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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8/10
 

다르푸르 사태-나라 간 전쟁보다 내전이 더 참혹

2007.09.07 13:07 | 분쟁지역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1190 주소복사

``나라 간 전쟁보다 내전이 더 참혹`` 조회(3) / 추천



http://blog.joins.com/namjh0/8469649 등록일 : 2007-09-07 05:29:20




반군세력인 수단해방운동(SLM) 소속 병사가 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주바 시민들을 정렬시키고 있다. 주바는 반군 자치지역인 남부지역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주바 AP=연합뉴스]


5일 하늘에서 내려다 본 아프리카 북동부의 수단 다르푸르. 우기를 맞아 녹음이 한창이다. 겉보기엔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최근 4년간 여기서 20여만 명이 내전으로 숨졌다. 그래서 '살육의 땅'으로 불린다.

공항에 내려 이 지역 중심 도시인 알파시르로 가니 금세 풍경이 달라진다. 변변찮은 집들이 대부분 부서진 채로 방치돼 있다. 기관총을 탑재한 트럭은 염소와 당나귀 사이를 질주한다. 도심 곳곳이 아직도 위험지대다. 상점가를 지나는데 인도 출신의 유엔 직원은 "몇 주 전 부족 간 충돌로 7명이 숨진 곳"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나라 간 전쟁보다 한 나라 안에서 부족 간 살육이 더 참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올 봄부터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게 이 정도라고 한다. 알파시르는 아프리카연합(AU) 소속 군인들이 지켜주는 덕에 희생자가 적은 편이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는 살벌한 곳이다.



인종 학살은 대부분 인종과 종교가 다른 상황에서 벌어진다. 그러나 다르푸르에선 예외다. 이슬람 교도끼리 서로 죽이고 있다.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살해했으며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능욕했다. 유엔에서는 "기후 온난화로 북부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쪽 유목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이런 참혹함이 빚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남부 주바 출신 언론인 샘슨 리버티는 역시 인종 차별을 근본 원인으로 분석한다. 그는 "북부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이 똑같은 흑인인데도 남부 사람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한다며 무차별 학살했다"고 비난했다.

다르푸르의 비극을 절감할 수 있는 곳은 난민촌이다. 2003년 이후 난민만 250만 명이나 발생했다. 이들 중 극히 일부만 현재 난민촌에 수용돼 있다. 4만8000명이 거주하는 알살람 등 3곳에 난민 수용소가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5일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는 "현장의 비참함을 직접 눈으로 보니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어 "다르푸르 사태가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에서 기인한 점이 있는 만큼 유엔 차원에서 수자원 개발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다르푸르 사태는 최근 국면 전환을 맞고 있다. 7월 반 총장 주도로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 파병 결의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10월부터 유엔 평화유지군 2만6000명이 살육을 막기 위해 다르푸르 곳곳에 주둔하게 된다. 6일엔 반기문 총장과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수단 정부와 반군 간의 평화회담을 다음달 27일부터 리비아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도 늘었지만 특히 구호단체 직원들에 대한 공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공보담당 에밀리아 카셀라는 "올 들어 무장세력에 당한 사건만 77건"이라고 말했다.

알파시르(수단)=남정호 특파원


◆다르푸르 사태=2003년 발생한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의 내전으로 인한 재앙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20만 명 이상이 숨졌으며 난민이 250만 명을 넘음으로써 '21세기 최대 재앙'으로 불린다. 서부 지역에 밀집한 흑인 푸르족이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가 이들을 학살하면서 시작됐다. 국제사회가 나서 지난해 5월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교전은 계속되고 있다

[스크랩]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들

2006.07.20 08:34 | 분쟁지역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74 주소복사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기록에 남아있는 최악의 재난들 리스트.

흥미로운 것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은 바로 기아라는 점. (그 다음은 전염병)

지진, 화산 폭발, 해일, 질병 등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 수를 모두 합치더라도 굶어 죽은 사람들의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예나 지금이나 식량 부족이다.

실례로, 1990년대 북한에서는 기아로 350만명이 목숨을 잃어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꼽혔다. (미국에서 집계한 수치로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음.)

이번 리스트에서 전쟁은 제외했다.



Athens, 430 B.C.: Typhus epidemic
아테네에서 발생한 기원전 최악의 질병. 어떤 질병이었는지, 어디서 유입됐는지, 얼마나 죽었는지, 현재까지도 역사상 최악의 의학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대재앙. 폴리스 도시 국가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이던 그리스 반도에는 항구를 중심으로 강력한 질병이 번져 나갔다. 이 질병은 현대의 애볼라 바이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는데, 고열과 구토, 눈과 피부가 붉어짐, 각혈 등의 증상을 보이다 일주일만에 사망했다고.

이 질병은 3년간 그리스 반도 전체를 휩쓸었으며, 아테나의 패망을, 스파르타의 승리를, 그리고 찬란한 그리스 문명의 쇠퇴를 가져오고 말았다.




Pompei, 79: Volcanic eruption
폼페이 화산 폭발. 로마 제국의 가장 융성한 도시였던 폼페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멋진 자연 경관과 위락시설이 발달한 관광 도시였으며 농업과 상업이 크게 발달한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베수비오 화산의 갑작스러운 폭발로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화산재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인명 피해가 얼마나 됐는지는 정확히 기록돼 있지 않다.)

이후 1500년간 폼페이는 잡초와 덩굴이 무성한 폐허였다가 17세기 중반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돼 폼페이의 장대했던 문화 유산들이 세상에 공개됐다.



Antioch, Syria, 526: Earthquake
오늘날의 터키와 시리아 경계선에 있는 안티오크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이 일어나 25만명이 사망.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경계선에 있는 이 도시는 종교로 인한 전쟁들, 그리고 이 시기 지속적으로 일어난 크고 작은 지진 때문에 오랜 세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Holland, 1228: sea flood
네덜란드의 프리슬랜드에 바다가 범람,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이후로 네덜란드는 바다 연안 지방에 제방을 쌓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Europe and Asia, 1346-52: Bubonic plague or "black death"
1346년에서 1352년까지 약 6년간 유럽을 휩쓴 흑사병(Balck plague). 유럽의 인구 1/3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은 사망률 80%에 이르는 임파선 페스트와 사망률 100%의 폐 페스트 두 가지 형태로 기승을 부렸다. 임파선이 심하게 붇고 피고름이 쏟아져 나오거나, 피부 조직이 까맣게 괴사하는 것이 특징. 흑사병은 당시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도 발병해 총 7500만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다. 당시 흑사병은 아시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인구 밀도가 높고 위생상태 등이 열악했던 유럽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유럽에선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하여 노동력의 가치가 크게 높아져 농민들의 지위가 향상되기도 했다. 




Shensi, China, 1556: earthquake
중국에서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지진 피해. 센시 지방에서 발발한 이 지진은 반경 800km에 달하는 유래없이 넓은 지역을 강타했으며, 지진의 피해를 받은 지역의 주민의 60%가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진도는 리히터 규모 8.0에서 8.3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대략적인 지진으로 인한 희생자 수는 83만명에 달했다.



Hokkaido, 1730: Earthquake
일본 훗카이도 지방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4만명 사망.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피해 중 가장 거대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Bengal, India, 1769: famine
인도의 벵갈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으로 100만명 사망.




North America, 1775-82: Smallpox
북미 지역에서 발행한 천연두로 13만명 사망. 현재는 백신 개발로 박멸됐지만(1980년) 당시 천연두는 흑사병 이래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북미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15세기엔 스페인 군의 침입으로 남미의 원주민들이 천연두로 수백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ran, 1780: earthquake
이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20만명이 사망. 




Ireland, 1845: famine
아일랜드의 기근으로 100만명 이상이 사망.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거대했던 기근으로 기록되고 있다. 영국은 이웃나라 아일랜드에서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 갔는데도 아무런 구호 활동을 펼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 이후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증오는 더욱 심해졌다.



France, 1870-71: Smallpox
프랑스에서 천연두로 50만명 사망. 



Bangladesh, 1876: Cyclone
방글라데시에서 폭풍으로 20만명 사망. 



China, 1876-78: Drought
중국에서 일어난 2년간 계속된 지독한 가뭄으로 900만명이 굶어 죽음. 



Huayan Kou, China, 1887: Yang-tse Kiang flooding
중국 양쯔강 유역의 홍수 피해로 100만명이 사망. 




San Francisco, 1906: earthquake and fire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지진과 화재로 3,000여명이 사망. 사망자 숫자는 많지 않으나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하는 기록적인 재난이었다. 지진은 1분도 지속되지 않았으나, 지진으로 인해 도시 전체에 대화재가 발생하면서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었다.



China, 1907: famine
중국에서 기근으로 2000만명이 사망.




Worldwide, 1918: Influenza pandemic
전세계에 변종 감기 바이러스로 2500만명에서 1억명 정도의 사망자 수 기록. 세계 1차대전 중 일어난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흑사병 이래 가장 위력적인 질병으로 인류사에 기록된다. 1918년에서 1919년까지 전세계 인구의 약 20%가 이 질병을 앓았으며, 질병이 발발한 뒤 25주만에 25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AIDS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가 2500만명이 되기까지 약 25년이 걸린 것에 비교할 때 엄청난 속도.) 전쟁의 혼란을 겪지 않은 미국에서만 65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인도의 경우 1700만명이 사망해 전체 인구의 5%가 이 감기 바이러스로 사라져갔다.
 
증상은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감염된 사람은 갑자기 무기력해져 걷지도 못한 채, 얼굴에 푸른 반점을 띄고, 피를 토하며 기침을 하다가 하루나 이틀만에 사망했다. 대개는 허파에 피나 고름이 차서 질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짐. 

감기 바이러스는 이후로 계속된 변이를 일으키며 주기적으로 확산, 1968년까지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다. 이 변이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1998년의 일이었다.



Gansu, China, 1920: 8.6 earthquake
중국의 리히터 규모 8.6의 강진으로 20만명 사망. 



Ukraine, 1921: Famine
우크라이나의 기근으로 500만명 사망. 




Yokohama, Japan, 1923: 8.3 earthquake
일본 요코하마 대지진으로 14만 3000명이라는 기록적인 사상자 발생. 당시 요코하마 항은 일본의 도시 현대화와 경제 성장을 주도하던 공업화 도시였으며, 밀집 인구가 많아 엄청난 사상자를 냈음. 이 지진으로 동경 일대의 산업 지대가 괴멸됐고 일본은 공업화에 막대한 지장을 겪었다.



