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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석등당간지주석비의 외부 명칭

2007.06.25 12:19 | 원주지역사 | 빨갱이

http://kr.blog.yahoo.com/bchs9027/1330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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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석조물의 외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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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개요 및 명칭도】

우리나라 범종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볼 때 8세기경에 이르러 한국종 특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삼국시대 양식은 남아있는 유물이 없어서 알 수 없고 다만 매장문화재에서 발견되는 풍탁과 8세기 경에 완벽한 범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범종 제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범종은 불교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소리를 내는 범음구(梵音具 - 금강령, 북, 운판, 목어 등)중 하나로 당외(堂外) 종루에 걸어놓고 때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이다. 종루에 특별한 명칭을 붙인 사찰도 있으나 대부분 '범종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며 목어·법고·운판과 함께 있다. 범종에는 치악산 상원사 '까치와 선비' 전설에서 볼 수 있듯이 "깊고 그윽한 종소리를 부처님 말씀에 비유하여 경배 대상으로 삼으며 종소리를 듣는 순간 삼계 중생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신앙적 의미와 건축물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공간적 특성에 따라 '시간' 또는 '특별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

범종의 화학적 성분은 고대 오금(五金 : 금, 은, 구리, 주석, 철) 중 문명 금속이라 할 수 있는 구리가 약 80%에 주석이 약 13%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주석 함량이 15%내외일 때 종의 물리적 상태가 최적이라 한다. 고도의 주조기술과 합금기술이 요구되는 범종은 금속공예 기술이 총 집약된 결정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범종은 '한국종'이란 학명을 얻을 만큼 세계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상원사 동종'에서 그 전형을 볼 수 있으며, 크기·문양·용뉴 형태 변화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양식적 특성을 구분할 수 있다. 즉, 천판에 있는 음통·알맞게 퍼진 종구·종 표면에 조각된 다양한 문양과 비천상·보살상·여래상 등은 회화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종이 제작된 시대를 알려준다. 그러나 중국 범종이나 일본 화종에는 표면에 종횡의 띠를 두르고 형식적인 당좌를 두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특히 맥놀이(두 개의 소리가 간섭하여 주기적으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 현상과 깊은 저음을 내는 음색은 다른 외국종이 따라올 수 없는 우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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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종류와 사용처】
· 기본기와 : 수키와와 암키와로 구성되며 이것들만으로도 지붕의 역활을 다 할 수 있다. 기와집에서 오목하게 기왓골을 형성하며 사각형 모양이 암키와이고, 골과 골 사이에 도톰하게 기왓등을 형성한 긴 반원통 모양이 수키와이다.
· 막새(瓦當) : 일반적으로 '와당'이라 불리며 기와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막새에는 암막새·수막새·이형막새 등이 있다. 암막새는 한쪽 끝에 문양을 새긴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처마 끝에 사용하며 시대에 따라 여러 문양이 시문되었다. 문양에는 당초·보상당초·포도당초·화염당초·서조·기린·용 등 다양한 무늬가 시문되지만 당초무늬가 중심이 된다. 수막새는 외측에 둥근 가장자리가 있고 중심부에 씨방이 있는 연꽃무늬가 주된 무늬이다. 삼국시대에는 무늬가 없는 소문대가 위주였으나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주연부에 구슬무늬나 꽃무늬가 새겨진다. 문양으로는 연꽃·보상화·귀면·금수 등이 새겨진다. 이형막새는 특수한 부위에 사용되었으며 소형막새와 고구려에서 유일하게 제작된 반원막새·타원막새·모서리기와 등이 있다.
· 서까래 기와 : 서까래의 부식을 방지하고 이를 치장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원형과 방형 등이 있으며, 서까래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가운데에 못 구멍이 있다. 나중에는 서까래 기와 대신 주칠이나 단청을 올려 보호하였다. 사용되는 부재의 명칭에 따라 연목기와·부연기와·사래기와·토수가 있다.
☞ 사래기와 : 사래기와는 삼국시대는 연꽃무늬가 주문양이었으나 삼국통일 직후에는 귀면무늬로 바뀌며 고려 후기부터는 간단히 암키와로 대신 쓰거나 단청을 올려 목재를 보호하였다. 그리고 궁전이나 중요한 국가기관의 건물에는 잉어나 이무기 모양의 '토수'를 사래 끝에 끼워 장식하였다.
· 마루기와 : 지붕의 모양에 따라 용마루·내림마루(합각마루)·추녀마루(귀마루) 등으로 구분된다. 처마의 곡선의 반전과 마루장식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미를 잘 나타내는 주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 마루기와는 축조용과 장식용으로 구별되며 축조용은 적새·착고·부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 장식용으로 치미·취두·용두·귀면기와·망새·잡상 등이 있다. 실용적 의미보다는 길상과 벽사,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장식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궁궐이나 국가기관의 지붕마루에는 기와를 쌓지 않고 하얀 백회를 발라 즉 '양성'을 하였다. 회흑색의 지붕과 백색의 지붕마루가 대비되어 실제보다 지붕을 높게 보이게 하고 권위와 신비감을 높여 준다. 치미는 고려 중기 이후로는 용두와 취두로 대체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용두와 취두는 궁궐이나 국가 기관의 지붕마루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일반 가정집에서는 암막새를 세워놓은 망와를 장식하였다. 망와는 망새라고도 부르며 표면에는 간략화된 얼굴무늬가 조각되었다.
☞ 잡상 : 잡상은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하며 홀수로 배치된다. 진흙을 재료로 손으로 직접 조각하여 구운 것으로 마루 끝부터 배치되고 있고 신선·범승·기인·괴수 등의 모습으로 제작된다.
☞ 특수 기와 : 목조 건물의 지붕에 사용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이용된 기와로 담장용·배수로용·전탑용·기단용·장식용·무덤용 등이 있다.
☞ 연꽃무늬 양식
· 복판 : 연꽃 중앙에 새겨진 능선이나 능각에 의하여 연꽃잎이 양분된 것.
· 세판 : 연꽃잎의 길이가 길고 폭이 매우 좁은 것으로 연꽃잎의 개수가 10개 이상이다. 특히 통일 이후에는 16엽 이상으로 증가되어 국화무늬 모양으로 새겨지기도 한다.
· 중판 : 두 연꽃잎이 종 방향으로 겹쳐져 얹혀지거나 서로 엇갈리며 이중으로 중첩된 것.
· 혼판 : 보상화 무늬가 주로 외측에 장식된 채 내측에는 연화무늬이나 인동무늬 등이 복합된 것.

