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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님 너무감사 제가 숙재..
정말 알고 싶었던 내용..
좋은 정보 잘 보고 갑..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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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6
 

비석에 대하여

비는 기념할 만한 사실을 돌에 기록하여 세우는 것. 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묘비(능비, 탑비, 신도비)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비석으로 구분함.


처음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지만점차 면을 잘 다듬어 만들었고 통신 이후에는 중국의 영행을 받아 귀부와 이수를 갖춤. 묘비석은 삼국과 통신 시대에는 국왕과 왕족만이 세울 수 있었지만 신라 후기부터 고승들의 탑비가 부도와 함께 세워졌고 조선 시대에는 고위 관료와 유학자들의신도비가 많이 건립됨.

*삼국-통신비:광개토왕비,중원고구려비,사택지적비,진흥왕 순수비, 태종 무열왕비 등
*통신-고려:쌍계사 진감선사비,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비,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신륵사 대장각비, 용문사 중수비 등
*조선:원걱사비, 영릉 신도비, 화양동 서원비, 명량대첩비 등

-신도비: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놓은 죽은이의 생애에 관한 사항들을 새긴 비. 무덤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한(漢)나라 양진(楊震)의 고대위양공지신도비(故大尉楊公之神道碑)에서 시작되어 종2품 이상의 관계(官階)에 있던 사람에 한하여 세웠다. 한국의 신도비는 조선시대 태조의 건원릉신도비(建元陵神道碑)와 세종의 영릉신도비(英陵神道碑)가 있다. 또한 2품 이상에 한하여 세우는 것으로 제도화하였으나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한편 공신이나 석유(碩儒) 등에 대하여는 왕명으로 비를 세우게 하였는데, 전해지는 것으로는 안산(安山)의 정난종(鄭蘭宗) 신도비, 아산(牙山)의 이순신(李舜臣) 신도비 등이 있다.

-묘지:사자의 생애와 가족 관계 등을 기록하여 무덤안에 묻는 비석(모두루 묘지, 송준길 묘지 등)



1. 사찰구조
(1)삼국시대
1)고구려 : 사찰 중앙에 8각탑이 위치하고 동,서,북 방향에 각기 금당 배치
1탑 3금당(삼각형-평양 정릉사)
2)신 라 : 고구려 사찰 구조 영향 받은 변형된 형태 배치
1탑 3금당 (ㅡ자형:황룡사, 사각형:분황사)
3)백 제 : 남북축 위에 남문, 탑, 금당, 강당으로 배치
1탑1금당(부여 정림사지) 이 형식을 3개 겹쳐 놓은 3탑 3금당(익산 미륵사지)
4)통일신라 : 금당 정면 동,서 양쪽에 2기의 탑 배치
2탑 1금당(불국사)
5)고 려 : 큰 사찰에는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개의 불전이 구역을 달리하여 세워지기 시작.
산에 세워진 절에서는 금당의 뒤에 있던 강당이 절의 입구에 누각의 형태로 옮겨짐.
6)조 선 : 여러개의 사찰이 통폐합되면서 성격이 다른 여러개의 불전이 한 구역내에 존재.
탑의 비중이 감소하여 세우지 않는 경우도 있음.
일주문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법당의 바닥에 마루가 깔림.

2. 사찰의 문
(1)일주문 : 사찰 영역 입구에 있는 문.
기둥이 한줄(ㅡ:양쪽 2개)자로 있다해서 유래하였고 한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뜻도 담겨져 있음.
(2)금강문 : 금강역사(인왕)가 서 있는 문. 부처님과 사찰 수호
아"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밀적역사는 적을 공격하는 자세이고
'음'하고 입을 다문 나라연역사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임.
(3)천왕문 : 사천왕이 서있는 문. 불법을 지키는 사방 수호신.
동(지국천왕-비파) 서(광목천왕-용,여의주) 남(증장천왕-칼) 북(다문천-탑,깃대)
(4)해탈문 : '불이문'이라고도 함. 사찰 중심인 법당(금당) 입구에 있는 문.
앞의 문들을 거치면서 번 뇌를 잊고 이곳을 거치면서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와
부처세계와 중생세계가 하나됨.

