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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오랜만에 사랑하는 딸 은혜를 만나 몇시간을 필요한 것을 사는데 같이다닌 것으로 하루가 지났다. 북쪽이라서 눈이 내리고 추위가 살벌할텐데 겨울에 건강하게 따듯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 들어가야할 시간이 될때까지 차안에서 손을 꼭잡고 앉아있던 은혜의 모습이 어여쁘고 안타까웠으나 은혜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어 꼭 껴안고 소리내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전부터 찬양이와 은혜를 만나고 헤어질 때 어김없이 하던 축복의 기도가 오늘도 이어져 나왔으며 이제 은혜는 친구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빠에게 작별의 키스를 하며 커다란 세개의 샤핑백을 들고 행복한 모습이면서도 헤어짐이 서운한 모습으로 그렇게 친구들에게로 달려갔다.
(은혜와 친구는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에 만났는데도 껴안고 소리지르고 뭔 일년만에 만난듯이 난리를 부린다) 이번에는 경황이 없어 잊었지만 다음에는 은혜의 친구들에게 커다란 케익을 사서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너무 좋아서 부둥켜 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드는 귀엽고 사랑스런 주은혜, 기숙사엔 방 하나에 둘씩 지내는데 어떨 때 인원이 많아지면 셋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둘이서 지내는데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오는 이곳서도 영리한 은혜는 적응을 잘하며 착하게 지내는 것이 대견하다.
사악하고 흉악한 마귀의 기운이 이곳에 접근도 못하도록 기도가 끊이지 말아야한다. 나의 딸과 이곳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14번 도로에서 남쪽으로 차를 몰며 달리다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갈곳을 생각하는데 뉴욕 주 북쪽으로 81번 고속도로를 세시간 정도 달려 캐나다로 들어가 동쪽으로 진행하고, 쉘브르 지나고 퀘백까지 가서 메인주로 해서 보스톤을 거쳐 뉴욕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하니 오륙일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이 되어 잠시 고민을 하였다.

7월에 농장서 일하던 후배를 만나러 온적이 있고 9월에 뉴욕서 만난적이 있어서 이곳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하니 반가워 한다. 캐나다 방향으로 가려다 전화했다고 하니 바로 근처인데 꼭 들르라는 것이다.

시골 길을 따라 어둠이 짙은 농장을 찾아갔더니 여럿이 불고기를 구워가며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같이 저녁을 조금 먹고는 농장에 널린 사과를 깨물었다. 날은 추워 골동품 난로에 큰 장작을 채워넣고 불을 쪼이고 앉았다. 
그렇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층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복잡하게 만들어진 책상이 마음에 들었는데 스타일을 보니 대충 육칠십년 혹은 백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집안을 돌아보면 오랜 농장가옥의 실내의 사진을 만들고 가을농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별것 아닌듯 해도 세월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들이다. 오래전 어느 피아니스트의 집에 간적이 있었는데 피아노가 매우 낡은 것이었는데 음대시절 부모님이 사준 것으로 고가의 피아노였던 것을 보고 놀란적 있으며, 뉴욕의 어느 장로님은 옛 한국음악의 선각자이신 "현제명" 선생께서 사용하시던 바이올린을 연주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옛것은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 보존되어 후대에 전해져 내려 오는 것이다. 
투박한 시골 농장에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구식의 이런 가재도구들이 늘 나의 눈길을 끈다. 
봄부터 농사를 짓느라 검게 그을린 후배는 늦가을에 접어든 지금도 얼굴이 아직도 번들거린다.
소시지와 큰버섯 등으로 찌개를 끓였는데 너무나 맛있어 식당을 오픈해도 될 정도였으나 내게는 너무 매웠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와 발생한 가정사의 한많은 사연을 갖고있는 전자공학도 출신의 후배는 어쩌다 한마디씩 피맺힌 사연이 흘러나오는데,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 갈라놓은 교회안의 목사와 치맛바람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가 많은 친구다. 
농사철은 이제 끝이난 한적하고 을씨년한 가을 농장을 둘러보려고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모든 농장들은 이것과 모습이 같은 창고 건물이 갖추어 있는데 다용도로 쓰여지는 창고. 
농장서 연료를 계량하여 사용하던 주유시설도 오랜세월을 이곳에 있다. 
50 여년 되었다는 골동품 트럭. 
지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기울어진 창고는 장작을 패서 쌓아 두는 곳으로 통나무를 하나 올려놓고 내리치니 제대로 갈라진다. 
농장 가운데 길 주변의 낙엽은 모두 져버리고 스산한 풍경이 되었다. 
곳곳에 여러대 널려있는 트랙터도 이젠 창고에 들여 놓아야 할 시즌이 되었고 
여름들판에 가득했던 포도는 수확을 끝낸지 이미 오래이고 잎사귀조차 남은 것이 없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과거 인부들의 숙소로 쓰였을 집은 사용하지 않는채 방치되어있다. 
이곳 농장은 포도/ 호박/ 사과/ 등을 기르는데 밭 한편엔 수확하고 남아돌아 버려진 수박이 널려있다. 
