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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과학전쟁'의 논쟁점들: '두 문화', 과학의 역사성, 그리고 과학의 민주화

2008.02.20 13:08 | 기본폴더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1231 주소복사

'과학전쟁'의 논쟁점들: '두 문화', 과학의 역사성, 그리고 과학의 민주화



'과학전쟁(Science Wars)'이란 1990년대 들어 과학 활동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이른바 '표준적' 과학관을 고수하는 과학자·과학철학자들과 (사회)구성주의적 입장에 동조적인 과학학자들간에 벌어진 논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과학전쟁의 기원을 과학혁명기 이후의 계몽사조와 낭만주의의 격돌까지 거슬러올라가 파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가 본격적인 논쟁의 시발점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학전쟁은 1994년 폴 그로스와 노먼 레빗의 책 『고등미신』의 출간과 함께 본격 점화된 후, 1996년 앨런 소칼의 논문 날조 사건과 1997년 소칼과 브리크몽이 함께 지은 『지적 사기』의 출간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 논쟁은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현재는 지나치게 과열되었던 당시의 감정적 대립을 반성하고 서로간의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며 과학전쟁을 '넘어서기'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지난 5년간 소규모의 '과학전쟁'이라고 할 만한 논전이 수 차례 전개된 적이 있었다. 1998년에는 국민대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와 서울대 물리학과 오세정 교수가 ≪교수신문≫의 지면에서 짧은 논쟁을 벌였고, 2001년 봄에는 한림대에서 '과학전쟁 대토론회'가 열려 참석자들간에 열띤 논쟁이 진행되기도 했다.

과학전쟁은 현대 과학기술의 이해를 놓고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중 필자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음 세 가지 쟁점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주1) <1> 과학전쟁은 이른바 '두 문화(two cultures)'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가? <2> 과학전쟁에서 제시된 과학 활동의 성격에 관한 논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과학지식은 그 본성상 확실하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진리인가, 아니면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는' 존재인가? <3> 과연 얼마만큼 알아야 과학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과학기술과 관련된 세부쟁점을 '잘 모르는' 일반시민이 과학기술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과학전쟁이라는 사건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현대과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전쟁은 '두 문화' 갈등의 소산인가?


흔히 과학전쟁은 고질적인 '두 문화' 갈등이 1990년대 들어 폭발적인 형태로 분출된 결과물로 이해되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두 문화'는 영국의 C. P. 스노우가 1959년에 행한 리드 강연 <두 문화와 과학혁명>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오늘날 인문문화와 과학문화 사이의 상호무지와 오해, 반목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스노우는 자신의 강연에서 특히 인문문화의 과학에 대한 무지를 개탄하고 과학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러한 그의 입장은 고급 인문문화를 대변하는 F. R. 리비스 같은 이들의 반발을 초래해 유명한 스노우-리비스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 '과학전쟁'은 3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어 나타난 스노우-리비스 논쟁의 재판(再版)인 것일까? 그렇게 간단히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우선 과학전쟁의 대립 양상은 과학자와 인문학자(과학학자)간의 일대 격돌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모양새를 띠고 나타났다. 자연과학자들 중에서도 과학학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과학학자들 중에서도 구성주의적 흐름에 비판적인 이들(특히 과학철학자들)은 상대주의적 과학학을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조했고, 이러한 양 극단이 아닌 제 3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이를 '두 문화' 갈등의 산물로 환원하는 이해방식은 오히려 그런 갈등을 더욱 부추길 위험이 있다.

