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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복과 형통. 서론 다윗은 시편 첫 머리에 복있는 사람, 하나님께 복받는 사람에 대하여 시작함. 복은 무엇인가? 인간의 복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하고 가르치는 시로 신앙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본론 (강해 설교)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 아쉬레이'는 '올바르다', '번영하다'라는 의미 -성경 말씀을 바르게 지키면 하나님은 보상으로 번영을 주신다. 이것이 복이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합시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그 보상으로 번영을 주십니다.
구약 -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큰 긍휼과 자비를 인하여 인간의 산업과 후손과 육체에 내려주시는 복을 가리킴. 항상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가 있다는 점.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 신약 -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 나라에의 참여를 통해 오는 특이한 즐거움을 가리키는 데 사용. 구약의 복이 불완전한 복이라면 신약의 복은 완전한 복 - 그 사람이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소유함을 말씀하심. 이것이 복이다. 시편은 복을 기원하는 큰 탄성으로 대단원의 막을 열면서 그러한 복을 누릴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음. 복을 가로막는 행위들 꾀 - 하나님의 율법 대신에 자신의 삶의 원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차'이다. 이 말은 의도, 도모 등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의도, 하나님 말씀보다 이것들이 앞서면 악한 꾀이다. 죄 -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의미.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길(율법)을 가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간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이다. 알면서도 행치 않읍니다. 모르고 행치않은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 결단코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함. 오만한 자 - 히브리어 '레침'은 '조롱하다', '비웃다'는 뜻의 동사 '루츠'에서 파생된 명사형- '조롱하는자'를 의미.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함. 괜찮겠지? 하는 것. - 말씀 앞에 절대 순종이 없다는 것은 은연중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 말씀 불순종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로 절대 괜찮지 않다.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바르게 서야한다. 즉 말씀을 바르게 지켜야 한다. 자기 방식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피해가지 말고(불순종). 하나님의 권위를 조롱하는 행동을 하지말라.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절이 소극적인 측면에서의 의인의 특성, 본절은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의인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의인이 복받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율법 - 율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흔히 모세 오경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의 계시라는 점에서 이 용어는 하나님의 교훈 또는 훈계라는 의미를 가지며 아울러 하나님의 교훈은 기록된 말씀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말한다.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이는 적극적인 측면에서 본 의인의 특성이다. 그 특성은 (1)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기쁨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2) 계속적으로 그 율법과 관계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다(수 1:8). 여기서 '즐거위하여'라는 말은 의인이 토라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뻐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안에서 즐거음을 취하는 것은 바로 의인만이 누릴수 있는 행복한 삶의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이다(112:1). 시 112:1) 1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 '묵상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는 '묵상하다'는 뜻 이외에 본래 '말하다', '속삭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로 볼 때, 의인은 묵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하게 암송한다. 시간이 나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 이는 의인의 복된 상태에 대한 비유이다. 즉,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항상 기쁨을 공급받는 상태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다 비유한 것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든지 생수를 공급받는다. 생수는 바로 하나님 자신을 말한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항상 그 곁에 계신다. '시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팔라그'는 팔레스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간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로(水路)를 말한다. 즉 하나님은 고정되어 계시지 않고 말씀을 지키며 묵상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항상 가까이 찾아오신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 '시절을 좇아'란 문자적으로 '그의 때에'이며 이는 곧 인생의 추수기를 의미한다. 나무가 추수기에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이다. 열매가 맺을 시기에 열매를 맺는다. 인생의 추수기에 해당하는 노년의 복을 발한다. 젊어서 힘있을 때 하나님을 잘 섬긴자는 그 인생의 노년에 평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과 하늘의 복을 받아서 그 인생이 행복함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멀리하고(1절)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누리는 의인은 인생의 추수기에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열매는 추수기에 맺히는 열매이므로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는 악인들의 열매와는 달리 완전히 익은 열매임에 틀림없다(Calvin). 이처럼 의인의 행복은 인간의 잔재주로 인해 얻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건의 노력을 통해 얻는 완전 무결한 행복인 것이다.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1-3절에 묘사된 의인의 행복과는 대조적으로 악인의 실패 및 불행을 기록한 부분이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곡식을 까부를 때 낱알은 지면에 떨어지나, 겨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여기서 '겨'란 악인의 사라져 버리고 말 허무 성을 비유한 말이다. 이러한 개념은 3절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의 견고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밖에 겨는 성경에서 무가치한 것을 상징하는 말로서 많이 언급되어 있다. 성도가 겨가되면 되겠는가? 우리 삶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를 알자. 말씀 순종 외에서 하나님께 복 받을 길은 없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 여기서 '심판'- '공의' 또는 '심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 또한 '견디다'는 '악인이 이 세상 마지막에 있을 최후 심판 때에 서지 못하는 것, 곧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 악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적하는 악인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악인을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 또는 판단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판은 종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심을 알자. 죄인이 의인의 회중(會中)에 들지 못하리도다 - 여기서 '의인의 회중'이란 하나님의 심판 또는 판단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들의 총회(교회)를 말한다. 회중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른 자들 - 예배하는 자들, 말씀 안에 모여있는 자들 - 재림시에 함께 모일 자들 -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다. 의인들은 복 받은 자들 - 1, 2절에 묘사된 바와 같이 소극적으로는 악인의 사상과 행동에서 구별된 자이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이를 생활화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모여 하는 일은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것이다.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의 길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복과 악인의 멸망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의인의 복과 악인의 멸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의인을 인정하시므로 그가 복을 받는 것이며 반대로 악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므로 멸망을 당한다. 이처럼 다윗은 이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Weiser). 말씀 순종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 불순종은 구 주권에 도전함. '망하리로다'에 '아바드'는 '소멸하다'라는 뜻으로 악인의 최후를 암시한다. 즉,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다. 하나님 앞에서 그 존재를 찾지 못함. 하나님 앞에서 사라져 버린 존재이다. 하나님 앞에 없으면 그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결론 복은 먼데있지 않음. 아주 가까이 있음 우리가 들고 다니는 성경 안에 있음. 지키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심 멸시하면 그 헛된 인생을 산다는 사실을 알자. 말씀 순종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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