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없이 기분이 우울한 날 오래 전에 사 두었던 와인을 딴다
형광등 불빛에 와인의 붉은 빛깔이 슬퍼 보인다
-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어렵사리 기억해 낸 싯구절을 중얼거려 본다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이 아니라 당신의 옛날 애인 생각하는 거 아녜요?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 와인의 슬픈 빛이 조금 가신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있다
내 기억의 한 자락이 잘려 나간다
가위 눌린 나의 절규는 끝내 메아리를 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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