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날이 밝기 직전에 항상 가장 어둡다.....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사랑이와행복이 (byongwankim)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7)
기본폴더
설문
오늘 전체
방문자 11 15573
구독자 0 1
댓글 0 1
참조글 0 0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09 11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joyce
- 고객만족OKfk
- e_suhyun
- 선우
- 외국어정복자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최근 글
악명 높은 독점 자본가..
집단사고: 피그만 침공..
나의 사진
부부는 이런거래요...
오신가족 여러분 크럽으..
지난 글
2009년 1월
2009년 2월
2009년 3월
2009년 4월
2009년 5월
2009년 6월
2009년 7월
2009년 8월
2009년 9월
2009년 10월
2009년 11월
개설일 : 2004/07/12
 

[스크랩] 집단사고: 피그만 침공과 탄핵 결의의 공통점

2005.07.13 18:15 | 기본폴더 | 사랑이와행복이

http://kr.blog.yahoo.com/byongwankim/931067 주소복사


카스트로와 케네디, 그리고 피그만 계획을 주도한 CIA 간부 하워드 헌트




보통 머리를 맏대고 생각을 모으면 더 좋은 생각이 나올 것이라고들 기대한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모으면 좋은 생각보다는 황당한 생각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은 1961년 4월 초 미국에 망명해 있던 쿠바인들을 배후조종해서 그들로 하여금 피델 카스트로를 공격하게 만들자는 작전을 짰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17일 CIA가 과테말라에서 훈련시킨 1300여 명의 침공군이 쿠바 남부 코치노스만(피그만) 해안에 상륙, 침공을 개시했다.

미국의 예상에 의하면 이 침공직후 쿠바민중들이 봉기를 해서 카스트로 정권을 몰아내고 소위 자기들이 말하는 자본주의 민주정부가 수립될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쿠바민중은 구시대의 잔재였던 망명쿠바인들 보다는 카스트로의 혁명군 편을 들었고,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했던 쿠바혁명군 마저 신속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이 작전은 4일 만에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침공군은 100여명 이상이 죽고 1200명 이상이 포로가 되었다. 쿠바 내부에서는 반혁명군이 기대한 국민 봉기가 일어나지 않았음은 물론 국민의 단결은 더욱 강화되고 이른바 <미제국주의>에 대한 자신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카스트로는 남아있던 1179명의 포로들을 미국으로부터 5000만 달러 상당의 식품과 의약품을 받고 교환했다.



쿠바에 기념물로 남겨져 있는 당시 침공군의 글라이더 잔해



이 사건은 미국이 저지른 가장 처절한 삽질 중의 하나로 아직까지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당시의 정황을 재조사한 역사가들에 의하면 미국정부의 수뇌부가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 계획을 입안했는지, 그들에게 제정신이 남아있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얼토당토 않은 계획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쿠바국민들의 민심을 오해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구체적인 작전계획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예를 들어, 침공지역인 피그만과 재집결장소인 에스캄프리 산악 사이에는 수백킬로의 늪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아무도 이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침공군은 결국 이 늪지에 빠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서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왜 이런 멍청한 짓거리가 일어난 것일까?
그것도 작전깨나 세워봤다는 군수뇌부와 정보부 핵심인물들이 모여서 내놓은 계획이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집단사고(group thinking)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계획을 짜기 시작하면,
이들의 생각은 현실성을 망각하며 반대의견을 무시하고 점차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계획팀에 참여했던 대통령 안보보좌관 아서 슐레진져는 이 작전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왜냐하면 회의에 참석한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는데 괜히 자기가 나섰다가 미움만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점점더 극단적인 낙관론, 극단적인 행동을 주장하게 되는 경향을 집단 극화현상(group polarizat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계획에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지적하겠지라고 믿으며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넘어가는 경향을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그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이런 과정이 계속 축적되면서 결과적으로 그런 뻘짓거리가 나올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집단과정이 멍청한 짓거리만은 아니다.
가상현실에 관한 글에서 언급한 바 대로, 믿음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바로 이런 집단과정의 다른 면이다. 실제로 이 피그만 침공계획 입안자들도 새로운 가상현실을 만들어낸 셈이기도 하다.

그들이 공유한 믿음 속의 피그만은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도) 미국의 침공을 환영하는 쿠바인민들이 가득찬, 탄탄대로였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옛날 이야기를 지금 쓰는 이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번에 저지른 짓거리 역시 이 집단사고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힘겨루기를 위한 탄핵 운운에서 시작해서 설마 설마하던 진짜 탄핵결의를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이 머리를 맏대고 믿음을 공유하면서 결국 자기들만의 가상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속에 빠져서 말도 안되는 멍청한 짓을 저질러 버렸음을 알수 있다.

자기들이 대통령 탄핵을 하면 전국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줄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마치 자기들이 침공하면 전 쿠바인민들이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믿었던 피그만 침공조의 심리 상태와 똑같은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정신 못차리고 TV 토론 같은데에 멍청한(어쩌면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을지도 모른다만) 인간들을 내보내서 자기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만천하에 폭로하는 짓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그들이 제대로 된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에 빠져서 사는 인터넷 폐인들을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을지 모르나, 자신들이야말로 국회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지들끼리 믿음을 공유하며 인터넷 폐인들보다 더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세계속에서 빠져 살았던, 국회 폐인들이었던 것이다.




여튼,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집단 사고과정이 정말로 고맙다.

그 덕분에 이 나라의 역사가 예기치 않게 한걸음 진보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집단사고 만세!!!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