3. 당간지주와 괘불대
(1)당간지주:절의 깃발을 달던 당간(깃대)을 받쳐주던 것으로 절 입구에 서있음.
당간은 보통 나무로 만들었지만 철이나돌로 만든것도 있음.
(2)괘불대:많은 사람들이 모여 법당 바깥에서 법회를 열때 커다란 불화를 걸기 위한 받침대.
법당 입구 계단 좌우에 한쌍씩 서 있음.

4. 사물
(1)범종:땅속에 있는 온갖 중생과 지옥의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함. 아침28번, 저녁33번
(2)법고:숲과 들판을 뛰어 다니는 온각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함.
(3)목어:물속에 사는 온갖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함.
(4)운판:하늘을 날아 다니는 생명체나 영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함.

5. 석탑
(1)탑: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곳. 고대 인도에서 성인의 유해를 화장하고 그 유골을 봉안하던 스투파에서 비롯. 기원 1세기경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불상이 만들어 지기 전에는 가장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었고, 탑을 중심으로 사찰을 건립함. 아래부터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분. 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탑안에 봉안된 사리의 수호와 공양을 근본 뜻으로 사천완, 인왕, 팔부신상, 사방불, 보살, 12지신상, 비천상, 안상, 감실및 문비형 등을 장엄조식함.

(2)시대별 변화
1)삼국:중국의 목탑 및 전탑을 본뜬 목탑과 석탑을 만듬.
2)통신:석가탑으로 대표되는 한국형 석탑이 완성되는 한편, 독특한 형태의 이형석탑들이 만들어짐.
3)고려 이후:통신시기의 탑을 기본으로 하면서 지역에 따라 백제와 고구려의 반영한 석탑들이 만들어짐.

6. 석등:부처님이 계신 사찰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만든 것. 부처님에 대한 등 공양과 관련된 것으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법당 이외에 불상, 부도 앞에도 설치됨.

7. 부도: 일반 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하는 구조물. 선종이 수용된 신라 하대부터 널리 유행. 탑과 달리 사찰의 외곽에 설치. 유명 고승은 비석과 함께 건립.

8. 불상
(1)불상과 보살상:부처는 부다의 음역. 각자, 여래라고도 함. 삼신불(법불,보불,화불)과 삼세불(과거불,현세불,미래불)로 나눔. 대일여래와 보관아미타불을 제외한 모든 불상은 머리모양이 나발, 육계를 하였으며 몸에 아무런 장식물이 없음. 보살은 보사살타의 약칭. 원래는 깨닫기 이전의 석가를 지칭했으나 자비행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수행자를 지칭함. 대부분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몸에는 천의를 입고 여러가지 장식을 달고 있음.
-불상이름짓기:재료+상호+자세(예: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부처관상:32상 80종호. 이 상을 갖춘 사람이 속세에서는 전륜성왕이고 출가하면 부처가 됨.
-신체명칭:육계. 나발. 백호. 삼도
-자세:탄생불. 입상. 와상(열반상). 좌상(결가부좌,의좌,교각좌,반가좌,유희좌,윤왕좌 등)
-광배:두광, 신광, 거신광 (원형, 타원형,보주형 등)
-대좌:연화좌, 수미좌, 상현좌, 하엽좌, 암좌, 생령좌, 운좌 등)
(2)불상종류