Nanshan, China, 1927: 8.3 earthquake
중국의 난샨 지방에 리히터 규모 8.3의 강진 발생, 20만명 사망. 



China, 1928: Famine
중국에 기근 발생, 300만명 사망. 



China, 1931: Flooding
중국에 이번엔 홍수로 370만명 사망. 



Ukraine and Russia, 1932: Famine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기근으로 500만명 사망. 



China, 1936: Famine
중국에 기근으로 다시 500만명 사망. 당시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홍군이 격전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공산주의를 제압하지도 못하고 인민의 삶을 개선시키지고 못한채, 수많은 백성들을 굶어죽게 방치했다. 이후로 계속된 중국 전역의 기근으로 장개석의 국민당은 국민으로부터 철저한 미움을 받았고 끝내 실각해 대만으로 패주한다.  



China, 1941: Famine
또다시 닥친 중국에 기근, 300만명 사망. 



Bengal, India, 1943: famine
인도의 벵갈 지방에 기근으로 350만명 사망. 



Worldwide, 1957: Influenza pandemic
전세계에 또다시 변종 감기 바이러스로 400만명 가량 사망. 




China, 1958-61: Famine
중국에 기근으로 3800만명 사망. 장개석의 국민당을 제압하고 중국 대륙을 석권한 모택동. 대륙의 통일 후 벌인 모택동의 농업 경제 정책-대약진 운동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중국에선 엄청난 인구가 굶어죽고 만다. (사진은 중국의 대약진운동을 선전하는 포스터.)



India, 1965: Famine
인도에 기근으로 150만명 사망. 



Worldwide, 1968: Influenza pandemic
다시 찾아온 변종 감기 바이러스, 전세계에 75만 명의 사망자를 낸다. 



China, 1969: Famine
중국에 기근으로 2000만명 사망. 



Bangladesh, 1970: Sea flood
방글라데시에 바닷물 범람으로 50만명 사망. 




Ethiopia, 1974: famine
이디오피아 20만명이 기근으로 사망. 이디오피아는 이후로도 1980년대까지 수십만명이 지속적으로 굶어죽는 참사가 계속됐고,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한다.




Nuclear. Chernobyl, (1986)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 폭발 당시 30명이 죽고, 이후 방사능 오염 후유증으로 19명이 사망. 사고 지역인 우크라이나 당국은 9만 3000명이 방사능 오염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발표.




North Korea, 1995-98: Famine and floods
북한에 기근과 홍수 등으로 350만명이 사망. 이후 북한 공산당 정권의 위기설이 지속적으로 흘러 나온다.




Asia, 2003: SARS
SARS, 일명 조류 독감으로 744명 사망. 대부분은 중국인. 사망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치료법을 알아내지 못해 아직도 엄청난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음.  




Southeast Asia, 2004: tsunamis caused by 9.0 earthquake
동남아시아에 강도 9.0의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해일) 사태 발생. 인도네시아에서만 11만명이 사망. 스리랑카, 인도, 태국, 말레이지아, 몰디브, 소말리아 등지에서 수백 수천 수만 명의 희생자,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난민을 발생시킴.




Louisiana and Mississippi, USA, 2005: "Katrina" hurricane
미국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에 카트리나 허리케인. 1417명 사망. 사망자 수보다도 주 전체가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어 엄청난 재산 손실을 입음.



저자: 야후! 집중 조명
http://kr.blog.yahoo.com/know_blog/13183.html


덧붙임
1. 먹는 음식에 감사합시다.
2. 무단으로 퍼가서 출처도 밝히지 않는 비양심적인 사람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조치를 취할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스크랩] <北미사일>부시 "北 외교해법 아닌 옵션있다"

2006.07.07 13:17 | 분쟁지역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64 주소복사


뉴스 : CNN 출연..北 요구 양자협상 거부 재확인(워싱턴=연합뉴스) 조복래 특파원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6일 북한의 미사일및 핵 위기 종식을 위해 외교적 해법 이외의 다른 옵션(선택)들을 갖고 있다고 강조, 북한에 대한 ..

[스크랩] 암흑 속에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2006.07.07 12:42 | 분쟁지역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63 주소복사

암흑 속에서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버지니아 틸리(정치학 교수. 남아프리카 공화국)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 명의 군인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해 연일 폭격을 퍼붓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들의 3분의 1가량을 무더기로 연행해 가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자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을 좌절시키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와해 공작으로 이미 쇠약해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산산 조각내는 행위이다.

하마스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정치에 대한 통제를 다시 회복하려는 파타의 의도나 하마스와의 경쟁 관계는 현재로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되었다. 오슬로 평화 협정 모델의 완벽한 붕괴, 팔레스타인 영토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이스라엘의 계획은 마침내 곧 현실이 될 전망이다. 아마도 팔레스타인은 각 정파를 넘어 또다시 단결해야 할 것이다.

정치와 외교 전망도 간단치 않은 문제지만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정치에 초점을 맞출 수만은 없다. 이스라엘의 전투기들이 연일 가자 지구 전역을 공격하면서 끝내 가자 지구에 있는 단 하나의 발전소까지 파괴했다. 가자 지구에 있는 130만 인구 중 절반이 넘는 70만 명이 현재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6개월가량 전기를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밤에 불을 켤 수도 없고 냉장고가 돌아가지도 않으며 푹푹 찌는 가자 지구의 여름에 선풍기조차 틀수가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숨조차 쉴 수 없는 집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없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와 불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폭격만이 가자 지구 전체를 흔들고 있다.

반복되는 폭발은 의심할 여지없이 대혼란을 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유리창이 깨지고, 무서운 아이는 겁에 질린 부모의 팔에 안겨서 소리를 지른다. 노인들은 심장 마비로 쓰러지고, 임신한 여성들은 계속되는 유산으로 몸이 망가져 간다. 끝없는 절망, 식량과 물을 비축하려는 안간힘...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휴대전화도, 컴퓨터도 쓸 수가 없다. 더구나 이 악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구나 유일한 발전소까지 파괴되어버린 이번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이 썩어가는 한편, 남아 있는 유일한 음식은 요리를 필요로 하는 곡물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스로 요리를 하지만 국경이 모두 봉쇄된 현재 가스가 들어올 리 만무하다.
부엌의 프로판 가스가 떨어지면 음식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가난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매일 먹는 유일한 음식인 렌즈콩, 후무스, 빵을 요리할 수 없게 된다.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 지구에서는 장작이나 석탄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참상보다 더 큰 비극이 있다. 바로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자 지구의 공공 수도 공급은 전기로 이뤄지는데, 현재 수도꼭지는 말라버렸다. 하수 시스템도 없다. 자,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발전소 파괴로 가자 지구 전체에 최소 6개월간 전기 공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가자 지구의 대수층은 이미 바닷물과 하수, 그리고 과도한 펌프질(지금은 버려진 이스라엘 점령촌의)로 오염된 상태이며 부적절한 하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식수로 사용하려면 전기로 작동되는 설비로 정화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사용하기 전에 최소한 끓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기나 가스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가자 지구의 사람들은 앞으로 6개월간 전기와 가스를 공급받지 못한다.
정화되지 않은 물을 마신다는 것은 곧 콜레라와 같은 질병을 의미한다. 가자 지구와 같이 인구 밀도가 높고 위생에 쓰일 연료나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콜레라가 한번 발생하면, 마치 들불처럼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환자들이 쏟아져 나와도 병원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결국, 사람들은 살 수 없게 된다. 이웃한 그 어느 국가들도 수 백 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흡수할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팔레스타인 난민의 대량 유입은 예컨대 이집트 같은 나라를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 것이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서안 지구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갈 수가 없다. 가자 지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자 지구 주민들은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갈 수도 없고 서안 지구를 통해 요르단으로 갈 수도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신분증을 소지한 그 어떤 이들도 서안 지구로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백 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은 지금 덫에 갇혀 있다. 집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의 폭격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에게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죽게 할 수도 있는 오염된 물을 먹이면서.

이 엄청난 인도주의적 재앙은 국제 사회의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에 의해 더욱 추동되고 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 전체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폭격이 자신들의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소리를 들으며 웅크려 있는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이스라엘이 납치된 군인을 구출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납치 군인의 구출은 대다수 민간인들이 고통 받지 않는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속편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스라엘의 폭탄이 가자 지구의 모든 도로들을 파괴시키는 동안, G8 정상들은 “우리는 이스라엘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읊어댔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대게임”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싶어 하는 러시아는 어떤가? 러시아 외무부는 “자국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방어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권리와 의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마치 샬리트 상병이 이 모든 파괴의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인권의 전통에 강력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고상한 유럽은 어떤가. 인권법의 강력한 옹호자라 자부하는 유럽연합은 고작 “EU는 중동 지역의 악화되는 안보와 인도주의적 상황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다소 기운 없어 보이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는 표현은 “우리는 심각하게 화가 나 있다”의 외교적 코드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깊은 우려”는 곧 다시금 로드맵의 실패를 드러내는 냉정한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중동 문제에 있어서 이와 같은 비현실적 외교적 거품들은 예외라기보다는 하나의 규범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불쾌한 사실들과 대면해야 한다. 서유럽 민주주의와 가장 근접해 있다고 주장하는 그 ‘민주 국가 이스라엘’이 지금 1 백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대량 학살 정책의 구실로 납치된 샬리트 상병을 내세우는 것은 마치 1976년 남아공의 소웨토 봉기를 다루던 언론이 살해당한 백인 의사를 우려먹었던 것처럼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스라엘은 전쟁 범죄로 불릴 만한 일들을 지속적으로 자행해 왔다. 대대적인 주택 파괴, 몇 주간의 통행금지, 테러 예방이라는 명목하의 무기한 구금, 대규모 영토 몰수, 팔레스타인인들의 올리브 과수원과 농지 파괴, 수감자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고문, 사법행형제도 바깥에서 자행되는 살해, 민간인 지역에 대한 공습, 대량 학살 등. 이 모든 것은 제네바 협약에 위반된다. 이스라엘 군사 점령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가자 지구 안에 갇혀 스스로 방어할 수도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유일한 전기 공급원을 파괴한 행위는 전례 없는 야만적 행위다. 이러한 방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치가 사용했던 바르샤바의 게토와 똑같다. 이러한 상황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관점에서 지금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우리 모두를 암흑 속으로 밀어 넣게 될 것이다