부도 개요 및 부도의 각부 명칭도

2007.06.25 12:05 | 원주지역사 |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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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개요 및 부도의 각부 명칭도】

'부도'라는 말은 'Buddha'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수행승의 유골을 모신 묘탑으로 탑 중의 하나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과 구분하여 부도라고 하며, 사리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탑지가 발견되어 부도의 건립연대와 부도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이 가장 오래 된 것으로 9세기 중엽 이후 구산선문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조성된다. 선종에서는 조사와 부처를 동일시하고,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법통을 중요시하는 불교관에 따라 부처님과 같이 사리탑을 조성하였을 것이다.

부도의 형식은 팔각원당형과 석종형이 있고, 이 두 가지 기본형에서 벗어난 특수형 부도가 있다. 그리고 부도는 탑비와 함께 조성이 되어 부도 주인의 행적과 건립연대, 그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팔각원당형은 통일신라시대에 완성된 부도 전형양식으로 조선 초기까지 이어진다. 팔각원당형이란 명칭은 부도의 단면이 팔각형이고 멀리서 보면 원기둥처럼 보이는데서 유래한다. 팔각원당형은 조형미가 뛰어난 사리탑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쌍봉사 철감선사사리탑이 가장 아름답다. 팔각원당형은 조형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만큼 공력과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는 조형미는 없지만 공력과 비용이 적게 드는 석종형이 유행하였을 것이다. 석종형은 인도에 있는 복발형 탑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추측하며, 종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하여 석종형이라 부른다. 석종형 부도로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울산 '태화사지' 부도가 가장 오래되었다. 아무런 장식이 가해지지 않는 석종형 부도도 곡률이 조금씩 다르고, 표면에 범종처럼 유두를 조각한다든지 하여 변화를 주었다.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 부도밭에 가면 아주 석종형이지만 조금 다른 이채로운 부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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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개요 및 각부 명칭도】