한국에서 불교문화를 받아들인 때는 삼국시대이다. 한국 불교문화사의 시대구분에서 삼국시대는 최초기가 된다. 이 시기에 한반도의 남쪽 낙동강 유역에 가야(伽倻)가 있었고, 그곳에도 불교문화가 들어왔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 받아들인 불교는 하나의 외래종교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불교는 단순한 종교로서만이 아닌, 전반적인 문화현상으로서 민족문화의 모체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멀리 인도에서 이룩된 불교는 인도의 온갖 문화를 수용·포용하면서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또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에는 중국의 독특하고 우수한 문화와 접촉, 융화되어 풍부하고 다양한 중국적인 불교문화 세계를 이룩하게 되었다. 곧 이와 같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되어 온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불교문화는 육로를 통해서 고구려에 전해졌고, 바다를 건너서 백제로 전해졌는데, 고구려에서 받아들인 불교문화는 주로 전진(前秦)을 비롯한 북방 중국의 불교문화였으며, 백제는 주로 동진(東晉)을 비롯한 남쪽 중국의 불교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신라의 경우는 처음 고구려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고, 그 뒤로는 백제와 중국의 남조·수나라·당나라 등지에서도 전래되었다. 그러나 가야에 전해졌다는 불교문화는 중국계통이 아닌 인도(또는 남방)의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받아들여진 불교문화는 고대 신앙이나 고유습속 등 전래의 문화와 잘 융화되어 훌륭한 민족문화로 형성되어졌다.

고구려
고구려는 한국에 불교라는 새로운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이다. 372년(소수림왕 2) 북중국의 전진에서 부견왕(符堅王)이 사신과 승려인 순도(順道)를 보내면서 불상과 경전을 보내왔다. 그 뒤 374년(소수림왕 4)에 다시 중국에서 아도(阿道)가 왔으며, 그 이듬해에는 최초로 성문사(省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세웠다. 이를 한국불교의 초전(初傳)으로 삼고, 또 사원 창건의 효시로 본다. 그러나 동진 때의 고승 지순도림(支遁道林)이 고구려의 고승에게 글을 보냈다는 기록이 《양고승전(梁高僧傳)》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전래시기는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의 불교는 고국양왕을 거쳐 광개토왕 때에 이르면서 크게 융성하여, 평양에 9개의 절이 세워졌으며 지방에도 많은 절이 창건되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승려들은 해외에서의 구법(求法) 및 전교(傳敎) 활동을 활발히 하였는데, 중국의 삼론종(三論宗)을 이루게 한 승랑(僧郞)과 일본에서 활동한 혜편(惠便)·혜자(惠慈)·담징(曇徵)·혜관(惠灌) 등이 있다.

