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우리나라의 길거리 응원을 표방한 독일. 경기는 도르트문트에서 열렸지만 독일 전국 각지에서 길거리 응원을 펼쳤다. 현지시각으로 밤 9시에 열리는 경기지만 마임강에 모인 많은 독일 국민들은 대낮부터 맥주를 입안으로 집 어넣으며 germany!를 외치기 시작했다.
경기시작 20분 늦게 도착한 마임강은 이미 꽉차 축구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 다. 결국 발길을 돌려 찾아간 스포츠 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고, 어떠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채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
http://kr.blog.yahoo.com/bk1582002/trackback/14/78
|
|
|
|
|
|
|
|
|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맞은편을 보면 가운데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많은 것들이 있는데 나의 눈에 띈건 소세지였다. 독일이 워낙 소세지로 유명한 탓도 있지만, 큰 가마에 숯불로 굽는 모습에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하나 사먹은 독일 소세지의 맛! 짰다. 내가 잘못 선택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간 짰다.
|
http://kr.blog.yahoo.com/bk1582002/trackback/14/76
-
푸우를 사랑하는 아이 2006.12.01 23:09
-
그래요 처음 먹으면 짜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한번 맛을 들이면 꿀꺽 얌얌하죠^^
답글쓰기
-
|
|
|
|
|
|
|
|
|
|
독일에서의 맥주는 1516년 바이에른 왕국 빌헬름 4세 때 발표된 맥주 원료 순수령(세계 최초의 식품 위생법)으로 그 품질이 계속 유지되었으며 국민적 음료로 사랑받아왔고 사육제·부활절 축제 ·종교 행사 등에도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는 일년 중 각 지방의 특색에 맞춰 전국에 걸친 맥주 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축제 기간 중 1000여 개의 고유 민속 행사가 개최되는 세계적 관광 명소인 뮌헨 맥주축제(Oktoberfest)가 가장 유명하다. 뮌헨은 인구 약 130만 명의 남부 독일의 중심 도시이며 독일 제 3의 도시이다. 12세기 이래 가장 화려한 궁중 문화를 꽃피웠던 바이에른의 수도였으며 16세기 이후 번성하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 로코코 양식의 문화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고 미술관·박물관 등이 30여 개나 있으며 유명한 예술의 거리인 슈바빙을 갖고 있는 예술의 도시이다. 또한 1972년 뮌헨 올림픽 개최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역사를 자랑하는 ‘호프브로이’ ‘뢰벤브로이’ 등 6개의 맥주회사가 소재하는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뮌헨에서 매년 9 월말부터 10월초까지 약 2주 간에 걸쳐 가을 수확에 감사하는 옥토버페스트라는 세계 제1의 맥주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1810년 바이에른 왕국의 황태자 루드비히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와의 결혼을 축하한 경마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기타 유럽 국가를 비롯 전세계에서 매년 약 600여만 명의 맥주 애호가가 축제 기간 중 모이며, 이 기간 중 소비되는 맥주는 약500만 리터(생맥주 500㏄로 1000만 잔), 닭은 65만 마리, 소시지는 110만 톤이나 되는 세계 제1의 맥주 축제가 되었다. 대회장이 되는 테레지아 구릉에는 맥주 회사가 설치한 대형 텐트들이 있는데 그 안에는 남녀, 인종 구분 없이 수백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항상 만원을 이루며 멈추는 것을 잊어버린 듯한 민속 연주 밴드와 더불어 1000㏄짜리 저그에 맥주를 가득 채우고 어깨동무도 하고, 쭉 늘어서서 기차놀이도 하며 한마음이 되어 마음껏 맥주를 즐기다가 밴드의 리더가 건배를 선창하면 일제히 서서 저그를 높게 들고 건배를 하기도 하는 등 맥주를 매개로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며 도취하곤 한다. 그리고 테트 주변에는 각종 이벤트를 위한 가설 무대, 위락 시설 등이 설치되어서 어른과 어린이, 세계 각 지역에서 온 관광객이 어우러져 가을의 수확을 기뻐하는 맥주 축제가 열린다.