54. 팔레스타인 분쟁
(최초 등록: 1999.4, 업데이트 : 2004.6)

○ 이-팔 유혈충돌, 문제점과 전망 (2002.4)

○ 아리엘 샤론의 등장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전망 (2001.4)

 팔레스타인 분쟁: 세계 평화의 시금석 (2000.4)


 

개요

팔레스타인 분쟁은 유태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서의 2천 년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서기 135년경 이 곳에 거주하고 있던 유태인들이 로마에 의해 추방된 후 아랍인들에 통치되어 왔다. 아랍인들은 사라센제국의 건설 이후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였으며, 예루살렘을 성도로 삼아왔다. 그 후 이 지역은 십자군 원정이 있었을 때 기독교도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당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아랍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원인과 시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주전 13세기,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간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비슷한 시기에 남부해안 지역으로 해양민족인 필리스틴 사람들이 이주하고 양 민족간에 영토 분쟁이 시작된다. 필리스틴은 영어로 Philistine이고 이 사람들이 현 팔레스타인(Palestine)이다. 따라서, 바로 이 시점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주전 1020년경, 이스라엘 민족은 필리스틴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다윗왕 영도 하에 통일왕국을 이룬다. 그러나, 이후 분열하여 주전 63년경 로마에 의해 점령당하고 주후 135년경에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유태인들이 로마에 의해 추방된 후 아랍인들에 통치되어 왔다. 아랍인들은 사라센제국의 건설 이후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였으며, 예루살렘을 성도로 삼아왔다. 그 후 이 지역은 십자군 원정이 있었을 때 기독교도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당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아랍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반유태인 운동이 전개되고 그에 대응하여 유태인들이 '조국의 건설'을 목표로 민족주의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면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유태인들은 1897년 8월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된 제1차 시온주의자회의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한다는 이른바 '바젤계획'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이 계획에서 ① 유태인 농업, 공업 노동자에 의한 팔레스타인 식민지화 촉진, ② 각 국의 법률에 따라 적절한 지역적 또는 국제적 기관에 의해 유태인 전체의 조직화와 결속 도모, ③ 유태인의 민족적 감정 및 의식 강화, 육성, ④ 시온주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예비적 조치 강구 등을 결의하였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제국의 약화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미끼로 이율배반적 약속을 하면서 아랍민족과 유태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먼저 아랍민족의 협력을 얻어 오스만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독립국가를 창설시켜준다는 약속을 하였다. 당시 주카이로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enry Macmahon)은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전시외교정책의 내용이 담긴 서한을 멕카의 태수 후세인(Hussein)에게 전달하였는데(맥마흔-후세인 서한), 그 내용은 한결같이 아랍인들이 참전하면 전쟁 종결 후 그 대가로 후세인이 요구하는 아랍지역의 독립(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국가 건설 포함)을 보장해준다는 것이었다. 아랍인들은 이러한 서한의 내용을 믿으면서 오스만제국에 반기를 들고 영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수행하였다. 영국은 유태인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약속을 하면서 그들의 전쟁 지원을 유도하였다. 영국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대독일 전쟁 참여를 유도하고 유태인 재벌들의 재정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1917년 11월 발포어(Balfour) 외상이 영국 국적의 저명한 유태인 로드쉴드(Rothshild)에게 서한을 보내 유태인들의 민족향토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발포어 선언문).

그러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이와 같은 약속을 모두 저버리고 1920년 4월 상 레모(San Remo)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켰다. 영국은 그 후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오히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유태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유럽으로부터 이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오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 말 러시아와 폴란드에서의 반유태인 운동,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의 유태인 박해 등이 유태인의 이주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유태인들의 이주가 증가됨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 토지 소유가 늘어났으며, 이것이 아랍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반유태인 운동을 촉발시켰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반유태인 운동을 넘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조직화로 나타났다.

아랍민족의 저항이 격화되자 영국은 유태인들의 팔레스타인 지역 이주를 규제하기도 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민족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태인 이주를 강력하게 억제하였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이미 준군사적 단체인 이르건(Irgun)과 하가나(Haganah)를 조직하여 반영국 테러를 전개하면서 국가의 창설을 추구하였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영국은 아랍민족과 유태인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1946년 7월 양측간의 협상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이는 유태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되자 영국은 1947년 4월 유엔사무총장에게 팔레스타인문제에 관한 특별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여 골치 아픈 이 문제를 유엔에 떠넘겼다.

이에 따라 11개 국가로 구성된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UNSCOP)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팔레스타인문제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후 1947년 8월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하였는데,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태인의 지구로 분할한다는 다수안과 아랍인과 유태인을 포괄하여 연방국가를 창설한다는 소수안 두 가지를 건의하였다. 이에 아랍 측은 이를 모두 거부하고 소수민족의 권리와 성지 보호 의무를 지닌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 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하였다. 그러나 1947년 11월 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다수안을 채택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태인 구역으로 분할시켰다. 유태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한 반면 아랍 측은 거부하였다. 마침내 유태인들은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을 수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였다.

이로써 아랍 측과 이스라엘 측의 지루한 전쟁이 잉태되었으며, 이후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른바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리는 제1차 전쟁은 이스라엘 건국 직후 이집트를 비롯한 7개 아랍국가들이 무력적 항쟁을 벌이면서 발생되었다. 이스라엘 측은 이를 독립전쟁 또는 해방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이 전쟁은 유엔안보리의 지속적인 중재로 1948년 11월 16일 중지되었으며, 1949년 2월 14일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스라엘과 레바논,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에도 휴전협정이 성립됨으로써 종결되었다. 이라크의 경우는 이스라엘과 별도로 휴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다른 아랍 국가들의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전쟁의 종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는 전과를 성취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은 90만 명이 유랑민으로 전락하게 됨으로써 훗날 중동지역의 최대 골칫거리를 유산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 후 1956년 10월 이른바 '수에즈 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이는 이집트의 낫세르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함으로써 발생되었다.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시키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공격에 나섰고, 이스라엘도 이에 편승하여 이집트를 공격하는 데 참여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찌란해협을 일방적으로 통제하였고 가자지구에서도 빈번한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이집트에 대해 군사작전을 감행할 의도가 있었던 차였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해 시나이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전쟁은 미국과 구소련이 영국과 프랑스 및 이스라엘의 대이집트 군사공격을 비난하면서 군사력 철수 압력을 가하고, 그 국가들이 점령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면서 중단되었다.

1967년 6월 5일에는 시리아, 이집트 연합세력과 이스라엘간에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시리아와 이집트는 각기 자신의 대내외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1966년 10월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 아랍국가들과도 협력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이스라엘 군사공격을 준비하였으나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양측간의 전쟁은 6일만에 종결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 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함으로서 이른바 '라마단 전쟁' 또는 '욤 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낫세르의 뒤를 이은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지역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대이스라엘 강경 정책과 반서방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을 끌어들여 수에즈 지역과 골란고원 양 전선에서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의 열세를 만회하고 골란고원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확보한 후 시나이반도의 이집트군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전쟁을 유리하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3년 10월 28일 유엔이 긴급군을 수에즈 지역에 파견하였고, 그 해 11월 11일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 전쟁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종결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아랍 측과 이스라엘 측간의 분쟁은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른 끝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우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되었다. 전쟁의 와중에서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고, 그에 비례하여 아랍국가들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이 크게 증대함에 따라 그 동안 소외되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정치적 위상도 커졌다. 마침내 1973년 11월 알제리에서 개최된 아랍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로 승인되었다. 유엔 역시 총회 결의로서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하여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치권, 민족 독립과 주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 중동 평화 달성을 위한 중요 당사자로서의 지위 등을 인정하였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대해 유엔 옵저버 자격까지 부여하였다. 이로써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단순한 테러집단이 아닌 정치적 실체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또 하나의 중대한 변화는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정(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이다. 이는 1977년 11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미국의 주선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함으로써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 지역에서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랍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평화협상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였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측은 드디어 1979년 3월 26일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고 평화적 관계를 정착시키는 한편 잃었던 시나이반도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는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상의와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이 협정을 체결하였기 때문에 아랍세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고립되었다. 평화협정 자체도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주안을 두었고,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 점령지 반환 문제 등과 같은 중동 평화 전반의 현안 쟁점을 포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중동평화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아랍측을 대표하여 전쟁의 주역을 담 하여 온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은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성숙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양국간의 관계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으나, 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은 어렵게 조성된 중동지역의 평화 분위기를 외면하고 1967년과 1973년 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및 골란고원을 1980∼1981년 기간동안 자신의 영토로 공식 합병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12월 이스라엘의 점령 지역에서 인민봉기가 발생하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평화회담을 제의하였으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1991년 4월 이를 거부하면서 유엔 감독 하의 국제회의 개최를 제의하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마침내 1993년 9월 13일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관한 원칙 선언에 합의, 아라파트 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의 백악관에서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이러한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도 양측간에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1994년 2월에는 유태인 정착민이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 사원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신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최소한 29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또한 1994년 4월에는 이스라엘 북부 아풀라에서 이슬람 과격파들이 차량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8명이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1994년 5월 4일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내 예리코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권은 인정하되 유태인 정착민 보호를 위해 이스라엘 경찰을 주둔시킨다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은 1994년 5월 13일 가자지구 내 군사기지를 팔레스타인 경찰에 이양하였다. 1994년 7월 1일에는 아라파트 의장이 가자 자치지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7월 5일 아라파트 의장과 각료들이 예리코 자치지역에서 취임식을 거행하고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다. 그 후 1995년 9월 28일 양측간에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95년 11월 2일에는 이스라엘이 점령지 철수계획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내 예닌 경찰서를 팔레스타인 측에 양도하였다.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8년 10월 25일 '와이 협정'(Wye River Memorandum)을 체결함으로써 양측의 핵심문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동 협정에서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을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하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98년 12월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1단계 철수를 마쳤으나 1999년 초 요르단강 서안에서 폭력사태가 잇따르자 철군을 중단하였다.
1999년 5월 평화공존을 공약으로 내 건 바라크가 이스라엘 총리로 당선된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재게되고 양측은 9월 와이협정의 후속조치로 이스라엘 점령지역의 일부 영토에 대한 추가 이양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의 땅 6.1%에서 철군하는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핵심쟁점에 대한 타결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핵심쟁점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이를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선포 시기 및 예루살렘 문제 등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게 요르단강 서안 땅 66%를 양도하고 일단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는 대신 동 예루살렘의 지위문제 등은 추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양측 평화협상이 교착된 상태에서 2000년 9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순례자 간의 투석으로 촉발된 충돌에 이스라엘 경찰이 발포하여 팔레스타인 7명이 사망하고 220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동 사건을 계기로 반 이스라엘 봉기인 인티파다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서 발생하였다.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데모와 간헐적 대이스라엘 테러에 대하여 이스라엘군은 탱크와 미사일 등을 동원하여 보복하는 등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었다. 양측의 충돌로 12월까지 약 300명이 사망하였다.

