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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실천문학사
p308
판문점은 그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무슨 사고가 있으면북측에서 항의를 해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예의 공동조사팀이 구성되는데, 그랬을 때 나서야 할 양측 연락 장교는 정해져 있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북한측에서 별안간 항의가 들어왔는데, 미국측의 담당자인 커널테로우와 키니가 그날따라 모두 본국으로 휴가를 가버리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국군 연락장교 이수영 대령이 남측대표로 나갔다. 그날은 하필 문익환은도쿄로 돌아가고 정경모도 서울로 외출을 나갔던 터였으므로 호러스 언더우드라는 연세대학교 이사가 통역을 했다. 공용어가 영어라는 사실은 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국측 장교는 서툰 영어로 말하고 미국인 통역자는 서툰 한국어로 통역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항의를 했다.
"귀측의 비행기가 우리마을에 들어와 기관포를 쏴서 어린애가 죽었소. 이건 정전협정 위반이오" ...
"우리측 비행기가 귀측 촌락에 들어가서 기관총을 쏘아서 귀측 어린애가 죽었다는 사실이 우리측 기록에는 없습니다."
이수영 대령은 분명 한국인이건만 우리 미군 비행기가 휴전선 근처를 침범하여 당신네 한국의 촌락에 있는 한 어린애를 죽였다는 보고를 우리 미군은 접수한 바가 없다는 의사를, 그것도 서툰 영어로 밝혔고, 그것을 다시 한국에서 사는 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통역했던 것이다. 그리고 회담이 끝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떨어지는 무렵이었다. 회담장을 빠져나와 서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북측 장춘삼 대좌가 마침내 역겨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시비를 걸었다. "여, 이수영 대령! 우리말 다 잊어먹었나?"
그때 언더우더의 음성으로 통역된 이수영 대령의 답변이 이랬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니까 영어로 말하고 싶을 때는 영어로 하고 한국말로 하고 싶을 때는 한국말로 한다. 그건 우리 자유다!"
장춘삼 대좌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까닭에 가래침을 탁 뱉으면서 기어이 욕설을 해버렸다.
"에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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