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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8/10
 

[스크랩]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전쟁 도구들

2006.09.07 19:51 | 총 칼 미사일 탱크 비행기 | 에삼

http://kr.blog.yahoo.com/buyer_kr/102 주소복사

우르반의 괴물 대포


1452년, 우르반(Urban)이라는 헝가리 기술자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를 찾아가 세계 최고의 대포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대포를 만들만한 돈과 재료가 없었고, 실망한 우르반은 투르크의 술탄을 찾아간다.

 

당시 투르크 제국의 술탄이었던 메메드 2세는 우르반이 제시한 가격의 4배, 그리고 그가 요구하는 모든 기술 지원까지 약속한다. (물론 기독교 인이었던 우르반이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음.)

 

메메드 2세의 열의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르반은 1453년 세계 최대, 최강의 대포를 완성했다. 포신의 길이 8.2m, 450kg의 쇳덩이를 날려 보낼 수 있었으며, 포탄은 최대 1.6km의 거리까지 날라갔다. 포가 한번 터지면 그 포성 때문에 19km 떨어진 임산부가 유산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메메드 2세는 이 대포로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계획이었다. 메메드는 황소 60마리로 우르반의 대포를 끌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했고, 이곳에서 성벽의 가장 취약한 곳을 골라 6주간 쉬지 않고 포격을 계속했다. 대포의 동체는 발사 후에 충분히 식히지 않고 사용하면 금이 갔기 때문에, 우르반의 대포는 하루에 7번 이상 발사할 수 없었다. 어쨌든 한번 발사만 하면 (당대 최강이라 불렸던)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에는 쩍쩍 금이 갔고, 비잔틴의 군인과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사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시킨 것은 우르반의 대포가 아니었다. 중간에 투르크 군사가 섣불리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가 대포가 비잔틴 군에게 포위 당해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메메드 2세는 다른 여분의 대포를 충분히 가져갔고, 우르반의 대포가 쓸모없어진 후에도 성벽은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인도의 코끼리 부대


인도에서 코끼리를 전쟁 무기로 사용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 인도 코끼리 부대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에 나섰을 때였고, 인도인들은 이후로도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코끼리를 강력한 전쟁 무기로 활용했다.

 

 

각 코끼리는 보통 몰이꾼 한 명과 무사 세 명을 태웠고, 이들은 코끼리 등 위에서 활, 투창, 단검, 돌멩이, 기름 등을 갖고 다니며 적을 공격했다. 코끼리는 정교한 미늘 갑옷을 걸쳤고, 먹이 자루를 갖고 다녔다. 이들은 목걸이와 양탄자 등으로 화려한 장식을 해 전투시 무척이나 장식적 효과를 주었다.

 

전투용 코끼리는 매우 정교한 과정에 의해 조련 됐는데, 몰이꾼의 명령에서 따라 눕기, 앉기, 사람 태우기, 뛰기 같은 기본 동작 뿐 아니라 옆으로 걷기, 짓밟아 죽이기, 대형 이루기 등 상당히 복잡한 동작 명령까지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끼리는 예측 불허의 전장터에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무기였다. 걸핏하면 방향을 틀어 아군을 밟아 죽이거나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군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특히 17세기 총과 대포 등 발사 무기가 등장한 이후 코끼리는 완전히 무용지물의 무기가 되고 만다.

 

 

 

독일의 괴물 탱크, MAUS

 

1944년 등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초대형 슈퍼 탱크. 무게 188톤, 폭 3.6m, 길이 10m, 높이 3.6m. (최대 탑승 인원은 6명)

 

188톤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 때문에 최대 시속이 13km/h에 불과했으며, 그 무게로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야 할 때는 잠수를 했다고. (지독히 느린 속도 때문에 이동시엔 기차로 운반을 해야만 했다.)

 

 


육중한 몸집에 걸맞게 화력 또한 엄청났는데, 128mm짜리 주포는 연합군의 셔먼, 크롬웰, 처칠 등의 주력 탱크의 장갑을 어느 각도에서도 뚫어 버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거기에 75mm 기관포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MAUS가 실전에 됐다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기동력이 너무 떨어져 실전 배치 계획만 세워 놓고 막상 전투에는 활용되지 못했다고.  

 

 

 

 

독일의 괴물 대포 Dora 


소련 요새를 공격하고 프랑스 마지노 선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Dora라는 대포. 엄청난 무게 때문에 열차 레일을 통해서 밖에 옮길 수가 없었다.

 

 

800mm 구경인데 포를 발사하면 40km를 날아가 탄착 지점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고. 20분에 한발을 장전할 수 있었다는데 사실 만들어지고는 별 쓸모가 없어서 먼지만 쌓였다고 함. 제작기간이 늦어지면서 별 쓸모가 없어져 버렸고, 그 크기와 무게 때문에 이동에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어야 했다.

