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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조건−황석영의 ꡔ손님ꡕ
홍승용(대구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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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야만이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공상과학만화들이 그려내는 미래상에는 대개 미래가 없다. 그 기본구조가 현재의 지배논리를 구태의연하게 반복하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의 농간으로 주인공의 시점을 차지한 우리편은 수난을 겪을지라도 신성한 자유와 정의의 십자군이며, 운이 없어 그 시야에 들어서는 반대파는 가차없이 몰아내고 제거해야 할 악마군이다. 수지타산이 맞는 한 오락산업은 이 패주하는 악마군을 늘 다른 모습으로 등장시키고 다시 퇴각시킴으로써 십자군의 존재이유를 반복하여 확인시켜 준다. 순진한 관객들은 지배권력의 대리인인 제작자들의 음흉한 서비스에 기꺼이 열광한다.
끝없이 재생산되어 온 이 극적 장치는 내일의 주인공들에게 비역사적 흥분을 선사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잠재적 사디스트의 자질을 단련시켜주기도 한다. 즉 유아적 자기중심주의, 지역패권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쇼비니즘, 파시즘 등등의 파괴적 에너지를 몸 속에 축적하도록 주술을 거는 것이다. 그 대가로는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세계 혹은 미래를 꿈꿀 권리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이 야만의 재생 메커니즘은 오락의 영역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 언저리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류사를 관통하는 범사회적 현상이었고, 그 앞에서는 이른바 문명과 미개의 구분뿐만 아니라 체제간의 차이조차 종종 빛을 잃었다.*주) 그렇게 축적된 파괴력은 분출의 순간을 노린다.
*주) {{ 그럴 때면 이분법에 대한 해체론의 형이상학적 알레르기도 그럴듯해 보인다. 물론 이분법에 대한 대책 없는 거부보다는 사태에 대한 구체적 총체적 인식이 필요하며, 그 속에서는 이분법도 적절한 위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황석영의 ꡔ손님ꡕ은 신천학살이라는 한 극단적 폭발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가 다시 되살려내는 민족사적 잔혹극 앞에서는 보수정객들의 기세등등한 색깔공세조차 교양과 관용의 환각효과를 야기한다. 물론 환각은 환각일 뿐이다. 필요하다면 위선과 체면을 모든 규범과 더불어 가차없이 내던지고 적나라한 힘의 논리를 들이미는 것이 우리 사회를 실제로 주물러온 지배 규칙이었다. ‘하면 된다’ 혹은 ‘해 먹으면 된다’가 군부독재의 수뇌부로부터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간 생존의 공리였다. 독식을 위해, 먹은 흔적을 감추기 위해 비판의식의 씨를 말리려는 것이 통치술의 기본이었다. 여차하면 남의 창자까지 뽑으려 드는 이 야만의 폭발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언론매체들과 사이버 공간을 가로지르며 불붙는 증오의 언사들이 그 명백한 징후이다.
증오의 뇌관을 안전하게 제거할 방법은 무엇인지. 힘의 논리를 묵살하지 않으면서 인도적 대안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반세기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연쇄충돌들을 어떻게 조절해 낼 것인지. 그 충돌의 혼돈이 덮쳐와도 새로운 야만을 피할 길은 있는지. 이런 문제들과의 전선 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ꡔ손님ꡕ을 이 전쟁터 속의 길잡이로 삼으라고 권한다면 좀 지나친 주문일 것이다. 그러나 ꡔ손님ꡕ은 거칠지만 분명하게 미래의 규범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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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학살 관련 북한의 공식적 입장, 즉 미군이 신천양민 3만여 명을 학살했다는 주장은, 학살주체가 미군이 아니었고 신천지역 공산당원들과 우익세력 자신이었다는 반론과 대립한다. 작가는 후자 쪽을 받아들인다. 이 점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에 동의하는 독자들은 황석영이라는 지명도 높은 작가가 수많은 역사적 증거, 실증, 생존자 증언에 근거를 두는 엄연한 사실을 ‘구라’ 취급하고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하는데 이는 “독자에 대한 ‘사기’행각”*주1)이라고 불끈거린다. 반면에 친북 진보 좌파 작가(한마디로 빨갱이) 황석영이 북한의 역사왜곡에 맞서 실상을 그럴듯하게 그려낸 지적 용기가 가상하다고 추켜세우는 왕년의 반공투사도 있다.*주2) ꡔ손님ꡕ은 일단 북한의 공식적 입장보다 우익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주1) {{ dyyu0724: http://www.yes24.com의 2001. 12. 12일자 독자서평. }}
