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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떤 간담회나 발표회에 자리를 다녀오면 그 자리의 주제와 맞는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그제 델 코리아에서 진행된 소그룹 간담회는 그 모임의 취지만이 아니라 자리를 함께 했던 델의 글로벌 임원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델 인터내셔널 아시아 태평양 지역 소비재 부문 월터 메이요 부사장 그제 델 코리아의 소그룹 간담회는 사실 델 코리아가 곧 출시할 아다모의 소개와 함께 델의 한국내 사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델의 소비자 부문을 맡고 있는 한석호 부사장과 실무진 사이로 낯선 이방인이 한 명 앉아 있었습니다. 델 인터내셔널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비자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는 월트 메이요 부사장이 참석한 것이지요. 그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동남아 등을 총괄하는 델의 글로벌 임원진 가운데 한 명으로, 1998년에 입사해 올해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중역입니다.
한국어와 김치에 담긴 의미
그가 처음 "사과한다"는 말을 꺼냈을 때 고개가 갸우뚱했습니다. 한국어가 서툴다는 것 때문에 사과를 했답니다. 그는 미국인이고 우리말을 못한다고 해서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한국을 찾은 그가 먼저 예의를 차린 것이지요. 어릴 적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을 때마다 "지금이 김치 같은 상황인 것을 아느냐?"는 말을 들어 김치를 두려워 했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김치맛에 반해 누구보다 더 많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한글과 김치를 내세워 그 친근하게 다가서려 했던 것입니다.
블로거들을 초대한 이유
이미 델 본사에서는 관련 블로거들과 대화를 나누어 왔는데, 이 날의 모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갖는 대화의 자리였습니다. 월터 메이요 부사장은 차근차근 한 명의 고객에게 델의 제품이 왜 우수한지 일방적으로 말하지 않고 소통을 통해서 알려나가는 데 있어 블로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블로거는 스스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글을 쓰지만 독자에게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자리에 모인 블로거 역시 독자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서로 터놓고 스스럼없이 많은 것을 이야기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의 표정은 약간 어두웠지만, 진지했습니다. 덕분에 이날 대화가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는 충분했지요.
솔직한 상황 설명
그는 조금 느릿하면서 또박또박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세계 PC 시장에서 델은 HP에 이어 2위 사업자이고, 한국 시장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한 지 얼마 안돼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지만 전통적인 델의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하루 아침에 델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그런 의심스러운 마케팅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열정을 갖고 있으며 쉽게 사업을 접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미리 못을 박더군요. 우리나라의 소비재 부문에서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는 현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사실을 말한 것이지요.
한국에 없는 델의 가치
일단 다른 이야기들을 건너뛰어 가장 재미있다고 여긴 때는 월트 메이요 부사장이 블로거들에게 질문을 던진 뒤였습니다. "델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갖는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에 이에 늑돌이님이 이렇게 응수하더군요. "많은 소비자가 제품을 써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데, 델은 지금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요.
아마도 월트 메이요 부사장이 다녀본 나라 중에서 이 같은 반응이 나온 나라는 없었을 거리 짐작됩니다. 한국 시장이 다르긴 해도 가치에 대해서 논할 수 없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수많은 제품이 나오고 있고, 또 혁신적 가치를 지닌 많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요즘에 델의 가치를 평가절하해 버린 것이니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워낙 차분한 얼굴이라 감정에 따른 그 변화를 읽기는 어려웠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 가더군요.
짧은 침묵
그 자리에 있던 블로거들이 한 입으로 똑같이 델의 이미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낸 터라 월터 메이요 부사장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델이 기업용 시장에 컨셉을 맞춰 온 것이 사실이고 그러다보니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델에 대한 이미지라는 게 '싼 PC를 파는 외국 기업' 정도로 여겨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더구나 다이렉트 마케팅은 유지하면서 대형 할인 매장이나 전자 상점 등을 통한 판매를 시작했지만, 앞서 델이 심어놓은 이미지를 소비자가 알아챌 만큼 가치를 갖지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장, 경쟁사, 소비자 등 누구를 탓할 문제도 아닙니다. 그 문제는 델에 있던 것이죠.