2001년 1월 미국-이집트-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4자회담이 카이로에서 개최되었으나 유혈사태의 원인에 대한 견해차로 합의에 실패하였다. 이스라엘측은 인티파다의 중단을 요구한 반면 팔레스타인은 봉쇄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선 해제를 주장하였다.

양측의 핵심 쟁점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문제이다.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자국내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 예루살렘의 관할권의 상당부분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하는 대신 약 37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포기하는 내용의 미국 중재안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장의 결단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국가를 수립하려는 주 목적이 이들 난민의 귀환을 위해서 이기 때문임을 감안할 때 귀환권 포기는 아라파트의 정치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고 나아가 강경파에 의한 암살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2000년 9월에 시작된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는 2001년에도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내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박격포 공격을 가하고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무차별 자폭 테러도 지속되고 이스라엘은 특공대와 헬기 등을 동원하여 테러범을 개별적으로 암살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철저한 감시와 대비로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테러의 대부분이 사전에 적발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은 완전히 답보된 상태이다. 2001년 중순경 미국의 CIA 테넷(George Tenet)국장의 중재로 양측이 정전에 합의한 바 있으나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이후에도 양측은 정전의 합의, 파기, 교전의 수순을 반복하면서 진지한 평화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0월 이스라엘의 레하밤 지비(Rehavam Zeevi) 관광장관이 팔레스타인 해방대중전선(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에 의해 암살되어 양측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기도 하였다.

911 미국 테러사건 이후 부시 대통령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의 변화가 일부 감지되고 있으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2001년 2월 새로 총리로 당선된 강경파인 샤론 총리가 평화협상에 적극적이지 않다.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강경파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PA의 아라파트 수반도 팔레스타인의 불만을 통제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상을 이루기에는 정치적 자산이 빈약하다.

또한, 핵심 쟁점인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의 이스라엘 정착촌 철거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 정착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샤론 총리는 요단강 서안지역에 정착촌 확대를 승인한 바 있다.

Ariel Sharon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출처: BBC News.com. http://news.bbc.co.uk/1/hi/in_depth/middle_east/2001/israel_and_the_palestinians/profiles/1154622.stm

 

200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년간 양측의 충돌로 팔레스타인 1,943명과 이스라엘인 637명 등 총 2,629명 사망이 사망하였다 (2002년 10월말 현재). 팔레스타인 과격분자가 민간인을 포함한 이스라엘인에 대한 자폭 테러를 감행하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이 테러분자 색출을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군 병력을 투입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02년에 들어서는 가자지구내에서 충돌이 격화되었다. 하마스 조직원이 민간인을 방패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과 충돌하여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에 충돌 강도가 C에서 B로 높아졌다고 판단된다. 주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대응이 소규모에서 장갑차와 헬기, 스마트 폭탄, 미사일 등의 무기를 동원한 국지전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진입하여 테러조직원을 색출하고 관련된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폭테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엄격한 통행금지와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과 이스라엘로 연결되는 주요 지점에 통제소를 설치하고 팔레스타인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테러활동을 효과적으로 감소시켰지만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감옥화되가는 실정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제로 인하여 이스라엘인 직장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의 출근이 어려워졌고 그 결과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하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이후 10만명의 팔레스타인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차적으로 비 이슬람권에서 온 노동자로 대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A mother lifts her child through barbed wire placed by Israeli soldiers

이스라엘의 통제선 옆을 지나가는 팔레스타인 모녀. 출처: BBC News.com. http://news.bbc.co.uk/1/hi/business/2253328.stm

이스라엘은 또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지도자와 폭탄제조자의 검거 및 사살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02년, 이스라엘은 헬리콥터 등을 동원한 공격을 실행하여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지도자 50여명을 사살하였다.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은 지도자의 손실로 폭탄테러 및 자살 테러가 사전 적발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정보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폭탄테러를 사전 적발하는 작전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항쟁의지는 점차적으로 꺽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대응과 경제적 어려움 등의 원인외에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들의 비인간적인 숙청도 대이스라엘 항쟁의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지난 8월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 테러용의자 20명을 체포하자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은 정보원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200명을 사살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으로 인한 국제 여론의 악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희생자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경우,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이 대다수를 차지한 반면 팔레스타인의 경우 성인남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8월까지의 희생자 중 이스라엘여성은 184명 사망한 데 반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여성은 52명이 사망하였다. 전체 사망자의 비율을 볼 때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비해 약 2.6배에 달함으로 이스라엘 여성의 피해가 큼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샤론정부는 2001년부터 이미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협상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2002년에 들어서 이스라엘은 아라파트가 보호하고 있는 테러분자의 양도를 요구하면서 집무실을 포위하고 주변 건물을 파괴한 바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의 약 80%가 아라파트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스라엘은 모든 협상에 앞서 팔레스타인 자폭 테러의 즉각 중지를 우선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 과격단체에 의해 행해지는 테러를 통제한 능력을 사실상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전제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이스라엘도 이 점을 잘 알고 협상을 포기하고 테러분자에 대한 적극적인 소탕과 테러 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무력충돌이 지속되고 분쟁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2000년 9월 양측간의 유혈충돌이 시작된 이래 2004년 5월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2,933명, 이스라엘인 905명 등 총 3,968명이 사망하였다.

이스라엘은 헬기와 장갑차 등으로 중무장한 병력을 동원하여 테러차단을 명분으로 가자지구 가옥 파괴작전을 지속하여 다수의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난민촌 파괴행위를 비난하고 중지를 초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도자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04년 3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압도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하마스의 정신적인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을 헬기를 동원하여 암살한 이후 후계자로 임명된 압델 아지즈 란티시 마저 4월 암살함으로써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호전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을 겨냥한 공격을 지속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란티시 이후 하마스 최고 지도가가 된 카리드 마슈알은 중동평화과정이 사멸되었다고 선언하고 샤론 총리도 2005년도까지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로드맵이 팔레스타인측의 약속 불이행으로 사멸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과 분리하기 위해 총길이 약 640km의 보안장벽을 건설 중이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보안장벽의 건설로 이스라엘 지역내 취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더욱 경제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2003년 9월 취임한 PA의 아흐메드 쿠레인 총리는 이스라엘 보안장벽 건설을 막기 위한 국제여론 결집을 위하여 2004년 초 이집트를 비롯한 유럽 국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적십자 국제위원회(ICRC)는 보안장벽이 제네바 협정에 위반된다며 건설 중단을 촉구하기도 하였고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스라엘  보안장벽에 대한 합법성 심리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효과적인 테러방지를 위해 보안장벽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보안장벽 건설이 영토 강탈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 샤론 총리는 약 7,500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내 21개 유대인 정착촌 전체와 요르단 강 서안의 4개 소규모 정착촌에서 철수하는 대신 서안의 일부 대규모 정착촌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4월 아리엘 샤론 총리와의 회담에서 (1)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 (2)요르단강 서안 주요 정착촌 유지 (3)팔레스타인 난민귀환 불허 등 샤론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아랍권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그러나, 샤론 총리의 방안, 특히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 방안은 집권 리크루당내에서도 광범위한 영토적 양보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반대가 심하여 5월 당내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론 총리는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 방침을 굽히지 않아 내각의 승인을 받았고, 이집트와의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 철수 이후 이 지역내 치안유지를 요청하고 있다. 
 
  

  의미 영향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강경한 저항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 분쟁은 민족, 영토, 종교, 분리 독립, 식민유산 등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의 대부분 국가들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안전과 평화에 있어서 핵심 관건이 되고 있다. 특히, 이 분쟁은 네 차례의 전쟁을 발생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영토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함으로써 이집트-이스라엘간 분쟁, 시리아와 이스라엘간 분쟁, 요르단과 이스라엘간 분쟁을 파생시켰고, 중동지역을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의한 무장테러의 백화점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가 하면 이 분쟁은 당사자가 상호 실체와 공존을 허용하지 않고 어느 일방의 존재를 위해 다른 일방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입장과 자세를 고수하여 왔다는 점에서 당사자들끼리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지도국가들의 객관적이고 진지하며 적극적인 중재가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분쟁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평화적 분쟁관리 및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아주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과거 아랍국가들은 이 분쟁의 과정에서 석유를 무기로 활용함으로써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인 석유위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분쟁은 세계경제의 장래에도 엄청난 영향을 파급시킬 잠재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 분쟁의 귀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분쟁에는 난민의 구제와 정전 감시를 위해 여러 유엔활동이 전개되고 있어 한국의 참여가 요청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대비책을 세워놓아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추후 전망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간에는 상호 실체 인정과 공존을 사실상 원치 않는데 있다. 이는 3000년 이상 지속된 양측의 뿌리 깊은 역사적 반목과 종교적 이유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동 분쟁은 항상 아랍 대 이스라엘의 국제적 분쟁이 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은 이스라엘에 대해 특히 반감을 갖고 있는 국가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스라엘과 전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크다. 한 예로 1999년 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투쟁을 천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내부 문제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양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유대교 원리주의자와 이스라엘 정부에 퍼져 있는 강경주의자들도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원치 않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과 협상을 원하는 세력, 독립국가의 즉각적인 선포를 주장하는 세력, 이스라엘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하마스 등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결국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문제해결을 위한 통일된 국론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측이 합의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일방에 의해 무효화될 수 있어서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200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평화로드맵은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그만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요원해졌다. 그러나,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 정착촌의 철수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서 팔레스타인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지역의 정착촌 지속을 원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도 반대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지위권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아 양측의 관계 진전이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이스라엘이 보안장벽 건설과 하마스 지도자에 대한 표적 공격을 지속하고 있어서 양측의 충돌은 당분간 지속되리라 전망된다.