맥주 축제의 개회는 뮌헨 시장의 축포 신호와 함께 선언한다. 맥주통을 가득 싣고 화려하게 꾸민 마차를 거느린 시장은 대회장의 중심(옛 궁정양조장) Hof Brewery에서 맥주통으로부터 그 해의 새로운 맥주를 높이 쳐드는 것이다. 또한 거리의 큰 퍼레이드도 있는데 선두는 시장 마차이며 그 뒤로 뮌헨의 심벌 컬 러인 검정과 황색의 승복을 입은 마상의 여성들, 맥주통을 산처럼 쌓아올린 마차와 민속 의상을 입은 각 지역 그룹들이 따른다. 시민들의 관전을 위해 주거리에 간이 스탠드를 설치하여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여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관광객들은 퍼레이드 참여를 위해 아침 일찍 중세기의 멋이 깃들인 뮌헨의 돌붙박 이 거리를 밟으며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아침 산책하여 퍼레이드 거리로 향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퍼레이드 참관 후 수 많은 인파와 함께 전통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맥주와 독일 전통 음식으로 점심을 하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 드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저녁에는 도끼, 통나무 등으로 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대형 생맥주집에서 독일의 맥주 문화에 취하며 하루를 마감하면 이국에서의 새로운 분위기에 도취될 것이다. 대형 업소 입장을 위해서는 일찍 가거나 아니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차를 이용 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기지고 거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며 하는 산 책 관광이 더욱 즐겁다는 점도 알아 두어야 한다.
|
http://kr.blog.yahoo.com/bk1582002/trackback/14/57
|
|
|
|
|
|
|
|
|
|
 전세계 젊은이들의 사랑과 평화의 테크노 축제 "러브 퍼레이드"(Love Parade)가 13일 베를린 시내 "동물원 공원"에서 막을 열었다. 올해의 주제는 "평화로의 접근"(Access Peace!)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약 200 헥타의 푸른 평원 "동물원 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테크노 파티는 이틀 동안, 독일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찾아 온 백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음악과 리듬이 주는 상호 교감의 가능성을 믿고 거기에 자신의 몸을 던질 약간의 용기만 갖춘 자라면 누구나 환영이라나. 또, 피부색과 언어를 넘어 모두가 한 형제가 된다고 하지만 물론 파티의 주역은 몸에 뭘 걸치기보다는 드러내고 싶어하는 20세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즉, 복장을 준비하는데 있어 유의할 점은 가능한 화려하게, 가볍게, 적게.
화려하게, 가볍게, 적게
특히 올해는 과격 이슬람 단체의 테러공격 위협도 있었고, 인근 주민의 반대 소송, 행사로 인한 소음과 주위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일부 환경보호론자, 동물 애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시(市) 당국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청년 문화'로서 "러브 퍼레이드"의 의미를 인정, 일찌감치 행사 주최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행사는 예전처럼 오후 2시에 "동물원 공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6월 17일의 거리"의 동 서쪽 끝인 "에른스트 로이터" 거리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거리의 양쪽 끝에서 약 250명의 DJ와 "레이버"(Raver)라고 불리는 테크노 팬을 태운 약 45대의 트럭이 소위 "베를린 천사의 탑"이라고 불리는 "전승 기념탑"(Siegessaeule)을 향해 움직이고 몰려든 젊은이들은 이 트럭 주위를 따라가면서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몸을 흔들면 되는 것이다. 오후 6시경 이 "전승 기념관" 주위에 모인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정리 집회를 갖고 이 "러브 퍼레이드" 창안한 DJ "모테 박사(Dr. Motte)"의 메시지를 듣는다.