*주2) {{ 이경남: 「황석영 소설 ‘손님’의 파장과 신천 ‘학살박물관’의 허구」, ꡔ한국발전 리뷰ꡕ,
http: //www. hanbal.com/review/review105/chojum2.htm.}}
지속적 설득력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사실들에서 출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학살의 발단과 주체 문제에 국한한다면 역사적 사실 확인은 유별나게 난해한 것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4월 21일자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따르면, 미군은 1950년 10월 18일 신천에 진주했다. 이때 인민군과의 전투는 없었다. 신천에 머문 미군 병력은 24사단 19연대 3대대의 2개 중대뿐이었고 주력군은 북진했다. 뒤에 남은 병력은 북진한 주력군의 안전을 위해 경계업무를 담당하면서 신천 지역의 정황을 상부에 비교적 상세히 보고했다. 미군이 등장하기 전인 13일에 재령에서 우익의 무장봉기가 있었고 빨갱이 색출과 학살이 진행되었다. 월남 우익의 주장으로는 그 이전에 이미 북한군이 예비검속을 통해 학살을 시작했고 이를 막기 위해 빨갱이들을 죽여야 했다. 본격적인 대량학살은 미군이 주둔한 18일부터 벌어진다. 그러나 전세가 어느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았던 까닭에 좌익과 우익간의 투쟁에 따른 희생이 계속된다. 최종적으로는 황해도 지역이 북한의 통제하에 들어간 후, 1951년 1월 5일자 김일성의 포고령으로 재판 없는 처형이 잦아진다. 미군이 직접 집단학살을 자행했다는 미군 측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북한이 학살주범으로 지목하는 해리슨 중위는 3대대원 명단에 없다. 그러나 미군중위가 당시 지휘관이었다는 우익의 증언은 있다. 아무튼 1950년 12월 초까지 미군이 그 지역에 머문 것은 분명하다. 12월 6일에도 우익 또는 미군에 의한 집단학살이 있었다. 미군의 주둔이 우익 활동의 배경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상의 정황을 고려하면, 미군의 신천 진주 이전부터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어의 성격을 띠고 시작된 학살은 미군 진주 이후 더욱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학살을 직접 실행하거나 지시했다기보다 이미 불붙은 사태를 묵인하거나 고무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는 것이 신빙성 있다. 미군이 부분적으로는 직접 학살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측이 미군을 학살 주범으로 단정하는 데에는 다분히 정치적 해석이 개입한다. 이는 미군이 당시 국군의 지휘권을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이양받아 공식적으로 전쟁의 주체가 되었으며, 북한 전역을 융단폭격하여 폐허로 만들었고, 200만 명 이상의 민간인 희생을 초래했으며, 핵무기 사용까지도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사실*주) 등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기도 하다.
*주) {{ B. 커밍스: ꡔ한국 현대사ꡕ, 김동노/ 이교선/ 이진준/ 한기욱 역, 창작과비평사 2002, 381, 405, 416쪽 참조.}}
ꡔ손님ꡕ은 학살의 주체 혹은 발단 문제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우익 쪽 주장처럼 반공봉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ꡔ손님ꡕ은 그 봉기에 이르는 오랜 갈등의 뿌리를 드러냄으로써 북한 공식문건들과 다른 방식으로 반공이데올로기의 옹벽에 금을 낸다. 맑스주의와 기독교 양쪽 모두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발언*주)과 별도로 ꡔ손님ꡕ의 핵심은 추상적 양비론이 아니다. 용서와 화해에 앞서 따질 만큼 따지며, 옛 상처를 기억 저편에 그냥 묻어두지 않고 가장 아픈 부분까지 들춰낸다. 그 전체 구도는 좌익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우익의 광기에 대한 자성을 고무한다.