백제
한반도의 남서쪽에 자리한 백제는 바다를 사이에 둔 중국으로부터 해로를 통해 불교문화를 받아들였다. 백제가 처음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되어 있는 384년(침류왕 1)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백제로 들어왔다. 백제는 낯선 외국의 승려를 크게 환영하고 또 궁중에서 극진히 공경하였는데, 이 점에서 불교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자세가 엿보인다. 마라난타는 백제에 온 이듬해 절을 짓고 승려를 배출하였고, 552년(성왕 30)에는 일본에 백제불교를 전하였으며, 30대 무왕 때에는 전라북도 익산(益山)에 미륵사(彌勒寺)라는 웅대한 절을 세워 백제의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지금도 익산의 그 절터에는 한국 최고·최대의 석탑이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백제의 불교에서 특히 겸익(謙益)은 인도에까지 유학을 다녀와 경전을 스스로 번역하여 백제 율종(律宗)의 시조가 되었으며, 담혜(曇慧)·도심(道深)·관륵(觀勒)·도장(道藏)·법명(法明)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승려들이 일본문화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라
삼국 가운데 가장 불리한 지리적 조건과 문화적 후진성으로 인해, 대륙으로부터 일어나는 국제정세 동향과 새로운 문화추세 등에 대해 어두웠던 신라는, 고구려를 통하여 들어오는 불교문화의 새 흐름을 무조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교를 전하려고 들어왔던 고구려의 고승 정방(正方)과 멸구자가 희생된 사실이 있었으며, 묵호자(墨胡子)와 아도(我道;阿道) 등의 전도승들 또한 밀실에서 숨어 살아야 했다. 그 뒤 제23대 법흥왕에 이르러 불교가 공인되었으나 이렇다 할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진흥왕대에 들어서면서 흥륜사(興輪寺)·황룡사(皇龍寺) 창건, 승니(僧尼)의 양성과 구법유학 지원, 불사리(佛舍利)와 불상의 조성 및 승통제(僧統制) 마련, 국선화랑(國仙花郞)의 단체 설치 등 불교문화를 진흥시켰다. 이후의 왕들도 진흥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불교문화의 보호와 진흥에 힘썼다. 한편 진평왕 때의 원광(圓光)과 선덕여왕 때의 자장(慈藏) 등의 승려는 교화활동에 공이 컸으며, 현태(玄泰)를 비롯한 많은 승려들이 인도 등지로 구법유학을 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불완전하나마 통일을 이룩한 신라는 민족적 불교문화의 완성에 주력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으로, 그들은 신라사회의 정신적 기둥이었으며 동시에 위대한 사상가였다. 또한 원효는 《금강삼매경소(金剛三昧經疏)》 등의 저소(著疏)와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등의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아울러 경흥(憬興)은 《미륵삼부경소(彌勒三部經疏)》를 비롯한 5부 12권의 저서를 내었고, 유식학(唯識學)의 대가 태현(太賢), 참회법과 점찰간자(占察簡子)로서 참회불교인 점찰교법(占察敎法)을 새로 일으킨 진표(眞表) 및 신인비법(神印秘法)으로 당군(唐軍)의 침입을 미리 막게 한 명랑(明朗) 등은 신라불교의 번영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밖에도 중국에서 활동하며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존경을 받은 원측(圓測)과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라는 귀중한 자료를 남긴 혜초(慧超)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하였다. 한편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 및 한국 최대의 범종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등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고, 불교문화·음악도 성행하였다.

고려
고려는 개국 초부터 태조의 적극적인 봉불정책(俸彿政策)에 따라 팔관회(八關會)를 베풀어 연례행사로 삼게 하였고, 경유(慶猷)·충담(忠湛)을 왕사(王師)로 삼고 많은 고승 대덕을 존경하여 예우하였다. 태조의 숭불호법(崇佛護法)의 국가적 정신은 역대의 왕들이 모두 계승하여 6대 성종은 송나라로부터 대장경(大藏經)을 들여왔고, 8대 현종과 23대 고종은 불법의 힘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대장경을 각판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대각국사(大覺國師)·보조국사(普照國師)와 같은 훌륭한 고승이 배출되었고, 불교의 여러 종파(宗派)가 이때부터 비롯되어 화엄종(華嚴宗)·자은종(慈恩宗)·남산종(南山宗)·조계종(曹溪宗)·천태종(天台宗)·시흥종(始興宗)·신인종(神印宗)·총지종(摠持宗)·중도종(中道宗)·도문중(道門宗) 등이 있었다. 특히 《고려대장경》 조성은 고려 불교문화의 집대성인 것이며, 이와 함께 부석사(浮石寺)의 무량수전(無量壽殿)과 경천사(敬天寺)의 13층탑 및 혜허(慧虛)의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 등이 현존하고 있다. 또 광종 때의 균여(均如)는 불교문화를 통해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기도 하였다.

