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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각과 가람
전각은 가람을 구성하는 여러 건축물을 뜻한다. 먼저 가람에 대하여 살펴보면 가람이란 산스트리어(범어)의 'Sangharama'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음역하여 승가람마 혹은 가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가람의 본래 의미는 중원(衆園)으로서 많은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서 불도를 수행하는 장소인데, 후세에는 단순한 건조물로서의 전당을 가르치는 명칭 또는 사찰의 통칭이 되기도 한다. 원래 초기 불교시대에는 '일일 일식일숙'의 원칙 하에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행하여 대각(大覺)하였으므로 특별한 거처를 정해 수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지남에 따라 거처가 필요하게 되어 가람이 형성되었다. 가람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평지가람, 산지가람, 석굴가람이 그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평지가람은 평지에 있는 것(사람이 번화하고 눈에 잘 띄는 곳)이고 산지가람은 산지에 가람이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가람은 산지에 있다. 또한 석굴가람은 거대한 암벽을 뚫어서 만든 가람으로 우리 나라에는 대표적으로 석굴암이 있다. 그 규모는 방대하나 암질이 사암으로 되어 있어 그 재질이 약하여 뚫기가 쉬운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것은 강력한 화강암질이어서 뚫기가 용이하지 못하다. 앞에서 말한 사찰 가람내의 전각을 보면 우선 우리 나라 불교의 특징은 토착적인 샤머니즘과 융합되어 약간의 주술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그 성격은 가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 가람내의 전각
(1) 대웅전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도 하며 한국사원에 가장 많은 불전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문수, 보현보살을 봉안한다. 대웅전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 할 때에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불 좌우에 제각기 협시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웅전이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있음은 석가모니의 법회모임이 영산회 모임, 즉 영산회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2) 극락전
극락전 혹은 무량수전이라고 한다. 절에 가면 아미타불은 극락전에 계시고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데 범어로 'Amitayus'나 'Amitabha'라고 하고 한문으로 번역하면 '아미타(阿彌陀)'가 되며, 무량(無量)하다는 뜻이다. 무량수는 무한한 생명과 자비이고 무량광은 광명과 지혜이다. '나무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과 지혜로써 부처님께 귀의하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구호가 된다. 나무(Namas Namo)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은 정토삼부경이라고 해서 극락의 모습, 그 곳에 상주하여 설법하고 계신 아미타불(무량수불,무량광불)을 넉넉히 칭송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곳 극락으로 가 볼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아미타전'이라고 했을 때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임을 뜻하고 무량수전이라고 했을 경우 무량수불을 주불로 한 것을 의미하는데 아미타여래와 무량수불이 결국 같은 여래불이므로 마찬가지의 뜻을 갖는 불전이다. 극락전의 명칭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를 극락이라 한데서 온 것이다.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3) 약사전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그 협시를 월광보살, 일광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이 불전은 약사여래의 동방약사유리광회상(東方藥師琉璃光會上)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4) 관음전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이다. 그 협시로는 남순동자(南巡童子), 해상용왕(海上龍王)을 들 수 있으나 이 들은 조상하지 않고 후불탱화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5) 대적광전
화엄경에 의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이고, 화엄경에 근거하고 화엄전, 화엄경의 주불이 비로자나불이라는 뜻에서 비로전, 그리고 화엄경의 세계가 연화장 세계, 즉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주불은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화신불로서의 석가모니불, 보신불로서의 아미타여래를 봉안한다. 이에 더불어 화신불과 보신불은 각각 그 좌우에 문수, 보현, 관음, 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적광전은 불전 중에 가장 큰 규모가 된다.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이 그 예이다.
(6) 영산전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인 팔상탱화를 봉안한 불전을 말한다. 영산이란 석가의 설법회상의 준말이며, 팔상이란 석가의 생애를 여덟으로 구분한 것을 뜻한다. 팔상전의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좌우 협시로는 상리보살과 미륵보살로 봉안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법주사 팔상전이 있다.