*주) {{ 황석영: ꡔ손님ꡕ, 창작과비평사 2001, 261쪽 이하 참조. (이하 쪽수만 밝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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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억지를 써서 그런 효과를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양측에게 충분히 발언 기회를 준다. 외면상으로는 우익 쪽에 오히려 더 우호적이다. 이미 말했듯이 학살주체 문제에서 북한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우익의 손을 들어준다.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요섭은 기독교인이다. 반공봉기의 주연급인 요한의 이야기가 순남 아저씨나 이찌로 등 좌익 쪽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 작가가 직접 나서서 대외적으로 양비론 내지 화해의 메시지를 천명한다. 불공정 시비에 대해 작가 나름의 대비책을 단단히 마련해 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작가의 노골적인 편들기가 아니라 사건 자체 혹은 사회구조적 충돌 자체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효과는 명백한 당파성을 띤다. 황석영이 ꡔ오래된 정원ꡕ과는 비교가 안 되게 공을 들여 능란한 리얼리즘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다.
충돌의 가시적 원인은 1946년 3월부터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이다. 대지주들이 극소수였고 소농이나 소작농이 다수였던 북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토지개혁이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하여 덜 난폭하게’ 수행되었다. 미국의 공식논평 상으로도 폭력이나 유혈은 없었다*주). 그러나 자작농이 많았던 신천지역의 분위기는 달랐다. “많이들 월남해버렸지만 남은 이들은 대개가 땅마지기나 지니고 살던 집의 자식들이었다. 그것도 어중간하게 밥술을 먹는 집 아이들이었다. 큰 지주나 부잣집은 벌써 해방이 되고 나서 서너 달 동안에 눈치를 보다가 집안정리를 해서는 밤중에 사라져버리곤 했다. 교계와 당국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던 아이들이 한독당이네 청년단이네 가입하여 이북의 교인들 중심이던 민주당 조직을 타고 많이 넘나들었다. 이북이 다 비슷했지만 우리 고장이 경기도 접경이고 교인이 많아서 저항이 제일 심했다.”(176~7) ‘조상 대대로 물려 받아온 땅’을 빼앗긴 지주들의 입장에서는 토지개혁이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패륜이었다. 특히 동네에서 짐승처럼 부려먹던 이찌로 박일랑이 농촌위원장이 되어 옛 상전들의 토지 몰수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상전들의 눈으로 보면 “소가 웃을 일”(133)이었다.
*주) {{ B. 커밍스: ꡔ한국전쟁의 기원ꡕ, 김자동 역, 일월서각 2001, 513쪽 참조. }}
좌익에 대한 거부감은 해방직후부터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이미 조직화되고 있었다. “우리 군에 인민위원회가 생겨난 뒤에 가보니 정말 한심하더라. 어중이 떠중이 머슴 건달 떠돌이 따위들인데 누가 보아도 제 고장에서 대접 못 받던 놈들을 긁어모은 것이라. 우리는 당연히 인민위원회와 결별하고 교회 중심으로 모여 있었지.”(119~120) 광기에 휘말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독교가 그들의 정신적 무기였다. 그들은 기독교의 사고틀과 조직 속에서 공산당과의 전쟁을 다짐하고 위안을 얻는다. “우린 십자군이 댔다. 빨갱이들은 루시퍼의 새끼들이야. 사탄의 무리들이다. 나는 미가엘 천사와 한편이구 놈들은 계시록의 짐승들이다. 지금이라두 우리 주께서 명하시면 나는 마귀들과 싸운다.”(20)
그런데 요한이 털어놓는 십자군의 행적은 “천추에 용납 못할 귀축 같은 만행”(99)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요한은 동네 아이들과 잘 놀아주어 어려서부터 정이 들만큼 든 순남의 목에 철사줄을 걸어 전봇대에 매단다.(218) 지주 아들 봉수는 포로에게 휘발유를 퍼붓고 성냥불을 던진다.(222) 일랑은 코뚜레를 꿰인 채 끌려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하창고에서 불타 죽는다. 그에 앞서 그의 가족들이 몰살당한다. “아이덜이 울어대니까 한놈이 딸애럴 두 팔로 잡아 위로 쳐들었다간 거저 땅에다 패싸대기럴 치더만. 아가 죽었넌지 찍짹 소리두 없이 널브러제서.”(212) “빨갱인 거저 씨를 말려야”(198) 했고, “하여튼간 물든 것덜언 다 쥑에야 되었다”(220). 이어진 가족단위 혹은 수백명 단위의 대량학살로 신천지역의 방공호, 탄약창고, 저수지, 강둑 등은 시체로 넘친다. 그 유해들은 2001년 11월에도 발굴되었다.