조선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을 표방한 조선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태조 때 무학(無學)을 왕사로 삼아 개국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이후 억불책으로 인하여 상당히 위축되었다. 세종이 즉위하면서 기존의 종단을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양종으로 하였으나,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들 수양(首陽)에게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짓게 하는 등 그간의 억불책에서 다소 후퇴하였다. 그러다가 세조는 불교보호정책을 펴 인경간행(印經刊行)과 불전의 번역 및 불교가무(佛敎歌舞)의 창제에 힘썼고, 불교음악인 《영산회상(靈山會相, 靈山會上)》은 조정의 정악(正樂)으로 되었으며, 또 불교 무용인 연화대무(蓮花臺舞)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세조 사후 조선의 불교는 유생들에 의해 가혹한 배척을 받아 1566년(명종 21)에는 양종과 승과가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 뒤 산중에 은거하던 승려들은 임진왜란 때 의승군(義僧軍)을 조직, 혁혁한 전공을 세워 휴정(休靜)과 유정(惟政)은 왜군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불교문화는 산중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특징이 있다.

근대
근대에 들어서면서 불교는 그 핍박의 굴레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승려에 대한 입성금지령(入城禁止令)의 해제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일본의 니치렌종[日蓮宗(일련종)] 승려의 건의에 따라 당시의 친일내각 총리대신인 김홍집(金弘集)의 결단에 기인한 것이었다. 1899년(고종 36) 동대문 밖(지금의 창신초등학교 자리)에 원흥사(元興寺)가 세워져, 한국 불교의 총종무소(總宗務所)가 되면서 전국의 사원을 통할하였다. 정부에서도 이때부터 국가행정의 범위 안에서 불교를 보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오랫동안 관심 밖으로 방치되었던 전국의 사찰 및 승려의 위치는 차츰 개선되었다. 한편 1906년에는 최초의 근대적 불교교육기관인 명진학교(明進學校)가 원흥사를 교사로 하여 세워졌는데, 이는 오늘날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의 모체이며 한용운(韓龍雪) 등이 수학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국권이 상실되면서 한국의 불교교단은 일본 총독의 지배하에 30본산으로 나뉘어 각각 30군데의 교구로 성립되기에 이르렀으나,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통제하는 기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설립되어 중앙통제기구로서의 체제를 갖추었으나, 곧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시 총본산(總本山) 운동이 전개되었다. 1941년 봄 태고사(太古寺;지금의 조계사)를 세워 총본산으로 삼고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이라고 불리던 종단의 이름을 조계종(曹溪宗)으로 결정하였다. 그 뒤 1945년 8·15와 더불어 조선불교조계종은 한국불교조계종(초대교정 鼎鎬)으로 재정비,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현대불교의 과제
한국 불교문화는 민족문화의 근간을 형성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억불로 인해 산중에 은거하면서도 그 문화의 맥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일제강점기 아래에서도 선교양종 또는 조계종의 정통성을 끝까지 지켜왔다. 8·15는 불교계에도 무한한 비약을 기약하는 자유를 누리게는 하였으나, 그에 따른 많은 과제와 문제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오늘의 한국불교는 그러한 과제와 문제성을 극복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인류가 화합하여 참된 인간을 완성하려는 불교의 목적과 승가(僧伽)의 참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곧 한국불교의 과제이며 바람이다. 그 동안 한국불교는 호국불교에 치우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상을 소홀히 하였고 다른 종교와의 갈등에 원만히 대처하지 못한 점도 있었으나, 많은 불자(佛子)들의 대승적 노력과 특히 불교방송(佛敎放送;BBS)의 개국 등으로 인해 오해반목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미륵신앙 (彌勒信仰)

인도에서 성립하여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수용된 미륵보살에 대한 신앙.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드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 미륵정토인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와 현세에 출현한다는 미래불이다. 따라서 미륵신앙은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현현(顯現)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론적인 경향이 짙은 불교가 지니고 있는 구체적인 신앙형태로서, 희망의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불교사 속에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미륵신앙에는 도솔천에 살기를 원하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륵의 하생을 기대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다. 이 가운데 상생 즉 도솔천 왕생사상은 보다 체계화되고 심화되어 진종(眞宗) 또는 법상종(法相宗)이라는 대종파(大宗派)로 널리 퍼졌다.