또한 과학전쟁의 대립구도는 지난 30여년 동안의 과학학의 발전에 힘입어 스노우-리비스 논쟁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게 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스노우는 인문문화와 과학문화를 구분하는 선명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리비스 역시 이 점에서는 스노우와 생각을 같이했다. 따라서 이들간의 논쟁은 과학에 대한 동일한 정의를 바탕으로 한 인문문화와 과학문화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과학전쟁은 인문문화와 과학문화간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이 둘 사이의 선명한 구분이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고 보는 진영과 둘 사이의 '본질적인' 구분이 흐려졌다고 믿는 진영간의 논쟁에 더 가깝다. 또한 과학전쟁에서 인문학 진영을 대표했던 과학학 연구자들은 적어도 자신이 연구하는 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결코 '무지'하지 않다는 점에서 스노우의 이분법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전쟁에서 '두 문화' 갈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서의 두 문화 갈등은 과학자들과 인문학자(과학학자)들의 글쓰기와 독서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유발되었다. 과학자들은 개별 명제의 진위를 따지는 것을 중요시하며, 글을 쓸 때에는 오해를 유발한 수사적 표현을 절제하면서 사실을 과장 없이 쓰도록 훈련받는다. 그들은 어떤 글을 읽을 때에도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전체적인 맥락에 비추어 이해하기보다는 각각의 문장들이 옳은지 그른지에 더 관심이 많다. 과학자들에게 논문이란 마치 수학적 증명과정과도 같아서, 그 중에 '틀린'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전체가 다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전쟁에서 과학자들이 과학학(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헌을 비판하면서 그 중 잘 이해되지 않거나 이른바 '과학을 오용'한 부분만을 떼내어 공격하는 일이 잦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반면 인문학자들의 글쓰기에서는 은유와 수사가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다. 이런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글 전체의 맥락에서 그 뜻을 파악해내야 한다. 논문 전체에 대한 판단 역시 그 속에 담긴 개별 진술의 기술적 정확성보다는 글 전체가 지니는 설득력에 의해 좌우된다. 또한 상당수의 인문학자들은 글을 매우 난해하게 쓰기로 악명이 높다. 따라서 이런 식의 글쓰기에 익숙지 않은 과학자들이 보기에 인문학자들이 쓴 글은 종종 애매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으로 비친다.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간의 이런 스타일 차이는 과학전쟁에서 양 진영간의 의사소통을 종종 쉽지 않게 만든 요인이었다. 인문학자들의 글이 엉터리임을 보이기 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과학자들의 탈맥락적 인용이 인문학자들에게는 오히려 학문적 수준이 낮은 것으로 비추어져 무시되거나 반발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과학의 역사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과학전쟁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문제는 이른바 '표준적' 과학관과 상대주의적 과학관 사이의 대립이었다. 소칼과 같은 과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과학에 대한 견해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 외부에는 우리(그리고 우리가 가진 신념)와 무관하게 물리적 실재가 존재한다, (2) 과학의 목표는 물리적 실재에 대해 참(혹은 적어도 근사적 참)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3) 과학자들은 실재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도구와 기법들(실험, 논리적 사고, 통계적 추론 등)을 갖고 있다, (4) 이런 방법들은 오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지금껏 놀라운 진보를 이뤄 왔고, 이는 앞으로도 가장 믿을만한 지식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소칼 등은 이런 입장에 근거해 과학은 여타의 지식이나 인간 활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과학학자들의 주장은 전혀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스티븐 와인버그와 같은 물리학자는 이러한 소박한 실재론의 입장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 만약 지능을 가진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과학을 갖고 있을 거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박한 실재론은 얼핏 보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따져보면 곳곳에서 허점이 노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서 요약한 소박한 실재론의 내용 중 (1)에 대해서는 (일각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과학전쟁의 논쟁 양 진영간에 큰 이견은 없다고 판단되므로, 여기서는 (2)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해보자. 과학 이론이 물리적 실재와 '조응'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지만, 일단 이를 접어두고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지식이 자연의 실재와 부합하는 '근사적 참'임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과학지식은 역사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에 참(혹은 근사적 참)이었던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는(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었던 모든 과학지식이 근사적 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이로부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에는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받아들이는 과학학자들은 이런 과학의 역사성 문제에 깊게 천착하여,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혹은 한때 믿었던) 과학 이론, 과학 연구의 방향과 문제 설정, 과학을 하는 '올바른' 방법 같은 것들이 어떻게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었고 받아들여졌으며 또 거부되었는지를 보여 주려 한다. 여기서 과학 이론이나 과학의 방법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표현은 과학전쟁에서 흔히 제기되었던 오해처럼 과학자들이 모여서 실험을 하는 대신 투표로 이론 선택을 결정한다든지, 과학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에 관한 얘기를 마음대로 지어낸다든지 하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고 과학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흔히 과학 '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개입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반드시 과학에 오류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정당한 일부분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더라도 소칼과 같은 과학자들은 자신의 관점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 역시 과학의 역사성을 받아들인다. 예컨대 과거의 과학자들은 틀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과학에서 쓰일 수 있는 '정당한' 방법에 관해 오늘날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의 역사성에 천착하는 것이 오늘날의 과학을 이해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설사 과거에 많은 '틀린' 지식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 '올바른' 것들만 살아남고 '틀린' 것들은 경쟁에서 패해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에 받아들여졌던 믿음들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도 없으며 심지어 과학에 대한 오도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박한 실재론자들의 관심은 교과서나 책에 나오는 '종결된 과학'에 맞추어져 있다.

반면 구성주의적 과학학자들은 이와 같이 종결된 과학이 일종의 '블랙박스'라고 생각하며, 과학 활동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블랙박스를 해체해 과학 활동이 실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을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과학을 연구함에 있어 과학자들간의 논쟁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아직 과학자들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논쟁이 진행중인 시기에는 평상시에 가려져 있던 과학 내부의 동학(動學)이 분명히 드러나며 이를 통해 과학 활동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구성주의적 과학학자들의 관심은 '형성 중인 과학'에 있으며, 과학 활동이 인간의 여타 활동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의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종결된 과학'과 '형성 중인 과학' 중 어느 쪽이 과학의 '진정한' 본모습인가, 혹은 이 둘 중 어느 쪽이 현대과학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되는가 하는 취사선택이 되는 셈인데, 이는 간단히 풀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소박한 실재론과 구성주의적 과학학간의 대립의 근저에는 바로 이런 골치아픈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과학의 민주화는 정당한 것인가?