물론 잔인성은 우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피차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한다는 생존투쟁의 법칙에 따라 움직였다. 10월 11일자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예비검속은 남한의 보도연맹원 대량학살과 본질적으로 달랐을 것 같지 않다.*주) 그러나 ꡔ손님ꡕ은 북측의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고 넘어간다.(205) 반면에 요한 등이 저지르는 살인행각은 계급의 적들을 제압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에 머물지 못하고 무의미한 광란으로 치닫는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날 십팔일하구 이튿날 십구일, 또 이십삼일꺼디 우리넌 모두 미체 있댔다.”(225) 봉수, 상호 등은 포로로 끌려온 ‘윤선생 에미나이’를 술안주 삼아 윤간하며 그 광경을 목격한 요한은 여자를 사살한다.(248) 상호는 요한의 매형이 당원이라는 이유로 그의 누이들을 죽이고(245) 요한은 상호 약혼녀 명선의 가족을 몽땅 해치운다.(249)
*주) {{ 이경남: 앞의 글 참조.}}
이에 대한 요한의 고백은 기독교 이데올로기의 모든 의미와 정당성을 논박한다. “나는 이제 우리의 편먹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사탄을 멸하는 주의 십자군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시험에 들기 시작했고 믿음도 타락했다고 생각했다. 나와 내 동무들은 눈빛을 잃어버린 나날이 되어갔다. 눈에 빛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사는 게 귀찮고 짜증이 나서 그랬다. 조금만 짜증이 나면 에이 썅, 하고 짧게 씹어뱉고 나서 상대를 죽여버렸다.”(246) 자유의 십자군 자신이 ‘루시퍼의 새끼들’, ‘사탄의 무리들’, ‘계시록의 짐승들’로 뒤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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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손님ꡕ에 등장하는 좌익들에게서는 이러한 광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순남은 죽음 앞에서도 인간적이다. 요한의 기습을 받고 뒷산으로 도망치던 순남은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고함을 듣고 도주를 포기한다. “내가 어케 더 도망할 수가 있갔나. 집사람언 여게가 고향두 아니야. 페양서 양말공장 다니던 사람인데 열두살 적부텀 동생덜 기르멘 노친얼 모시구 고생만 하구 살았디. 강습에 갔다가 만났넌데 우리네야 맨손밖에 개진 거 없넌 기본계급 아니가서. 아이들두 박일랑 동무네 집처럼 세살 한 살이야.”(215) 고생만 해온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지 못하는 빨갱이 순남 아저씨를 나는 증오할 수가 없다. 책 읽다 말고 억겁 민중들의 고난을 떠올리며 눈물까지 짜냈다.
일랑의 코에 철사를 꿰어 끌고 가며 요한이 “하나님이 내리넌 천벌”이라고 말하자, 일랑은 지지 않고 뼈 있는 말로 응수한다. “조선으 하나님얼 믿어라야.”(214) 일랑에게는 죽음으로 귀결된 좌익활동이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었다. “아아, 성두 이름두 없이 이찌로 평생 허리 한번 씨언허게 못 페보구 일만 직싸도록 허였디만 지난 멫넌 동안언 보람이 있댔구나.”(224) 그 보람의 실체에 대해 순남이 말한다. “너이덜이 반말지꺼리나 하구 아무 생각두 없넌 반편이라구 여기던 이찌로가 글얼 읽게 되어서. 박일랑이라구 제 이름얼 쓰게 되었디. 해방언 이런 거 아니가. (…) 소겉이 일만 하던 박일랑 동무가 ‘토지개혁’이란 글자를 읽고 쓰게 되었던 거다”(138) 일만하던 노예에서 역사의 주체로 일어선 일랑의 모습이 요한과 상호, 친일파 지주와 엘리트 귀족주의자들, 그리고 아직 이 사회의 주류임을 자처하는 수구세력들의 눈에는 코뚜레를 꿰어 끌고 다녀야 할 짐승으로 비쳐질지 모르나, 나에게 그의 변신은 가슴 찡한 인간화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증오의 대상이었던 인민위원회를 “어중이 떠중이 머슴 건달 떠돌이 따위들”의 모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우익 쪽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인민위원회가 북한에서 “능률적인 행정기관”이었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주)는 둘째 문제이다. 하지만 하층민들에게도 정치 참여의 문을 열어 놓은 일 자체는 명백히 참여민주주의를 향한 진일보 아니었던가. 항일투사들 다수가 인민위원회를 주도했다는 사실 또한 미군정하 남한의 친일파 득세와 비교할 때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의미와 정당성을 지니지 않는가.