 

이동 시엔 1400여명의 인력이 필요했고 조종사들만 500명 규모였다. 5톤짜리 고성능 폭탄을 사용하는데 발사음 때 주변에 특수 귀마개를 하고도 고막이 나가는 일이 잦았고, 쏠 때마다 레일이 휘어서 공병대가 뛰어가 레일을 수리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전함, 야마토


세계 2차 대전 당시, 1941년 건조된 전함 야마토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무게 6만 5천톤 (완전 무장했을 경우 7만 2800톤)으로 사이즈만으로도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함이었으며, (당시 가장 거대한 전함은 미국의 아이와호로 5만 8000톤이었다.)

 

 

장갑의 강도와 두께도 세계 최고, 거기에 1.4톤짜리 포탄을 발사하는 460mm 구경 주포는 (총 9문) 인간이 만든 모든 전함 주포 중 단연 최대, 그리고 최강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 완성된 이 괴물은 똑같은 급의 "자매 전함" 무사시(역시 야마토와 같은 사이즈에 같은 주포 화력을 갖고 있었다)와 함께 괴력의 선단을 구성, 태평양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1942년 중앙 태평양에서 미국 함대와 수 차례의 교전을 가졌고, 1943년 미군 스케이트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도 침몰하지 않는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더니, 그 뒤 성능이 더 개조돼 다시 전투에 나섰다. 1944년 필리핀 레테 만 해전 사마 섬 해전에서 미군의 항공모함과 순양함, 그리고 수많은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였다.

 

수 차례 교전과 격전을 벌였다고 하지만, 야마토는 사실상 태평양 해전의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그 무시무시한 460mm 구경 주포를 쏴 본 것은 사마 섬 해전에서 뿐이었다.

 

필리핀 해전에서 거센 미군의 공격에 야마토의 자매 전함 무사시가 침몰했고, 야마토도 주변의 호위함의 대부분을 잃은 채 수많은 포격을 맞고 패퇴해야 했다.

 

1945년 4월 연합군은 드디어 일본 오키나와에 상륙해 일본 점령에 나선다. 이에 일본은 이들은 "텐고"라는 작전명 아래, 오키나와에 상륙하는 연합군 선단을 공격하기 위한 자살 작전을 감행한다. 이때의 선봉에 선 것은 역시 야마토. 야마토와 6대의 순양함은 1945년 4월 6일 오후, 목적지에 도착할 분량의 연료만 싣고(이들은 출항 당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자살 공격에 나간다.

 

이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미 항공모함은 400대의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6대의 전함을 발진시켜 야마토 선단을 초전 박살내기 시작했다. 교전 후 2시간 만에, 6대의 순양함은 모두 침몰, 야마토는 10대의 어뢰와 수십발의 포탄을 맞고 폭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야마토는 침몰하면서 그 우스꽝스럽게 거대한 주포의 무게로 순식간에 뒤집혀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전설의 괴물 잠수함 센토쿠 

 


미국의 USS 프로테우스 잠수함에 의해 인양되고 있는 센토쿠. 미국 잠수함이 뒤에 가려 잘 안보이긴 하지만, 앞에 놓인 센토쿠 잠수함의 크기가 월등히 크다. 

 

야마토와 무사시에 이어 일본은 다시 세계 최대 규모의 잠수함을 만드는데 이름하여 센토쿠 잠수함. 센토쿠 잠수함 시리즈는 총 3개가 건조됐는데, 모두 미국에서 개발한 주력 잠수함보다 2배 이상 규모가 컸다. 단순히 규모만 컸던 것이 아니라, 잠수함으로서는 꽤 기발하고 혁신적인 기능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잠수함마다 총 3대의 폭격기를 싣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비행기가 잠수함마다 3대씩.

 

어쨌든, 센토쿠 잠수함의 주력 무기는 이 비행기였고, 비행기에는 800kg짜리 어뢰와 폭탄이 탑재돼 있었다. 즉, 물위로 나왔을 떄 해상의 적들을 섬멸하겠다는 의도. 비행기 출격까지 걸리는 시간은 45분. 잠수함에도 역시 25mm짜리 대공 발칸포가 달려 미국의 막강 공군력에 대항하고자 했으며, 4발의 어뢰, 3발의 폭탄, 12발의 비행기용 미사일까지 준비해 놓았다.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이 어마어마한 잠수함들은 실전에 거의 활용이 되질 못했다. 워낙 전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던 탓.

 

센토쿠가 실전에 배치된 것은 전쟁이 거의 끝난 1945년 7월이었다. 전쟁터에 나가긴 했는데 나가자마자 전투가 끝나버린 것. 잠수함들은 일본으로 그냥 돌아왔고, 전쟁이 끝난 후 그 중 2대가 미국으로 인양됐다.

 

이들 잠수함은 전쟁이 끝난 뒤, 석유에 허덕이던 일본을 위해 석유 공급용 화물 잠수함으로 이용하려 했으나 이 계획마저 취소되고, 센토쿠는 그야말로 전설속의 애물단지 무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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