과학전쟁 과정에서 또 하나 크게 쟁점이 되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의 민주화를 둘러싼 문제였다. 이는 특히 『고등미신』을 지은 레빗과 그로스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제기한 문제였다. 그들은 "과학은 민주주의가 아니"며, "과학 이론을 결정하는 것을 국민투표를 통해 할 수는 없"으므로 과학의 민주화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그들은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시민이 과학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는 과학과 관련된 쟁점들에 내포된 과학 이론이나 기술적 세부사항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정책결정에 수반되어야 하는 장기적 안목을 일반시민들이 결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과학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일반대중에게 맡기면 교실에서는 진화론이 아닌 창조과학만을 가르치게 될 것이고, 영구기관 개발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될 것이며, 검증되지 않은 '돌팔이' 의료행위들이 창궐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다분히 협박조인 그들의 인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 먼저 일반시민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과학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된다. 물론 일각의 주장처럼, 일반시민이 과학을 이해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얘기이며(따라서 일반시민들이 과학에 무지하다는 판단이 그들이 가진 지적 능력을 얕보는 것이라는 비판은 부당하며), 현실적으로 많은 일반시민들이 과학과 관련된 쟁점들에 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관련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위해 해당 과학에 관한 모든 사실과 쟁점들을 남김없이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당장 특정 과학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시민이라고 할지라도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관련된 쟁점을 재빨리 이해하고 숙의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도출해 낼 수 있음은 여러 차례의 시민참여 시도들을 통해 잘 드러난 바 있다.

그리고 둘째로, 과학의 민주화가 "과학 이론을 결정하는 것을 국민투표를 통해 하자"는 식의 주장이라는 레빗과 그로스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언컨대 이는 터무니없는 오해이다. 필자가 아는 한, 과학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그 어떤 사람도 일반시민이 고에너지물리학이나 전파천문학 같은 전문적인 과학 연구를 직접 할 수 있다거나 이런 일에서 심지어 과학자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 바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실 판단은 과학자의 몫, 가치 판단은 일반시민의 몫'이라는 식으로 섣불리 일반시민의 역할을 제약하는 것 또한 불만족스럽다. 왜냐하면 대니얼 클레인맨이 이미 잘 보여준 바와 같이, 과학의 민주화를 이렇게 협소하게 이해할 때에는 '지식생산의 민주화'라는 그것의 중요한 한 차원을 간과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이나 보건과 같이 일반시민의 이해관계와 직접 맞닿아 있는 과학 분야에서는 시민들이 일상경험이나 나름대로의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견해가 과학 연구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그는 이러한 지식생산의 민주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번(Woburn)의 주민들이 그 지역에 빈발하는 백혈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 수행했던 대중 역학(popular epidemiology) 연구와 ? 1980년대 후반 AIDS 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에 기반해 AIDS 치료법의 조기 발견을 위해 분투했던 AIDS 치료 활동가들(AIDS treatment activists)의 노력,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과학관련 의사결정이나 과학 연구에서 이렇게 변화한 일반시민의 위상과 역할은 현대과학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의 문제에 주목한 라베츠와 펀토위츠의 연구와 서로 겹치는 측면이 있다. 그들의 논의에 따르면 영국의 광우병 파동에서 유전자조작식품, 지구온난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현대의 수많은 쟁점들에 대해 빠르고 확실한 해답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확실성과 보증을 제공하던 과학의 낡은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 과학은 탈정상 국면으로 이행했는데, 그들의 말을 빌면 이는 "사실은 불확실하고, 가치는 논쟁에 휩싸여 있으며, 위험부담은 크고, 결정은 시급한" 국면이다. 이러한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에서는 과학 연구에 대한 질적 평가가 과학자들에게만 맡겨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극심한 불확실성과 위험 앞에서는 과학자들 역시 아마추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확장된 동료 공동체(extended peer community)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들은 공동체가 수집한 우연한 증거와 통계까지를 포함하는 확장된 사실들(extended facts)을 이용할 것이다. 과학적 실천과 사실 및 참여자라는 전통적 요소들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실천이라는 요소가 창출되는데, 이는 피할 길 없이 과학을 민주화로 이끈다고 라베츠와 펀토위츠는 주장하고 있다.


결어


지금까지 과학전쟁에서 제기되었던 세 가지 주요 쟁점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 과학전쟁을 '두 문화' 갈등의 직접적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만 논쟁 과정에서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간의 글쓰기 스타일의 차이가 의사소통을 가로막은 측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 과학 활동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양측의 대립의 근저에는 '종결된 과학'과 '형성 중인 과학' 중 어느 쪽이 과학의 본질에 더 근접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으며, ▲ 일반시민의 과학 관련 의사결정 참여와 과학 연구 참여는 과학에 대한 무지를 개탄하는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정당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결국 과학전쟁은 단순히 두 문화간의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과학지식과 과학 활동의 지위와 성격, 과학 전문가와 일반시민 사이의 관계에 관해 심오한 문제를 던진 사건이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그런 문제들을 풀어나감에 있어 매우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각주>

1) 과학전쟁의 상세한 전개과정은 그간 국내에 나온 여러 문헌들에 충실하게 다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따로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에 제시된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추가적인 읽을거리>

이 글은 과학전쟁을 통해 불거진 여러 쟁점들에 관한 '소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글 중간중간에 일일이 각주를 달지 않았다. 과학전쟁의 여러 주제들에 좀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아래의 문헌들을 더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과학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홍성욱이 쓴 여러 글들이 가장 좋은 개관을 제시한다(홍성욱, 1999; 2003). 이영희(2003)에서도 과학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짧은 기술을 볼 수 있다.