삼국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미륵신앙은 면면히 이어오면서 많은 영향을 끼쳐오고 있다. 한국의 지명이나 산이름·절이름 등에 미륵·용화·도솔 등이 자주 쓰였던 점, 각 절에 미륵불을 봉안한 미륵전이 많이 있는 점, 상당수의 미륵불상이 전하고 있는 점, 미륵신앙에 얽힌 설화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점 등이 모두 미륵신앙의 영향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반적인 불교학의 발달과 함께 원효·원측·경흥 등에 의해 미륵사상에 대한 학문적 논리체계가 세워졌다. 또한 신라시대의 화랑과 미륵신앙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도 미륵신앙의 신라적 수용의 한 특징이었다. 이것은 곧 미륵신앙의 이상적 세계를 신라사회에 구체적으로 역사화시키고자 했던 현실적 의도였다. 유토피아적 세계를 제시하는 미륵신앙은 주로 하층민의 희망의 대상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미륵신앙을 중시하는 법상종이 선종이나 화엄종의 세력에 밀려나서 신라시대와 같은 열렬함과 독특함을 지닌 미륵신앙은 다시 꽃필 수 없었다. 그러나 특수 사찰을 중심으로 미륵신앙은 왕실과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하층민을 중심으로 미륵신앙이 이어졌지만 그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1688년 요승 여환(呂還)이 일으킨 역모만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불교에서 분파된 신흥종교 중 전통적인 미륵신앙을 그들의 교리 속에 절충하여 가진 경우가 있다. 주로 금산사를 중심으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을 교조로 하는 증산교(甑山敎) 계통과 교주 서백일(徐白一)이 세운 용화교(龍華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증산의 제자 김형렬(金亨烈)은 한때 금산사에 미륵 불교라는 한 교파를 세우고 금산사의 미륵불을 증산의 영체(靈體)로 신봉하기도 하였다. 용화교는 한때 그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으나, 1966년 교주 서백일이 피살된 뒤 교세가 쇠퇴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금산사 주변에는 용화동을 중심으로 용화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편 황석영(黃晳暎)이 지은 《장길산(張吉山)》 등에도 미륵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는 점으로 보아, 1980년대 한국사회에 풍미했던 민중사상과도 어떤 맥락의 일치를 볼 수 있다고도 추정된다.

불교의 우주관이 28계 33천이 아니고 3계 28천(33천)

1. 불교의 우주관이 28계 33천이라고?
33천이란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33개의 하늘인줄 알았다.
보신각의 종을 33번 친다든가 독립선언의 민족대표가 33인인 이유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흘려들으면서 33천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33개의 하늘을 뜻하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나중에 33천이란 도리천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적잖이 당황했다. 갑자기 33개였던 하늘이 겨우 도리천 하나로 빨려들어가 버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왜 도리천의 다른 이름이 33천인가에 대한 이유는 더욱 실소를 주었다. 숫자 33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Trayastrimsa의 음을 옮긴 것이 도리라는 것이었다.
이 도리천에 제석천이 산다는 이야기도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즉 다음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제석천을 “하늘의 최고 임금인 천주로 군림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문장도 도리천의 다른 이름이 33천이고 33천의 주인이 제석천이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하늘(33개의 하늘이라고 착가하면서)의 임금은 제석천인가 보다 하는 오해가 싹튼 것이다. 이런 오해가 싹이 되어 제석천은 하늘의 최고임금이라면서 왜 제일 높은 하늘에 거주하지 않고 꽤 아래인 도리천에 살지? 하는 그럴듯한 의문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제석천에 대한 오해
제석천은 이 도리천의 선견성(善見城)에 머물면서 사천왕과 주위의 33천 세계를 통솔하는 하늘의 최고 임금인 천주(天主)로 군림한다.

▶제석천에 대한 바른 견해
범천(梵天)은 욕계(欲界)를 벗어난 색계(色界)의 제1선의 단계에 위치하며, 현실적 세계인 사바세계를 다스리는 천왕으로 여겨져 왔고, 제석천은 욕계(欲界) 사천왕천 위에 있는 도리천의 천왕으로 받들어 왔다.