 

참고자료

주요 일지 (출처: FYEO, 국내, 해외 신문 해당판)

  •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가 팔레스타인 분할 결정(유태인 국가와 독립 아랍국가로 분할), 대립 본격화, 양측간 충돌로 1천 7백 명 사망
  •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독립 선포), 미국과 구소련의 승인 획득, 다음날 아랍군이 이스라엘 공격, 제1차 중동전 발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 70%를 차지, 8만 5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 강제 축출
  • 1949년 2월 14일 이스라엘-이집트간 휴전협정 체결
  • 1956년 10월 29일 제2차 중동전 발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 점령
  • 1964년 5월 28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공식 출범
  •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 제3차 중동전(6일 전쟁) 전격 개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르단강서안, 동예루살렘 점령후 27일 동예루살렘 합병
  • 1967년 11월 22일 유엔안보리,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군 촉구 결의안 242호 채택
  • 1970년 9월 17-27일 요르단정부가 팔레스타인인을 단속하였던 검은 9월 사태로 3천여 명 사망
  • 1973년 10월 6-25일 이집트와 시리아,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제4차 중동전 발발
  • 1977년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 1978년 9월 17일 이집트-이스라엘, 미국의 중재하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체결
  • 1979년 3월 26일 이집트, 아랍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체결
  • 1981년 10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피살
  • 1981년 12월 14일 이스라엘, 골란고원 합병
  • 1982년 4월 25일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대부분을 이집트에 반환
  •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 아라파트가 1만 5천여 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망명길에 오름
  • 1985년 10월 1일 이스라엘, 튀니스의 PLO본부 공습, 170여 명 사망
  • 1987년 12월 9일 점령지 내 팔레스타인 주민의 이스라엘에 대한 봉기인 인티파타 시작
  • 1989년 7월 27일 아라파트 PLO의장,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와 총선 실시 및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4단계 팔레스타인문제 해결 방안 제시
  • 1990년 5월 25일 아라파트 PLO의장, 이스라엘 점령지에 비상군 파견을 유엔 안보리에 요청
  • 1990년 10월 8일 이스라엘 경찰,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태인들에게 돌을 던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발표하여 170여 명의 사상자 발생
  • 1990년 10월 13일 유엔안보리, 이스라엘 경찰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발포와 관련 유엔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토록 한다는 결의안 채택
  • 1990년 11월 9일 이스라엘군, 남부레바논의 헤즈볼라기지에 대한 대규모 공격 감행
  • 1991년 4월 20일 베이커 미 국무부장관, PLO 대표단 3인과 중동평화를 위한 회담을 예루살렘에서 개최
  • 1991년 4월 28일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 미국의 '중동평화지역회의' 제안거부
  • 1991년 10월 30-11월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스라엘, 요르단, PLO, 레바논, 시리아가 참석한 중동평화회담(제1차) 개막
  • 1991년 11월 1일 압델 샤피 팔레스타인 대표, 모든 이스라엘 점령 지역을 미국, 구소련 양국이나 유엔의 신탁통치 하에 둘 것을 요청
  • 1991년 12월 10-18일 워싱턴에서 제2차 중동평화회담 개최, 진전 별무
  • 1992년 1월 13-16일 제3차 중동평화회담 개최, 이스라엘과 요르단/팔레스타인간 직접 회담 개최
  • 1992년 1월 28-29일 모스크바에서 무기통제, 난민, 환경 등 지역 현안에 대해 첫 다자간 논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및 시리아 등은 핵심 현안 우선 타결을 요구하면서 회담 거부
  • 1992년 2월 24-3월 5일 4자간 쌍무 회담 개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및 동예루살렘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거부
  • 1992년 4월 27-30일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의 주민투표 실시 등 제의, 팔레스타인은 이에 대해 수용도 거부도 않음
  • 1992년 10월 21일 이스라엘, 제7차 중동평화회담에서 골란고원 철수 회담 용의 표명,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및 예루살렘 주둔 이스라엘군 철수 촉구
  • 1992년 12월 7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자치 제의는 불충분하다면서 압력을 가해줄 것을 미국에 촉구, 이스라엘은 자국 군인 6명이 이슬람원리주의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4백 명 추방, 양측간 긴장 고조와 함께 회담 재개 전망 불투명
  • 1993년 4월 27-5월 13일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의 PLO지도자 파이잘 후세이니를 회담 대표로 인정하고 1967-1987년 사이 추방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양보 조치 강구
  • 1993년 6월 15-7월 1일 미국의 중재안 논의, 이스라엘-PLO간 직접 대화 박차
  • 1993년 8월 31일 이스라엘-PLO, 비밀 접촉 끝에 가자지구와 예리코시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하는 잠정 평화안에 합의
  • 1993년 9월 9일 이스라엘-PLO, 상호 승인 합의
  •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PLO,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에 관한 원칙 선언 합의
  • 1994년 1월 24일 시리아 등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중동평화회담을 워싱턴에서 재개
  • 1994년 1월 30일 이스라엘과 PLO, 요르단 내 예리코 등 이스라엘 점령지역으로부터 이스랑엘군의 철수에 관한 최종 조건에 합의
  • 1994년 2월 9일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아라파트 PLO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와 가지 및 예리코 지역에서의 이스라엘 철수에 관한 부분협정 체결
  • 1994년 2월 25일 군복을 입은 유태인이 사원에서 예배를 보고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무차별 난사, 63명 사망, 270명 부상, 이에 PLO는 유엔안보리의 긴급 소집을 요구
  • 1994년 3월 12일 아라파트 PLO의장, 헤브론 학살 사건 이후 중단된 중동평화회담 재개에 잠정 합의
  • 1994년 3월 31일 이스라엘과 PLO, 헤브론시의 팔레스타인 자치 실현을 위한 회담 재개와 국제감시단을 허용하는 협정 체결
  • 1994년 5월 4일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PLO의장,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점령지 내 예리코/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인정하는 협정에 서명
  • 1994년 5월 13일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의 중심지인 예리코시를 팔레스타인 경찰에 정식 이양(27년간의 점령 통치 종식)
  • 1994년 7월 아라파트 의장,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공식 선언
  • 1995년 2월 2일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PLO, 카이로에서 정상회담 개최
  • 1995년 9월 이스라엘-PLO,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 협정 체결 (서안 7개 도시 포함)
  • 1995년 11월 이스라엘, 예닌경찰서 PLO에 인계;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암살
  • 1996년 1월 20일 팔레스타인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가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및 가자지구에서 동시에 실시
  • 1996년 1월 21일 아라파트 PLO의장, 총선거에서 초대 대통령 당선
  • 1996년 1월 25일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 1995년 9월 체결한 자치협정에서 약속한 대로 PLO헌장에서 이스라엘 파멸 조항부터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조기 창설에 반대
  • 1996년 5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네타야후 승리
  • 1998년 7월 15일 베들레헴 폭동 과정에서 35명의 팔레스타인 부상
  • 1998년 7월 22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의 쌍무 협상 결렬 발표, 양측은 미국에 중재 요청
  • 1998년 9월 9일 이스라엘, 웨스트 뱅크 지역으로 190가구 이주; 러시아 유대인 이주 희망자 증가
  • 1998년 9월 10일 이스라엘군, 하마스 군 지도자(Adel Awadallah) 사살; 팔세스타인 수천명 가자지구에서 항의 시위
  • 1998년 10월 23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주는 대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해 안전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와이밀스협정' 체결
  • 1998년 11월 이스라엘, 1차 추가 철군

 

1999년

  • 1.4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발포, 2명의 이스라엘인 부상
  • 1.13 헤브론에서 총격전으로 팔레스타인 1명과 이스라엘 군인 1명 사망
  • 1.18 아라파트, 미국이 팔레스타인 국가수립을 즉시 인정할 것을 조건으로 국가수립 선포를 12월 31일까지 연기할 수 있음을 암시
  • 1.27 미국, 이스라엘에 '와이밀스 협정' 이행 촉구→1단계 이행 후, 팔세스타인은 2단계의 일부조건을 충족한 반면 이스라엘은 전혀 충족치 못함
  • 1.28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와이밀스 협정' 불이행을 비난하면서 미국, 팔레스타인과 정상회담 거부
  • 1.30 하마스 지지자 1,000여명, 팔레스타인 석방 요구 데모
  • 2.1 '와이밀스'협정 이행 시한 초과
  • 2.4 클린턴, 미 연례 조찬 기도회에 아라파트 초대→ 유대인 이익집단과 보수세력 반발
  • 2.12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요르단과 연합국가 형성 제안; 요르단은 과거 동 제안에 반대(팔레스타인과 연합국가를 형성할 경우 팔레스타인의 인구 비율이 65%에서 92%로 증가)
  • 3.3 아라파트,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국가선포권을 인정하면 5월4일로 예정된 국가수립 선포를 연기할 수 있음을 천명
  • 3.10 팔레스타인 법정, 하마스 급진주의자 라에드(Raed al-Attar) 사형언도; 라파지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폭동발생; 팔레스타인 경찰 발포, 2명 사망; 아라파트, 라에드 사형언도 제고 약속
  • 3.11 EU,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전역 주권 주장에 반대
  • 3.12 코헨 미국방장관, 이스라엘의 '와이밀스 협정' 이행 촉구
  • 3.14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 예루살렘의 주권에 관한 협상 불가 방침 천명→동 도시의 주권을 마지막 협상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한 '오슬로 협정' 위배
  • 3.17 미 의회, 5월 4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국가선포 반대 결의안 통과
  • 4.4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국가 선포에 대한 지지확보를 위해 러시아 방문; 러시아, 지지 유보하고 협상 촉구
  • 4.26 미국, 연내에 평화문제 해결을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상회담 촉구
  • 5.4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포 연기
  • 5.17 바라크(Barak), 총리 당선; 향후 1년안에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공약
  • 6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재개
  • 7.27 "와이밀스"협정 수정에 합의
  • 9월 이스라엘-PLO, 10개월간의 난항 끝에 이스라엘 점령지역 일부영토 팔레스타인 이양에 합의→1998년 10월에 체결된 와이협정의 연장선상에서 타결; 하마스, 협정 파기를 위한 테러 선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추가 7% 통치권 이양에 합의; 이스라엘 정부, 점령지역의 통치권을 점차적으로 팔레스타인에게 이양 계획→유태인과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분리함으로 충돌과 테러 감소 효과
  • 10월 이스라엘,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151명을 석방하고 팔레스타인 통치 지역의 유태인 기념물 철거를 명령→팔레스타인, 수감중인 1,800명 전원 석방과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통치 지역의 모든 유태인 이주 요구;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를 연결하는 안전도로 개설; 이란, 팔레스타인 전역이 해방될 때까지 투쟁 지속을 천명
  • 11월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지역에 불법 체류하는 이스라엘 과격주의자 추방; 이스라엘, 요르단 강 서안지역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과격주의자 충돌, 5명 부상; 이스라엘, 2000년도 1월까지 요르단 강 서안의 잔여 지역 중 일부를 팔세스타인에게 인도 합의→이루어질 경우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강 서안지역의 40% 통제 획득; 미의회, 클린턴 대통령이 약속한 와이협정 이행에 필요한 18억달러의 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원조금 승인 거부; 팔레스타인 학생 500명,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2,000명 석방 요구 시위

