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 한국화] '서당-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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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7 cm*22.7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자, 어제 배운 것을 한번 외워 보아라. "
훈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등뒤에 놓고 돌아서서 글을 외워야 합니다. 언제나 그 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일입니다. 전날 공부를 게을리했거나, 미처 글을 다 외우지 못한 학동은 오늘 진도를 나가기 어렵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앞서 나갈 때 뒤쳐지는 것도 서러운데, 벌칙으로 종아리까지 맞아야 합니다.
"야, 어제 그거 배웠잖아, 금생여수(金生麗水) 말이야! "
훈장님 가까이 앉은 친구는 입가에 손을 대고 조용히 첫 구절을 말해 줍니다. 물론 너그러운 훈장님은 그런 사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가까이 앉은 친구들은 책을 밀어서 앞으로 펼쳐 주거나 아예 책장을 들어서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훈장님 앞에 불려나간 아이는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매를 맞는 한이 있어도 알지 못한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허허, 금생여수라, 금은 여수에서 난다고 했거늘! 그 다음은 또 뭐라고 했던가? "
"옥출곤강(玉出崑岡)이요! "
훈장님의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학동들은 일제히 대답하였습니다. 앞에 불려나간 아이는 점점 울상이 되어갑니다.
"그래, 옥은 곤강에서 나온다 그랬지. 쯧쯧, 오늘도 회초리가 춤을 추게 생겼구나."
훈장님은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우스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껄껄 웃었습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 웃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할 수 없이 바지 끝을 졸라맨 대님을 풀고 종아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탁자 옆에 놓인 회초리를 생각하니 그만 왈칵 눈물이 납니다.
조선 시대 서당에서 흔히 있는 풍경입니다. 한문 공부는 글자의 뜻을 알고 쓸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보지 않고 줄줄 외워야 쉽게 깨칠 수 있습니다. 앞에 나오는 한문은 천자문(千字文)의 한 구절입니다. 학동들은 전날 이미 100 번이 넘게 글을 읽었습니다.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이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시간을 함께 공부해도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날그날 배우는 내용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지요.
화가 김홍도는 그 시대 어느 동네나 있었을 법한 서당 풍경을 실감나게 잘 나타내었습니다. 방이나 마루는 다 생략해 버리고, 사람 위주로 간결하게 그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드러나는 개성은 잘 살려내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면 속마음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글을 외우려면 요령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외우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암기법은 일단 전체의 내용을 다 꿰고 있어야 하고, 부분적인 것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한문의 경우, 전체의 뜻은 물론, 글자 하나 하나의 생김새와 앞뒤 관계를 알면 보다 쉽게 암송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시열(1607-1689) 선생은 글이나 사람을 잘 기억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에 큰 절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1000 명이나 되는 스님들의 나이와 이름을 다 외워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선생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비상한 기억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선생의 나이 일흔이 지난 어느 날, 또 다른 절을 방문하였을 때 같이 갔던 사람이 이런 제의를 하였습니다.
"선생님, 옛날처럼 잘 외울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볼 수 있을까요? "
선생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곧 이어 수백 명의 스님이 한 줄로 서서 선생에게 인사하고 나이와 이름을 말하였습니다.
"자, 이제 다 되었네. 시험해 보게. "
선생은 누구든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절에 같이 갔던 사람들은 스님들을 순서에 관계없이 섞어 놓고 몇 사람을 가려 뽑은 다음 선생께 나이와 이름을 물었습니다. 선생은 한 사람도 틀리지 않고 다 기억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고 합니다. /박영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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