'두 문화'와 스노우-리비스 논쟁에 대해서는 김환석(2001)에서 흥미로운 설명을 볼 수 있으며, 스노우의 책 『두 문화』를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다. 특히 이 책 말미에 붙은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는 스노우의 논지를 역사화시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과학전쟁을 두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은 이영희(2003)에 나와 있으며, 1960년대의 스노우-리비스 논쟁과 1990년대의 과학전쟁을 서로 비교 고찰한 짧은 논의로는 Cohen(2001)이 있다.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글쓰기와 독서 스타일의 차이가 낳은 문제에 대해서는 홍성욱(2003)에서 길게 논의하고 있다.

과학전쟁에 관한 논의 중 많은 수가 표준적 과학관과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비교하는 식의 구성을 갖고 있는데 이 중 후자를 옹호하는 입장으로는 홍성욱(1999; 2000)과 송성수(1999)가 있으며 전자를 다소 세련된 형태로 지지하는 견해로는 Brown(2001)이 있다. 이상욱(2002)은 '종결된 과학'과 '형성 중인 과학' 중 어느 쪽이 과학의 본질인가 하는 문제가 과학전쟁의 기저에 깔려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상대주의적 과학학자들이 '논쟁' 연구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와 여기에 부여한 의미에 대해서는 김명진(2003)을 참조할 수 있으며, '형성 중인 과학'을 다룬 대중적 사례연구 모음으로는 Collins and Pinch(1993)이 있다.

과학전쟁에서 불거진 '과학의 민주화' 논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은 이영희(2003)이다. 김명진(2001)에서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Kleinman(2000)은 과학의 민주화를 과학정책의 민주화와 지식생산의 민주화라는 두 차원으로 나눠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탈정상과학에 대한 라베츠와 펀토위츠의 논의는 Sardar(2000)을 보면 된다.

이 글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 중 하나로 과학전쟁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홍성욱(1999), Sardar(2000) 등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특히 1990년대 들어 냉전의 종식으로 과학 활동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낀 과학자들이 상대주의적 과학학을 뒤늦게 비판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홍성욱(2000)에서는 1980년대 후반 미국의 '문화전쟁(Culture Wars)'의 맥락에서 과학전쟁의 배경을 조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명진. 2001., 「'과학기술 민주화'의 개념정립을 위한 시론」, 『대중과 과학기술』. 잉걸.

______. 2003. 「과학사회학에서 본 논쟁 연구」, ≪자연과학≫ 14호.

김환석. 2001. 「생명과학과 '두 문화' 문제」, ≪과학기술학연구≫ 1권 2호.

송성수. 1999. 「'과학전쟁'이 던지는 메시지」,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모임 편, 『진보의 패러독스』. 당대.

이상욱. 2002. 「과학연구의 역사성과 합리성 ― 소칼논쟁을 중심으로」, ≪과학철학≫ 5권 2호.

이영희. 2003. 「'과학전쟁'을 넘어서 ― 과학사회학의 발전방향 모색」, ≪경제와사회≫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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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l 2007 및 Excel 2003의 RAND 함수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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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자료 ID : 828795
마지막 검토 : 2007년 3월 1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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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l 2003에서의 실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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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는 Microsoft Office Excel 2007 및 Microsoft Office Excel 2003에서 난수를 생성하는 함수인 RAND에 사용된 알고리즘의 변경 내용에 대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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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이전 버전의 Excel에서는 RAND 함수에 의사 난수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이 사용되었는데, 이 알고리즘은 무작위성 표준 테스트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대부분의 사용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RAND 함수를 매우 빈번하게, 예를 들어 백만 번 이상 호출하는 사용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설명된 의사 난수 생성 알고리즘은 Excel 2003에서 처음으로 구현되었으며 일련의 동일한 표준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이 테스트의 이름은 Diehard(참고의 첫 번째 항목 참조)입니다. Excel 2003에 구현된 이 알고리즘은 B.A. Wichman과 I.D. Hill(참고의 두 번째 및 세 번째 항목 참조)이 개발했으며, 미 정부 기구 산하의 총괄 감사실 및 미국 보건 복지부에서 제공하는 RAT-STATS 소프트웨어 패키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알고리즘은 또한 Rotz 이하 다른 연구원에 의해 DIEHARD 테스트 및 전 '미국 국립 표준국'이었던 NIST(미국 표준 기술 연구소)에서 개발한 추가 테스트도 통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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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테스트는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의 George Marsaglia 통계학과 교수가 개발하였으며 다음 웹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http://www.csis.hku.hk/~diehard (http://www.csis.hku.hk/~diehard)
• Wichman, B.A. 및 I.D. Hill, Algorithm AS 183: An Efficient and Portable Pseudo-Random Number Generator, Applied Statistics, 31, 188-190, 1982.
• Wichman, B.A. 및 I.D. Hill, Building a Random-Number Generator, BYTE, 127-128페이지, 1987년 3월
• Rotz, W., E. Falk, D. Wood 및 J. Mulrow, A Comparison of Random Number Generators Used in Business, Joint Statistical Meetings에서 공개, Atlanta, GA, 2001.
이 알고리즘의 기본 개념은 [0,1]에서 세 개의 난수를 취하여 이를 더할 경우 합계의 소수부 자체가 [0,1]에 대한 난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Wichman과 Hill의 논문 원본에서 발췌한 Fortran 코드 목록의 중요한 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C IX, IY, IZ SHOULD BE SET TO INTEGER VALUES BETWEEN 1 AND 30000 BEFORE FIRST ENTRY

IX = MOD(171 * IX, 30269)

IY = MOD(172 * IY, 30307)

IZ = MOD(170 * IZ, 30323)

RANDOM = AMOD(FLOAT(IX) / 30269.0 + FLOAT(IY) / 30307.0 + FLOAT(IZ) / 30323.0, 1.0)

따라서 IX, IY, IZ는 각각 0에서 30268, 0에서 30306, 0에서 30322 사이의 정수를 생성하게 됩니다. 이 문들은 마지막 문에서 결합되어 이전에 설명한 단순 원칙을 구현합니다. 즉, [0,1]에서 세 개의 난수를 취하여 이를 더할 경우 합계의 소수부 자체가 [0,1]에 대한 난수가 됩니다.

