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위된 왕비들
일단 가장 유명한 경우는 그 유명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다. 인현왕후도 5년간 폐비가 되어 궁에서 쫒겨났었다. 숙종시절 기사환국때 서인정권이 몰락하고,남인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인세력인 당시 중전인 인현왕후가 쫒겨나고 대신 남인세력이던 희빈 장씨가 중전이 된. 당시 아무리 다른 정당 사람이라도 일국의 중전이 쫒겨난다는 것은 남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남인 정권의 수장 중 한명이던 조사석(당시 풍문으로는 장희빈 어머니의 애인이었다 함-_-)마저도 "중전을 폐위"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숙종에게 간할 정도였다고 한다 인현왕후의 폐위의 경우
반대파인 남인의 음모보다는 숙종의 단호한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5년후 갑술환국때 다시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인현왕후는 복위된다. 폐비윤씨,인현왕후와 경종의 생모인 장희빈은 왕비로 있던 시절 쫒겨난 사례다.
그 외의 경우는 왕비로 있다가 대비가 되었거나,혹은 죽은 이후 정치적 문제로 종묘에서 쫒겨난 경우다. 선조의 계비(중전 사후 다시 맞아들인 정식 부인)였던 인목대비의 경우 남편 사후 광해군 때 전중전의 지위가 박탈당하고,일개 후궁출신자로 강등된다. 이번에는 인현왕후때보다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부부간의 연은 어떻게 인의적으로 깰 수 있을지언정,모자지간은 깰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외교문제는 참 잘했고, 또 임진왜란 뒷수습도 잘하고,비교적 평판이 좋았지만, 효를 깨뜨렸다는 사실은 반대파에게 좋은 빌미가 되어 반정의 핑계가 되기도 했다. 단종의 생모이자 문종의 중전이었던 현덕왕후도 다음 왕대에 폐비가 된 경우다. 단종이 쫒겨나고 세조가 왕이 된 후,세조는 현덕왕후 권씨를 중전의 지위에서 박탈한다. 이미 문종과 함께 종묘에 모셔져 있던 왕후의 신주가 쫒겨나고 문종옆에 있던 무덤도 파헤쳐져 다른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사망 당시 중전이었던 태조의 제2부인 신덕왕후 강씨도 현덕왕후와 같은 경우다. 왕자의 난으로 태종이 된 이방원은 신덕왕후가 중전이 아닌,일개 첩에 불과하다면서 그녀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고 묘도 어디론가로 옮긴다.
<재정리>
태조의 두번째 처 : 신덕왕후 강씨(사후 폐비. 태종에 의해)
문종의 세번째 처 : 현덕왕후 권씨( 문종은 세자시절,2번의 세자빈이 폐위된일이 있음.) 단종의 처: 정순왕후 송씨 성종의 두번째 처 : 폐제헌왕후 윤씨 연산군의 처: 거창군부인 폐비 신씨 중종의 첫번째 처: 단경왕후 신씨 광해군의 처 : 문성군부인 폐비 유씨 숙종의 두번째 처 : 인현왕후 민씨 고종의 처 : 명성황후 민씨 이중 복위된 인물은 신덕왕후 강씨, 현덕왕후 권씨, 명성황후 민씨,정순왕후 송씨,단경왕후 신씨 ,인현왕후 민씨신덕왕후 강씨는 태종의 의해 폐위되었으나 현종때 복위 현덕왕후 권씨는 단종을 낳고 몇일후 사망한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단종을 폐위시키는등의 악행이 있었고 일설에 의하면 세조가 잠을자다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서는 니놈이 나의아들을 죽였으니 니놈의 아들도 데려갈것이다 라고 했다던가? 그일이 있은후 얼마되지않아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가 목숨을 잃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암튼 이일로 현덕왕후를 폐위시키고 그묘를 파내어 바다인가 강에 던져버렸다는 얘기가 있다. 단종, 연산군,광해군의 경우는 재위중 폐위되었기때문에 아내였던 중전도 당연히 폐위되었다. 그러나 단종은 숙종때 복위되면서 아내였던 정순왕후 송씨도 복위되었다. 연산군, 광해군은 조선이 망하는 날까지 끝내복위되지 못하여 아내도 폐비로 남게되었고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폐제헌왕후 윤씨는 아들이 즉위하면서 제헌왕후로 복위되었으나 아들의 폐위로 인해서 다시금 폐위된걸로 보인다. 중종의 아내였던 단경왕후 신씨의 경우는 연산군의 아내였던 폐비 신씨가 고모였다. 즉, 아버지 신수근은 폐비신씨의 오빠였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반정세력들은 신수근을 찾아가 반정에 동참할것인가를 물어본다. 신수근은 차마 여동생이 마음에 걸렸는지 반정에 동참하지 않았고 반정세력은 신수근을 살해한다. 이후 반정이 성공하고 중종이 즉위하자 반정세력들은 자신들이 중종의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기때문에 보복할 위험도 있었기때문에 단경왕후신씨는 폐비된 신씨의 조카라는 이유등을 들며 폐위할것을 주장한다. 결국 단경왕후는 중전이 된지 6일만에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녀는 영조때에 단경왕후로 복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