안 말이지. 그가 죽지 않고 전두환 정권과 내내 운명을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김재익의 후광에 의해 전두환은 학살자에서 영도자로 자리 매김했을까?



참고로, 김재익은 개인적으로도 말도 못하게 청렴한 인물이었다. 청와대에 있는 동안 김재익에겐 인사청탁이 끊이질 않았는데,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 보낸 지원자라도 이렇게 돌려 보냈다고. "당신의 (취업하려는) 그런 접근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로 그런 자세 때문에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없겠다."

김재익의 어머니가 사망한 뒤 그분의 옷장엔 엄청나게 많은 이력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워낙 꼿꼿한 아드님이신지라 아무리 인사 청탁이 들어와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던 거다.

가난한 집안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공산주의자 손에 죽임을 당했고 뭐 이런 개인사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사와 하등 관련 없는 거라 생략하겠다. (솔직히 별로 재미있는 개인사도 아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현대사를 산 이런 위대한 인물에 관한 글을 쓰는데도 관련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절라게 고생을 한다. 우리가 김재익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가장 양질의 정보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김재익 서거 20주년 추모 기념으로 출판한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이다.

그런데 내용 참 무성의하다. 김재익과 인연이 있었던 분들이 기냥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력에 의존해 기술한 것이 다다. 영감님들이 자료 조사도 문서 정리도 없이 기냥 개개인의 기억력에 의해 전래동화 구연하듯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거 뭐 뭐가 뭔지 제대로 알수가 있나!!!

- 박정희에 대한 비인간적인 표현은 삭제했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두환 시절이라 김재익 혼자서 한나라의 경제의 꽤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혼자서 한나라 경제를 바꾸냐는 분들은 반박 자료를 보여주거나 정보를 제대로 주워 듣고 오시길.

- 그리고 죄송하지만 글을 가져가시진 말고 링크를 걸어주시길. 몇몇 미친X들이 제 글을 퍼다가 리포트로 팔아 먹고 있더군요.

[신간소개]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경제병리학

2009.04.29 11:00 | 21세기경제학 | 태웅이네

http://kr.blog.yahoo.com/cobra0313/2217 주소복사

21세기경제학연구소 최용식소장님의 새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경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 경제병리학'

그동안 여러 저작을 통해 C&F경제학의 진수를 만끽하셨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이론의 정수를 다시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성원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주위 분들께도 널리 소개좀 해 주세요..^^

 

[책 소개]



경제위기를 미리 알고 대응할 순 없을까?


경제병리학으로, 한국 경제를 읽어낼 수 있다!



경제공황, 금융위기, 외환위기, 초 인플레이션, 장기 경기침체...이런 경제질병들은 어떻게 나타났고, 어떻게 발전했을까? 

이제, 경제병리학으로 경제질병을 제대로 이해하라!

경제병리학은 한국 경제를 살리는 신 처방전이 될 것이다.


▶ 왜 경제병리학인가?

지금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부른 금융위기는 세계 전역으로 전염되었고, 경제구조나 경제체력이 약한 나라들은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난이 점점 심각해지고, 그런 나라들의 숫자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물론 대공황 이후만 따져도 몇 차례 경제위기가 세계 경제에 찾아왔던 것은 사실이다. 1970년대 초반, 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반 등이 그때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경기 후퇴는 다른 어느 때보다 그 깊이가 더 깊을 것이고 그 기간도 다른 어느 때보다 길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만 현재의 경제난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디로 향해 진행하고 있는지, 결국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진단이 아직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각종 위기설과 파국설만 난무할 따름이다. 병리학적 접근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럼, 경제병리학적으로는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처방해야 할까?


▶ 경제병리학의 필요성

"대공황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대공황은 경제정책의 실패가 원인이었으며, 경제정책이 변화되고서야 회복이 시작되었다."

- 『대공황 전후의 세계 경제』 중에서


한마디로, 경제병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경제정책이라는 처방이 올바르지도 적절치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의사는 병의 근원을 찾아서 처방한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이다. 근원을 찾아서 처방하면 금융위기를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다.

경제에 있어서 '신뢰'는 중요하다.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을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하다. 또한, 그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경제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신뢰이다. 믿음이 없으면 시장경제란 성립할 수 없다.

경제병리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경제를 악순환시키는 정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다. 또한, 경제질병을 최소의 비용과 고통으로 이겨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신뢰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경제에서나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이후 다음과 같은 일이 줄줄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언급했고, 고위 정책당국자들도 그런 비슷한 발언을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연초에는 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기회복을 이룰 것”이라고 언명했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혹시 기대를 이렇게 키운 만큼 실망도 더 커지지는 않을까? 실망의 크기는 기대의 크기에 비례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현재의 경제난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를 아직 모른다. 얼마나 심각한 사태가 우리나라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더욱 모른다. 그럼,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행히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가 크지 않으므로 실망도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대공황 당시의 미국처럼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악수를 거듭한다면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 이 책의 구성

제1장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경제병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봤으며,

제2장은 경제병리학의 도입 필요성과 경제질병이 발병하는 원인 및 과정에 대해 살펴봤다.

제3장에서는 대표적인 경제질병인 세계 대공황에 대해 살펴봤고,

제4장에서는 다른 대표적인 경제질병인 일본의 초장기 경기침체에 대해 살펴봤다. 제5장에서는 최악의 경제질병인 초 인플레이션에 대해 비교적 간단하게 살펴봤고, 제6장에서는 우리나라가 직접 겪은 외환위기를 경제병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해봤다. 제7장은 경제병리학을 위한 가벼운 얘기들을 다룬다. 실제로 내가 직접 겪었던, 이해하기 쉬운 사례들을 먼저 살펴봄으로써 경제병리학을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도록 했다.