2000년

  • 2 팔레스타인, 1996년 이후 최대규모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대레바논 폭격 맹비난→이스라엘과 협상 전면 중단 선언, 하마스 지도자 압델 아지즈 란티시 석방, 9월 독자적 팔레스타인 국가 선포 예정 천명
  • 2.15 로마 교황청-PLO,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영토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활동을 승인하고 예루살렘의 지위를 변경시키는 일방적 조치에 반대하는 내용의 협정 체결
  • 3.15 이스라엘 정부, 안보장관회의에서 지난해 체결된 알 셰이흐 평화협정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의 땅 6.1%에서 철군하는 계획 승인→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락 ※ 철군이 이루어질 경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요르단강 서안 40%지역에 대한 부분 또는 완전 통제권 확보  
  • 7.3 팔레스타인 국가회의 대변인, UN 결의안 242조에 따른 동 예루살렘 전역과 서 예루살렘 지역 70% 이양을 주장
  • 7.27 미국에서 개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 실패. 팔레스타인 9월 13일 독립선포 천명
  • 7.30 팔레스타인 경찰,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지도자 중 하나인 란티시(Abdel Aziz Rantisi)체포
  • 8.10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의 평화협상 합의에 실패. 이스라엘의 바라크 수상은 Old City 일부분의 통치권을 포함한 동 예루살렘의 일부지역 통치권 이양을 제안. 단, 유대인 제일의 성지(아랍 제 3의 성지)인 Temple Mount의 지위권은 지속할 것으로 주장. 아라파트는 동 예루살렘 주변지역의 유대인 거주지역의 예루살렘 시 합병에는 동의하였으나 동 예루살렘 전역의 통치권을 주장. 아라파트의 이러한 주장은 강경파를 의식한 것으로 동 예루살렘 지위권을 이양하였을 경우 예견되는 암살을 우려.
  • 8.23 동 예루살렘에서 세금 징수와 관련한 폭동 발생. 팔레스타인 폭동 주동자 5명이 체포됨
  • 8.27 이스라엘 특공대,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체포작전을 수행하였으나 실패. 후에 팔레스타인 경찰이 하마스 지도자 하누드(Abu Hanoud) 체포
  • 9.17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한 투석 데모
  • 9.27 미주과학자협회에서 촬영한 위성 사진을 판독할 결과 이스라엘은 200기의 핵폭탄에 사용될 수 있는 양의 플로토늄 생산이 가능한 원자로 보유; 가자지구내에 폭탄 폭발로 이스라엘인 4명 부상  
  • 9.29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순례자 간의 투석으로 촉발된 충돌에 이스라엘 경찰이 발포하여 팔레스타인 7명이 사망하고 220명이 부상. 팔레스타인 전 지역으로 충돌 확대
  • 9.30 이스라엘 군-팔레스타인 경찰 사이의 발포로 30여명 부상
  • 10. 1 예루살렘, 가자지구 및 요단강 서안에서 지속된 양측의 충돌로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20명, 이스라엘 민간인 1명 사망
  • 10.2 지난 24시간 충돌로 이스라엘 군인 1명과 민간인 1명을 포함한 13명 사망; 팔레스타인 인민봉기의 주된 이유는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포를 위한 협상 지연
  • 10.4 양측의 충돌로 현재까지 72명 사망; 팔레스타인 경찰, 이스라엘인에게 발포; 이스라엘, 탱크와 공격용 헬기 및 미사일 등을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경찰서 공격
  • 10.5 이스라엘, 요단강 서안 진입통로 폐쇄; 요셉무덤(Joseph's Tomb), 요단강 서안 관통길, 가자지구의 이스라엘인 거주지역 등 3곳을 중심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심화
  • 10.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로 팔레스타인 10명 사망
  • 10.7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심화; 이스라엘 정부, 48시간내에 모든 폭력사태 종결을 팔레스타인 정부에 통첩; 이스라엘인이 탑승한 버스가 공격받아 8명 부상; 팔레스타인 데모대의 투석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1명 사망; 이스라엘 폭도, 이슬람 사원 방화; 레바논 국경지역에서 헤즈볼라의 대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스라엘 군인 4명 부상; 이스라엘, 전투기와 포대를 동원하여 남부 레바논 지역 공격
  • 10.11 PLO 경찰의 대이스라엘 발포 중지 명령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완화
  • 10.11 유태인 거주지역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의 데모 지속
  • 10.12 요단강 서안지역에서 길을 잃은 이스라엘 병사 4명이 보호되던 팔레스타인 경찰서에 폭도가 난입하여 이스라엘 병사 2명 살해; 이스라엘, 이스라엘 병사 2명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본부를 헬기로 공격
  • 10.1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미국과 이집트의 중재로 공항 재개방과 이스라엘 전력 배치 철회 등의 내용을 포함한 휴전에 동의하였으나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음
  • 10.18 이스라엘 특공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용의자 8명 체포
  • 10.21 이집트에서 아랍 정상회의 개최.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외교 단절이 제안되었으나 소수의 국가만 동의
  • 10.22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통제 지역에 대한 공세 강화. 동 지역 획득을 통한 협상력 강화를 도모
  • 10.23 이스라엘, 가자지역 공항 폐쇄; 바라크, 평화협상 중단 천명
  • 10.24 가자지역 공항 재개방
  • 10.25 이스라엘 탱크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발포; 현재까지 8명의 이스라엘인과 130명의 아랍인 사망;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소총 및 폭탄 공격 증가
  • 10.27 한달간 지속된 폭력사태로 144명 사망, 4,200명 부상. 그 중 90%는 팔레스타인인
  • 10.28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60여명의 팔레스타인 부상
  • 10.29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공격에 대해 특공대 및 중화기를 동원한 적극적인 대응 시작
  • 10.30 새로 결성된 무장 테러 단체인 Martyrs of the al-Sqsa Uprising,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보안요원 1명 살해
  • 10.31 이스라엘 무장 헬기, 팔레스타인 경찰서 등 주요시설 공격
  • 11.1 1993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바 있는 이스라엘 전 수상 시몬 페레스와 아라파트가 회동하여 현 위기 상황 타파를 논의
  • 11.2 이스라엘, 가자 지구내의 팔레스타인 공항 폐쇄; 예루살렘 시장에서 지하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폭발. 2명 사망
  • 11.3 이스라엘군,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건물 포격. 팔레스타인 2명 사망, 50여명 부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게 24시간내에 휴전협정 준수를 최후 통첩
  • 11.5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로 2명 사망, 17명 부상
  • 11.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치안 총책, 이집트에서 현 충돌을 완화시킬 방안을 논의
  • 11.9 이스라엘군,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민병대 지도자 살해
  • 11.10 예루살렘에서 원격 조정 폭탄 폭발로 경찰 1명 부상
  • 11.1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총돌로 이스라엘군 1명, 팔레스타인 6명 사망
  • 11.12 이스라엘 탱크,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포격
  • 11.13 지하드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격으로 이스라엘군 2명과 민간인 2명 사망
  • 11.14 이스라엘 전투기, 레바논에 경고하는 의미로 레바논 상공 초계 비행.
  • 11.15 팔레스타인, 충돌지역에 UN 평화유지군의 배치 요구; 이스라엘 특공대,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Fatah파 15명을 이스라엘 거주지역 방화혐의로 체포
  • 11.16 팔레스타인 데모 지속, 13명 사망;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Tanzim 민병대 거점 4곳을 헬리콥터로 공격하여 독일인 1명을 포함한 8명 사망
  • 11.20 가자지구 유태인 정착민촌 인근에서 팔레스타인 소행의 폭탄 폭발로 2명의 이스라엘인 사망. 이스라엘은 보복으로 공격용 헬기와 미사일(처음 사용)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 폭격
  • 11.22 북 이스라엘 마을에서 차량 폭탄 폭발로 2명 사망, 55명 부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강경대응에 항의하여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 주재 본국 대사를 소환
  • 11.24 양측 충돌로 이스라엘인 1명, 팔레스타인인 6명 사망
  • 11.28 이스라엘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 하지 못한 바라크 정부, 내년 봄 총선실시를 선포.
  • 11.30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나 예루살렘 지위권을 인정치 않는 새로운 평화협상안 제안
  • 12.1 이스라엘, 가자 지구 공항 재개방
  • 12.2 현재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충돌로 총 300명 사망
  • 12.4 이스라엘군-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성지를 두고 전투 발생. 일종의 게릴라 전투로 이스라엘은 공격용 헬기를 동원하여 대응
  • 12.22 후세인 대통령, 11월10일자로 총 6,607,306명이 팔레스타인 해방전쟁을 위한 군 훈련에 참가하기로 서명하였다고 발표

 