*주) {{ B. 커밍스: ꡔ한국전쟁의 기원ꡕ, 489~490쪽 참조.}}
순남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토지개혁이 외세와 계급의 적들을 분쇄하기 위한 민주기지 건설 작업이라고 이해하며(127),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온 땅”이라는 것과 기독교의 계급적 민족사적 본질을 꿰뚫는다. 요한의 부친 류인덕 장로나 조부 류삼성 목사는 일제 동척 마름으로 땅마지기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마름이 어떤 소행얼 저질렀너냐 하문 작료를 올리구 저이 작료까지 물게 하군 듣지 않으문 계약을 해지하구 다른 농사꾼에게 소작권 이작증명얼 해주는 거여. 동척회사나 금융조합이나 땅쥔들도 수완좋은 서기와 마름덜얼 좋아해서 서루 바꿔가맨 일얼 시키니라구 마름놈이 새로 오문 지난해 작권언 일체 인정하디 않구 새루 작권료럴 올레서 받거나 미리 수확할 량얼 멋대루 정해선 예채럴 받구 보증전두 받구 하댔다. 우리두 수테 갖다바쳐서. 철철이 그물쳐서 쏘가리 메기 잉어에, 덫 놓아 꿩이며 노루며 잡아다 바치구, 떡해 가구, 광목 옥양목 끊어 가구, 기래두 가뭄이나 태풍으루 한해 농사만 거시기니 되어두 그낭 작권을 떼이구 말아서.”(77)
기독교 지도자들 대부분은 친일 지주출신이었다. 지주들과의 싸움을 좌익은 설익은 이념문제로서보다는 영원히 ‘봉건의 노예’로 남느냐 마느냐 하는 인권의 문제 내지 해방의 갈림길로 받아들였다. 토지개혁은 기독교의 가르침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피의 홍수 속에서도 성실성을 통해 살아남는 요한의 외삼촌 안성만이 그렇게 말한다. “가난하던 이들이 땅을 분여받아 굶주리지 않게 된 것은 예수님의 행적으로 보더라두 훌륭한 일이었다. 교회나 절이 가지고 있던 땅을 소작인에게 나누어준 일도 당연했다.”(176) 이는 토지개혁으로 빼앗길 것이 별로 없었던 소농의 관점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봉건적 억압과 일제에 의한 착취, 또 그와 유착되었던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지주들이 토지개혁의 의미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우리 민족의 현대사는 오늘과 전혀 다른 흐름을 이루었을 것이다. 아울러 남한에서도 미군정의 “외과수술”*주1)이 우리사회의 자생적 맥동을 틀어막지 않았다면, 최소한 친일 잔재는 일소되고 좀더 민주적이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문화가 주류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주2) 아홉을 가지고도 열을 채우려드는 사람들은 이런 ‘~라면’류의 상상조차 ‘소가 웃을 일’로 여겨 코를 꿰려 달려들지도 모르니 이 문제는 이 정도로 하자.