여름에 내려갔던 호숫가 비탈길은 매우 가파르고 조심스레 돌아보는 이 아침, 이지역은 손가락처럼 길게생긴 다섯개의 호수가 있어 휭거레이크 "손가락 호수" 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누구의 집인지 숲속에 고즈녁하게 자리잡았고 한겨울 이곳에서 글을 쓰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농장으로 올라와 갓길로 접어드니 창고로 쓰이는 건물엔 장작이 쌓여있고 낙엽을 떨어져 마당에 가득한데 이곳 농장에는 곳곳에 비어서 사용하지 않는 집들이 많다. 
빈땅엔 지금은 아무도 사용치 않는 캠핑 추레일러가 놓여있다. 
농장 안마당엔 식사시간을 알리던 오랜 종이 서있는 이곳 농장의 아침. 
이웃 농장의 모습들도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같은 모습으로 매우 친환경적인 조건을 갖춘 지역이다. 
메노나이트 (중세의 전통기독교인) 들이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5일장 처럼 열어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는 곳으로 올해의 마지막 장날에 가보고 싶기도 하다. 
윈드밀, 전통기독교인들의 대규모 장터. 
여름에 갔던 메노나이트의 교회마당엔 그들이 타고온 마차들이 가득하고 말은 주인이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흰 건물이 이들의 예배당이며 안에는 어떠한 현대 시설도 없고 전기시설조차 없는 곳으로 뭐든지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메노나이트의 생활의 중심이며 마당에는 학생들이 타고온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교회마당 가장자리로는 주차장 시설이 삼면에 있어 말과 마차들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까 하다가 늦게 온 관계로 밖에서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농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언덕위 길가에 위치를 잡고 있으니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마구 뛰어나온다. 
아이들이라 신앙보다는 부모를 따라 와서 그런지 가장 먼저 튀어나와 각자 세워둔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오빠의 곁을 스치면서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면서 지나간다. 
여학생들은 그들의 전통적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데 치마가 걸리지 않도록 가운데 후레임이 아래로 내려간 여성전용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차들이 다니지 않는 도로 길가에 서있는 나그네에게 어느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수줍어 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매우 순수하였다. 
건물의 이편은 여인들만 드나드는 문이고 반대편은 남자들만 드나드는 문으로 예배를 끝내고 나온 여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마차는 옛모습 그대로에 변한 것은 백밀러가 달려있고 헤드라잇과 유리창이 있는 것이 그나마 좀 변한 모습이다. 
한마리가 끄는 마차도 있지만 더러 두마리의 말이 끌고 다니는데 뒷자리에는 아이들이 있다. 
매우 낭만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의 조급함과 번잡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7월 이들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집에는 전기시설은 있으나 라디오/ TV/ 등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전자제품들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좀 답답할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처럼 살아가는 것도 좋게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대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일 뿐이며 마차가 달그락거리며 다니는 이곳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들에게 뭔 유명제품이 소용있겠으며 현대문명의 각종 병폐적인 브랜드 제품의 자랑이 뭔 필요가 있는가... 서로 경쟁적으로 개성을 잃고 잘난체하면서 살아가는 도심의 현대인들의 삶이 이들에 비해 뭐 그리 행복할 요소가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시골 농경지를 지나 Penn yan "펜 얀" 읍내로 가기로 하였다. 
읍내는 조용하고 번잡스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맥도날드/ 던킨도넛을 비롯한 많은 상점들이 있는 이곳이다. 
읍내를 속속들이 돌아다니면서 물레방아간부터 오랜 옛것을 살펴보는 오늘 하루였다. 
위의 집들은 수령이 대략 150년 정도 된 가옥들로서 현대로 이어지면서 겉모습을 리노베이션한 정도의 집들이고 그시절 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펜얀" 마을의 중앙도로인데 말머리에 가린 짙은 색 3층 건물은 1837년에 지어진 건물로서 아래층은 지금도 약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을 서치하여 그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봤다. 1837년을 우리역사에 맞추어 보니, 때는 (헌종임금 즉위 3년)이 되는 해로서 미국서는 "모르스" 에 의해 전신기가 발명되었다. 전보를 보내는 전신기가 조선땅에 들어온 것은 고종 22년인 1885년에 서울과 인천에 처음으로 가설되었으니, 조선땅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로서 무척이나 발달된 미국 시골의 옛 건물의 형태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건물의 유형은 고딕식 건물 같기도 하고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아래층은 리빙룸과 주방과 다이닝룸 시설 그리고 벽난로가 있고 이층은 침실로 사용되는 것이고, 지붕아래의 다락방은 가재도구들을 모아두는 창고 역활도 하며, 아이들 놀이방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형태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책이 잘팔려서 돈을 많이 벌면 새집말고 역사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이런 형태의 오래된 가옥을 구입하여, 이층 큰방에 사랑하는 딸의 방을 고전적으로 꾸며주어 함께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나의 노년을 보내려고 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짧지만 이정도로 끝내고 다음 편에는 펜얀마을의 유래와 더불어 이지역을 둘러본 시골읍내의 이야기들로 이어지고 이후 시라큐스 지역까지 가면서 지난 곳들의 가벼운 이야기로 이어져야겠다.
이후 새로이 먼 여행을 떠나기 전, 시간을 내어 프랑스 국민이며 미국 국적의 전형적인 불란서화가인 나의 절친한 친구의 가정을 방문하여 서양인 화가의 살아가는 한 단면을 블러그에 이야기로 만들어볼 예정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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