(7) 용화전
일명 미륵전이라고도 하는 이 불전은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다. 미륵불의 회상, 즉 그 세계가 용화세계이므로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8)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 주위에 석가의 존자인 16나한상을 봉안한다. 이 불전은 불교에 있어 수도승에 대한 신앙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9) 명부전
일명 지장전, 시왕전, 쌍세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협시로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배열한다.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배열하고 있다. 그래서 지장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고 하고 명부시왕이 강조될 때는 명부전이라고 한다. 명부시왕신앙의 불교적 전개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육도 윤회에서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서원으로 세우고 있다. 이 보살은 지옥에 들어서 있으며 죄인들은 염라대왕의 업경대 앞에서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공술 해야 한다. 두루마리에 그런 죄목들을 차례로 적어 놓고, 공술이 끝났을 때 업경대에 더 이상의 죄가 비쳐지지 않으면 심문은 완료된다. 죄를 적은 두루마리를 저울에 달아보면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가 판가름 난다. 이 과정을 지장보살이 지켜보면서 죄를 변호해 주기도 한다. 지장전에는 지옥에서의 그런 광경들을 그린 십왕원(十王圓)이 있다. 십왕원에 의하면 죽은 사람들은 이레에서 사십 구일까지와 백일과 일년, 삼년 등 열 차례에 걸쳐 여러 왕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런 내용은 십왕도에 묘사되어 있다. 십왕탱화에는 화폭 아래에서 삼분의 일에 이르는 부분에 색구름이 피어오른다. 윗부분에는 책상에 앉은 대왕이 중심에 있고 구름 아래로는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표정들은 근엄하지만 그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스며있다. 고통을 희열로 발산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장보살의 제도 중생의 의도를 깨달은 것일까? 묘한 이치이다.
(10) 조사당
선종사찰(禪宗寺刹)은 조사에 대한 신앙이 강하기 때문에 조사의 사리탑인 부도를 건립하고 조사당을 지어 역대 조사들의 영정을 봉안했다는 점에서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11) 사천왕문·인왕문·금강문
모두가 사찰산문으로서 각각 사천왕·인왕·금강역사 등의 불법 옹호신을 봉안하여,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악귀를 제거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들 산문을 통과함으로서 가람의 내부는 청정도량이 되는 셈이다.
(12) 산신각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없는 토착 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해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원래의 성격을 불교의 안에서 되찾게 된다. 산신을 호랑이와 노인상으로 표현하고 탱화로서 이를 도상화한 전각이다. 산신각은 한편으로는 가람의 수호신적 기능을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래적 산신신앙의 불교적 전개를 나타낸다.
(13) 칠성각
칠성도 산신과 마찬가지로 원래 불교와는 무관한 신이나, 산신과 같은 과정을 거쳐 수명 장수신의 원래 성격을 되찾게 된다. 칠성각에는 칠성의 화현인 일곱여래 등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여 신앙하게 된다.
(14) 독성각
독성이란 스승없이 혼자 깨우친 성자, 즉 독수선정을 말하고 중국 천태산의 나반존자가 그같은 독성이라며 신앙하고 있으나, 한국사원에서 독성이란 단군 신앙의 불교적 전개라 볼 수 있다. 이의 불교적 수용도 산신이나 칠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15) 삼성각
산신·칠성·독성을 한 전각에 봉안한 것이다. 이 경우 재래의 수·복·재의 삼신신앙과의 습한 현상을 살필 수 있게 된다.
(16) 누각
사원의 중심 불전 앞에는 누각이 세워진다. 이 누각에서는 대법회가 있을 때 불전에서 행할 행사를 행하게 된다.
(17) 일주문(一柱門)
사찰을 들어가다 보면 제일 앞에 일주문이 있는데 이는 사찰의 관문이다. 한문 그대로 풀이하면 '한 개의 기둥으로 된 문'이지만 두개의 기둥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 것이다.
(18) 당(幢)
사찰의 문 앞에 세우는 기(旗)이다. 불,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거나 고승의 명예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또 중생을 계도하고 마군(魔軍)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불전이나 불당앞에 세운다.