*주1) {{ B. 커밍스: ꡔ한국전쟁의 기원ꡕ, 525쪽. “미국의 점령정책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배후에 물러서서 한인들에게 책임 있는 지위를 맡기는 그들의 정책은 그들로 하여금 점령군을 별 희생 없이 조용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련은 최고위에서 조치들을 재조종하는 데 만족하면서 대부분의 도 행정을 인민위원회와 보안대에 맡겼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상부와 하부에서 몇 번이고 외과수술을 수행해야 했다.” }}
*주2) {{ 강정구에 따르면 조선사회 전체의 내재적 역사동인에 의해 사회주의로 가기에 적합한 주체적 객관적 조건이 존재했다. 강정구: 「한국 보수지배체제 확립의 역사적 기원」, ꡔ진보평론ꡕ, 2002년 봄호, 2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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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원한이 있었으니 귀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ꡔ손님ꡕ의 본론을 화해의 굿판으로 몰아가기에는 그 갈등구조와 당파성이 너무 선명하다. 요한과 요섭, 순남과 이찌로, 외삼촌과 형수의 이야기들은 산 자의 것이든 귀신의 것이든 신천비극의 사회사적 본질을 압축적으로 조명한다. 이 부분에 주목하면 익숙한 독서체험에 따라, 1인칭을 3인칭으로 바꾸어 읽어도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귀신의 이야기들 사이에 아예 누구의 말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실 기술이 직접 끼여들기도 한다. 이 점에서 귀신은 대체로 이야기 솜씨의 문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귀신을 실체로서 염두에 두고 작품이 개연성 원칙을 위반했니 안했니 논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다. 소설의 개연성과 진실성은 역사기록이나 언론의 그것과 엄연히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살려내고 그 숨은 의미를 드러내는 이야기, 곧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못지 않게 소설의 본업에 들어간다. 21세기의 리얼리즘 소설에 귀신이 등장했다고 해서 헷갈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귀신에게 현세의 신분증을 발급하려는 독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노련한 독자 김병익도 귀신, 곧 “전통의 사실주의 수법으로서는 허용하기 힘든 비현실적 존재들”을 “기독교인들의 가혹한 만행들에 대한 폭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ꡔ손님ꡕ의 당파성에 주목하는 점에서 노련미가 보인다. 토를 달자면, 순남과 일랑은 기독교인들의 만행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적극적 의미도 돌아보게 한다. 뒷부분이 없다면 좌익은 더 잔인했다는 상투적 반론과 밑도 끝도 없는 공방을 벌여야 할 테고, 그 와중에 ꡔ손님ꡕ의 당파성은 근거 부족한 편파성으로 축소될 것이다. 한편 사실주의 혹은 리얼리즘을 ‘수법’의 차원으로 좁혀서 파악한다면 귀신을 용납하기 힘들지 모르나, 현실의 모순들을 들춰내고 해결의 방향으로 조형하려는 ‘예술방법’으로서 폭넓게 이해한다면 귀신은 리얼리스트에게 전혀 거북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주) {{ 김병익: 「이념의 상잔, 민족의 해원」, ꡔ문학동네ꡕ, 2001년 가을호, 530쪽.}}
황석영 자신이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넓혀놓겠다고 팔을 걷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리얼리즘은 꽤 넓게 이해되어 왔다. 발자크 톨스토이의 치열함만 아니라 브레히트의 도발태세나 마르케스의 환상세계도 모두 리얼리즘 전통 속의 한 자리를 요구한다. “삶의 흐름에 가깝게 산문을 회복”(261)하려는 작가의 고민은 리얼리즘의 역사에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얼리스트라면 당연히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다만 “삶의 흐름”이라는 말이 정치경제학적, 혹은 사회구조적 문제들, 이른바 ‘거대서사’를 절실한 이유도 없이 따돌리는 구실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를 시작하자”(262)는 작가의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속 좁은 정객들조차 상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시대 아닌가.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ꡔ손님ꡕ에서는 맑스주의와 기독교의 대립이 외래적인 것과 본래적인 것의 대립으로 발전하고, 본래적인 것에 대한 긍정을 통해 화해의 길이 열린다고 보는 독자들도 있다. 작가 자신이 이런 독법을 적극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구도를 작품의 기본골격으로 전제하면서 성민엽은 본래적인 것으로서의 샤머니즘도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서술형태의 다성구조를 그보다 더 중요한 화해의 원리로서 내세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상호대화와 자기반성을 통해서 극복과 화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주)
*주) {{ 성민엽: 「이데올로기 너머의 화해와 그 원리」, ꡔ창작과비평ꡕ, 2001년 겨울호, 250쪽.}}
‘상호대화’와 ‘자기반성’은 무척 듣기 좋은 말이다. ‘이상적 대화상황’ 이라는 말을 덧붙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ꡔ손님ꡕ의 갈등구조에 이를 적용하자니 어딘가 허전하다. 상호대화는 공동의 이익을 토대 삼아 잘못 알았던 것을 바로잡고 뉘우치고 악수하는 대등한 관계와 상호존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박일랑 동무와 류인덕 장로가 어떤 식으로 점잖게 대화했으면 유혈을 피할 수 있었을지 상상이 잘 안 된다. ꡔ손님ꡕ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인물들 각자가 할 이야기를 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이 객관적으로 동등한 정당성을 지니지도 않으며, 또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순남과 일랑의 자부심에는 역사적 실체가 스며 있으나 요한의 믿음은 구체적 내용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이해관계에 대한 인식 및 그 변화에 대한 동의에 근거하지 못하는 반성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적 결과에 대한 도피반응에 가깝다. 요한에게서는 반성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순남과 일랑에게는 무엇을 반성하라고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물론 ꡔ손님ꡕ이 일방적으로 남쪽의 관점에서만 보아온 “우리의 인식체계에 근원적인 반성을 가하기에 충분하다”*주)는 김병익의 평가에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자기반성의 우선적 주체는 우리 자신인 것이다. ꡔ손님ꡕ의 대화와 반성에서는 당사자들의 상호성보다 민족사적 모순의 역동에 대한 충실성이 좀더 본질적이다. 이 역동을 따라가기 거북한 독자에게도 굿판 형식이나 류요섭 목사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심오한 의미를 찾는 등의 소일거리는 남아 있다.