▶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

경제란 스스로 회복력을 보일 때에도 경기를 후퇴시키는 경제정책을 펼치면 다시 악순환 과정으로 접어들곤 한다. 다시 말해, 경제정책이란 경제질병을 이겨내기 위한 아주 중요한 처방임에도 불구하고, 그 처방이 경제질병을 오히려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제병리학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병리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최소한 경제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악순환시킬 정책의 선택은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병리학의 임상경험을 축적시키면 경제정책의 후유증과 부작용에 대한 검토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혹 발생하곤 하는 경제질병을 최소의 비용과 고통으로 이겨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 있어서의 ‘신뢰’도 마찬가지다.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을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하다. 신뢰가 조금만 손상이 가도 경제적 악영향은 크다. 또한 그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과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경제적 위기는 신뢰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 경제병리학을 통한 위기 극복

지금까지 세계사적으로는 어떤 경제질병들이 나타났던 것일까?

경제질병의 종류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었고, 각각의 경제질병은 어떻게 발전한 것일까?

이것만 제대로 따지더라도 경제병리학의 기초는 거의 닦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의사는 초기에 병을 발견하여 쉽게 치료한다. 더 좋은 의사는 병이 발병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질병 즉 경제위기가 어떻게 벌어지고, 그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난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고, 경제정책이 그것을 오히려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경제질병에 대한 과학적인 원인 규명과 접근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제정책이 자꾸만 경제난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정책당국이나 경제전문가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 경제학의 문제이다. 특히 경제병리학이 경제학에서는 존재조차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따라서 경제학에 병리학을 도입하는 일이 어느 무엇보다 시급하다. 경제병리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질수록 경제위기나 경제난을 비교적 쉽게 헤쳐 나갈 수 있고, 예방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 경제학계가 세계 최초로 경제병리학을 탄생시켜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세계 경제학계의 선두주자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최용식

저자는 경제의 미래를 읽어낼 수 없는 경제학은 죽은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경제학을 위해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경제학 혁명을 연구해왔다. 이미 1991년에는 『사상과 경제학의 위기』를 출간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해체했다고 선언했고, 이후 2006년 『대한민국 생존의 경제학』, 2008년 『돈 버는 경제학』을 차례로 출간하여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현실경제를 정확하고 독특하게 해석한 『대한민국 생존의 속도』, 『거짓말 경제학』, 『통계를 알면 돈이 보인다』, 『경제역적들아 들어라』 등을 비롯한 여러 책을 출간했다.

그는 정확한 경제예측으로 금융시장 관계자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또한, 고 양신규 박사(전 MIT대 경제학교수)는 그를 '한국의 그린스펀'이라고 불렀다. 그가 추구해온 독창적인 경제학 패러다임은 그만큼 과학성이 뛰어나다.

이번에는 '경제학에 병리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명제로 책을 출간하여 경제학계는 물론이고 경제전문가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경제병리학을 알아야 경제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고,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변이다. 경제병리학은 경제현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능력을 키워줄 것이며, '죽은 경제학'을 살려낼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 틀림없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 경제 개인교사, 국회 정책연구위원(차관보급) 등을 지내기도 했지만, 본업은 경제학자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목 차]


머리말 - 경제학에는 병리학이 없다

1 글로벌 금융위기 한국을 덮치다

세계 경제는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

세계사에서 금융위기는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미국 금융위기의 향후 시나리오

점점 더 위기로 치닫는 한국 경제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처방전

2 한국 경제의 위기, 경제병리학이 해법이다

경제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경제병리학을 아는가?

경제질병의 대표적 증상

금융위기는 왜 발생하는가?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의 본질이었을까?

금융위기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그린스펀을 위한 변론

금융위기의 전개과정

금융위기를 사전에 차단할 순 없을까?

3 글로벌 금융위기는 왜 반복될까?

미국의 1907년 금융위기 vs 1930년 대공황

세계 경제를 마비시킨 1930년 대공황

세계대공황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대공황을 장기화시킨 실패한 경제정책들

금융위기는 이미 예견되었다

정책 실패의 1순위는 지도자의 신뢰 상실

한국,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내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정책(Beggar-my-Neighbor Policy)

4 일본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이유

미국을 추월했다가 거품 붕괴로 허우적거리는 일본

일본의 경제거품에 주목하자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나?

일본 경제가 초장기 침체에 빠져든 과정과 그 원인

초장기 침체를 빚은 일본의 국제수지 흑자

실패한 일본의 재정정책

5 최악의 경제재앙, 초 인플레이션

6 정부가 알려주지 않는 외환위기의 실체

반복적인 한국의 외환위기 해법은 없는가?

외환위기의 직접 원인은 외환보유고 고갈사태

국제경쟁력 약화의 이면

경기과열의 주범은 통화량 팽창과 재정 팽창

환율정책 누가 책임지나?

외환위기의 성공적인 극복과정

7 경제병리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벼운 얘기들

#첫 번째 이야기 : 아르헨티나 델라루아 정권

#두 번째 이야기 : 물가불안이 민심이반을 자극한다

#세 번째 이야기 : 현재의 경제난은 어떻게 초래되었을까?

#네 번째 이야기 : 2008년 말 금융시장 경색이 심각해진 과정

#다섯 번째 이야기 : 환율급등과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

#여섯 번째 이야기 : 외환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 무엇보다 위험한 ‘경제위기’라는 용어

#여덟 번째 이야기 : 경제의 안정과 성장 그리고 주요 경제지표들

맺는말 - 경제병리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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