2001년

  • 1.2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는 난민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돌아오고 이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안임. 미국이 제공할 가능성이 큰 보상금의 규모는 일인당 만달러씩 지불할 경우, 약 400억달러가 소요됨. 미국이 이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지 의문시 됨
  • 1.7 미국-이집트-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4자회담 카이로에서 개최. 이스라엘측은 인티파다의 중단,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봉쇄 선 해제를 요구하는 등 견해 차 노정;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에 이스라엘 정착촌 인근 도로에 통제 시설 5곳을 신규로 설치. 팔레스타인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조치가 팔레스타인 영토내의 이스라엘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려는 시도로 여기고 긴장. 실지로 일부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의 일방적 분리를 선포하여 이스라엘정착촌을 포함한 이스라엘 영토의 확장을 요구하기도 함
  • 1.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정 체결의 핵심쟁점중 하나는 370만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처리문제임(요르단에 140만, 가자지구에 80만, 요단강 서안에 57만, 레바논과 시리아에 37만명 등). 팔레스타인은 이들이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한 75만명의 자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재산권을 행사하기를 요구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이들이 돌아올 경우, 이스라엘인이 거주 영토에서 소수로 전락할 수 있음으로 반대함
  • 1.11 팔레스타인, 대이스라엘 투쟁을 투석등을 동원한 대규모 데모에서 암살과 폭탄을 이용한 테러로 전술을 전환. 이에 대항하여 이스라엘도 탱크와 헬기를 이용한 대응보다 저격수와 소규모 특수군을 이용한 대응으로 전환
  • 1.1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충돌. 팔레스타인의 개인화기 발포에 대항하여 이스라엘군은 발포지로 추정되는 건물에 탱크 포격 감행
  • 1.19 클린턴 대통령, 현재 18억달러수준인 미국의 대이스라엘 군사원조금을 매년 6천만 달러씩 증가하여 연 24억달러에까지 이르게 하는 법안에 서명
  • 1.23 아라파트 수반의 장기 통치로 인한 부패를 이유로 팔레스타인의 새 지도자들은 아라파트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 따라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과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의 내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음
  • 1.30 인구밀집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이 박격포 공격을 감행함으로 이스라엘의 대박격포 레이다(박격포가 발사된 위치를 확인하여 즉시 포로 응사할 수 있도록 하는 레이다)를 무력화시킴
  • 2.7 아리엘 샤론, 총리 당선(62.5%지지율, 바라크 37.4%). 총 투표율 59%로 지난 두 번의 선거때의 79%에 비해 현격히 낮음. 이유는 유권자들이 너무 온건한 바라크와 과격한 샤론 중에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임. 샤론은 과거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주된 책임이 있음.
  • 2.8 샤론총리, 아라파트 수반에게 폭력이 종식되지 않는 한 평화협상은 재게될 수 없음을 전화로 통보
  • 2.12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 정착한 이스라엘인들은 동 지역을 이스라엘 영토화하기를 원하는 과격주의자가 주류.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동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모되는 인적, 물적 자원의 공급에 지쳐 있는 상태임. 샤론 총리는 정착촌 이스라엘인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바 있음
  • 2.13 이스라엘 헬기, 팔레스타인 민병대 지도자 공격, 살해
  • 2.15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이스라엘 정착촌 박격포 공격;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봉쇄
  • 2.22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 군병력 파병을 정부에 요청.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정착촌 인근에 군병력을 배치할 수 있으나 이외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는 군병력을 파병할 수 없음
  • 2.25 샤론 총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봉쇄를 풀기 위한 세가지 전제조건 발표. 첫째, 아라파트 수반이 폭력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 둘째, PA가 폭력을 종식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고 마지막으로 양측간 안보협력이 재기되어야 함
  • 2.28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이 저격 장소로 사용한 건물을 파괴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구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무장 순찰활동을 합법화. 팔레스타인, 이들 조직이 민병대 조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
  • 3.1 팔레스타인의 폭탄 테러로 1명 사망, 수명 부상
  • 3.2 팔레스타인 과격분자들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공세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철수한 것을 모델로 삼아 이스라엘이 철군할 때 까지 투쟁
  • 3.4 자살폭탄 테러가 이스라엘 네탄야에서 발생하여 4명 사망(테러범 포함), 수십명 부상
  • 3.5 샤론 내각 금주 중 출범
  • 3.8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박격포로 공격
  • 3.13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접경지역이 광범위한 이유로 매일 약 2만여명의 팔레스타인들이 이스라엘 지역으로 불법 이동, 일을 하고 있음. 이스라엘 지역내에서 테러 근절이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임
  • 3.15 이스라엘, 아라파트의 호위대 Force 17 소속인 일부가 대이스라엘 테러공격을 준비 중에 적발되었다고 발표
  • 3.17 이스라엘-PA, 폭력사태 해결을 위한 안보담당관 회의 개최
  • 3.21 이스라엘군, 탱크를 동원하여 아라파트 호위대 훈련 센타를 공격; 아라파트 휘하에는 총 12개의 군사, 안보 조직이 존재, 중동정치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로 한 조직이 성장하여 발생할 수 있는 도전을 미리 차단. 이들 조직 중 일부는 대이스라엘 공격에 적극적임. 따라서 대이스라엘 공격의 배후에 아라파트가 있다는 이스라엘 측의 주장은 일면 타당한 부분이 있음.
  • 3.27 팔레스타인의 자살 테러 지속
  • 3.28 하마스, 버스정류장에서 폭탄테러를 감행하여 이스라엘인 2명 사망
  • 3.30 아라파트 수반, 팔레스타인의 폭력을 중지시키는 것을 거절
  • 4.1 이스라엘 특공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잠입하여 Force 17 단원 3명 구금; 이스라엘 정착민, 헤브론 지역의 아랍 가게 3곳 폭파
  • 4.2 이스라엘 헬기,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리더인 모하메드 압델(Mohanned Abdel Al) 공격, 사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요단강 서안지역에서 충돌하여 이스라엘인 1명 사망, 팔레스타인 10명 부상
  • 4.3 이스라엘 헬기, 가자지구내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60여명 부상; 이스라엘군, 라말라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병대 조직 Force 17 본부 공격. ※Force 17: 3,500명의 팔레스타인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대 이스라엘 무력투쟁을 주도한 것 알려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박격포 공격으로 민간인 2명 부상
  • 4.4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고위 관료, 폭력 종식을 위한 모임 재게
  • 4.8 Unit 47(새로운 팔레스타인 조직), 이스라엘 공격
  • 4.10 이스라엘, 요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이스라엘 정착민을 위한 5,000 여채의 가옥 건설 계획
  • 4.11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충돌로 팔레스타인 2명 사망, 40명 부상; 이스라엘 탱크,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진입하여 박격포 공격 거점으로 의심되는 가옥 27채 파괴
  • 4.14 지난 수개월간 팔레스타인 리더 20여명이 이스라엘에 의해 피살
  • 4.16 이스라엘군, 가지지구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베이트하눈 점령
  • 4.18 이스라엘군, 베이트하눈에서 철수 직후 다시 진입하여 팔레스타인 국경 경찰 전초기지 공격. 이스라엘군 철수 직후 유대인 정착촌과 이스라엘군 초소에 대한 팔레스타인측의 박격포 공격이 재개되자 재 진입
  • 4.22 팔레스타인 자살 테러로 이스라엘 1명 사망, 39명 부상
  • 4.28 PA, 박격포 공격을 주도한 화타를 해체시키는 한편 PA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하마스리더 체포
  • 4.29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이스라엘 정착촌에 박격포 공격; 아라파트 수반, 박격포 공격을 중지시키겠다고 약속
  • 5. 2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거주지 인근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82mm 박격포 공격 지속; 이스라엘, 이에 대한 보복으로 탱크 동원 폭격; 샤론 총리,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땅으로 간주하고 있는 요단강 유역(Jordan Valley)을 이스라엘 땅으로 선포; 이스라엘군, 가자지구로 진입하여 팔레스타인 과격주의자들이 공격거점으로 사용되었다고 의심되는 가옥 19채 파괴
  • 5.5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리더 한명 피살: 팔레스타인, 보복 차원에서 이스라엘 거주지역에 대탱크 로켓 발사
  • 5.6 텔아비브 외곽 지역에서 폭탄 폭파로 4명 부상; 이스라엘 특공대, 팔레트타인 리더 한명 암살
  • 5.7 이스라엘 해군, 레바논에서 가자 지구로 밀반입되는 무기 적발;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거주지역내 개인화기 발사 장소로 사용된 빌딩 파괴
  • 5.9 이스라엘, 부시-샤론 회담 이후 미국에게 정보위성,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찾아서 공격할 수 있는 무인 비행기 등의 구매를 요구. 부시 대통령은 "어떤 것이 가능한가 검토"(what more could be done)하겠다고 답변
  • 5.10 팔레스타인의 이동용 대공 미사일 반입시도에 대한 대책으로 이스라엘 민항기 안전수칙 도입
  • 5. 11 예루살렘지역에서 폭탄이 폭발, 폴란드인 관광객 2명 부상
  • 5.16 팔레스타인, 박격포 공격;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5차례 진입하여 무기와 저격수 색출 작전 수행
  • 5.19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쇼핑몰 인근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6명 사망, 백여명 부상; 이스라엘, 보복으로 F-16을 처음으로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목표물 공격
  • 5.19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의 쇼핑몰 인근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공격하여 9명 사망
  • 5.21 이스라엘 헬기, 박격포 제조 의혹이 있는 팔레스타인 공장을 공격
  • 5.22 이스라엘, 일반적 정전을 발표. 이스라엘 지도부는 군에게 자위를 위한 방어를 제외하고는 일제의 발포를 중단하라고 명령; PA, 동 정전 발표는 선전용이라고 비난
  • 5.25 이슬람 지하드 단원 2명, 이스라엘 북부지역에서 차량폭탄 자살테러를 감행, 12명의 이스라엘인 부상; 하마스, 이스라엘군 초소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였으나 테러범만 죽고 이스라엘군은 피해 없음; 이스라엘 지역에서 폭탄 발견 후 해체
  • 5.26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경찰본부인근에서 차량 폭탄이 폭발하였으나 부상자는 없음; 이스라엘 거주민 지역에 대한 박격포 공격 지속
  • 6.1 텔아비브 외곽 지역의 나이트 클럽에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18명 사망, 백여명 부상;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지역 출입 통제를 강화: 아라파트, 동 사건에 대해 위로를 표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제를 당부
  • 6.4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내 통제 지속; 팔레스타인-이스라엘간의 교전으로 이스라엘군 3명, 팔레스타인 25명 부상
  • 6.5 이스라엘, PA에게 300명의 테러조직원 명단을 제시하고 색출할 것을 요구. 동 요구는 6월 1일 발생한 테러에 대한 보복 공격을 일시 연기한 상황에서 제시된 것임; 하마스, PA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 이스라엘 무력항쟁 지속을 천명