RAND는 의사 난수를 생성하므로 의사 난수의 시퀀스가 길어질 경우 결국에는 난수가 반복 생성됩니다. 그러나 Wichman-Hill 프로시저에서처럼 난수를 결합하면 이와 같은 반복이 일어나기 전에 10^13개의 난수가 생성됩니다. 이전 버전의 RAND를 사용할 경우 숫자가 반복되기 전의 주기가 지나치게 짧았기 때문에 몇몇 Diehard 테스트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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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버전의 Excel에서 실행한 결과
이전 버전의 Excel에서 사용된 RAND 함수는 백만 개 정도로 긴 시퀀스의 난수가 필요하지 않은 사용자에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작위성 표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긴 시퀀스의 난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성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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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l 2003에서의 실행 결과
간단하고 효율적인 알고리즘이 구현되었습니다. 새로운 난수 생성 알고리즘은 무작위성 표준 테스트를 모두 통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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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RAND 함수를 자주 사용하는 고급 사용자라면 긴 시퀀스의 난수가 필요한 경우 Excel 2003의 새로운 난수 생성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사용자는 이전 버전의 Excel에서 제공하는 RAND 함수를 사용해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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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RAND 함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Microsoft 기술 자료의 다음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834520 (http://support.microsoft.com/kb/834520/) Excel 2003에서 RAND 함수가 음수를 반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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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생의 기계를 발명한 비운의 천재

2007.12.30 19:38 | 기본폴더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1210 주소복사

[초강력 독일 잠수함 부대와 기갑부대의 파죽지세 진격으로부터 연합군을 살려낸 것 순전히 이 작고 외롭고 초라한 사나이 혼자의 힘이었다.

그의 이름은 앨런 매시슨 튜링. 서툰 말투와 추레한 옷차림 덕에 항상 외롭게 지냈으며, 선천적인 동성애자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의 동성애 기질은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세계 2차 대전의 독일군 암호체계, 이니그마(Enigma).

이니그마란 이름은 당시 연합군 애들이 붙인 이름이다. Enigma라고 하면 수수께끼란 말이거든. 1920년대 당시 이게 처음 나왔다는데 정작 위력을 발휘한 건 2차대전 중반. 당시 독일군은 이니그마라는 암호 생성기로 독일 부대 사이에 전달되는 모든 메시지를 암호화 했고, 연합군은 이니그마에 그야말로 속수무책 당했다. 아무리 암호를 중간에 낚아채도 도대체 뭐가 뭔지 알수가 없었거든. 수수께끼란 별명을 괜히 붙여준게 아니란 거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을 공포의 도가니탕으로 몰아 넣은 이니그마 머신.
당시 이 지독한 머신을 해독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연합군의 운명이 결정될락말락하였다.


연합군은 이니그마로 암호화 된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해 독일군의 유보트와 전차 부대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고, 정보전에서 뒤진 연합군은 숫적인 우세에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암호화는 서양에서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었다. 로마 시대 때부터 활발히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었으니까. 그만큼 암호를 중간에 낚아채 해독하는 기술도 어마어마 하게 발달했다는 건데. 그런데 이 놈의 이니그마는 좀처럼 풀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아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이니그마의 암호 생성기 샘플을 보자.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니그마는 같은 알파벳과 같은 문자열에 '패턴'을 주지 않는다. (아 물론 수학적으로 패턴은 분명 있겠지, 암호화가 원래 패턴을 복잡하게 만들어 주는 거니까.)

첫번째 줄의 hello world와 두번째 줄의 hello world의 암호화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이게 왜 그러냐면 이니그마 머신에선 알파벳을 한번 타이핑 칠때마다 안에 있는 수십 수백개의 톱니바퀴가 계속 돌고 돌아 다른 랜덤 문자를 찍어주기 때문이다.

단순화 시키면 아래와 같은 식이다.



더 큰 문제는 저기 돌고 있는 이니그마 톱니바퀴를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바꿔준다는 거다. 말인 즉, 운좋게 나치 통신병 발견, 겁나게 줘패서 이니그마 기계를 압수해도 이게 도무지 맞질 않는다는 거다.

아 괴로운 이니그마. 눈 뜨고 쥐어 터지는 연합군.

그래도 이 기계를 해독하는 방법이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연합군은 처음엔 수학 깨나 한다는 폴란드 애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암호 풀이 노름을 시키다가, 첨엔 몇 차례 성공을 거두었던 모양이다, 독일군이 계속해서 신형 이니그마를 활용하는 걸 보고 또 좌절, 이번엔 당대 수학계 최고의 강호라 불리는 젊은 천재를 영국에서 모셔 온다. 