(19) 당간(幢竿)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두는 기둥, 사찰경내 전면에는 법당(法幢)을 다는 당간을 세우는 것이 격식이어서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두개의 지주를 세우게 된다. 지금 당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지주만 몇 개 남아 있을 뿐이다. 공주 갑사에는 신라시대 유일의 철제 당간이 남아 있는데 높이 약 50cm의 철통 24개를 연결, 전체 약 15cm의 당간을 이루는 형식이고,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의 철제당간은 고려 광종 13년(926)에 조성된 것으로 지름 40∼50cm, 길이 60∼70cm의 철통 20여개를 연결한 형식이며, 전라남도 나주읍 동문밖 석제당간은 길고 가는 석주(石柱)의 상하면을 반씩 깎아내어 접착시킨 형식의 당간이다. 또한 개성의 흥극사(興國寺)의 당간은 아래쪽 지름이 60cm, 높이 3m가 되는 구리 당간으로 표면에는 황금을 입히고 당간 끝에는 봉황새의 머리를 만들어 꽂은 고려 당간의 대표작이다. 후기에 와서 풍수설이 성해지자, 사찰의 위치에 따라 행주형(行舟型)이니 돛대를 세워야 한다느니 노인형(老人型)이니 지팡이를 꽂아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 때문에 당간이 풍수설에 병합하는 형태변화를 보이다가 차차 당간을 세우는 격식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20)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지주, 대체적인 형태는 지주 밑에 방형(方形)의 대석이 마련되고 지주 사이에 원형간대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켰다. 지주 안쪽은 장식없고 수직으로 되었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주간에 2∼3개와 꼭대기에 구멍이 뚫려 있고, 양측면도 수직으로 되어 있으나 간혹 세로로 능선을 표현한 예도 있다. 내면은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꼭대기에 1단의 굴곡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주의 기대부는 대부분 파괴되어 지주의 하단부가 노출된 것이 적지 않으나 완전한 형태의 것도 많다. 분황사 당간지주에는 거북으로 된 간대가 남아 있고, 공주 반죽동(班竹洞) 당간지주와 갑사 당간지주, 금산사 당간지주에는 기대가 완전히 남아 있어 당간지주의 원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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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도(八相圖)
팔상도(八相圖)란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 중생을 제도하시며 보여주신 것을 중요한 8가지 모습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그 내용은 조각이나 부조등으로도 표현하였으며, 이를 탱화로 그려 봉안한 전각을 팔상전(八相殿)이라 한다. 내용을 보면, 1.도솔래의상(도率來儀相), 2.비람강생상(毘濫降生相), 3.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4.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5.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6.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7.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8.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8가지 모습으로 구분되어 있다.
1). 도솔래의상(도率來儀相) : 도리천에서 내려옴
마야부인의 꿈에 하늘에서 장엄한 음악과 함께 흰 코끼리가 내려와 바른쪽 옆구리로 들어 왔다는 설화를 표현한 것으로 4장면이 표현. [보통 마야궁(摩耶宮), 마야부인이 의자에 앉아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내려오는 꿈의 장면, 입태(入胎)되는 장면, 꿈의 해몽하는 장면까지가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외에 소구담이 도적으로 몰리어 죽는 장면. 정반왕궁(淨飯王宮)이 있고 왕과 왕비가 바라문에게 꿈꾼 내용을 물어보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함.
2). 비람강생상(毘濫降生相) : 룸비니동산에 내려옴
여섯 장면으로 표현 됨. ①마야부인이 해산을 위해 궁을 떠나 친가로 가던 도중 산기를 느끼고 룸비니동산에 이르러 무수(無憂樹)나무가지를 잡고 서서 우협(右脇:오른쪽 겨드랑이)으로 싯달타를 낳는 모습,
②태어난 싯달타 태자가 한손은 위(天)로, 한손은 아래(地)를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는 모습, ③제천(諸天)들이 보물들을 공양하는 모습, ④용왕이 탄생불(誕生佛)을 씻어주는 모습, ⑤왕궁으로 돌아오는 모습, ⑥아지타 선인(仙人)을 불러 관상을 보이는 모습이 표현된다.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4문에 나가 관찰
4장면이 묘사가 됨. 태자로 있을 때 성 밖을 유람하다 4문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고 진리를 찾아 출가할 것을 결심하는 모습을 표현.