  • 6.9 미국,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정전안을 제의. 동 안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자치지구내 파병한 군전력을 인티파다 전 상태로 철군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의 강도를 낮추도록 함. 팔레스타인측은 자치지구내 테러분자를 색출하며 박격포를 압수하며 이스라엘 거주자들에 대한 적대행동을 중지하도록 건의
  • 6.13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미 CIA 테넷(George Tenet)국장의 중재로 정전에 합의. 향후 양측은 안보관련 회의를 지속하고 과격분자의 행동을 통제하며, 양측사이의 안전지대를 확충하며, 양측의 보안요원들간 협력을 증진하기로 합의
  • 6.14 화타, 이스라엘 정보장교 1명 사살
  • 6.16 팔레스타인 군중 이스라엘 군 투석 지속. 이스라엘군 발포.
  • 6.17 가자지구에 폭탄 테러로 이스라엘 군 1명 부상
  • 6.19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충돌 지속. 팔레스타인 박격포 공격. 이스라엘 보복
  • 6.22 하마스, 가지지구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이스라엘군 2명 사망
  • 6.23 이스라엘군 정보기관, 오사마 빈 라덴 조직원의 이스라엘 진입을 저지. 그러나, 이미 일부 조직원이 이스라엘에 잠입했을 것으로 추정
  • 6.24 샤론 총리,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력 대응을 요구하는 점령지의 이스라엘 거주자들의 데모에도 불구하고 대응 강화를 거부.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로 인해 국제사회의 여론의 호응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간주됨
  • 6.26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재 봉쇄
  • 7.2 이스라엘군, 폭탄 테러를 계획한 팔레스타인 과격분자 3명을 사전 적발하여 사살
  • 7.9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핵심 인물(폭탄 제조기술자, 조직 리더 등)을 체포하거나 사살하여 자살 테러를 약화시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
  • 7.15 6월에 시작된 "정전과정"으로 양측간 충돌 강도 약화. 이스라엘은 PA를 대상으로 하는 "전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언명(실상 이스라엘은 PA를 대상으로 작전 수행중)
  • 7.16 팔레스타인 자살 폭탄테러로 2명의 이스라엘 병사 사망(6월1일 디스코텍 폭파사건 후 가장 심각한 폭탄 테러); 이스라엘, 보복으로 PA 경찰서 포격
  • 7.17 PA, 자살 테러로 인해 이스라엘의 공격 및 PA 무력화 기도를 우려; 아라파트 수반, "이슬람 과격파"(Islamic Radicals)를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조직의 모임을 요구,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공격 중단을 호소
  • 7.20 이스라엘내 여론조사 결과 발표. 48%-팔레스타인의 폭력에 대해 이스라엘군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느낌. 16%-이스라엘군, 과다 대응. 41%-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진입에 찬성. 49%-반대. 56%-팔레스타인과의 협상 지속에 찬성
  • 7.22 이스라엘 경찰, 북부 이스라엘 지방에서 팔레스타인 자살 테러를 사전 적발; 이스라엘 경찰, 이스라엘 과격파(주로 점령지 거주자)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한 수사 착수
  • 7.25 6월13일부로 시작된 "정전 과정"에도 불구하고 700건의 무력 충돌(53명사망-이스라엘인 16명, 팔레스타인 37명) 보고
  • 7.27 팔레스타인, 제3자에 의한 정전협정 모니터링을 요구
  • 7.30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급진 테러조직 리더에 대한 공격 지속. 지난 10개월간 적어도 50명을 헬리콥터 등을 동원한 공격으로 살상. 리더의 손실로 팔레스타인의 폭탄테러 및 자살 테러가 사전 적발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
  • 8.5 팔레스타인, 텔아비브에서 소총 난사로 민간인 8명과 군인 2명 부상
  • 8.9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지도자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이에 대이스라엘 무력항쟁을 옹호하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임. 아라파트 수반은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는 반면 급진 테러단체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지지는 증대됨
  • 8.20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충돌로 10만명의 팔레스타인이 일할 기회를 잃고 있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차적으로 비 이슬람권으로부터 노동자로 대처하고 있는 실정임
  • 8.22 아라파트 수반, 독일에서 평화협상 재게를 제안. 이스라엘, 수락의사를 밝힘
  • 8.25 팔레스타인 2명,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군 기지에 침입하여 병사 3명 살해
  • 8.26 이스라엘, 병사 3명 사망과 민간인 2명 사망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 지역의 PA 경찰본부와 두 개의 목표물에 대한 미사일 공격 감행
  • 8.28 이라크와 사우디 아라비아, 팔레스타인의 자폭 테러범 가족에게 현금 보상금을 지불하고 매달 연금도 지급
  • 8.30 이스라엘군, 이틀동안 점거했던 팔레스타인 마을(Beit Jala)에서 철수; PA, 이스라엘 마을을 향해 발포하는 팔레스타인 색출과 방지를 약속하고 통제를 실질적으로 강화
  • 9.9 팔레스타인 자폭 테러로 5명 사망 39명 부상
  • 9.14 하마스지지자 1,500명 오사마 빈 라덴 지지 데모; PA 데모대 해산 시도; 이스라엘, 평화협상 거부
  • 9.16 샤론-아라파트, 평화협상 재게에 합의. 그러나, 이스라엘은 48시간의 평화유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전제 조건 제시
  • 9.18 아라파트, 이틀간의 정전 선언; 하마스, 정전선언에 불복종 선언
  • 9.19 팔레스타인 과격파, 이스라엘에 대한 사격 지속; PA, 정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하마스를 비롯한 과격파는 PA의 명령에 불복종,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
  • 9.20 이틀간의 정전이 무력화되는 사건 발생.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군을 공격하여 5명 부상. 이후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팔레스타인 1명 사명, 1명 부상. 양측의 공방으로 이스라엘 여성 1명 사망
  • 9.21 이스라엘, 미국에게 대테러 전쟁에 필요할 경우 자국 공항을 사용하라고 건의
  • 9.2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3일 평화협상 개최에 합의
  • 9.23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의 예정된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음. 폭력사태가 지속됨에 따라 이스라엘 국민의 평화협상에 반대하는 여론 비등
  • 9.26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전에 합의
  • 9.28 PA의 이스라엘과의 평화회담 성사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팔레스타인과 일부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은 평화회담을 거부하고 있음; 이스라엘, PA와의 협상을 위해서는 적어도 48시간 동안 평화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제시
  • 9.29 28-29 양일간 팔레스타인 데모대 11명 사망, 200명 부상
  • 9.30 하마스, 이스라엘의 무력사용중지 제안 수용의사를 밝힘. 미국의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된 데 대한 하마스의 우호적 반응으로 추정됨
  • 10.01 이스라엘, 이집트의 군사훈련은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들어 이집트의 군비증강에 대해 우려 표명; 미국,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전략적 균형을 모색하는 것인 한편 이집트의 무기체계는 미국 부품을 사용하고 있음으로 이집트-이스라엘간 전쟁은 어려울 것.
  • 10.17 이스라엘의 레하밤 지비(Rehavam Zeevi) 관광장관이 팔레스타인 해방대중전선(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에 의해 암살됨: 아라파트 수반, 암살을 비난하면서 "암살자는 체포될 것'이라 언급
  • 10.19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베들레헴 진주
  • 10.20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두 개 마을 공격; 현재까지 894명 사망: 이스라엘, 레하밤 장관 암살자의 인도를 PA에게 요구. 1주일 안에 암사자를 인도하지 않을 경우 PA를 테러조직으로 간주, 공격할 것임을 천명
  • 10.22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즉각 철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 샤론 총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레하밤 지비 관광장관 암살범의 신병을 인도하지 않으면 자치지역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천명: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남부 라파 부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진입; 이스라엘군의 기총소사로 나블르스 지역에서 사상자 2명 발생
  • 10.24 이스라엘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라말라 인근 베이트 리마 마을을 급습, 팔레스타인 민병대 색출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최소 9명의 사망자 발생; 이스라엘군, 베들레헴 지역에서 탱크 포격, 팔레스타인 1명 사망, 3명 부상
  • 10.27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서 철수하려는 계획 연기
  • 10.28 팔레스타인 무장괴한 2명, 북부 하데라 도심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3명 사망, 10여명 부상; 이스라엘 병사 1명, 북부지역 아랍계 마을에서 총격으로 사망
  • 10.29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점령 10일 만에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과 베이트 잘라에서 철수.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제닌, 라말라 등 서안 지구내 5개 팔레스타인 자치도시를 점령한 상태임.
  • 11.4 동예루살렘 북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추정되는 괴한 3명이 버스에 총기를 난사하여 2명 사망, 35명 부상
  • 12.1 예루살렘 예후다 쇼핑상가에 자살 폭탄테러 발생으로 12명 사망, 180명 부상: 예수살렘 라빈쿡 거리에서 폭탄 테러 발생
  • 12.2 팔레스타인 무장괴한 2명, 가자지구 인근 정착촌 부근에서 총격. 2명 사망, 5명 부상: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시, 팔레스타인 청년이 버스에 탑승한 후 자폭, 16명 사망, 40명 부상; 샤론 총리, 미국 방문 일정 단축, 보복을 천명; 하마스, 연속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
  • 12.3 이스라엘, 12월 1-2일 연속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무장 헬기를 동원하여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에 미사일 공격. 동 공격은 샤론 총리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 소집한 각료회의 직후에 감행됨
  • 12.9 이스라엘군,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2곳 점령, 팔레스타인 5명 사망; 하이파시에 자살 폭탄테러 발생, 이스라엘인 5명 부상;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 "아라파트 수반은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하마스에 대한 단호한 조치 촉구
  • 12.13 이스라엘, "전혀 믿을 수 없는" 아라파트와의 접촉 중단을 선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거주지의 버스를 공격하여 10명 살해, 30명 부상
  • 12.14 이스라엘군, F-16기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내 주요 시설 공격
  • 12.16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테러 행위 중지와 폭력행위 중지를 호소
  • 12.20 이스라엘, F-16기 50대 구입 발표; 탄저균 백신 개발을 완료하였음으로 2개월 내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할 것임을 천명
  • 12.21 하마스,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
  • 12.23 6월2일 이후 총 5번의 정전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함; 양측간의 충돌로 이스라엘에 대한 이민이 작년 대비 25%감소; 이스라엘내 실업율은 9.3%
  • 12.28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영토에 진입하여 테러 용의자 색출. 색출된 용의자의 상당수는 PA 보안군으로 판명

 

2002년

  • 1.9 팔레스타인 2명, 가지인근 이스라엘군 기지로 침입하여 이스라엘 병사 4명 살해
  • 1.10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공항의 활주로를 파괴
  • 1.11 팔레스타인 경찰, 이란으로부터 50톤의 무기를 밀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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