(사실은 모셔 온건 아니고, 거의 납치였다.)

그 젊은 천재의 이름은 앨런 매시스 튜링. 말더듬이에 동성애자,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는 찐따. 하지만 그는 인류가 천년에 한번 배출할까말까한 수학의 모짜르트, 수학의 신이었다.  

튜링은 곧바로 연합군의 암호 해독 연구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 독일군의 이니그마 기계의 암호화 과정을 역추적할 수 있는 '폭탄(bomb)'라는 이름의 암호 해독기를 개발한다. '폭탄'은 이니그마의 암호 조합 방식을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역추적하는 고성능 계산기였다.


튜링이 개발한 "폭탄"의 개념도.
이니그마의 작동 원리를 완벽하게 파악해 암호 해독은 물론 암호 생성까지 해줬다.


후손들이 재건한 튜링의 "폭탄"
당연히 원본은 보안을 위해 '삭제'됐다.
문제는 이 엄청난 기계의 발명자 이름까지 삭제했다는 거.


튜링과 '폭탄'의 활약으로 독일군의 이니그마 암호는 곧 대부분 해독된다. 암호 해독의 결과 연합군은 독일군의 지상 병력 뿐 아니라, 대서양에서 활개치던 U보트의 활동상까지 낱낱이 파악해 전세를 뒤집는다.

특히 튜링의 암호 해독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뭐냐면 폭탄으로 이니그마가 생성하는 암호를 가짜로 만들어 이걸 독일군에 흘린 거다. 이니그마 암호만 철썩같이 믿은 독일군들은 노르망디에 병력을 다른 곳으로 분산 배치하는 통탄의 실책을 저지른다.

연합군 애들은 원래 암호만 간신히 해독하면 쌩큐쏘머치 메르시복꾸 였다. 근데 이놈의 수학 천재는 이니그마 암호를 그대로 따라 만드는 기계까지 만들어 준 거였다.

("암호의 세계" by 루돌프 키펜한/김시형 역, 2001 이지북, ISBN 89-89422-42-6 03410)

말하자면, 튜링은 2차 대전 당시 수많은 연합군 병력을 구한 전쟁 영웅이었던 거다. 전쟁 전문가들은 이니그마가 해독되는 바람에 전쟁이 최소한 2년 이상 빨리 끝났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당시 튜링의 업적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튜링이 그런 일을 했다고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심지어, 지금도 거의 없다.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에도, 위키피디어에도, 이니그마를 해독한 사람이 앨런 튜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런 비러머글.

워낙 암호 해독이라는 임무가 지독한 보안을 요하는 작업이라 그랬던 건데...

암튼 죽어라 단물만 빨아먹은 영국군바리들. 일이 끝나자 튜링을 그냥 집으로 보냈다. 잘가 바바이 오르부아.


튜링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세기 최고의 암호 해독자이자, 전쟁영웅 튜링은 또 다른 위대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발명한 일이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발명됐다면,

튜링 집에 겁나게 멍청한 가정부가 있었다. 튜링은 엉뚱하게도 이 가정부한테 수학 문제 풀이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단다. 그리고 이 가정부에게 종이와 연필을 쥐어주고 풀이 과정을 아주아주 잘게 나누어 하나씩 가르쳐 줬더니, 대학생도 못풀 수학 문제 풀이식을 배우더라는 거였다.  

뭐냐. 알고리듬(algorithm)의 시작인거다. 기계에게 멍청한 가정부에게 수학 풀이를 가르치듯이 명령을 내리는 거다. 물론 기계가 사람보다 훨씬 더 멍청하다고 가정해야겠지만, 아무튼 사람이 문제를 푸는 방식을 아주 잘게 나누면 '기(yes)'다 '아니다(no)'의 연속된 프로세스로 단순화 시킬 수 있다는 거다. 뭐냐면, 기계에도 문제 풀이 방식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거다.

바로 소프트웨어의 시작인 거다.


범용성을 위한 영생의 기계 "튜링 머신"

튜링은 자신이 고안한 소프트웨어에 "유니버설 머신(Universal Machine)"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1936년 그가 발표한 가상의 기계에 관한 보고서의 제목이기도 했다. (오늘날 유니버설 머신은 "유니버설 튜링 머신" 혹은 간단히 "튜링 머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튜링은 0와 1만 구분할 수 있는 '기계'에 명령을 내리는 방법, 그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 명령에 의해 결과가 산출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디지털 컴퓨터 '프로그램(program)'의 원리를 세상에 알린다.

튜링은 2차 대전이 끝나 가던 무렵, 콜로수스(Colossus)라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계산기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다. 콜로수스에는 튜링 머신의 테이프에 해당하는 메모리를 갖고 있어, 0과 1을 이용한 데이터 처리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로서 튜링의 기계는 원시적으로나마 현실화 된 셈.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튜링은 1948년 콜로수스보다 훨씬 복잡한 자동연산장치 ACE(Automatic Computing Engine)을 개발해, 이를 자신의 조국, 영국에 바친다.