 델의 아다모, 이러한 가치를 소비자가 느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겁니다. 월터 메이요 부사장은 스튜디오나 인스피론, XPS, 아다모 같은 델의 소비자 제품 브랜드가 있지만, 한국내 소비자 사업부가 만들어진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고 몇몇 실무진은 늦게 합류했습니다. 그 탓에 각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도 어려웠고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었다고 했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중요한 것은 델의 이미지가 나아질 때까지 소비자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부터 그 가치를 만들면 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선택의 가치에 대한 고민
"델이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형 모델을 내놓을 생각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제안을 하나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전에 썼던 글의 내용을 짧게 설명하면서 "마이클 밍 디자인을 넣었던 것처럼 한국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에디션'은 어떠냐?"고 했더니, 맞장구를 치면서 장장 10분 넘도록 그 주제를 놓고 답을 했습니다.
1900년대 산업 초기 자동차를 대량 생산을 시작하던 때 "검정색이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색을 고를 수 있다"는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델도 포드처럼 회색의 천편일률적인 제품을 소비자에게 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요. 소비자의 선택에 대한 여지가 없어도 잘 팔리던 그 때와 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내놓고 판매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고 선택의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오늘의 상황을 세 딸에게 사준 휴대폰에 비유했습니다. 그에게는 12, 14, 16살 짜리 딸만 셋이 있는데, 어느 날 셋에게 모두 똑같은 휴대폰을 사주었더니 이틀도 못가 모두 휴대폰이 달라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같은 휴대폰에 자기의 개성을 담아서 들고 다니는 것을 직접 봤던 것이죠. 이는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문화권과 나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로 들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 게 매우 중요한 때가 됐고, 한국에서도 그 선택의 가치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언제든지 제안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한국형 모델, 가능성은 있지만...
델은 아시아에 세 곳의 디자인 센터를 세웠다더군요. 이들을 통해 각 시장에 맞는 제품을 내놓을 예정인데, 올인원만 연구해 3~4년 전부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일본 시장처럼 한국 소비자들이 필요하다고 담은 모델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앙드레김 에디션처럼 한국 특성에 맞는 요소를 찾더라도 당장 만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선택의 관점에서 한국적인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은 냈지만, 한국형 모델을 선보이기에 앞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더군요. 아다모나 인스피론 미니는 3년 전에 준비해 이제야 제품을 내놓았다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한국 시장에 맞는 모델을 만든다고 하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입니다.
무거웠지만, 유쾌했던 시간
지금까지 국내외의 여러 기업 임원진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월터 메이요 부사장처럼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한 경우는 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무거운 상황임에도 간간히 유머를 섞어가면서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정장을 입기 싫어 블로거와 대화를 자청했다고 농을 건네기도 했고, 심지어 'DELL HELL'도 스스럼없이 말하더더군요. 중년의 자신과 과거에 나온 델 노트북을 가리키며 '올드 맨', '올드 델'이라 빗대면서 진지하게 이제 한국 델의 새 임직원들과 아다모를 가리키며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델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2시간 내내 블로거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호응을 하면서 대화의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고 잠시 주변을 서성이면서 분위기를 딱딱해지지 않도록 만들었으며 직접 도시락을 돌리면서 그 권위를 깨는 모습도 볼 수 있었지요.
이 같은 대화가 지속된다면...
어제 한 번의 대화, 그것도 두 시간 여의 짧은 만남을 통해 그의 진정성을 다 알아채기란 어렵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델을 대표해서 보여준 월트 메이요 부사장의 자세는 델에 꽉 닫힌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여는 데 살짝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 자리에서 꼭 무엇을 약속하고 안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로의 현실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더 크게 감명받는 것이니까요. 낯선 그에게 지금 당장 한국 델을 투영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러한 노력이 이어진다면, 머지 않아 "한국에서 델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라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기대를 걸어 봅니다.
덧붙임 #
1. 델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AS 같은 서비스 분야의 문제는 고객이 실망하면 결과가 나빠질 것이며, 나라 밖 기업의 차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애플의 지니어스바와 유사한 서비스를 곧 선보인다고 하네요. 델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들고가서 바로 해결하는 서비스(carry in warranty)를 5~7월 중 국내 5개 대도시에서 고객 센터를 열 계획입니다.
2. 일본에 내놓은 터치스크린 방식 일체형 PC를 4월 중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3. 저는.. 델에 친화적인 성향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
델의 긍정적 변화를 말해주는 소비자는 어디에 있나? 델의 위기, 판매 방식 만의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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