불교미술을 생각하면 탑과 불상을 떠올릴 만큼 탑과 불상은 질과 양면에서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탑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 권 3 탑상편에 있는 '금관성파사석탑'조에 나오는 파사석탑에 관한 것이다.

현재 김해군 허황후 능내에 석탑의 잔재가 남아 있으나 삼국유사 내용을 실증적 고찰 없이는 믿을 수 없다. 탑은 원래 '탑파' 또는 '스투파'라고도 하는데 모두 고대 인도의 범어 또는 파리어에서 음차해온 것으로 일반적으로 탑이라 부른다.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무덤이라는 기능과 생물학적인 인간 석가모니에서 신성화된 석가모니로의 변화에 따라 예배의 대상으로의 기능 그리고 스투파를 건설하여 보시함으로써 공덕을 쌓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인도 중부 도시 산치에 스투파 3기가 존재하는데 제1탑이 가장 크고 고대 인도 스투파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를 지니며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불교가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중국과 인도에는 전탑이, 우리나라는 석탑이, 일본에는 목탑이 세워지듯 그 나라의 자연 환경에 알맞은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게 된다.

설혹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지 않았더라도 석가모니의 묘탑이라는 상징적 의미때문에 불상을 모신 금당과 함께 사찰 공간의 중심부가 되며 신앙의 대상이 된다. 탑은 만들어진 재질에 따라서 목탑·석탑·전탑·모전석탑·청동탑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통신: 백제와 신라의 석탑양식 종합하여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 조성. 상하 2층 기단에 각층 옥신에는 우주가 표시되어 있고 초층은 높되 2층 이상은 급격히 축소. 이시기가 지나면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생겨, 규모가 약간 작아져 옥신석과 옥개석을 한 돌로 만들고 옥신석에는 우주의 모양이 모각된다. 8세기 중엽 절정(불국사 3층 석탑)
9세기에 오면, 사회의 혼란과 선종의 대두로 조형미술에는 패기와 의욕이 감퇴되어 석탑의 규모는 더욱 축소. 옥개석의 받침이 5단에서 4∼3단으로 줄어들거나 기단부 면석의 탱주가 상층이 2주에서 1주로 줄거나 전혀 없어지기도 한다. 한편 그 기단이나 탑신 등에 각종 불교상과 장식모양이 조각되어 장식적인 면이 유행

고려: 대부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전형양식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백제탑의 양식을 계승하는 석탑도 많이 세워졌고, 4사자3층석탑과 같은 이형석탑과 전탑을 계승하는 석탑도 건립되고 있다.

신라의 석탑양식을 계승하였으나 부분적인 변화가 있는 고려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특징은 탑신부의 각 부재가 폭에 비하여 높아져서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해지며, 옥신 밑에는 별석(別石)이 삽입되기도 한다. 옥개석의 처마 밑이 전각에서 심하게 반전되며, 옥개받침의 수가 줄어든다. 초층옥신 밑의 별석 또는 기단갑석상면에는 연화문이 조식되기도 한다. 아울러 이중기단과 함께 단층기단도 유행하며, 다층석탑이 많이 건립된다. 이처럼 고려의 석탑은 신라의 전형양식을 따르면서도 부분적으로 변화를 보임으로서 전체적인 조형감각이 달라지고 있다.
즉 신라시대의 조형이 명쾌하면서도 장중하여 안정된 비례를 보여주는데 비해 정신과 기술 양면의 변화가 비례의 불안정, 형태의 왜소화, 그리고 조형감각의 둔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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