튜링의 ACE.
영국이 이 기계의 위대함을 일찍 알았다면
영국은 미국을 대신해 IT 산업의 선도 국가가 됐을지 모른다


위대한 천재의 비참한 최후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명자이자, 알려지지 않은 전쟁영웅 튜링. 그에겐 동성애 기질이 있었고, 당시 영국 법에 의하면 동성애는 1885년 수정법령 제 11항에 따른 명백한 풍기문란 죄였다. 튜링은 평소 자신의 동성애 기질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이에 대해 별달리 문제 삼지 않았고.

하지만 1951년 어느날 우연한 사건에 의해 튜링의 동성애 기질은 경찰들에 의해 '발각'됐고, 튜링은 1년의 구금형을 선고 받는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자가 구금형을 받지 않으려면 약물치료로 형을 대신해야 했다. 약물치료라는 것은 몸에 여성 호르몬을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동성애자의 성적 본능을 감퇴 시켜 '범죄'의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 

튜링은 감옥에 가지 않고 계속 연구를 하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택했지만,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그의 현실 생활은 매우 망신스러웠다.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외부 대학에서도 초청 강연을 해야 했던 튜링. 튀어나오는 가슴이야 옷으로 가린다쳐도, 헬륨가스를 먹은양 변조된 목소리는 그야말로 초캐안습이었다.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엄청난 수모와 공공연한 조롱. 

1954년, 튜링은 자신의 집 침대에 거품을 문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청산염 중독. 그는 청산염 통 속에 사과를 담갔다가 베어 무는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다. 튜링은 자신이 평생 설계했던 "유니버설 머신"의 완성작을 보지 못한 채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튜링은 조국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인류의 기술산업 발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영웅이었으나, 그의 배은망덕한 조국 영국에선 그를 기록에 남기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그의 이름은 1963년 이후에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록된다. 여기서 튜링은 논리학자, 컴퓨터의 전신, 튜링 머신을 발명한 사람으로만 기록된다.)

앨런 튜링의 전기를 쓴 롤프 호흐후트는 튜링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영국을 진정으로 구한 사람들을 꼽는다면, 처칠 다음에 바로 튜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위대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독극물을 마신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살이 아니라 실험적 의도였을지도 모른다고 써 놓았다. 그가 겪은 동성애 재판 역시 언급해 놓지 않았다… 또 튜링이 그런 비열하고 배은망덕한 냉대 속에서도 이니그마에 대항해 싸웠다는 사실은 한 마디도 쓰여 있지 않다." ("암호의 세계" by 루돌프 키펜한/김시형 역, 2001 이지북, ISBN 89-89422-42-6 03410)

오늘날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은 앨런 튜링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매년 컴퓨팅 분야에 훌륭한 공적을 쌓은 이들에게 A. M. 튜링 상을 주고 있다. 인텔의 지원으로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전달하는 튜링 상은 '컴퓨팅 업계의 노벨 상'으로 불리고 있다.

밀양 - 감춰진 빛,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 (설교 살림교회 최형묵)

2007.06.19 09:08 | 기본폴더 | 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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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감춰진 빛,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
본문: 요한계시록 3:17~20