"음악은 수천개의 언어로 말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해할 수 있지요. 음악은 경계와 국적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은 이들도 여러분은 사랑하십시오." 이 말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4 달 전에 친구들과 뜻을 모아 당시 서베를린의 소비의 중심지 "쿠담거리"에서 "러브 퍼레이드"를 시작한 생활 예술가이자 DJ이며, 미장이였던 '모테 박사'(Dr. Motte)의 메시지였다. 이렇게 1989년 트럭 한 대와 150여명의 친구들로 시작된 이 행사는 이내 백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발전했고 이런 참가자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1996년부터는 보다 넓은 베를린 중심가 "동물원 공원"으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행사가 대형화되면서 "음악을 통한 전 세계인들 간의 관용, 상호존중, 상호이해"라는 애초의 정치적인 취지가 희석되었다는 비난과, 몰려든 참가자들이 이틀 동안 쏟아내는 쓰레기 처리문제, 공원의 환경파괴 문제가 대두되면서 "러브 퍼레이드"는 매년 반대자들의 반대소송에 휘말리고 그 개최여부가 막판에서야 결정되는 등 많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광장 중심의 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기본적인 호감과 제도와 질서로부터 일시적으로라도 해방되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면서 행사는 계속해서 확대되었고, 2000 년부터는 오스트리아, 영국, 남아프리카, 이스라엘 등에서도 <국제 러브 퍼레이드> 행사가 개최되기에 이른다. 올해는 멕시코도 여기에 가세할 추세다.
한편, 행사기간 동안에 동유럽 등지에서 묻어온 마약 밀매상들은 한해 동안 독일에서 비밀리에 거래되는 환각제 총량보다 더 많은 매출액을 기록한다는 "러브 퍼레이드"에 대한 비난도 있다. 또, 지난해부터 베를린 행정법원에 의해 "러브 퍼레이드"는 정치적 시위가 아닌 상업적인 행사로 법적 성격을 규정받은 탓에 행사 뒤에 참가자들의 쏟아내는 오물 처리비용을 더 이상 시당국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행사 주최측이 부담하게 되었다는 우울한 소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과 부담과는 무관하게 올해도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는 "레이버"들은 베를린 중앙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러브 퍼레이드"를 위해.
|
http://kr.blog.yahoo.com/bk1582002/trackback/14/45
|
|
|
|
|
|
|
|
|
|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 바이에른 뮌헨이 이번 주말 리그 33R 경기에서 카이져슬라우테른과 무승부를 기록하며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32R까지 2위 함부르크에 승점 5점차로 여유있게 앞섰으나, 만약 카이져슬라우테른과의 경기를 패배할 경우 리그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함부르크도 헤르타 베를린에게 승리를 거두고 카이져슬라우테른이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준다면 리그 우승의 희망을 어렵게나마 이어갈 수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먼저 선취골을 터트린 것은 카이져슬라우테른이였다. 전반 26분경 수비수인 마티 베다가 연결해준 스루패스를 하릴 알틴톱이 재치있게 왼발슛으로 연결시키며 카이져슬라우테른은 먼저 리드를 잡아 나가게 된다. 이후에도 카이져슬라우테른은 바이에른 뮌헨에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제물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후반이 되면서 바이에른 뮌헨은 슬슬 경기력을 되찾았고, 68분경 슈바인슈타이거의 코너킥을 발락이 헤딩으로 연결했고, 그 것을 안드레아스 오틀이 가볍게 차넣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후 경기는 약간 지루한 양상으로 흘러가며 끝이 났고, 함부르크가 헤르타 베를린에 4:2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바이에른 뮌헨은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되었다.
이번 우승으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부임 2년만에 2번의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고, 메멧 숄은 통산 8번째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로타 마테우스 등을 제치고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많은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선수가 되었다.
한편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리그 16위로 계속해서 강등권에 머물게 된 카이져슬라우테른은, 다음주 리그 최종전인 34R 경기에서 15위 볼프스부르크와의 원정경기를 가지게 된다. 볼프스부르크와 카이져슬라우테른은 승점차가 단 1점밖에 나지 않아 이번 경기에서 나머지 하나의 강등팀이 결정될 전망이다.
|
http://kr.blog.yahoo.com/bk1582002/trackback/14/44
|
|
|
|
|
|
|
|
|
| [
1
| 2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