[동문(東門): 늙은 노인의 모습을 보고 사색(思索)하는 모습, 남문(南門): 병에 시달리는 병자(病者)를 보고 삶의 무상함을 느끼는 모습, 서문(西門): 장례를 지내는 행상(行喪) 광경을 보고 죽음을 절감하는 모습, 북문(北門): 해탈하고자 출가수행을 하는 수행자(沙門)를 보고 출가(出家)할 것을 생각하는 모습이 표현된다.]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
일국의 왕자로서 부귀와 영화를 벗어 던지고 진리의 길을 찾아 성을 떠나 출가하는 모습으로 보통 3 장면이 표현 됨. ①태자궁(太子宮)에서 시녀들에 취해 잠자고 있는 모습, ②태자가 마부(馬夫) 차익에게 궁성을 뛰어넘을 것을 지시하는 모습,
③차익이 왕비와 태자비(아쇼다라)에게 출가(出家)한 태자의 옷을 바치며 보고하고, 태자의 소재(所在)를 묻는 모습등이 표현 됨.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설산에서 수도
히말라야 설산에서 6년 동안 고행을 하며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도하는 모습으로 보통 7 장면으로 표현 됨.
①태자(太子)가 삭발하고 사문(沙門)의 옷으로 갈아입는 모습, ②차익이 태자의 옷을 갖고 환궁(還宮)하는 모습, ③왕(王)이 교진여(橋陳如)등 5인을 보내어 태자를 불러오게 하는 모습, ④교진여(橋陳如)등 5인이 태자에게 간청하는 모습, ⑤태자가 환궁(還宮)을 거절하자 양식(糧食)을 보내는 모습을 표현, ⑥목녀(牧女)가 우유를 석가에게 바치는 모습, ⑦모든스승을 찾는 모습 등 장면에 따라 약간씩의 가감이 있음.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마구니를 항복받음.
보리수 나무 밑에서 망념을 조복(調伏)받고 마군을 항복받고 마침내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위 없는 정각(正覺:깨달음의 경지)를 이루는 모습으로 4장면이 묘사. 마왕(魔王) 파순(波旬)이 마녀를 시켜 부처님을 유혹하는 모습,
마왕(魔王) 일당이 코끼리를 타고 부처님을 위협하는 모습, 파순(波旬)이 80억 무리를 모아 부처님을 몰아내려는 모습, 모든 천신·천녀·군중들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모습
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 녹야원에서 첫 설법.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하여 법을 전하는 모습으로 중생 제도를 위해 일생동안 법을 전하는 모습으로, 교진여등 5비구에게 설법하는 모습, 수달다 장자가 기원정사(祈園精舍)를 건립하는 것 등이 표현된다.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사라쌍수 아래 열반.
보통 쿠시나가라국의 사라쌍수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과 비탄에 잠겨있는 주위 대중의 모습과 가섭이 비통해 하자 두발을 내어보인 모습, 다비(茶毘) 후 사리를 8국왕이 서로 나누려는 모습 등이 표현된다.
이상의 팔상도(八相圖)의 내용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 보여주신 모습을 8가지로 요약하여 표현
모든 중생에게 해탈할 희망과 자신감을 주어 기필코 성도(成道)할 수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 8가지 모습의 그림으로 표현하여, 사찰의 대웅전 벽이나 탱화로도 조성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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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도 (尋牛圖)
불교에서는 마음의 눈을 뜨고, 자기의 본성을 찾는 것을 견성 (見性)이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본성을 찾아 꾸준히 수행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견성성불 (見性成佛)이라 한다. 절 집에서는 견성성불의 과정을 동자와 소에 비유해서 그린 선종화 (禪宗畵)를 심우도 (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으로 부른다.