*주) {{ 김병익: 앞의 글, 5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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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사실상 무서운 ‘손님마마님’은 아직도 미국”(262)임을 새삼 언급한다. 이런 리얼리스트의 역작을 화해의 범주 속에 몰아넣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기에는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모순의 골짜기들이 아직 너무 험악하다. 신천학살을 만들어낸 기본모순은 그대로 살아 남아 새로운 신천을 예비하고 있다. 그것은 한판 굿으로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편의 작품에서 그 해결책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도 ꡔ손님ꡕ은 생각해야 할 몇 가지 단서를 제시한다.
무서운 “손님 오랑캐 구신”(40)인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대안을 “당군 하라부지”나 “아미산 벅수님”(39)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래적인 것을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배제해야 할지 알 수도 없고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래 사상이나 문화를 비판적․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민중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은 미래를 열어 가는 작업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으 하나님”이라는 일랑의 말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그러한 것이라고 유추해도 무방할 것 같다. 특히 무서운 손님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이냐, 수치스러운 불평등관계들을 어떻게 자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바꾸어 갈 것이냐에 우리의 미래는 결정적으로 좌우될 것이다.
순남과 일랑의 길은 신천의 비극에 이르렀고 그 상처는 아직 벌어진 채로 있다. 비극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ꡔ손님ꡕ은 그 적극적 의미를 돌아보라고 권고한다. 빈익빈부익부의 그물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사회는 신천의 악몽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소수가 부를 독점해 갈수록 폭발의 잠재력도 높아진다.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가 가능하겠지만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완벽한 통제란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평등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사회적 지향점이다. 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사회적 힘을 나누어 가는 것이 미래를 향한 진보의 본질이다. 물론 나누는 방식은 늘 구체적 조건 속에서 현명하게, 가능한 한 폭넓은 동의를 통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악명 높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조차 권력의 집중을 통해 권력을 나누려는 역설적 시간싸움이었다. 분배가 빠진 화해와 발전은 억지화해와 억압의 발전으로 끝날 것이다. 이웃과 나누는 삶은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접점을 이룬다. 교인이자 당원인 요한의 외삼촌 안성만이 토지개혁을 긍정한다는 사실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념갈등이 아니라 빈부모순이 야만의 좀더 근원적인 뿌리였다는 점, 나눔 없이 화해와 통일은 사기라는 점, 더 많이 가진 쪽이 더 많이 버려야 한다는 점 등이야말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반성 목록이다.
안성만의 행적은 개인차원에서 갈등의 해소가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부역에 동원된 그는 지도원의 허가 없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간다. 화를 내던 지도원은 안성만을 관찰한 뒤 그의 성실성을 인정하여 마음놓고 교회에 다녀오도록 허락한다. “나는 당신 같은 인민은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구 생각하오. 그 동안 안동무가 작업하는 태도나 숙소에서 동무들과 생활하는 것을 우리가 시종 관찰하였는데 참 성실한 사람이오. 자기 맡은 작업량뿐만 아니라 모자라면 남의 일까지 해치우고 숙소에 돌아가서두 아픈 사람 빨래까지 해주었다면서요?”(181~2) 진짜 신앙은 이웃을 돕는 삶과 하나인 것이다. 안성만의 인간됨됨이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지도원 또한 도식적 규율에 따라 사람을 자르고 묶고 내던지며 그 위에 군림하는 관료는 아니다.