나중에 체계적인 설명을 읽으면서 욕계, 색계, 무색계 3계가 있으며 하늘(天)만 따져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 모두 28개의 하늘이 있음을 알았다.

불교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많은 자료에서 28계 33천이란 말을 많이 접했다. 대개 이 용어는 28계와 33천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서 애로를 느꼈는데, 28계는 28개의 하늘을 33천은 “그곳의 天民들은 건강하고 무병장수 하므로 33천민들 처럼 건강하고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33천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게 됐다.


2. 3계 28천 혹은 3계 33천
도리천을 33천으로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원래 33을 의미하는 도리천의 입장에선 불만이 있을 수 있으나 많은 혼동을 주므로) 좀 더 불교적인 33천의 의미로 확장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보통 우주관에 천신들의 세계인 하늘(天)만 포함시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 모두 28개의 하늘을 이야기 하고 있으나 육도윤회의 5가지 세계(loka)를 빼고 28계 33천 같이 이야기 하는 것보단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을 포함하여 3계 33천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래에 첨부한 자료는 그런 의미에서 지옥이 01번이 되고, 비상비비상천이 33번이 되게 만들어 보았다.

번호만 그렇게 자의적으로 붙였을 뿐 각 하늘의 순서와 이름은 올바른 자료를 참조하였다. 그리고 각 하늘의 이름을 번역된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팔리어로 찾아 병기하였다. 불교용어의 팔리어 찾기는 불교의 세계화, 불교의 초기불교화에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색계 4선의 9천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모두 병기하진 못했다.

3. 3계 33천이라면 어떨까?
A. 欲界(Kama-loka) 11천
(원래는 06 사천왕천부터 세어 욕계6천이나 지옥부터 포함해서 욕계 11천으로 했다)
01. 지옥(地獄, Niraya),
02. 축생(畜生, Tiracchana-yoni),
03. 아귀(餓鬼, petti-visaya)
04. 아수라(阿修羅, asura-nikaya)
05. 인간(人間, Manussa)

06. ①사천왕천(四天王天) Catummaharajika
07. ②도리천(?利天, 三十三天, Tavatimsa, 범어 Trayastrimsa) - 제석천이 주인이다.
08. ③야마천(夜摩天, Yama)
09. ④도솔천(도率天, Tusita) - 미래의 부처가 사는 곳이다.
10. ⑤화락천(化樂天, Nimmanarati)
11. ⑥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mmitavasavatti)

B. 色界(Rupa-loka) 18천
초선(初禪) 3천
12. ①범중천(梵衆天, Brahma Parisajja)
13. ②범보천(梵輔天, Brahma Purohita)
14. ③대범천(大梵天, Maha BrahMa)

2선(二禪) 3천
15. ①소광천(少光天, Parittabha)
16. ②무량광천(無量光天, Appamanabha)
17. ③광음천(光音天, Abhassara)



3선(三禪) 3천
18. ①소정천(少淨天, Parittasubha)
19. ②무량정천(無量淨天, Appamanasubha)
20. ③변정천(遍淨天, Subhakinha)

사선(四禪) 9천
21. ①무운천(無雲天)
22. ②복생천(福生天)
23. ③광과천(廣果天, Vehapphala)
24. ④무상천(無想天, Asnnasatta)
25. ⑤무번천(無煩天, Atappa)
26. ⑥무열천(無熱天)
27. ⑦선견천(善見天)
28. ⑧선현천(善現天, Sudassi)
29. ⑨색구경천(色究竟天, Akanittha)

C. 無色界(arupa-loka) 4천
30. ①공무변천(空無邊天, Akasanancayatana)
31. ②식무변천(識無邊天, Vinnayancayatana)
32. ③무소유천(無所有天, Akincannayatana)
33. ④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N'eva sanna n'asannayat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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