심우도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다. 선종(禪宗)의 스님들은 자신의 불심을 찾는 것을 소 길들이기에 비유해서 설법하는 경우가 많다. 고려의 이름 높은 고승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호를 목우자 (牧牛子)로 불렀다. 목우자는 글자 그대로 소 길들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심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소 길들이는 일은 바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법당 좌우 그리고 뒤 벽에 동자가 소를 타고 가는 그림을 보고, 무슨 그림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 심우도는 견성과 성불의 수행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열 가지 그림으로 나누어서 그렸다. 심우도는 동자가 자신의 본성을 찾기 위해서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견성의 단계와,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고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견성성불의 단계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해 준다.
동자는 꾸준히 자기의 본성을 찾는 수행자이며, 소는 사람의 본성에 비유한다. 우리는 불교의 깊은 뜻을 이 심우도를 통해 훨씬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
심우도는 속세를 등지고 저 깊은 본성의 세계를 찾아가는 그림부터 시작한다.
첫째 : 심우(尋牛)는 동자가 손에 고삐를 쥐고 소를 찾기 위해 산 속을 헤매이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수행자가 아직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꼭 찾으려는
의지를 보여 준다.
둘째 : 견적 (見跡)은 동자는 아무도 찾아가기 힘든 깊은 산 속에 숨어 있는 소 발자국을
발견하는 모습을 그렸다.
순수한 정열을 갖고 꾸준히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본성의 흔적을 어렴풋이
느끼지는 것을 소 발자국으로 나타낸다.
셋째 : 견우 (見牛)는 동자가 멀리서 소 울음소리를 듣고, 소를 어렴풋이 발견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자기의 본성을 찾는 견성 (見性)이 바로 눈앞에 다다랐음을 나타낸다.
넷째 : 득우 (得牛)는 동자가 가차없이 그 소 목덜미에 고삐를 채워 사로잡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본성을 찾아낸 이른바 견성(見性)의
단계를 나타낸다. 불교에서는 땅속에서 아직 달구지 않은 쇠붙이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다섯째 : 목우 (牧牛)는 길들이지 않은 소가 스스로 가야할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들이는 모습을 그렸다.
소는 차츰 길들어지면서, 빛깔이 검은 색에서 점차로 흰 색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여섯째 : 기우귀가 (騎牛歸家, 騎 : 말 탈 기)는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렸다.
소는 완전히 흰 색으로 바뀌어 버렸고, 동자와 소는 서로 한 몸을 이루어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섰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깨달음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이다.
일곱째 : 망우존인 (忘牛存人)은 동자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애써 찾았던 소는 온데 간데
없고 자기 혼자만 남아있는 모습을 그렸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으면, 그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이제 고향집으로 소를 타고 돌아오게 되었으니,
소는 한낱 방편으로 버려야 한다는 이치를 말해 준다.
오로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본성으로 스스로 깨달음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덟 번째 : 인우구망 (人牛俱忘, 俱: 함께 구)은 소를 잃고 나서 곧 자기 자신 마저
잊어버린 텅 빈 공간에 하나의 원만 그렸다.
이 세상은 자기 자신 마저 완전히 잊어버리고 텅 비어 있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진리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홉 번째 : 반본환원 (返本還源)은 티끌 하나도 없는 자연의 모습 있는 그대로 그렸다.
본성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서 조금한 번뇌도 있을 수가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있는 그대로 보는 참된 지혜, 바로 반야바라밀다 (般若波羅密多)
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수행자는 꾸준한 수행을 통해 진리를 진리 그대로 보고,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
을 이룰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견성성불 (見性成佛)이라 한다.
열 번 째 : 입전수수 (入廛垂手, 廛; 가게 전)는 지팡이를 짚고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해 가는 모습을 그렸다.
불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데 있음을 강조한다.
심우도는 자기의 본성을 찾고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루는 견성성불의 수행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선종화이다.
끝으로 이 내용에 맞는 반야심경 한 구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菩提薩, 依般若派羅蜜多故, 心無. 無故, 有無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유무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서, 마음에 어떤 거리낌이 없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면, 두려움 마저 없어진다. 뒤바꾸어진 헛된 꿈에서 아주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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