영화 <밀양>은 밝은 햇빛으로 더욱 푸르게 보이는 하늘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그 햇빛이 비추는 개숫물 흐르는 땅의 이미지로 끝납니다.
“밀양이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요”라는 남자 주인공 종찬의 대사는 이 영화가 함축하는 뜻을 한마디로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 어떤 곳이나 다를 바 없는 단순한 하나의 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 단순한 지명은 그렇기 때문에 무심하게 받아들여도 된다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새삼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하나의 지명으로서 ‘밀양’을 내세우기보다는 Secret Sunshine이라는 영어제목으로 뭔가 보편적인 의미를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감춰진 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태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 하늘 높은 곳에서 그 스스로는 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땅의 모든 것을 드러내주는 빛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 <밀양>은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구성과 결말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소설은 비극적 결말을 내리고 있는 반면 영화는 그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은근히 그러나 강렬하게 희망을 시사합니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주인공 이신애는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나갑니다.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남편의 고향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자신에게 결여된 어떤 것을 환상적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 환상적 욕구가 충족되는 듯 남편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 준과 함께 신애는 밀양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갑니다. 그가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탓이었을까요?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준이 유괴를 당합니다. 가진 돈을 다 털어줬지만 아들을 되찾지 못하고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아들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 아들이 되살아 돌아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었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자 비로소 스스로의 비참함을 절감한 주인공은 이웃 전도자의 손길에 이끌립니다. 이웃 약국 김 집사의 끈질긴 전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체 없는 빛의 실재를 부인하던 그가 마침내 교회에 나가면서 그 빛의 실재를 실감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만난 것은 마치 연애를 하는 듯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에게 신앙은 무너진 환상을 보상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기쁨이 어떤 것인지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내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까지 이릅니다. 그것도 범인을 직접 찾아가 용서를 선언하겠다고 나섭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만나러 갑니다. 진정한 의미의 용서란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용서의식을 행함으로써 완전한 관계의 회복을 입증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범인을 직접 대면한 그의 용서의식은 관계의 회복으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파탄을 뜻했습니다. 그가 범인에게 용서를 선언했을 때 너무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던 범인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노라 말합니다. 범인을 만나고 돌아 선 신애는 아연실색하며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마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정신적 착란의 상태에 빠집니다. 그는 절규합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 영화가 원작 소설의 모티브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985년에 발표된 원작 소설을, 1988년쯤엔가 이창동 감독이 보면서 광주사태를 연상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바로 이 대목이 1980년 광주를 연상시켰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스스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데 그 고통을 안긴 당사자들은 그들이 쥔 권력을 향유하며 안락하게 살아가는 현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용서한 적이 없건만 그 가해자들은 마치 용서라도 받은 것처럼 편안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 직감은 실제 현실에서 소설과 똑같이 재현되고 말았습니다. 훗날 국가가 나서 그 가해자들을 가볍게 벌하고 면책을 해줬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함으로써 사태를 일단락 지었습니다. 여기서 피해자들은 스스로 응징은 말할 것 없거니와 용서고 화해고 시도해볼 틈도 없이 국가권력의 모든 처분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신애가 절망한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숭고한 용서의 행위마저도 스스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존재는 도대체 뭐냐고 항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와 주변의 성도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을 앗아간 하나님의 섭리는, 자신에게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납득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고, 그 감사에 응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죄인을 용서하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이 용서를 해버렸다니! 도대체 그 숭고한 용서행위마저도 스스로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당신은 누구냐고 항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은 그 항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어쩌면 그가 단 한번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인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그렇게, 값싼 은혜와 용서를 남발하는 기독교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게 비극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림과 동시에 그 비극을 넘어서려는 현실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적인 기독교 신앙의 은밀한 빛을 살짝 내비춰 준다고 할까요? 그렇게 해석하면 너무 아전인수격 해석 또는 호교론적인 해석일까요? 소설이 완전한 ‘부정’으로 대안의 실마리를 스스로 찾도록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면, 영화는 새로운 ‘긍정’으로 대안의 실마리를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스스로 용서할 기회마저도 박탈해버린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주인공의 냉소와 항변으로 종반부를 그려 나갑니다. 정말 자살을 의도한 것인지, 그저 저 높이 계시며 내려다보는 분에 대한 항변의 표시인지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로 그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새 기분으로 머리를 다듬으려는데, 하필 그의 머리를 손질하는 미용사는 아들 유괴범의 딸입니다. 담담한 듯 꾹 참고 자신의 머리를 맡기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뛰쳐나오고 맙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끝까지 자신을 방해하는 분입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려 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환상이 송두리째 무너진 그에게 모든 타인은 자신을 방해하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결국 스스로 머리를 손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지나치면 그냥 결론 아닌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은 그렇게 은밀하게 이 영화가 함축하는 뜻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혼자서 거울을 두고 머리를 손질하는 그 앞에, 시종일관 그의 주변에 붙어 다니던 종찬이 등장합니다. 밀양에 도착하는 순간 차 고장으로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은 거의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주인공 신애의 주변을 맴돌며 돌봐줬지만, 신애에게 그 존재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애가 혼자서 머리를 손질할 때 종찬은 거울을 들어주고 신애는 그런 그의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가 들고 있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스스로 머리를 손질합니다. 그리고 나뒹구는 머리카락과 함께 밝은 태양빛으로 빛나는 마당의 개숫물 흘러가는 모습이 화면 한쪽을 장식합니다.

전혀 자기 타입이 아니었던 존재에 마침내 자신을 내맡기며 스스로의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과, 결코 화사한 풍경이라 할 수 없는 그들이 자리한 바로 그 땅 그 자리가 저 높은 곳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으로 빛나는 장면은 역설의 진실을 말함과 동시에 진정한 주체의 탄생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형체가 없으나 맑고 푸른 하늘을 보여주던 영화의 첫 장면과 대조되는 개숫물이 흘러가는 누추한 땅의 장면은 마치 아름다운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와는 다른 보잘것없고 누추한 땅의 현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합니다. 아니면 온 우주에 충만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의 세계에서 그와 같은 감시자로서 신의 존재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저 귀찮은 존재로만 여겨졌던 타인의 손에 들린 거울에 의존하여 비로소 스스로 자기 몸을 가다듬는 주인공의 모습과, 저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빛으로 반짝이는 땅의 모습은 역설의 진실, 새로운 긍정을 시사합니다. 결여된 땅의 현실을 부정하며 애써 저 하늘만 바라보았던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보이지 않는 낯선 타인에 불과했으나 그 타인의 존재로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 구원의 희망이 자리합니다. 하늘이 내려와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구원의 이치라고 할까요? 이것은 그 어느 한편이 사라지면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 영화는 땅을 망각하고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땅을 비춤으로써 진정으로 하늘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내 곁에 있지만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비로소 긍정하게 되는 구원의 희망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특정한 교회, 곧 초대교회 시절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애써 부정하고 환상 속에서 허구적인 자신을 그리며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들 모두를 향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17절) “보아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20절)
누추한 현실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외면하고 구원의 실재, 새로운 삶의 현실로 다가설 수는 없습니다. 나의 현실을 환상으로 그려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내 곁의 낯선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 곁에 바싹 다가선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삶의 진실을 실감합니다. 그 때 누추하게만 느꼈던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그렇게 누추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 때 구원의 빛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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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5 08:27 | 기본폴더 | 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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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
올린이 : 아동| 등록일 : 2005/12/28 19: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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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있는가
혹시나 우리가 불평하는것들이 저들에게있어선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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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우리보다 못한사람들을 돌볼줄 아는 사람이 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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