피바람을 겪고 난 후 안성만은 비극의 원인을 좌우 모두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을 망각했다는 데에서 찾는다. “그때 우리는 양쪽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지상의 일은 역시 물질에 근거하여 땀 흘려 근로하고 그것을 베풀고 남과 나누어 누리는 일이며, 그것이 정의로워야 하늘에 떳떳한 신앙을 돌릴 수 있는 법이다.”(176) 조선시대이든 일제 치하이든 예전의 어느 사회에서도 나누어 누린다는 삶의 도리가 제대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그것이 범사회적 규범으로 된다면 이는 과거보다 오히려 미래의 일일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매우 복잡하다는 인식은 90년대 퇴각전의 뼈아픈 기념물이기도 하다. 원칙을 허물지 않는 한 좀더 너그럽게 만나고, 함께 일할 기회를 자꾸 만들어내야 하며, 인지상정을 경멸해서는 안된다는 자각도 상당히 늘어났다고 여겨진다.
목사의 아들인 안성만은 목사님이 아니라 일경에 잡혀가 두어 해 옥살이하고 나온 중학교 선생님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 그가 수업시간에 늘 하던 말이 안성만의 좌우명이다. “사람은 무슨 뜻이 있거나 가까운 데서 잘해얀다구 기랬디. 늘 보넌 식구들콰 동니사람들하고 잘해야 한다구.”(173) 큰 일 하시는 분들이 피치 못해 소홀히 넘기기 쉬운 부분일 수도 있다. 좋은 뜻으로 일하면서 그 뜻에 파묻혀 가까운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지는 말라는 충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이기주의나 지역이기주의를 키워보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닐 것이다. 민족․민중․계급 따위의 무거운 개념들을 주류담론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뜻도 아닐 것이다. 드높은 원칙에 대한 신념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되고 당면한 일에 직접 몸을 던져 정성을 다해야 한다, 혹은 노동귀족이나 운동귀족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몸을 낮추라는 운동윤리로 새기면 좋을 듯하다. 이를 조금 변형해 나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을 생각이다. 어디서든 바로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과 좋은 뜻을 살려내고 나누는 가운데, 일의 결과를 떠나 과정 속에서 이미 즐겁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라. 가까운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민주주의를 논하지 말라. 평등사회는 평등한 관계들의 앙상블일 뿐이다. 현재 하는 일 자체에 미래를 담아라.
7
ꡔ손님ꡕ에 대한 불만에는 여러 부류가 있을 것이다. 형식이나 화해에 대한 작가의 유도성 발언보다 작품을 통해 들춰지는 실체적 진실에 매달리는 독자에게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뜸들이는 부분이 좀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도 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복선들이 꽤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현대사의 압축적 서술, 군더더기 없이 무자비하게 펼쳐지는 사태 기술, 그에 어울리는 거칠고 간결한 말투 등에 매료될 것이다.
모두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피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부드러운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어린 요섭은 총 대신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인민군 패잔병 강미애와 홍정숙을 구해주기로 결심한다. 숨어 있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요섭은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강미애가 봉선화를 연주해 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갑자기 목젖이 아프고 눈물이 울컥 몰려나왔다. 옷소매로 얼굴을 쓰윽 닦고 코를 훌쩍 들이마셨다. 아아, 갑자기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만 같다. 나무도 바위도 하늘도 모두 다르게 보인다.”(233)
요한은 요섭을 속이고 강미애와 홍정숙을 괭이로 찍어 죽인다.(242) 다른 세상은 아직 멀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 요한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그 따뜻한 마음이 만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요섭의 신천 방문과 사죄는 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한 걸음이다. 그의 발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사방에 버티고 있다. 요한의 아들인 단열과 삼열과 빌립의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도, 또 다른 신천의 심연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제물을 기다릴 것이다. 비극의 뿌리를 알만큼 아는 오늘의 우리는 좀더 영악하고 단호하게 다른 세상의 바탕을 만들어갈 수 있으며, 또 만들어가야 한다. 이 운동이 곧 미래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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